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주목하는 K-클래식의 오늘 K-클래식 현상의 주요 요인과 이면의 문제
“요새는 유튜브가 발전해 다른 사람 연주를 굉장히 쉽게 들을 수 있죠. 그러다 보니 저도 모르게 무의식적으로 좋았던 연주를 따라 하게 돼요. 하지만 인터넷이 없던 시대의 옛 음악가는 악보와 자기 자신 사이에서 음악을 찾은 사람들이라 독창적 음악이 나올 수 있던 것 같습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연주하고 있는 피아니스트 임윤찬
한국이 클래식 강국이 된 이유
최근 한국의 젊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해외 유수 콩쿠르 무대에서 맹활약하며 국위를 드높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북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밴 클라이번 국제 콩쿠르에서 피아니스트 임윤찬(18)이 최연소로 우승했고, 세계 3대 음악 콩쿠르 중 하나로 꼽히는 벨기에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첼리스트 최하영(24)이 한국인 최초로 첼로 부문에서 우승했다. 앞서 5월에는 핀란드 시벨리우스 국제 콩쿠르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27)가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이 밖에 도쿄 국제 비올라 콩쿠르에서 비올리스트 박하양(23)도 한국인 최초 우승의 금자탑을 쌓았고, 위재원(23)과 윤소희(27)가 미국 워싱턴 국제 콩쿠르 바이올린과 비올라 부문에서 각각 우승 대열에 합류했다. 프라하 봄 국제 음악 콩쿠르 바순 부문에서는 같은 이름인 두 명의 김민주(26)와 김민주(23)가 각각 1위와 3위에 올랐다. 금호문화재단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열린 25개 콩쿠르에서 젊은 한국인 연주자 37명이 입상(1~3위)하는 영광을 안았다. 피아노·바이올린·성악 등 서양 문화의 꽃을 한국인이 활짝 피운 셈이다.
단연 돋보이는 것은 해외 유학 경험이 전무한 순수 국내파로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괴물 신동’ 임윤찬 신드롬이다. “우승했다고 실력이 느는 것이 아니다”라고 무덤덤하게 말한 예술에 대한 겸허한 자세와 맞물려 임윤찬이 결선에서 보여준 신들린 듯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3번 연주는 이 곡 연주를 담은 유튜브 영상 중에서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 2020년 녹음한 그의 피아노 음반은 서점가 클래식 음반 판매 1위에 올랐다. 2015년 쇼팽 콩쿠르에서 우승한 조성진을 이을 천재 피아니스트의 출현에 흥분한 전국 공연장은 앞다퉈 출연을 요청했다.
임윤찬의 스승 손민수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지난 6월 기자 간담회에서 “한국 음악가들의 뛰어남은 이제 더는 뉴스가 아니게 됐다”라며 “저보다 젊은 음악가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본인의 경험을 물려줄 것을 생각하면 한국 음악의 미래는 밝다”고 했다.
한 세대 전만 해도 세계 문화의 변방이던 한국이 어떻게 클래식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예술계에서는 동네 음악학원에서 시작된 특유의 교육열과 한국예술종합학교로 대표되는 국가 주도의 엘리트 교육, 금호문화재단 등 기업의 역할과 국제 콩쿠르 1·2위에 주어지는 병역특례 혜택 등을 꼽는다. 최근 입상자들의 선배 격인 젊은 거장 손열음(36)과 조성진(28) 등도 모두 5~7세 때 동네 음악학원에서 처음 악기를 다룬 경험이 있다. 예체능 학원들이 원석을 골라내면 한예종 등 국가 영재교육 시스템이 이들을 보석으로 가공하고 기업이 후원했다. 특히 금호문화재단은 1998년 시작된 금호영재콘서트를 시작으로, 1999년 금호영아티스트콘서트 등 클래식 음악가가 성장하는 데 필수적인 무대 경험을 제공하며 한국 클래식 음악의 대표적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임윤찬뿐 아니라 피아니스트 김선욱·김태형·문지영·선우예권·손열음,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김동현·김봄소리·박혜윤·이지윤·임지영, 비올리스트 이한나, 첼리스트 고봉인·문태국·이정란·한재민, 플루티스트 조성현 등 1,000명이 넘는 음악가가 금호콘서트 무대를 통해 성장했다.
