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을 마주한 숭고의 순간에서 인간의 하찮은 밑바닥까지 전시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과 〈키키 스미스 - 자유 낙하〉
범접할 수 없는 화려함을 과시한 초상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 2022.10.25~2023.3.1 |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
루돌프 1세가 신성로마제국 황제로 등극한 1273년부터, 왕정이 몰락한 1918년까지 약 600년 동안 유럽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소장품을 만날 수 있는 전시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루벤스, 디에고 벨라스케스, 안토니 반 다이크 등 서양 미술사를 장식한 유명 작가들의 후원자이기도 했다. 오스트리아 빈미술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합스부르크 왕가 컬렉션 중 96점을 전시에서 볼 수 있다.
전시는 합스부르크 왕가 예술품 수집의 역사를 다룬다. 이에 따라 15세기 막시밀리안 1세를 시작으로, 1부 16세기 루돌프 2세 황제, 2부 페르디난트 2세 대공, 3부 스페인 합스부르크 왕가 수집품, 4부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시대, 5부 19세기 프란츠 요제프 1세 시대 등으로 구성돼 있다. 전시의 대미는 고종이 프란츠 요제프 1세에게 선물한 조선 갑옷과 투구가 장식한다.
회화를 집중적으로 볼 수 있는 섹션은 3부 ‘매혹의 명화를 모으다, 예술의 도시 빈’이다. 빈미술사박물관 회화관을 유명하게 만든 명품 회화를 선보인다.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흰 옷을 입은 마르가리타 테레사 공주’, 페테르 파울 루벤스의 ‘주피터와 머큐리를 대접하는 필레몬과 바우키스’, 안토니 반 다이크가 그린 초상화 ‘야코모 데 카시오핀’을 볼 수 있다.
여기에 프랑스의 여성 화가 비제 르브룅이 그린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 요제프 로하체크의 ‘엘리자베트 황후’와 요한 카를 아우어바흐의 ‘마리아 크리스티나 대공의 약혼 축하연’ 등을 보면 당시 왕족의 가장 고급스러운 패션 스타일, 가장 성대한 파티 장면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회화를 감상하고 소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주 소수의 상류층이었다. 캔버스와 물감이 귀한 재료였고, 그림을 그리는 기술도 아무나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림이 귀한 것이었기에, 그림 속에는 가장 화려하고 멋진 순간만이 기록으로 남게 됐다.
감추고 싶었던 치부까지 드러낸 초상 〈키키 스미스 - 자유 낙하〉 | 2022.12.15~2023.3.12 | 서울시립미술관
키키 스미스는 1980~1990년대 여성성과 신체를 다룬 조각으로 주목받은 독일 출신의 미국 현대미술 작가다. 아시아 미술관에서는 처음으로 열리는 개인전에서 그녀는 조각·판화·사진·태피스트리·아티스트북 등 여러 매체를 아우르는 작품 140여 점을 선보인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현실에서 흔히 볼 법한 여성의 누드 조각상은 물론 머리카락으로 만든 회화, 인체 내 장기를 묘사한 조각·설치·회화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스미스가 장기를 묘사한 작품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1980년대 미국은 가정 폭력, 임신 중절, 에이즈 등이 사회문제로 대두하던 때였다.
1990년대에 이르면 그녀는 장기를 넘어 전신상을 제작하는데, 배설이나 생리 등 사회적으로 감춰왔던 치부를 드러내는 조각을 하게 된다. 과거 조각과 회화가 가장 아름답고 이상적인 모습만을 담았다면, 이런 전통과 완전히 반대되는 작품을 제작한 것이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서정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작품이 주를 이룬다.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머리카락 회화 ‘무제(머리카락)’는 스미스의 자화상이다. 스미스는 자신의 머리와 목을 본뜬 고무 캐스트를 만들고, 여기에 잉크를 묻혀 석판에 찍었다. 그다음 머리카락을 흩뜨려 복사기로 인쇄한 뒤 석판 위에 전사했다. 그 결과 세 모서리에 스미스의 옆얼굴이 어렴풋하게 드러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스미스의 초기 대표작인 ‘소화계’는 혀부터 항문에 이르는 장기 기관 전체를 주철로 제작한 것이다. 구불구불한 장기를 본뜬 조각을 벽에 설치한 뒤 스미스는 이 작품이 라디에이터 같다고 느꼈다고 한다. 에너지를 흡수해 신체 곳곳으로 영양을 나눠주는 것이 소화계의 역할이기도 하다.
멋지고 이상적인 모습만 가치 있는 것이라고 느꼈던 과거에서, 스미스의 시대로 오면 ‘진정한 나’는 누구인지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인간의 모습이 보인다. 때로는 하찮거나 징그럽다고 여겼던 머리카락과 장기까지 샅샅이 훑어보면서 말이다.
글 김민_《동아일보》 기자 | 사진 제공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