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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동숭동 대학로

혜화역 1번 출구로 나오니 1월의 눈부신 햇살이 온 시야를 채우고 있었다. 모처럼 따뜻한 공기가 가득한 겨울 한낮에 대학로를 찾았다. 평일의 대학로는 주말의 번잡함 대신 적당한 온도와 밀도의 햇살로 가득 차 있었다. 대학로 건너 혜화역 4번 출구 옆으로 유리 파사드가 햇빛에 반짝이는 서울연극센터가 보인다. 옛 혜화동사무소를 리모델링해 2007년 개관한 서울연극센터는 서울문화재단의 연극전문 창작공간으로, 연극인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고 시민들에게 대학로의 공연장 정보와 편의를 제공한다. 현재 2023년 재개관을 앞두고 리모델링 공사가 한창이다.

예술인에게 열려 있는 대학로센터

혜화역 1번 출구를 나와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이 길을 따라가면 서경대학교 공연예술센터를 시작으로 상명대학교 예술· 디자인센터,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가 대나무 꼬챙이에 꿰인 곶감처럼 줄줄이 나온다. 여기가 바로 공연예술의 메카 대학로라고 말하는 듯하다.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를 지나면 검은색 익스펜디드메탈로 마감한 단정한 형태의 건물이 나온다. 바로 서울문화재단 대학로센터다. 지난 1989년 설립된 동숭아트센터를 서울문화재단이 2018년 매입했고, 2022년 최종 리모델링 공사를 끝냈다. 현재 대학로센터는 지하의 대학로극장 쿼드와 지상의 예술청으로 구성돼 있다.
숫자 4와 사각형이라는 의미가 있는 극장 쿼드QUAD는 영미권 유서 깊은 대학의 사각 형태의 공간 또는 마당에서 유래한다. 이곳은 학생들을 위한 특별한 놀이와 축제의 공간으로 활용됐다. 대학로극장 쿼드는 무대 모양에 따라 객석도 자유자재로 변형이 가능한 블랙박스 형태의 공연장이다. 다양하고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장르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탐구와 과정에 도전하는 공연예술 실험을 지원한다.
예술청은 예술인이 주도하는 거버넌스 기반의 연결·확대·확장 플랫폼이다. 1층에는 올 라운지와 카페 쿼드가 있고, 2층에는 공유오피스형 공간인 아트라운지, 그리고 서가와 소파 등이 구비된 휴식 공간 제로라운지·미팅룸·아고라룸 등이 있다. 5층은 프로젝트룸과 연습실로 이뤄졌다.
중정형 외부 공간인 스퀘어를 지나 1층의 카페 쿼드에서 시원한 커피 한 잔을 받아 들고 테이블 앞에 앉았다. 이곳은 누구에게나 개방된 공간이다.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지하의 극장에서 공연을 보고, 아니면 지나가는 길에라도 들러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1층과 달리 2층은 예술청 멤버십에 가입한 이용자를 위한 공간이다. 예술청 멤버십은 신청 자격과 활동 경력 등에 대한 별도의 증빙 없이 예술인임을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신청인 책임 신청제’를 운영하고 있다. 스스로 예술인이라고 느낀다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으니 괜히 겁먹을 필요는 없다.

대학로의 오래된 문화공간이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가치

예술청을 나와 올해 대학로로 이전한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로 향한다. 지난해 이 코너 연재의 첫 번째 공간으로 잠실창작스튜디오를 다뤘다. 이곳은 기존에 잠실종합운동장 올림픽 주경기장에 위치했으나 리모델링을 함에 따라 대학로로 이전하면서 이름을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로 바꿨다. 2007년 개관한 이후로 150여 명의 입주작가를 배출하면서 장애예술 분야의 상징적 창작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이다.
바뀐 이름을 통해 서울을 대표하는 장애예술인 공간이라는 정체성, 장애예술에 대한 가치 확산과 담론 조성에 대한 의지가 드러나며 입주작가뿐 아니라 비非입주작가와 다른 예술 분야로 확장을 꾀하려는 뜻이 엿보인다. 새롭게 자리 잡은 대학로에서 장애예술인과 그들의 예술이 더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확장하기를 기대한다.
서울장애예술창작센터를 나와 오늘의 마지막 산책 코스인 마로니에 공원으로 이동한다. 그 길에서 만나는 대학로의 여러 공연장은 대학로의 먹고 마시고 놀고 쇼핑하는 문화 속에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잿빛 노출콘크리트의 대학로문화공간 TOM, 건축 공사 현장에서 사용하는 가설용 철제 파이프로 외관을 장식한 대학로예술극장, 그 외 수많은 작은 소극장이 마로니에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점점이 박혀 있다.
방탈출 카페와 베트남 쌀국수 식당과 프랑스 가정식 레스토랑 사이에 연극과 뮤지컬을 공연하는 수많은 소극장이 공존하는 거리를 지나면 멀리 붉은 벽돌로 마감한 아르코예술극장과 미술관이 보인다. 이 건축물은 “건축은 빛과 벽돌이 짓는 시”라고 말한 건축가 김수근의 대표적 벽돌 건축이다.
마로니에 공원은 옛 서울대학교 동숭동 캠퍼스가 1975년 관악 캠퍼스로 옮긴 뒤 그 자리에 조성된 공원이다. 캠퍼스에 마로니에 나무 세 그루가 있던 데서 공원의 이름이 유래했다. 아르코미술관 앞 서울대학교유지기념비에는 지나간 역사가 짧지만 낭만적으로 기록돼 있다. 유지기념비 속 옛 서울대학교의 건축물은 거의 다 철거되고 없다. 하지만 마로니에 공원의 빈 터에서 우리는 그때의 시간을 기억할 수 있다. 마로니에 공원 남쪽에는 1931년에 지어진 당시 대학본부가 ‘예술가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아 있다.
”예술은 삶을 예술보다 더 흥미롭게 하는 것.” 산책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 아르코예술극장 앞 조형물에 적힌 이 짧은 문장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것은 마치 지금의 대학로와 그 속의 수많은 공연장과 문화시설이 오랫동안 우리 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부디 이 공간들이 자본주의의 치열한 격전장이 돼버린 이 도시에서 오래도록 살아남기를.

글·그림 정연석_《서울을 걷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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