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랑의 사랑
2집 타이틀곡 ‘신의 놀이’로 2017년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포크 노래상을 받은 아티스트 ‘이랑’의 일화다. 당시 트로피는 50만 원에 팔렸고 트로피를 산 사람은 이랑과 사전에 공모한 제작자로 밝혀졌다.
질문하는 사람
이랑의 이른바 ‘트로피 퍼포먼스’를 두고 당시 많은 이들이 갑론을박을 펼쳤는데 이랑이 의도했던 바는 어쩌면 이것이 아니었을까. 사람들이 한 번쯤 돈과 명예의 관계, 그리고 예술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 트로피가 정말 팔렸는지, 누구에게 팔렸는지, 얼마에 팔렸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이랑은 언제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속된 말로, 왜 뜻이 있는 곳에는 돈이 없는가. 한국대중음악상이라는 권위 있는 상을 받을 정도면 잘하고 있다는 것이고, 잘하고 있다면 잘 먹고 잘살아야 하는데 나는 왜 계속 가난한가.
이랑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돈이 안 되는 예술’만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돈이 되는 예술’도 그 못지않게 이상했다. 예술을 하면서 노상 돈에 대해 말하는 그에게 사람들은 말했다. “그럼 돈이 안 되는 것을 하지 말고 돈이 되는 것을 하라”고 말이다. 그런데 도대체 돈이 되는 것은 어떤 것일까? 대중이 좋아하고 열광하는 것? 그런데 세상에 이렇게 이상한 일투성이인데, 오늘도 나와 내 친구들은 가난하고 노동으로 고되고 병들어 아픈데, 어떻게 돈이 되는 것을 할 수 있지? 그에게 그건 돈이 안 되는 예술보다 이상한 일이었다. 이상한 일에 대한 이랑의 질문은 노래를 넘어 그가 쓰고 그리는 글과 그림을 통해서도 거침없이 이어졌다. 왜 원고료는 10년 동안 오르지 않고 15만 원인지, 내 이름의 인터뷰 지면을 만들기 위한 자리의 모든 사람이 임금을 받고 일하는데 왜 나만 무일푼으로 그 자리에 있는 건지 등. 사실 그것은 그처럼 노래를 부르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는 일이었고 ‘다 그런 거니까’ 하고 씁쓸히 웃어넘기는 일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에게 말했다. “이상한 일에 대해 그렇게 꼬박꼬박 이상하다고 말하면 너에게 기회가 오지 않을 수도 있고 이 세상에서 배제될 수도 있는데 두렵지 않으냐”라고 말이다.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 변화도 일어나지 않으니까요. 모두가 불편한데 모두가 다 참고 있으면 계속 그대로 가는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 원고료가 15만 원인데 누가 만족스럽겠어요. 예술을 글자 수로 세는 것도 솔직히 말이 안 돼요.” 당장 내일 죽을 수도 있는데 오지 않은 미래가 두려워 오늘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못 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을 못 만나고 사는 건 그에게 너무 괴롭고 억울한 일이었다.
이야기하는 사람
이쯤 되면 궁금할 것이다. 이랑은 누구인가. 이랑의 책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의 316쪽의 표현에 따르면 이랑은 영상 작가이면서 소설가이면서 에세이스트이면서 페미니스트이면서 선생님이면서 고양이 준이치의 엄마이면서 만화가이면서 음악가다. 덧붙여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으나 입시 미술에 환멸을 느꼈고, 그즈음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 꽂혀 그가 교수로 있는 한예종의 영화과에 입학했으나, 재미로 만들어둔 25곡의 노래로 첫 앨범을 만들어 가수로 데뷔했다는 배경을 알면 이랑이라는 사람을 아는 데 도움이 될까?
이쯤 되면 대부분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이랑은 참 다재다능한 사람이라고.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전부 다 하고 있으니 대단하고 행복한 사람이라고. 다분히 희망적인 대답을 기대하며 “좋아하는 일을 하니까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랑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좋아서 하는 일 아니다”라고 대답했다. “일인데 뭐가 좋아요, 힘들고 고되죠. 제가 좋아하는 건 집에서 고양이랑 놀고 맛있는 거 먹고 친구들이랑 재미있는 거 하는 거죠. 그런 게 좋은 거죠.(웃음)” 그렇다.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그가 여러 가지 일을 하는 이유도 좋아서가 아니라 한 가지 일로는 먹고살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서사에는 앞서 그가 줄곧 이상하다고 생각해 온 사회의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 생각해 보면 가난하고 병들고 고독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소외의 감정을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게 재미있을 리 없다. 의뢰받은 글을 쓰며 글자 수를 계속해서 확인하는 게 신날 리 없다. 반복되는 인풋과 아웃풋의 구조 속에서 하루하루 괴로울 뿐이다. “이거 어때, 좀 이상하지 않아?”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라도 계속해서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자니 따라오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이 어마어마하다.
