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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책 《살아남은 그림들》과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그리거나, 글이거나
예술작품이란 오롯이 작품 자체만을 놓고 감상해도 부족함이 없다. 하지만 작품에 얽힌 이야기나 작품이 파생한 이야기를 알고 보면 감상이 더 풍성해질 수 있다. 그림이 남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두 권을 소개한다. 《살아남은 그림들》과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이다.
“자네는 이제 모든 게 아무치도 않어 참 좋겠네. 어디 현몽(顯夢)이라도 하여 저승소식 알려 줄 수 없나. 자네랑 나랑 친하지 않었나. 왜.” 시인 구상이 전쟁을 소재로 구원의 과정을 견고한 시어로 표현한 연작시 <초토의 시 14>의 마지막 구절이다. 이 작품은 구상 시인이 절친한 친구였던 이중섭 화가의 죽음을 애도하며 썼다고 알려졌다. 이중섭은 담뱃갑 은지 위에 그림을 그린 일화로 유명할 만큼 전쟁 직후 고단한 창작을 이어간 작가다. 전쟁은 예우(藝友)이던 시인과 화가의 작품에도 상흔을 남겼다. 여기 그림이 남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 두 권이 있다. 하나는 한국 근현대미술의 대표 화가 37인이 남긴 작품들에 얽힌 이야기를 담은 《살아남은 그림들》이며, 다른 하나는 고흐·고갱·르누아르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을 재료 삼아 동시대 작가들이 단편소설로 엮은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이다.

궂은 시절을 살아낸 작가, 살아남은 작품 《살아남은 그림들》 | 조상인 지음 | 눌와

그림은 영원히 사라지거나, 혹은 사라질 뻔한 위기를 넘긴 경우가 많다. 어려운 시절을 견뎌낸, 말 그대로 ‘살아남은’ 그림들을 소개한다. 화가 나혜석과 구본웅의 그림은 상당수가 전쟁 중에 소실되거나 불쏘시개로 사라졌다. 월북 화가 이쾌대의 작품은 남쪽에 남은 부인이 다락방에 꽁꽁 감추어둔 덕에 엄혹한 시절을 견뎌내고 다시 빛을 볼 수 있었고, 1940년 전후에 완전 추상을 이룬 유영국의 초기작들은 망실된 지 반세기가 지난 뒤에야 딸 유리지와 협업해 다시 제작돼 비로소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다.
이 책은 살아남은 그림뿐만 아니라 치열하게 살아간 작가들의 삶에도 집중한다.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 등 익숙한 화가들을 비롯해 오지호, 변관식, 김창열, 이우환, 이승조 등 각자의 영역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예술가 37인의 삶을 조명한다. 예술은 시대를 비추고 기록한다. 그들의 삶 역시 순탄치 않았고, 드라마틱했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군부독재와 민주화 투쟁, 근대 문물의 등장과 산업화까지, 소란했던 한국의 근현대를 지나온 작가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다들 고난을 겪거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리 고단해도 그림 그리기를, 저마다의 작품 세계를 꾸려가기를 멈추지 않았다. 참혹한 일제강점기에도 붓을 놓지 않았고, 총탄이 날아드는 6·25전쟁의 피난길에도 스케치북을 챙겼다.
이 책에는 모두 합치면 150점에 달하는 한국 근현대 미술의 대표작이 실려 있다. 개인 소장품보다는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국공립미술관의 대표 소장품을 중심으로 골랐다. ‘실제 작품을 직접 감상할 수 있는가’가 작품 선정의 주요 기준이었다.
‘코로나’라는 긴 재난의 터널을 지나는 지금, 그럼에도 예술을 찾는 이유에 대해 작가의 말로 대신한다. “어떤 이는 ‘다 죽게 생겼는데 그림을 그리냐, 그깟 그림이 밥 먹여주냐’라고 한 소리 했을지도 모른다. (중략) 그림이 백신이 될 순 없겠지만, 긴 터널의 끝이 보일 때까지 우리의 정서적 면역력이 되어주리라 기대한다. 굳이 유럽이 흑사병 이후에 르네상스를 맞이한 것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험난한 시기를 보낸 후 예술은 더 찬란하게 빛났다.”

그림에 붙이는 조금 긴 추신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 질 D.블록, 리 차일드 외 15명 지음 | 이은선 옮김 | 문학동네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다. 미국의 유명 작가 로런스 블록은 미술 작품을 선택해 작품에서 받은 영감으로 단편소설을 쓰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조이스 캐럴 오츠, 리 차일드, 마이클 코널리 등 재능 있는 작가 17인이 모여 선사시대 동굴벽화부터 고흐, 고갱, 르누아르, 마그리트, 달리 등 유명 화가들의 회화 작품과 미켈란젤로와 로댕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미술 작품을 재료로 삼아 소설이라는 또 다른 작품을 내놓았다.
이 프로젝트의 전작은 <밤의 사람들> <윌리엄스버그 브리지로부터> 등 고독한 분위기를 담아낸 미국의 유명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단편소설로 엮어낸 《빛 혹은 그림자》다. 모든 단편이 훌륭하다는 호평을 받으며 언론과 독자로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그 후속작인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는 예술작품 선정에 제한을 두지 않은 덕에 다양한 시대의 미술작품들이 다채로운 소설로 빚어질 수 있었다.
브램 스토커 상 수상자인 데이비드 모렐은 반 고흐를 모델로 한 가상의 인상파 화가 ‘반 도른’을 내세워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친다. 리 차일드는 르누아르의 정물화 <국화꽃다발>을 두고 펼치는 사기꾼의 회고를 그리고, 조너선 샌틀로퍼는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을 기반으로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파괴되는 여성의 심리를 묘사한다.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는 소설가가 미술 작품과 치열하게 대화하며 써 내려간 또 다른 예술이다. 수십 혹은 수백 년 전에 예술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다음 세대 작가의 손에서 새롭게 태어난 것이다. 이번 책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작가들에게 영감이 된 작품들이 컬러 도판으로 수록돼, 더욱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글 김영민_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
사진 제공 눌와,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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