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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배우 김신록 ‘신록身錄’의 계절

배우 김신록은 〈마우스피스〉 〈비평가〉 〈녹천에는 똥이 많다〉 등의 연극에 출연한 배우이자 〈김신록에 뫼르소, 870×626cm〉 〈위치와 운동〉 〈5 takes〉 등을 만든 창작자다. 최근에는 드라마 〈지옥〉과 〈괴물〉에 출연해 새로운 연기를 시도하고 있다. 필자가 아는 배우 김신록은 연기의 기술을 발견하고 숙련하는 장인이자 학술적 언어로 연기를 탐구하는 비평가이고, 사회와 연기의 접점을 치열하게 찾아나가는 연구자다. 몇몇 작품에서 작가로 그와 협업했고, 지난해 여름 극단 동이 주최한 포스트휴머니즘-생태연극 스터디를 함께 했다. 이 경험을 토대로 그의 연기적 화두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일련의 작품을 짚어가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요즈음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1에 출연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과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Q 어제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이하 〈살수선〉)를 봤다. 주인공 시몬 랭브르는 죽지만 여전히 뛰고 있는 그의 심장은 다른 이에게 이식된다. 연극은 시몬의 죽음에서 시작해 그의 삶 군데군데를 회상하고 이식될 심장을 둘러싼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배우 한 명이 여러 인물을 연기한다. 이전에 공연했던 일인극들과 〈살수선〉은 어떤 맥락으로 연결되나?

A 배우로 활동하며 몸, 연기에 대한 탐구를 진행해 왔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 나는 연기가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배우의 몸으로 탐색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내가 이전에 파고들었던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잘못됐고 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완전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지난해 포스트휴머니즘-생태연극 스터디를 했다. 생명체가 분리된 개별자가 아닌 ‘열린 전체’로서 존재한다는 말이 대안적 사유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깊이 체감하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살수선〉에 참여하게 됐다. 이번 공연에서 범주라는 것, 인물을 가르는 테두리를 흐려보자고 생각했다. 이 시도는 ‘이 작품이 왜 일인극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맞닿아 있었다. 한 명의 배우가 인물들과 서술자를 타고 가기 때문에 각 인물과 서술자가 명확하게 분리될 수 없었고, 계속 스미고 겹치게 됐다. 〈살수선〉을 통해 지난 스터디에서 공부한 내용을 체감적으로 알게 된 부분이 있다.

Q 〈김신록에 뫼르소, 870×626cm〉(이하 〈뫼르소〉)에서는 배우가 여러 역할을 하면서 몸이 변화하지만 동시에 변화하지 않고 남아 있는 몸을 보여줌으로써 인물과 세계의 테두리가 흐려진다면, 〈살수선〉에서는 몸과 말이 함께 흐려지는 느낌이었다.

A 〈살수선〉의 세계는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진행되지 않는다. 여러 행위자가 목소리를 높이며 불쑥불쑥 개입하고 침범한다. 삶에 어떤 중대한 사건이 벌어지면 기존의 나, 일상의 삶이라는 테두리가 확 풀어지고 사람의 실루엣이, 완고함이, 경계가 흐려지지 않나. 태연해 보이는 레볼이나 토마도 마찬가지다. 문을 열고 나가려는데 마리안이 들어온다든지, 자신의 사무실이 아닌 곳에서 당장 중대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든지. 우리는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도 어떤 행위자들의 침입을 받는다. 이 작품을 해석한 나의 키워드는 ‘충돌’이었다. 브루노 라투르Bruno Latour2의 책이 많은 도움이 됐다. 라투르식으로 말하자면 ‘기습적 놀라움’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지나며 내가 이전에 파고들었던
인간과 세계의 관계가 잘못됐고 낡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완전한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생명체가 분리된 개별자가 아닌 ‘열린 전체’로서 존재한다는 말이
대안적 사유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연극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에 참여하면서
인물을 가르는 테두리를 흐려보자고 생각했다.

Q 철학의 말을 연기에 어떤 방식으로 적용하는지 궁금하다.