밴 클라이번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임윤찬(가운데)과 입상자들
K-클래식 쾌거에 앞서 해결해야 할 과제들
올해 8월부터 색다른 클래식 음악 축제가 애호가들을 기다리고 있어 국내 클래식 열기가 이어질 예정이다. 롯데문화재단은 8월 12일부터 21일까지 ‘클래식 레볼루션 2022 멘델스존&코른골트’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개최한다.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1809~1847)과 에리히 볼프강 코른골트(1897~1957)를 집중 조명하는 이 축제는 크리스토프 포펜이 예술감독을 맡는다. 8월 20일에는 임윤찬이 협연자로 KBS교향악단과 함께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들려주고,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지휘를 맡는다. 이 밖에 바이올리니스트 클라라 주미 강· 이지윤, 비올리스트 박경민, 피아니스트 김선욱·이혁 등 전 세계에서 활약하는 국내 음악가가 대거 이 축제에 참여한다. 세종솔로이스츠가 8월 16일부터 9월 6일까지 주최하는 ‘2022 힉엣눙크! 페스티벌’도 빼놓을 수 없다. ‘힉엣눙크 Hic et Nunc’는 라틴어로 ‘여기 그리고 지금’을 의미하며 올해로 5회째를 맞는다. 강경원 세종솔로이스츠 총감독이 주도하며 롯데콘서트홀, 예술의전당 IBK챔버홀, 일신홀, 서울대학교 등지에서 열린다. 비올리스트 이화윤, 피아니스트 폴 살레니·임주희 등이 참여한다. 이 밖에 8월 24일부터 28일까지 열리는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에서도 비올리니스트 신경식, 바이올리니스트 김동현 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K-클래식의 쾌거에도 불구하고 소수 솔리스트의 성공에 가려져 음악교육이 왜곡될 수 있다는 우려는 불식하기 어렵다. 해외에서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키신처럼 국제 콩쿠르를 거치지 않고도 음악가로 성장하는 사례가 많고, 유명 콩쿠르 우승자가 모두 최고의 자리를 지키는 것도 아니다. 음악의 목적이 개성 있는 음악가를 키우기보다 마치 올림픽에서 금메달 몇 개 따느냐를 따지는 것처럼 콩쿠르에서 우승하는 것으로 변질될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한 음악평론가는 “천재라도 음악성이 깊어지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10대 연주자와 20대, 30대 연주자를 보는 시각이 다른데, 우리 클래식 시장이 지나치게 1등 경쟁에 치우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콩쿠르 강국이 클래식 강국이라는 시각에 선뜻 동의하기 어려운 이유다.
탁월한 솔리스트는 배출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는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각 악단 특유의 정체성과 역사성이 선뜻 떠오르지 않는다. 수도권의 대표적 오케스트라로 꼽히는 KBS교향악단과 서울시립교향악단만 해도 단원들과 지휘자의 가교 역할을 하며 이끌어갈 악장 자리가 각각 6, 7년씩 비어 있다. 각 악단은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입장이나 악장 선임에 결정적인 상임 지휘자(음악감독)의 임기가 해외에 비해 짧은 3~5년에 불과해 안정적 운영이 어렵다는 점과 무관하지 않다.
국내 주요 오케스트라의 상임 지휘자 중 외국인이 다수라는 점은 장기적으로는 K-클래식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국내 교향악단에 신선한 자극을 주고 해외 교류를 활성화한다는 측면에서는 외부 수혈이 필요하나 해외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들이 얼마나 국내 오케스트라에 애정을 품고 있을지는 미지수다. 게다가 오케스트라 경영자·행정가의 입장에서는 한국의 경험 있는 지휘자보다 외국인이 오히려 다루기 쉬워 해외 출신을 선호한다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피아노, 바이올린 같은 ‘인기 종목’에만 치우치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콩쿠르에서 우승한 몇몇 ‘스타’들만 주목받는 K-클래식이 아닌 균형 있는 음악 시장의 발전을 기대해 본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준결선 무대에서 협연 중인 첼리스트 최하영
글 하종훈_《서울신문》 기자 | 사진 제공 밴 클라이번 재단,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