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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예술가가 수집한 예술

아르농쿠르 부부의 오스트리아 집

예술가의 컬렉션은 이들의 사적인 세계를 엿볼 수 있는 창과 같다. 특히 무대나 공적인 자리에서만 예술가와 만나는 대중에게, 예술가의 개인적인 취향과 안목이 묻어나는 컬렉션은 이들의 삶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유명 예술가의 컬렉션은 크리스티나 소더비 같은 대형 경매사에서도 제법 큰 규모로 기획된다. 최근에는 크리스티에서 열린 오스트리아의 유명 지휘자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Nikolaus Harnoncourt, 1929-2016와 바이올리니스트 알리스 아르농쿠르Alice Harnoncourt, 1930-2022 부부의 컬렉션 경매가 화두였다. ‘예술가가 수집한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부부가 63년에 걸쳐 모은 고악보와 그림, 공예품 등이 출품됐다. 거장 화가들의 작품 40점은 7월 6일 현장 경매가 이뤄졌으며, 나머지 공예품과 고서 경매는 6월 30일부터 7월 14일까지 온라인에서 진행됐다.
생전 지식과 아름다움, 그리고 음악에 둘러싸인 삶을 살기를 바랐던 아르농쿠르 부부는 “단순한 수집가가 아니라 (그들이) 소유한 예술품을 직접 사용하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잘츠부르크 근교의 집 현관을 열면 르네상스 시기의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조각이 걸려 있으며, 플랑드르 대표 화가로 꼽히는 얀 브뤼헐Jan Brueghel de Oude의 꽃 정물화와 바로크 미술의 탄생을 이끈 한스 폰 아헨Hans von Aachen의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가 나란히 걸려 있다. 그 아래 16세기 베네치아의 길드에서 조각한 의자 한 쌍이 고풍스러운 자태를 풍기고, 맞은편 피아노 위에는 루벤스Peter Paul Rubens의 <가시 면류관을 쓴 그리스도> 습작이 걸려 있다.
딸 엘리자베스는 “부모님은 매일 잠들기 전 집안을 거닐며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했다”고 회고했다. 컬렉션은 가까이 들여다보아야 하는 작고 섬세한 예술품과 책으로 이뤄진다. 이들의 컬렉션에는 르네상스부터 5세기에 걸친 역사적인 예술 자료, 특히 15~17세기 유럽인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 많다. 시대악기를 사용해 바로크와 고전음악을 연주하는 콘첸투스 무지쿠스 빈Concentus Musicus Wien을 공동으로 창단하고 시대악기 연구에 골몰해온 부부의 삶을 증명하는 듯하다.

컬렉션은 아르농쿠르의 음악적 삶과 개인적인 관심을 양분하듯 크게 악보와 고서, 공예품과 가구로 나눠진다. 목공에 관심이 많던 아르농쿠르는 지휘자가 되기 전엔 목공예가가 될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가구는 이탈리아에서 제작된 고가구들이 주를 이룬다. 16세기 베네치아 공방에서 제작된 마욜리카 도자기 등 르네상스 시대 공방 작품에 관심이 많았다. 그림은 얀 브뤼헐과 루벤스에서 느껴지듯 플랑드르 화파, 특히 길드의 작품을 선호했다.
고서·고악보 섹션은 마니아들을 불러 모았다. 아르농쿠르는 베토벤이 자필로 박자표와 빠르기를 남긴 교향곡 9번 ‘합창’의 초판1826을 포함해 베토벤 교향곡의 초창기 악보를 여럿 모았다. 베토벤 음악을 철저히 당시의 방식으로 연주하기로 정평이 난 그는 이 악보들에서 단서를 얻었을 것이다. 하이든의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여러 권의 모차르트 소나타 곡집을 비롯해 라모의 비극 오페라 <조로아스트르> 초판도 있다.
베토벤 9번 초판만큼이나 관심을 끈 것은 르네상스 음악학자 후고 슈페히트스하르트Hugo Spechtshart가 쓴 14세기의 음악 논문 ‘Flores Musicae’ 초판. 최초의 목판 악보를 비롯해 최초의 계명창 교육법인 ‘귀도의 손’ 삽화 등이 포함된 귀한 서적이다.
매일 일정한 간격으로 읽게 돼 있는 중세의 기도집이나 필사본 『시간의 책』(15세기 중반 추정), 달마다 달라지는 앤트워프 모습을 담은 야코프 그리머Jacob Grimmer의 풍경화에서는 아르농쿠르가 과거의 시간 개념에도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음을 보여줬다. 이번 컬렉션을 통해 대중은 아르농쿠르 부부의 시대적 관심사와 연구 흔적을 좇아볼 수 있었다.
이렇듯 예술가의 컬렉션은 예술가를 알아가는 또 다른 통로가 된다. 지난 2월 프랑스 아르퀴리알에서 열린 작곡가·지휘자 피에르 불레즈Pierre Boulez, 1925-2016의 컬렉션 경매에서는 프랑스 현대음악계를 선도적으로 이끈 불레즈가 삶 속에서 얼마나 현대 예술, 특히 공감각적 표현에 경도되었는지 보여줬다. 파울 클레Paul Klee 작품의 조형미와 음악성을 연결하는 책까지 집필할 정도로 그에 대한 열정이 대단했던 만큼, 클레의 수채화를 비롯해 각국의 언어로 출판된 그의 이론서 ‘The Theory of Modern Art’도 포함됐다. 그 외에도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의 작품 등 청각을 시각으로, 시각을 청각으로 옮겨온 예술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지난 3월과 4월 크리스티에서 열린 안무가 롤랑 프티Roland Petit, 1924-2011와 지지 장메르Zizi Jeanmaire, 1924-2020 부부의 컬렉션에는 시대를 풍미한 무용계·사교계 명사로서 이들의 모습이 잘 담겨 있었다. 1940년 파리 오페라 발레에 입단해 1998년 마르세유 발레 감독으로 은퇴하기까지 60여 년간 프랑스 발레계에 큰 족적을 남긴 롤랑 프티와 무용수로 시작해 영화·뮤지컬 배우 등 여러 활동을 펼친 지지 장메르. 이들의 컬렉션은 무대를 만들며 만난 화가나 디자이너들과 관계를 간증한다. 니키 드 생팔Niki de Saint Phalle의 댄서 스케치, 장 콕토Jean Cocteau가 그린 <롤랑 프티의 초상>, 이브 생 로랑Yves Saint Laurent이 지지에게 보낸 스케치 쪽지들, 키스 해링Keith Haring의 <롤랑에게> 등등 컬렉션은 당시 예술가들의 교류 흔적이 고스란히 담겨, 실제 삶과 감정이 깃든 이들의 추억을 소유할 기회로 관심을 모았다.

전윤혜 음악평론가
사진제공 Christie’s Images Ltd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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