A 철학을 연기에 적용하기보다는 연기에서 발견된 부분을 철학의 말로 바꿔 이해하는 편이다. 그 상호작용은 진짜 즉각적인 것 같다. 예를 들어 시몽과 마리안과 션이 시몽의 병실에서 조우하는 장면에서, 세 사람의 몸이 뒤섞여 함께 존재하면 좋겠다고 느껴져서 마리안이 시몽의 침대에 눕고, 침대 위의 몸이 션의 손을 잡는 장면을 만들었다. 그 장면은 후에 ‘윤곽이 구름처럼 모호한 형태를 띠는 행위자들의 앙상블’이라는 라투르의 말로 비로소 ‘이해됐다.’ 시몽과 줄리엣이 비옷 아래서 키스하는 장면은 광택 있는 천 아래서 개구리가 뛰어다니고, 비가 오고, 미생물이 증식하고, 두 사람이 뒤섞이고, 습도 높고 끈적한 이미지로 묘사된다. 라투르가 말하는 세계와 생명의 이미지였다.

Q 행위자들의 갑작스러운 침범, 충돌, 사물과 사물을 가르는 테두리의 와해, 으깨지고 뒤범벅된 세계 같은 것이 이 이야기를 관통하는 죽음의 사건과 연결되는 것인가?

A 나는 〈살수선〉이 죽음의 이야기가 아닌 새로운 생명의 방식, 새로운 연결 방식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혹은 새로운 세계 기르기. 〈이안 챙: 세계건설〉이라는 전시가 있었다. 이 전시에 대해 어떤 평론가가 세계 ‘기르기’라는 말을 썼는데 그 말이 절묘하다고 생각했다.

Q 무언가와 단절하는 것이 아니라 재구성하거나 접속한다는 점에서 ‘수선하기’와 ‘기르기’의 의미가 통하는 듯하다.

A 심장 이식 또한 생명의 또 다른 접속 방식이다. 시몽의 신체는 해체된다. 시몽의 엄마 마리안이 묻는다. ‘이런 해체 속에서 이제 시몽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렇다고 개별자로서의 시몽이 아무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겪었을 많은 관계, 혹은 다른 인물이 겪었을 그와의 관계를 통해 개별자로서의 특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리안은, 훼손되지 않고 오직 시몽만이 가질 수 있는 얼굴을 떠올리며 ‘이게 시몽이야, 이게 시몽이야’라고 스스로 답한다. 최근에 읽은 《철학책 독서모임》에 ‘알지 못한 채 알아가기’라는 말이 나온다. 무대에 들어설 때 이 말을 생각한다. 내가 시몽의 경험을 전부 알지 못하는데, 알아가 보는 사람으로서, 불가지론이나 무책임한 자세가 아닌, 알지 못하지만 알아가는 태도를 갖는 것이다. 이 작품을 하며 그런 태도를 연습해 보기도 했다.

연기와 연구

Q 김신록은 자기 연기의 적극적 비평가이자 연구자다. 작업의 언어를 계속 찾고 정립하고 모은다. 돌출되는 창작의 순간을 갈망한다거나, 나의 창작을 설명하는 언어를 잃고 싶은 욕망 같은 것은 없는지 궁금하다.

A 오히려 새로운 서술 방식을 찾고 싶지, 말을 잃고 싶다는 생각은 없다.

Q 웹진 [연극in]에도, [마리끌레르]에도 글을 연재했다. 움직임 워크숍도 하고, 다른 장르의 작가들과 협업도 하고, 연구도 한다. 이 모든 것이 연기로 귀결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A 나는 연기를 폭넓게 생각하는 편이다. 나에게는 이런 작업이 다 연기인 것 같다. 인간과 세계의 관계를 배우의 몸으로 드러내는 일. 그러면 배우라는 게 뭔가…. 연재 씨는 왜 글쓰기로 귀결되는가?

Q 이건 너무 당연해서 어렵다.

A 맞다.

Q 이건 주소 같은 거 아닌가.

A 내가 당연하게 이곳에 사는 것.

