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이끌어가는 힘:
국내 유일의 컨템퍼러리 서커스 교육을 만나다
서커스 점핑업Circus Jumping UP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 야외마당에 놓여 있는 옛 구의취수장의 물탱크
낯선 예술 생태계의 중심에 서다
서울시 광진구 광장동 18-2에 위치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는 옛 구의취수장에서 사용하던 오래된 물탱크와 펌프가 곳곳에 남아 있다. 2011년 한강물을 길어 올리던 구의취수장의 운영이 중단된 이후, 오랜 기간 여러 전문가의 논의를 거쳐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거리예술’과 ‘서커스’라는 새로운 예술 생태계를 지원하기 위한 공간으로 2015년 개관했다. 산업시설에서 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흐름을 파란색 물탱크로 상징화한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서울의 가장 외곽에서 다소 낯선 예술 생태계의 거점 공간으로 우뚝 섰다.
캐나다 단체 Le Gros Orteil과 진행한 〈서커스 예술놀이터〉 ‘움직여 무브! in 2022 서울서커스페스티벌’
프랑스 단체 Compagnie XY와 진행한 〈서커스 점핑업〉 중 ‘그룹 아크로바틱의 이해와 실험’
끌어올리고Pumping 도약하는Jumping 즐거운 교육Playground
우리의 추억 속 서커스는 화려한 조명 아래 음악과 함께 여러 곡예사가 등장해 아슬아슬한 공중제비를 돌고, 인간 탑을 쌓고, 여러 개의 공을 던지고 받는 장면이 일반적일 것이다. 컨템퍼러리 서커스는 이러한 전통적 서커스 기예에 예술가의 고민과 상상력을 더해 창의적 방법으로 다양한 주제를 표현하는 예술 장르다.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개관 이래 거리예술과 컨템퍼러리 서커스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중 컨템퍼러리 서커스 장르 활성화를 위한 교육 사업인 〈서커스 펌핑업〉은 공모를 통해 선발된 소수의 서커스 유망 예술가에게 약 6개월간의 집중 교육과 역량 강화 기회를 지원한다. 이외에도 국내외 서커스 전문가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컨템퍼러리 서커스 이론이나 여러 기예 교육 및 창작 실험 등을 진행하는 단기 워크숍 〈서커스 점핑업〉, 놀이와 서커스를 결합해 어린이를 포함한 시민에게 흥미로운 서커스 체험 기회를 제공하는 〈서커스 예술놀이터〉가 있다.
관심과 지원, 교류와 네트워크의 장
국내에는 컨템퍼러리 서커스로 창작 영역을 확장하길 희망해 이를 배우고자 하는 예술가가 의외로 많다. 그러나 전문 교육기관의 부재로 체계화된 서커스 교육과정을 찾아보기 힘든 국내 환경 때문에 주로 유튜브 등의 영상을 참고하며 기량을 발전시킨다. 하지만 신체를 사용하는 서커스 기예의 특성상 이런 교육 방식은 한계가 명확하고 다소 위험하기까지 하다.
2022년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는 11명의 국내외 예술가와 함께 총 7개의 〈서커스 점핑업〉 워크숍을 기획해 운영했다. 이 과정에서 ‘프랑스문화원’ ‘주한퀘백정부대표부’ ‘예술경영지원센터’ 등 국내외 많은 관련 기관과 단체가 국내 컨템퍼러리 서커스 분야의 발전을 위해 〈서커스 점핑업〉을 직· 간접적으로 지원했고, 이로써 더 많은 국내외 서커스 예술가가 워크숍을 통해 학습하고 교류할 수 있었다.
사실 〈서커스 점핑업〉을 단순히 서커스 기예나 이론을 가르치고 배우는 교육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서커스 점핑업〉은 서커스 예술가뿐만 아니라 무용, 연극, 음악 등 다양한 분야에서 각기 다른 배경을 가진 예술가가 참여해 각자의 경험과 생각을 공유하며 교류하는 네트워크의 장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워크숍이 대화와 토론에 적지 않은 비중을 두고 있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의응답이 이어져 많은 시간이 소요될 때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통의 시간은 단편적 기술과 이론의 전수보다 더욱 가치 있는 새로운 동기부여와 호기심의 자극이라는 결과로 이어진다.
