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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이건희 컬렉션과 미술품 물납제 공공을 위한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

미술계가 지난 한 달간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낼 수 있도록 하는 물납제 도입을 호소하며 뜨겁게 달아올랐다.
3월 3일 미술계 협회와 단체, 전직 문화체육부 장관 8명이 ‘대국민 건의문’을 발표했다.
대국민 서명운동도 펼쳤다. 3월 11일에는 한국고미술협회·한국미술협회·한국화랑협회 공동 주최로 세미나를 열어.
전문가들이 물납제 도입을 위한 제언을 쏟아냈다. 미술계가 이토록 간절히 호소하는 물납제, 정말 필요한 것일까?

3월 11일 미술 단체가 연 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위한 세미나 현장

미술품 물납제, 찬성과 반대 의견

물납제란 상속세 등의 세금을 미술품과 문화재로 낼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현행법은 물납 대상으로 부동산과 주식을 제외한 유가증권(재산 권리를 표시한 증서로서 화폐·상품증권·어음·수표·채권 등이 해당된다.)만 인정한다. 미술계 요구는 여기에 미술품·문화재도 포함해 달라는것이다. 공공의 관점에서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서 세금을 들이지않고 작품을 수집해 공공이 누리는 문화유산으로 삼기에 좋은 제도여서 문화 강국으로 불리는 선진국들이 도입했다. 프랑스·영국·일본 등이 각각 운영 방식은 다르나 물납제를 시행한다. 해외 유서 깊은 미술관·박물관들의 장대한 컬렉션은 물납제 덕이 크다. 외신에 따르면 영국은 지난해 물납제로 추정가 960억 원어치의 미술품을 확보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국내에 도입되지 못한 이유가 뭘까. 국가는 ‘현금납부’를 세수 확보 원칙으로 한다. 물납을 받으면 현금화에 재정 부담이 생긴다. 정확한 시가 감정을 통해 금액을 산출할 수 있느냐는 점도 걸림돌이다. 납부자가 현금 납부가 가능하면서 자기 유불리에 따라 값어치가 낮은 미술품만 내놓는 식으로 악용할 가능성도 제기됐다.
하지만 미술계는 시가 감정 능력이 성숙해 가고 있으며, 악용 가능성은 법안을 세밀하게 설계해 해결해야 할 일이라고 주장한다. 문화체육부 역시 공공문화향유권 차원에서 물납제 도입을 위한 기초 안을 마련 중이다. 물납제 도입을 뼈대로 하는 상속세 및 증여세법 개정안도 국회에 계류돼 있다.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마크 로스코의 색면 추상 작품을 다수 소장했다고 알려져 있다

가치 있는 논의의 필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소장품을 일컫는 ‘이건희 컬렉션’ 이슈를 종합하면 지난해 12월 민간 감정단체 세 곳이 이 전 회장의 소장품 감정을 시작했다. 약 두 달간 소장처를 돌며 실물을 확인한 뒤 감정보고서를 썼다. 명작 1만 2,000여 점이 최고의 시설에 보관돼 있다고한다. 한 작품의 추정가가 30억~50억 원이어서 컬렉션 전체 추정가가 1조~3조 원으로 이야기된다. 주요 서양화가의 경우 핵심 작품만 20~30점씩 있어 그 인물의 일대기를 보는 듯하다고 한다. 좋은 작품을 숱하게 봤을 국내 감정가들이 “내 평생 이런 작품을 보고 죽게 되다니”라며 감격하고 국민이 꼭 함께 봤으면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이건희 컬렉션을 접한 미술계가 발을 동동 구르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어디로 흩어져서도, 이대로 계속 수장고에 잠자서도 안 된다고 말이다. 사유재산을 두고 기부를 강요할 수도 없으니, 어디까지나 삼성가의 외부자인 미술계는 그저 물납제가 아직도 도입되지 못한 현실을 개탄한다. 물납제를 조속히 도입해 이번 사례에 적용하면 소장가도, 공공도 서로 ‘윈윈’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오비이락에 의구심 갖는 여론이 있음을 미술계도 잘 알고 있다. 이건희 컬렉션과 물납제 논의가 마침 겹치자, 삼성가의 세금을 덜어주기위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갖는 이도, 또 정반대로 삼성가로부터 나라가 미술품을 뺏으려는 것 아니냐는 음모론도 있다. 하지만 의구심을 거두고 논의가 진행돼 온 맥락을 살필 필요가 있다.
삼성가의 상속세 납부 시한인 4월 30일까지 물납제 도입 입법이 국회를 통과하고, 이건희 컬렉션이 적용 1호가 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희박해 보인다. 이에 미술계는 우선 급한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다른 대안도 내놓기 시작했다. 이번 사례에만 적용될 수 있는 특별법을 만들어 이건희 컬렉션이 고스란히 담긴 미술관을 삼성이 건립하고 지자체와 정부가 부지 제공 등을 협력해 준다거나, 국립미술관을 건립해 정부가 이건희 컬렉션을 기부받는 방안 등이다.
그렇다면 물납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건희 컬렉션 이슈 덕분에 100만 구독자 유튜버 영상이나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큼 물납제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이건희 컬렉션 이슈가 지나가면 관심은 또 꺼질 수있다. 이건희 컬렉션 이슈가 생기기 전에도 물납제 논의는 필요했고, 이건희 컬렉션 이슈가 끝나도 물납제 논의는 계속돼야 한다. 방탄소년단 RM과 같은 한류를 선도하는 대중문화 예술가들은 미술이 영감의 원천임을 말하고 있고, 밀레니얼 세대 컬렉터들의 유입과 함께 시장도 매년 성장하고 있지만, 우리 공공 미술관·박물관 인프라는 초라한 게 현실이다. 한국미술협회 자료에 따르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우리나라처럼 3만 달러 초반인 이탈리아의 주요 미술관은 로마24곳을 포함해 전국 141곳이다. 반면 우리는 10곳이다. 프랑스의 물납제 1호 미술관인 피카소 미술관처럼 우리나라도 후대에 두고두고 가치가 빛을 발할 미술관을 가질 수 있도록 관심이 필요하다.

김예진 《세계일보》 기자 | 사진 제공 한국화랑협회,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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