Q 한 담론이 유행하고, 담론에 기반한 작품들이 빠르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폐기되는 예술계의 양상을 보면서 담론에 대한 회의가 들기도 한다. 내 피부에 더 와닿는 것, 수공예적 작업, 일기장 작업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A 어쩌면 그 모든 것을 거쳐서 연기로 돌아오는 이유가 그런 거 아닐까. 내가 내 몸으로 직접 해보는 것, 체감하는 것, 체현하는 것을 좋아한다.

프로필에는 쓰지 않지만 중요한 작업

Q 연기 형식에 대한 탐색이 곧 작품이 된 작업을 이야기하고 싶다. 일민미술관에서 〈5 takes〉라는 공연을 했다. 연기하면서 변화한 다섯 개의 키워드: ‘행동-제스처-구성-끝나지 않는 몸 unfinished body-시간의 큐비즘’을 가지고 한 퍼포먼스였다. 각각에 대해 설명해 달라.

A ‘행동’은 주체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대상을 바꿔내게끔 하는 움직임이다. 목적, 대상, 장애, 극복으로 이루어진 움직임. 20세기 산업화 시대에 등장한 인간과 세계에 대한 이해를 반영하는 용어들이다. 배우 초창기 나의 답답함은 행동을 기본으로 설계된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움직임이 갖는 ‘비인간성’이었다. 당시 나는 ‘머리로 연기한다, 연기가 계산적이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래서 당시 나의 화두는 ‘구상을 넘어서 추상으로’였다. 추상의 영역에 있는 무용수와 구상의 영역에 있는 배우가 몸을 사용하는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탐색하는 공연 〈저스트 듀엣 더 파사지오〉를 만들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인큐베이팅으로 〈커넥팅〉 〈헬로 프롬 벌사〉를 공연하기도 했다. 배우의 입장에서 구상에서 추상으로 넘어간 것이 ‘제스처’였다. 강량원 연출님을 만나면서 구상 너머의 추상, 제스처, 무의식의 영역을 연기적으로 탐구할 수 있었다. ‘구성’은 배우가 무대에서 외적 뷰를 가지고 자기 자신을 포함한 시간과 공간을 디자인하는 기술이다. 공연예술에서 널리 사용되는 구성의 철학이자 기술인 뷰포인트 메소드는 시간과 공간을 아홉 개의 구성 요소로 분할해 이해하고, 그것을 선택해 배치하는 방법론이다. 아홉 개의 구성 요소 중에 ‘환경’이 있다. 그런데 라투르는 ‘환경이란 없다’고 말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면서 구성으로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깊은 회의를 느끼고 있었는데 ‘환경은 없다’는 라투르의 말에 말 못 할 비밀을 소리쳐 말한 사람처럼 속이 시원했다. ‘끝나지 않는 몸unfinished body’은 인간의 테두리를 흐리는 작업이었다. 〈뫼르소〉를 공연했다. 테두리를 흐리고 나니 ‘우리가 얼마나 다중적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시간의 큐비즘’이라는 화두를 가지고 〈위치와 운동〉을 공연했다.

Q 그때그때의 영감 조각이 아닌, 탐구의 덩어리다. 변화하는 사유를 일부러 명확하게 분절하려고 노력한 것 같다.

A 이런 범주적 용어는 귀납적으로 정리된 바가 크다. 사유나 발견은 순차적이기보다는 뒤섞여 있다. 다만 내가 무대 위에 움직임이나 사유의 메커니즘이 드러나길 바라는 배우라서 그 메커니즘에 대해 언어를 동원해 이해해 보려고 한다. 또 현대의 공연이라는 행위 자체가 필연적으로 무대라는 구성된 시공간에 세계의 샘플을 올릴 수밖에 없기에 이 세계의 어떤 것을 추출해야 할까 고민하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런데 코로나19 팬데믹이 왔다. 내가 지금 연기해 내는 방식이 내가 겪는 세계, 나라는 사람의 변화를 쫓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살수선〉을 하면서 새로운 샘플의 가능성을 봤다.

질료가 되는 기쁨

Q 매체에서 하는 연기는 어떤지 궁금하다.

A 내가 믿고 있던 것, 해오던 방식에 어쩔 수 없이 균열이 일어나고 새로운 줄기로 뻗어나가는 일이다. 다양한 매체에서 연기를 경험하고 싶다.