좋아서가 아니라 먹고살려고 하는 일, 혼자 즐기는 취미가 아니라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지고 하는 일, 쉰다는 느낌 없이 스스로 굴려야 하는 일을 위해 이랑은 매일 ‘기록’한다. 자다가 일어나서도 메모를 하고 길 가는 중에도 녹음을 한다.
이야기가 떠오르면, 멜로디가 들려오면, 이미지가 스쳐 지나가면, 그때그때 미루지 않고 기록한다. 좋아하는 것도 아니면서, 엄청 피곤하면서, 또한 귀찮으면서, 이랑은 쉬지 않고 주변의 사람과 세상을 관찰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 자신의 언어로 들려주고 말해 준다. 이상하다고. 이랑은 왜 이렇게 이상한 일에 열심이고 진심일까?
사랑하는 사람
이랑의 음악을 좋아하고 즐겨 듣는 사람들은 그의 노래에서 “위로받는다”고 말한다. 최근 발표한 3집 앨범 〈늑대가 나타났다〉 또한 개인과 시대에 대한 공감과 지지의 정서로 가득하다. 또한 이랑의 글을 읽고 그림을 보면 삶의 구체적 수치와 지표에 매우 놀란다. 자신의 월 소득이 얼마인지, 어떤 일이 얼마만큼의 돈을 벌어다 주는지, 몇 년 몇 월 며칠에 자신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래서 어떤 슬픔이 있었고 기쁨이 있었는지 그는 꼼꼼하게 고백하고 공유한다. 마치 제품 상세 페이지처럼 말이다.
이러한 고백과 교감의 바탕에는 자기 자신에 대한 깊은 연민이 있다. 어린 시절, 스스로 위로하고 치유하기 위해 만든 노래가, 친구들에게 비밀스럽게 들려줬던 노래가 있었기에 지금의 위로가 있다고 이랑은 말한다. ‘나’로 시작한 주어는 세상의 무수히 많은 ‘이상한 일’을 거치면서 어느덧 ‘너’와 ‘우리’로 바뀌었다. 자기 자신을 향했던 위로는 어느새 사명감과 책임감으로 바뀌었다. 그가 노래하고 이야기하는 주제는 아무래도 이번 생에서는 ‘돈이 되는 예술’이 되기에는 요원해 보인다. 그래도 그는 지치지 않고 노래하고 말하고 ‘일’ 한다. 좋아서가 아니라 그 안의 어떤 ‘숭고함’ 때문에. 숭고함. 그것은 그가 움직이고 일하고 살아가게 하는 거의 유일한 동력일지도 모르겠다.
이랑은 ‘신의 놀이’ 뮤직비디오를 제작하기 위해 무려 2년 동안 20개 정도 직업군의 노동자를 직접 만나 인터뷰하고 그들이 일하는 몸짓에 착안한 안무를 손수 지은 뒤 촬영했다. 노동자에 대한 관심,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어지간해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문득 그가 생각하는 사랑의 형태에 대해 물었다. “제가 생각하는 사랑이라, 글쎄요. 나 아닌 다른 사람을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랄까요. 이 거칠고 험한 사회에서 꾸역꾸역 살아가는 게 얼마나 안되고 슬픈 일이에요.” 밑도 끝도 없는 기쁨과 설렘으로 점철된 기존의 사랑의 문법과는 다른 ‘이랑의 사랑’이다.
오늘도 이랑은 분노하고 슬퍼하며, 결국 사랑한다. 먹고살기는 여전히 피곤하고 예술을 돈으로 매기는 일도 여전히 어렵다. 돈이 되는 예술을 생각하는 것도 여전히 괴롭다. 그러기에 세상은 분노할 일과 화나는 일로 매일매일 가득하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랑의 하고 싶은 이야기 또한 멈추지 않는다. 이 에너지로 이랑은 올해 2030세대 여성 4명의 죽음을 다양한 시선에서 다룬 옴니버스 쇼트 영상을 만들 계획이다. 타인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국한해서는 안 된다는 강한 문제의식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의 주어는 ‘나’가 아닌 ‘너’와 ‘우리’다. 그의 노랫말처럼, 이랑은 ‘영화를 통해 신의 놀이를 하고 있다.’
늘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이랑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을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살아 있는 동안 아마 계속 있을 것 같아요. 아직도 못한 이야기가 너무 많거든요. 그 이야기를 사람들이 계속해서 궁금해하고 듣고 싶어 하는 인생이라면 좀 재미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혼자 벽에 대고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것만큼 슬픈 장면도 없겠죠.(웃음)” 장마를 통과하면서 대중없이 비를 만나는 요즘, 우산이 없어 하염없이 비를 맞아야 할 때 가끔은 우산이 필요하기보다 그냥 이 비를 좀 맞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랑은 어쩌면 그런 내 곁에서 함께 비를 맞아주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글 장보영_객원 기자 | 사진 제공 유어썸머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