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화의 방으로의 초대
쿼드 초이스- 두 개의 눈
‘전통의 재해석’은 전통예술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문구다. 재해석의 방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전통을 고정불변의
원본으로 상정하고 이를 소재로 창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통 자체에 틈입해 원본성을 해체하는
것이다. 전자는 전통에 새로운 주석을 다는
작업이고, 후자는 전통을 독특한 형태로 연장하는
작업이다. 전통을 재해석하는 대부분 작품은
후자가 아닌 전자의 방식을 택한다. 하지만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사선택하는 작품도 존재한다
무토MUTO와 입과손스튜디오IPKOASON가
함께 제작한 <두 개의 눈 >은 두 가지 방식을 모두
사용해 전통 판소리 ‘심청가’를 재구성한 작품이다.
2020년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창제작 공연으로
제작돼 초연했으며, 이후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 등 여러 무대에 오른 바 있다. 재공연할
때마다 수정과 보완을 거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
두 단체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는 쿼드 초이스 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돼 새로운 관객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
<두 개의 눈 >의 기본 골조는 판소리
‘심청가’를 다시 읽는 것이다. 다만 효성 지극한
심청이 아닌 눈먼 심학규에 방점을 찍고, 원안을
살짝 비틀어 판소리를 재구성했다. 심봉사와
딸 심청이 어려운 생활을 이어가던 중 아버지
심학규의 눈을 뜨게 하려고 공양미 300석에 몸이
팔려 인당수에 빠졌으나 세상의 도움으로 왕후가
되어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한다는 모두에게 익숙한
심청가의 서사를 새로운 시선으로 재편했다. 특히
‘눈을 뜬다’는 상징적 사건에 대한 두 단체의 해석이
작품의 도처에 투영돼 있다.
<두 개의 눈 >은 작품의 내용뿐만 아니라
무토와 입과손스튜디오의 협업으로 일찍이 화제를
모았다. 두 단체가 만들어 낼 무대 형식에 대한
기대가 컸기 때문이다. 미디어아트가 빚어내는
화려하고 감각적인 스펙터클과 배경음악에
머무르지 않고 존재감을 드러내는 음악은 <두 개의
눈 >에서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단단한 협업의 결과물은 두 단체의
뚜렷한 색깔과 좋은 호흡에서 비롯된 것이다.
무토는 ‘광활한 대지’라는 뜻으로, ‘보이는
음악VIEWZIC’을 표방하는 그래픽 아티스트 박훈규,
‘팀노드teamNode’를 이끄는 그래픽 디자이너
홍찬혁, 거문고 연주자 박우재, 이디오테잎IDIOTAPE
프로듀서 신범호가 2016년 결성한 단체다.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 모여 독창성과
동시대성에 대한 고민을 바탕으로 공연예술에 관한
독특한 관점을 제시해왔다.
입과손스튜디오는 소리꾼의 입과
고수의 손을 뜻하는 이름으로, 이승희·김소진·
이향하·김홍식·신승태 등 소리꾼과 고수가
함께하는 판소리 공동 창작단체다. 판소리는
소리꾼과 고수, 청자의 상호작용 속에서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라는 믿음 아래 판소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탐색하고 있다. 연주자이자
창작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새로운 판소리를
창작하는 데 주력하는 대표적인 단체다.
무토와 입과손스튜디오는 부단히 가꿔온
자신들의 세계 중 어느 것 하나 소외시키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방식으로 <두 개의 눈 >을
주조한다. 관객의 감각을 자극하되 음악이 중심이
되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본래의 과제를 잊지 않는
것이다. 두 단체의 호흡은 각자의 영역에 대한
존중뿐만 아니라 장르 간 경계에서 가능성을 찾는
태도로부터 출발해 완성되는 셈이다.
<두 개의 눈 >에서 판소리 ‘심청가’를
다시 보는 작업이 작품의 근간이 된다면, 무대를
장악하는 미디어아트는 작품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핵심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심청가’의 눈대목은
입과손스튜디오의 밀도 높은 소리에 거문고와
전자음악이 곁들여지며 새롭게 완성된다. 무토
특유의 장엄하고 몽환적인 시청각 스펙터클은
미디어아트, 조명 등을 통해 무대 전반에 구현된다.
드론으로 촬영한 광활한 자연경관은 시각적 쾌감을
불러일으키고, 깜빡이는 커다란 눈동자 캐릭터와
촘촘하게 가로지르는 레이저의 향연은 현실에서
볼 수 없는 기묘하고 이질적인 장면을 선사한다. <두
개의 눈 >의 스펙터클이 만들어내는 독특한 불안과
긴장, 경이로움은 관객들의 눈과 귀를 깨울 것이다.
영국의 문예지 ‘화이트 리뷰The White
Review’에 수록된 인터뷰를 엮어 만든 『예술가의
항해술』에서 리베카 솔닛Rebecca Solnit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선을 그어 놓으면,
각각은 자기만의 방에 머물러 있을 뿐 서로
대화를 주고받지 않는다. 그러나 모두를 널찍한
무도회장으로 초대해 다 함께 춤을 추게 할 수도
있다. 아니면 모두의 방이 한집에 있어서
우리가 자유롭게 이 방 저 방 드나들 수도 있고
통상적으로는 단절되어 있는 것들을 서로
연결하는 작업을 한 작가들이 내게는 큰 중요성을
가진다.” 하나의 무대에 다양한 매체를 초대하는
작품은 새로운 광경을 제시하는 데 그치기 쉽다.
하지만 각각의 장르에 단절된 채 머물러 있기를
멈추고 대화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작품도 드물게
존재한다. 판소리와 전자음악·미디어아트 등
여러 매체의 이종교배로 완성되는 <두 개의 눈 >은
관객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게 될까.
이번 무대에서는 대학로극장 쿼드의 공간을 활용해 무대 바닥부터 객석을 찬란한 LED 미디어아트로 아우른다
7월 14일부터 16일까지
대학로극장 쿼드
글 성혜인 음악평론가
사진제공 엑스알파운더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