Q 여러 장르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다른 장르에서 협업한 경험을 듣고 싶다.

A 손현선 작가와 예술의전당에서 〈질료가 되는 기쁨〉을 작업했다. 같은 세계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서술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내가 더는 나아가지 못하는 부분에서 통찰을 줬다.

Q 〈질료가 되는 기쁨〉이라는 제목은 어떤 뜻을 담고 있나?

A 손현선 작가의 다른 전시에서 손으로 종이에 물감을 찍고 종이를 반으로 접은 데칼코마니 수십 점을 봤다. 물감이 다 한 작품이었다. 그 전시에서 녹음에 참여했는데 어떤 크레디트 타이틀로 들어갈지 고민했다. 직전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인간 질서 질문들_미술의 탐욕에 대하여〉라는 렉처 퍼포먼스를 했는데 퍼포머도 창작자로서 권리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 퍼포먼스의 주된 내용이었다. 마찬가지로 이 녹음 작업에서도 작가 크레디트 타이틀을 가져야 하나 생각했다. 작가로서의 욕심은 전혀 없었으나 실천적 측면에서 말이다. 그러다가 질료 자체가 드러나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나눴고 ‘목소리’라는 크레디트 타이틀로 들어갔다. 김신록의 목소리, 손현선의 물감. 갑자기 시야가 확 맑아지면서 ‘나는 작가가 되기 싫다, 질료가 되고 싶다!’고 느꼈다. 〈살수선〉에서도 그랬다. 세계가 내 몸을 통해 불쑥불쑥 드러났는데 뭔가가 불쑥불쑥 드러날 때 작가로서의 힘이 줄어드는 것 같았고, 그 순간이 자유로웠다.

Q 질료가 되는 기쁨이라니, 너무 좋은 말이다. 〈뫼르소〉 〈위치와 운동〉에서 연기 실험을 수행 중인 배우의 몸이 드러났다면 〈살수선〉에서는 마찬가지로 연기적 실험이 있었는데도 실험을 드러내는 데 관심이 있다기보다는, 새롭고도 낯설게 세계를 맞이하고 그것을 전달하는 몸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살수선〉을 보고 ‘질료가 되는 기쁨’이라는 말을 들으니 기쁘다.

A 그렇게 보였다니 기쁘다.

Q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 계획하고 있는 작업에 대해 소개해 달라.

A 웹진 [연극in] 인터뷰어로 2년 정도 연재한 ‘배우가 만난 배우’ 인터뷰집 원고 정리, 연기에 대한 책 쓰기. 오래전부터 연기에 대한 책을 쓰고 싶었는데 시대도, 내 생각도 빠르게 변하니까 쓰기도 전에 이미 낡은 내용이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새로운 서술 방식을 찾으면 활자화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구성의 힘이 훨씬 약화된, 공연이 아닌 형식의 공연을 하고 싶다.

〈질료가 되는 기쁨〉이라는 전시에서
‘목소리’라는 크레디트로 들어갔다. 김신록의 목소리.
갑자기 시야가 확 맑아지면서
‘나는 작가가 되기 싫다, 질료가 되고 싶다!’고 느꼈다.
세계가 내 몸을 통해 불쑥불쑥 드러날 때 자유롭다.

김연재_극작가 | 사진 공간

1. 교통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한 젊은이의 장기가 다른 환자에게 기증되기까지의 24시간을 그려낸다. 원래의 몸에서 다른 몸으로 이식돼 계속 뛰게 되는 심장을 매개로 24시간의 여정이 긴박하게 흘러간다. 프랑스 작가 마일리스 드 케랑갈의 소설을 1인극으로 각색해 장기 기증 당사자를 둘러싼 다양한 인물의 시선을 보여준다.

2. 프랑스의 과학기술학자, 인류학자, 생태정치학자. 사물을 정치활동의 주체로 새롭게 정의했다. 인간만으로 구성된 사회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으며 인간과 비인간이 공동으로 사회를 구성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현재의 생태 위기를 극복하는 이론적 실마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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