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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미술시장 동진의 ‘불씨’
2023년을 열고 닫는 아시아 아트마켓

지난해 9월, 서울은 글로벌 아트신scene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세계적인 아트페어 프리즈Frieze의 아시아 진출로 각국의 작가·큐레이터·평론가·미술관장·컬렉터가 서울에 모였다. 2013년 아트 바젤Art Basel이 홍콩에 상륙한 이후 오랫동안 아시아 아트마켓의 핫플레이스는 홍콩이었지만, 이제 차세대 허브로 서울이 떠오르고 있다. 본래 2010년대 초반 아시아 미술의 주도권은 중국이 쥐고 있었고, 이때 한국의 많은 갤러리가 중국에 분점을 설립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과 홍콩의 불안한 관계, 중국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처하는 태도 등으로 해외 미술계는 중국과 홍콩을 대체할 다른 지역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프리즈가 한국을 아시아 거점으로 노린 시기는 2019년 즈음. 프리즈는 제1의 경쟁사인 아트 바젤을 뛰어넘어 아시아 시장을 돌파할 방법을 모색하던 중, 키아프 서울Kiaf SEOUL이라는 적절한 모델을 찾았다. 전 세계 미술작품 총거래 규모에 비하면 아직 한참은 작은 파이지만, 서울은 2016년부터 페로탕Perrotin·페이스Pace·리만머핀Lehmann Maupin 등 걸출한 갤러리가 분점을 내고, 신흥 컬렉터의 활약이 돋보이는 지역이었다. 2019년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관계자가 파트너십을 맺고 여러 차례 의논한 끝에 2022년 9월 코엑스에서 공동 개최가 성사됐다. 프리즈가 서울을 아시아 거점으로 꼽은 이유는 크게 다섯 가지다. 첫째, 유구한 문화. 풍부한 역사와 세계 정상급 미술관을 보유한 서울은 문화의 트렌드 세터로 여길 만하다. 둘째, 컬렉터의 잠재력.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고액 자산가HNWI 80%가 서울에서 2시간 거리에 몰려 있다. 셋째, 거리상 이점. 서울은 베이징·상하이·홍콩·도쿄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넷째, 기반 시설. 서울에는 고급 호텔이 많고 대중교통이 훌륭하게 발달해 있어 외국 손님을 초대하기에 적합하다. 다섯째, 경제 및 정치상. 한국은 자유주의 구조로 빠르게 성장한 세계 최대의 경제국이다.
제1회 프리즈 서울은 대성공이었다. 주최 측은 공정성을 이유로 총판매액을 공개하지 않지만, 키아프 서울과 비교해 1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는 후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을 감안해도 그동안 한껏 부풀었던 기대를 충족해주는 결과가 분명하다. 2006년 이후 끝나지 않을 것만 같던 ‘불황’은 팬데믹을 전환점 삼아 2021년 ‘불장bull market’으로 반등했다. 온라인 시장 활성화, 젊은 컬렉터의 등장, 보상 소비 심리 발동 등의 요인이 겹쳐 아시아 미술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다. 이 축제의 화룡점정은 명실상부 프리즈 서울이다. 하지만 프리즈 서울을 마주하는 태도는 극명히 갈린다. 홍콩에 이어 서울이 아시아 마켓의 허브로 안착할 수 있다는 긍정론과 ‘남의 잔치’로만 끝날 거라는 비관론이다.
이에 프리즈 서울의 수장 패트릭 리Patrick Lee는 ‘프리즈의 힘은 아트페어 개최 도시와의 컬래버레이션에 있다’며 비관론에 대응한다. 그는 “프리즈는 페어를 개최하는 도시와 협력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특히 지역 기관을 행사에 참여시키고 홍보, 지원하기 위해 노력해왔다. 프리즈의 역사를 자원 삼아 많은 사람이 서울에 온다는 건 매우 짜릿한 일이다. 프리즈가 구축한 네트워크를 활용해 서울이 아시아 미술의 중요한 플랫폼으로 자리잡기를 바란다. 최고의 아트페어는 여러 집단의 대화를 촉진하며 좋은 관계를 꾸준히 형성한다. 프리즈 서울이 그 모범 사례가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말한다.
서울을 중심으로 동남아시아 미술 시장이 다시 꿈틀거리는 지금, 우리는 시야를 넓혀 21세기 글로벌 미술 시장의 지형을 살펴봐야 한다. 특히 ‘미술 시장의 동진東進’을 주시해야 한다. 이는 좋게 말해 글로벌이지, 엄밀히 따지면 서구 강대국의 아시아 시장 점령과 다름없다. 프리즈의 서울도 이러한 국제 아트페어의 전략적 구도에서 봐야 한다. 2023년 아시아 아트마켓의 포문은 제1회 ART SG가 열었다. ART SG는 2011년 출범해 2018년까지 지속된 아트 스테이지 싱가포르ART STAGE Singapore의 바통을 이어받아, 아시아의 남북 라인을 잇는 아트페어로서 위상을 노리고 있다. 경제 대국이면서 미술 시장 점유율은 한참 떨어지는 일본도 마침내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올해 7월에는 도쿄 겐다이, 11월에는 아트위크 도쿄가 열린다. 특히 아트위크 도쿄는 기존 아트페어 도쿄의 경영 지분에 아트 바젤을 끌어들이며 글로벌 전략을 꾀하고 있다. 결국 홍콩·서울·싱가포르와 함께 도쿄·자카르타 등이 아시아 미술의 키플레이어로서 경쟁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2016년과 2017년, 단색화 열풍과 함께 내로라하는 해외 갤러리가 서울에 둥지를 틀기 시작하면서 한국에도 글로벌 마켓의 봄바람이 불었다. 2016년 4월 삼청동 페로탕이 첫 주자로 나섰고, 2017년 3월 한남동 페이스 갤러리와 12월 삼청동 리만머핀이 이어서 깃발을 올렸다. 당시 한국 아트신은 세 갤러리가 몰고 올 신선한 바람에 기대가 부풀었고, ‘삼청동 문화 벨트’니 ‘한남동 아트 디스트릭트’니 하는 보도가 연일 쏟아졌다. 하지만 그 흥분은 얼마 못 가 급속도로 식었다. 사실상 전시장보다 ‘쇼룸’에 가까운 규모, 젊은 한국 작가가 진입하기 어려운 장벽, 수출 없이 수입만 지속하는 불균형 구조에 이들의 존재감은 희미해져 갔다.
그러나 프리즈 서울을 기점으로 더 많은 메이저 갤러리가 서울에 유입됐고, 이제 이들은 해외 작가의 전시를 개최할 뿐만 아니라 한국 작가를 조명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우리는 이 불씨를 이어 나가기 위해 지금보다 ‘한국’을 더 많이 이야기해야 한다. 무엇보다 국내에 지점을 둔 글로벌 갤러리들은 한국 아트신의 새로운 구성원으로서 지역 미술을 연구하고 신진 작가를 적극적으로 영입, 육성해야 한다. 아시아 아트마켓의 부흥이 서구 입맛을 돋우는 짧은 유행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우리가 이들에게 먼저 건강한 미술 생태계와 상생 관계를 위한 책임감을 촉구해야 한다.

글 아트인컬처 수석기자 이현

사진 Art Bas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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