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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오디오 콘텐츠 열풍 잠옷 바람으로 즐기는 음성 문화

“클하 해봤어?” 지난 2월부터 수없이 들은 얘기다.
“아니, 가입은 했는데, 아직 준비가 안 돼서.” 나의 준비된 대답이었다.
그랬다. 나는 감히 클럽하우스라는 새로운 세상에 몸을 던질 마음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

클럽하우스는 쌍방향 음성 기반의 SNS다. 지난해 3월 출시된 지 불과 1년 만에 대박이 났다. 지난해 5월까지만 해도 하루 이용자 수는 약270명에 불과했다. 아홉 달 뒤인 지난 2월 주간 이용자 수는 약 200만명이다. 회원 수는 6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한다. 아이폰만 되고, 기존 회원의 초대장을 받아야 가입할 수 있는 폐쇄적 구조도 불편하기 짝이 없는데, 왜 이렇게 난리인 걸까?
3월 13일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 큰맘 먹고 클럽하우스에 접속해 ‘영알못도 피튀기는 영화 퀴즈방’에 들어갔다. 아는 사이인 큰미미(미미시스터즈)가 개설한 방이라 그나마 맘이 편했다. 들어가니 수십 명이 모여 있었다. 순서에 따라 출제자가 키워드를 말하면 다른이들이 영화 제목을 맞히는 식이었다. 어려웠다. 내가 영화 담당 기자인데도, 단 한 문제도 못 맞혔다. 그런데 다른 이들은 잘도 맞혔다. 내가 문제 낼 차례가 왔다. “기차, 역주행.” “박하사탕!” 3초 만에 정답자가 나왔다. 그날 가장 쉬운 문제였다.
이곳에선 모두가 평등했다. 성별·나이·직업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같은 유명인도 여기서는 평범한 사람들과 직접 소통한다. 21세기 IT 기술 을 적용한 아고라 광장이 아닐까 싶다.
클럽하우스의 가장 큰 장점은 뭘까? 영상을 뺀 음성만으로 이뤄진다는 거다. 말들이 실시간으로 흩뿌려지고 기록되지 않는다는 점도 단점보다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듯하다. 수년 전 유튜브와 팟캐스트 방송을 진행한 적이 있다. 보여준다는 것, 기록에 남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적지 않았다. 클럽하우스에선 안 그랬다. 집에서 잠옷 바람으로 아무 말 대잔치를 벌여도 휘발되면 그만이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더 자유분방하고 진솔한 소통이 이뤄질 가능성이 큰 것이다.
유튜브, OTT 등 영상 콘텐츠가 대세가 된 지 오래인 지금, 거꾸로 음성 기반의 오디오 콘텐츠에 대한 수요와 관심이 늘고 있다. 요즘 뜨거운 클럽하우스만이 아니다. 전통적인 오디오 콘텐츠인 팟캐스트를 봐도 그렇다. 2011년 김어준 등의 <나는 꼼수다>가 등장한 이후 정치시사 팟캐스트 붐이 일었다. 하지만 몇 년 뒤 유튜브가 이 영역을 삼켰다. 팟캐스트는 사라지는 듯했다. 아니었다. 수치가 증명한다.
코로나19 사태는 미디어 이용 습관마저 바꿨다. OTT 이용량이 급증한 게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팟캐스트 이용량도 크게 늘었다는 점이다. 국내 최대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에 따르면, 국내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난해 1월 20일을 기준으로 7주 뒤 팟빵 주 단위청취 시간은 36%나 증가했다. 팟캐스트 시장은 이전에도 꾸준히 성장해 왔다. 2019년 팟빵 이용량은 전년보다 3배 넘게 성장했다. 팟빵관계자는 “국내에 AI 스피커가 800만 대나 보급된 것도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성장에 기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국내에 상륙한 세계 최대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도 팟캐스트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스포티파이는 국내에서도 조만간 팟캐스트 서비스를 시작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최대포털 네이버도 오디오 콘텐츠 시장 성장세에 주목하며 뛰어들었다. 2017년부터 팟캐스트와 비슷한 오디오클립 서비스를 시작한 데 이어, 2019년부터는 라이브 오디오 스트리밍 서비스 나우도 시작했다. 오디오북 시장도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웹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디오 드라마, 영화를 귀로 듣는 오디오 시네마까지 등장했다.
오디오 콘텐츠가 새삼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멀티태스킹이 쉽다는 특성에 있다. 온 신경을 집중하고 봐야 하는 유튜브나 넷플릭스와 달리 오디오 콘텐츠는 귀로 들으며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팟빵 관계자는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면 하루 24시간을 26~27시간으로 쓸 수 있게 된다. 바로 그런 마법을 가능하게 해주는 게 오디오 콘텐츠의 경쟁력”이라고 말했다.
오디오 콘텐츠 시장의 가능성을 보고 도전에 나서는 국내 기업들도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라디오계의 유튜브’라 불리는 오디오 방송 플랫폼 스푼을 운영하는 스푼라디오가 대표적이다. 스푼에선 목소리만으로 손쉽게 크리에이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매일 10만 개의 새로운 콘텐츠가 생성된다. 스푼은 미국·일본·중동 등에도 진출했다. 스포트라이트101은 클럽하우스와 비슷한 커뮤니티형 라디오 블라블라 서비스를 지난해 시작했다. 카카오페이지 등 투자를 유치하며 한국형 클럽하우스를 꿈꾼다.
시장조사업체 리서치앤마켓츠에 따르면, 세계 라이브 오디오 스트리밍 시장은 2018년 4억 720만 달러(약 4,488억 원) 규모에서 2027년 11억 6,640만 달러(약 1조 2,856억 원)로 커질 전망이다. 누구나 쉽게 뛰어들 순 있어도 플랫폼이든 콘텐츠든 돋보이기가 쉽지 않다. 결국은 오디오 콘텐츠의 특성과 장점을 잘 파악하고 이에 맞는 차별화된 전략이 중요할 것이다.

서정민 《한겨레》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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