인내하며 도약하는 과정
최저기온이 영하로 떨어지기 시작한 2022년 11월의 마지막 주,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의 한 연습실은 예술가들의 뜨거운 땀방울과 가쁜 호흡으로 가득 찼다. 서커스와 타 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10명의 예술가가 ‘서커스 점핑업: 연체곡예Contortion의 이해와 접근’ 워크숍에 참가해 연체곡예 동작을 익히고 있었다. 부상 예방과 유연성 증진을 위한 사전 워밍업Warming-up에만 한 시간이 훌쩍 넘게 소요됐지만 배움을 위한 예술가들의 태도는 진지하고 신중했으며 김민지 강사도 열정적 에너지로 워크숍 일정을 채워갔다.
5일간의 워크숍 동안 익힌 스플릿Split1, 백 밴딩Back Bending2, 체스트 스탠드Chest Stand3, 니들 스케일Needle Scale4같은 연체곡예 기술을 활용해 짧은 즉흥 장면을 창작하고 발표하는 것으로 워크숍은 끝났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한참 동안 둥글게 둘러앉아 소감을 나눴고, 각자 몸담은 예술 장르의 이야기와 함께 자신의 목표와 질문을 공유하며 2022년의 마지막 〈서커스 점핑업〉을 보냈다.
서커스 점핑업: 연체곡예의 이해와 접근’ 워크숍에서 김민지 강사가 참가자의 자세를 교정해 주고 있는 모습
<인터뷰> 김민지 서커스 예술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에요”
태양의서커스 본사 건물 바로 옆에 위치한 ‘몬트리올 국립 서커스 학교Ecole Nationale de Cirque, ENC’는 전 세계에서 예비 서커스 예술가가 몰려올 만큼 세계 서커스 분야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기관이다. 까다로운 입학 기준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인 최초로 몬트리올 국립 서커스 학교의 DECDiploma of College Studies 과정을 졸업한 김민지 서커스 예술가가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찾았다. 플라잉 폴Flying Pole, 연체곡예Contortion, 폴 댄스Pole Dance를 중심으로 세계를 돌며 다양한 컨템퍼러리 서커스 공연을 선보이는 그녀에게 국내 서커스 생태계에 대한 생각을 간단하게 들어봤다.
“저는 중학교 때 처음 폴 댄스를 접하면서 예술에 입문하게 됐어요. 한국보다 더 빠르게 폴 댄스 문화가 자리 잡은 필리핀 마닐라로 넘어가 무용과 폴 댄스를 배우며 학창 시절을 보내던 중에 서커스라는 예술을 알게 됐고, 그 매력에 빠져버렸어요. 얼마 후 해외에 서커스를 배울 수 있는 정규 교육기관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도전해 보자고 마음먹었어요. 사실 몬트리올 국립 서커스 학교 입학을 준비했을 때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연습했어요. 그래서 이곳은 저에게 굉장히 감사한 공간이기도 해요.
졸업 후 세계적으로 코로나19와 관련된 여러 규제가 완화되면서 여러 나라에서 공연을 할 수 있었어요. 곧 캐나다로 돌아가야 하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 이런 의미 있는 워크숍에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저에게도 큰 행운이었어요. 요즘 서울이나 지역 축제에서 어렵지 않게 컨템퍼러리 서커스 공연을 볼 수 있어 기뻐요. 물론 아직까지 국내에 서커스를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기관이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뿐이라는 것은 아쉽지만요.
신기하게도 캐나다에 있는 많은 동료도 한국에 서커스 축제가 있다는 사실과 서커스 관련 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교류하고 싶어 해요. 이런 점은 굉장히 흥미로운 것 같아요.
모든 예술이 그렇듯이 서커스 기예 하나를 익히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해요. 멍이 드는 것은 일상이고 때로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기도 하고요. 저는 국내 서커스 생태계도 같은 환경에 있다고 생각해요. 아직은 비교적 규모도 작고 낯선 분야라 다양한 정치적·환경적 상황에 휘둘리겠지만 이런 소중한 노력과 기반을 조금씩 잘 쌓아간다면 서커스도 언젠가는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즐길 수 있는 하나의 튼튼한 예술 장르로 자리 잡지 않을까요? 물론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작업이 되겠지만요.”
- 180도 혹은 그 이상의 각도가 되도록 다리를 좌우로 뻗는 자세
- 서거나 무릎을 꿇거나 바닥에 누워 허리와 척추를 뒤로 젖히는 자세
- 어깨, 턱 또는 가슴을 바닥에 대고 척추를 뒤로 젖혀 두 다리를 위로 뻗는 자세
- 한쪽 발을 바닥에 대고 나머지 발을 뒤로 올려 손으로 잡아 위로 뻗는 자세
글 우민혁_서울문화재단 거리예술축제팀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