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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AI는 모작의 대가인가?
생성형 인공지능의 예술 창작

‘더 넥스트 렘브란트’ 프로젝트로 완성된 ‘렘브란트가 그리지 않은 렘브란트 그림’ ⓒWunderman Thompson

생성형 인공지능AI에 ‘앤디 워홀 스타일로, 말을 타고 있는 우주인을 그려줘’라고 입력하면 순식간에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 마이크로소프트Microsoft와 렘브란트 미술관Museum Rembrandthuis 등이 협업한 ‘더 넥스트 렘브란트The Next Rembrandt’ 프로젝트2016는 18개월간 네덜란드 화가 렘브란트Rembrandt, 1606~1669의 그림 364점을 학습해 ‘렘브란트가 그리지 않은 렘브란트 그림’을 충실히 재현해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2021년 9월엔 ‘베토벤이 완성하지 못한 베토벤 교향곡 10번(미완성 교향곡)’이 ‘완성’되어 본베토벤오케스트라Beethoven Orchester Bonn 연주로 초연됐다. 음악학자·음악사가 등 전문가와 인공지능이 협업해 베토벤의 생전 메모와 기존 곡을 바탕으로 빈 곳을 채워넣은 것이다. 베토벤 전문가들조차도 베토벤이 직접 쓴 ‘원본’ 부분과 인공지능이 채워넣은 부분을 구분해내지 못했다고 한다.
이런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인공지능은 데이터를 통해 어떤 스타일을 학습해 모방하는 것에 강하다. 개리 마커스Gary Marcus 뉴욕대 교수는 생성형 AI를 두고 ‘모작pastiche’의 대가라고 말하기도 했는데, 실제로 AI가 창조해낸 ‘○○ 스타일’의 그림을 보고 있자면 놀랄 만하다.
그런데 이런 모작은 비단 AI만의 특기는 아니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위작 작가가 존재해왔다. 이들은 단순히 유명 작품을 베끼는 게 아니라, 한 작가의 스타일을 철저히 학습해 자기 것으로 만든 뒤 ‘세상에 없는 대가의 작품’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2006년 쾰른 렘퍼러츠Kunsthaus Lempertz 경매에서 약 290만 유로에 거래돼 역대 독일 현대 화가 작품 중 최고가 경매액을 기록한 하인리히 캄펜동크Heinrich Campendonk, 1889~1957의 <붉은 그림과 말>은 “현대 미술의 지평을 연 핵심 작품”이라고까지 극찬받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알고 보니 희대의 위작 작가인 볼프강 벨트라키Wolfgang Beltracchi가 캄펜동크 스타일로 완벽하게 그려낸 ‘원본 없는 작품’이었다. FBI의 수사망을 피해 자서전까지 쓴 위작 작가 켄 페레니Ken Perenyi 역시 주로 18~19세기 네덜란드·영국·미국의 유명 화가들의 ‘존재하지 않는 원본’을 양산해냈다. 거의 인공지능 수준의 눈썰미와 학습 능력, 그리고 유명 화가들의 작품을 열렬히 원했던 구매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위조미술 감정의 대가 토머스 호빙Thomas Hoving은 『짝퉁 미술사False Impressions : The Hunt for Big-Time Art Fakes』에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소장품 5천 점을 조사하곤 이렇게 말한다. “무려 40퍼센트가 위조품이거나 너무나 ‘위선적으로’ 복원된 작품, 혹은 다른 작품으로 오인되고 있어 위작과 거의 다를 바가 없는 작품들이었다.” 진짜 뛰어난 위작들은 여전히 진품으로 갤러리에 걸려 있다.

2006년 경매에서 하인리히 캄펜동크의 위작으로 밝혀진 작품

이처럼 위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음에도 사람들이 ‘진품’을 사랑하고 이를 추구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스타일’ 그 자체보다도 그의 스타일을 만들어낸 작가의 삶의 굴곡과 투쟁 때문일 것이다. 스타일은 어떤 작가의 독자성을 드러내주는 개성적인 표지다. 진정성 있는 스타일은 그의 삶의 방향, 투쟁의 결과에서 우러나온다. 전쟁과 재난 현장을 주로 찍는 사진 작가인 제임스 나흐트웨이James Nachtwey, 1948~ 는 망원렌즈를 쓰지 않고 반드시 가까이 다가가서 피사체를 찍는다. 대상과의 거리가 떨어진다면 현실을 제대로 담아낼 수 없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60세까지 무명 신세를 면치 못했던 객관주의 시인 찰스 레즈니코프Charles Reznikff, 1894~1976의 건조하지만 꽉 찬 시어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한 후” 시를 써야만 했던 시인의 고단한 삶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즉, 이들의 작품에 깃든 스타일은 이들의 삶과 절대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작 작가 볼프강 벨트라키의 삶을 그린 독일 다큐멘터리 <벨트라키>2014에 출연한 한 미술 전문가는 위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이것은 단지 그의 스타일로 그려진 그림일 뿐이다. 거기엔 20세기 초반 작품들에 내재한 비극이나 눈물, 역사적 맥락이 없다.”
스타일이 ‘삶’에 깃든 것일진대, 그 스타일이라는 것 역시 대개 삶만큼이나 울퉁불퉁하기 마련이다. 도나텔로와 괴테는 30대 후반에 작품 스타일에 상당한 변화를 보인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의 삶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단테는 정치적 반역자로 기소돼 37살에 피렌체에서 영구 추방당한 뒤 필생의 대작인 『신곡』을 쓰기 시작했다. 만약 그런 내·외부적 사건과 환경이 없었다면 이들의 작품은 지금의 형태로 탄생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수백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사람들을 강력하게 붙드는 힘을 내포할 수 있었을까?
사람들은 걱정한다. 이젠 AI로 인해 베토벤과 셰익스피어가 영원히 눈을 감지 않고, 이들의 유령이 영원히 창작을 지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면, 만약 셰익스피어가 2023년을 살아간다면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을 ‘17세기 스타일’로 글을 쓸 리가 없을 것이며,(어쩌면 그는 글을 쓰는 대신 다른 걸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베토벤처럼 도전적인 작곡가가 ‘18세기 스타일’에 머물러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글 경향신문 뉴콘텐츠팀 기자 김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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