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퍼런스의 2층 서점 내부
‘전시가 있는 서점’의 2년
2018년 3월 개관해 아시아의 사진·미디어 작품과 작가 그리고 관련 책을 꾸준히 선보여온 더 레퍼런스는, 서촌의 공기와 구석구석 숨은 갤러리 등 보물찾기를 즐기는 이들이라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곳이다. 건물 1층 입구에 소개된 전시 내용에 호기심이 동한 이들은 지하 1층으로 끌리듯 향할 것이다. 넓진 않지만 천장이 높고 정사각을 슬쩍 벗어난 공간은 사진이나 미디어 설치 전시를 규모 있게 하기 좋다. 이곳에서 아시아 사진작가들의 작품 및 작품집을 함께 전시하며 한 권의 사진집이 만들어지기까지 제작 과정을 소개하기도 하고(전시 <표현으로서의 사진집에 관하여>, 2018), 2019년 가을에는 미국의 사진 매거진 《라이프(LIFE)》의 유명 작품 90여 점과 《라이프》지를 함께 선보이는 전시로 큰 호응을 얻었다. 지하에서 전시를 감상한 이들은 2층으로 많이들 걸음을 옮겼을 것이다. 작가에게 생긴 궁금증에 힌트가 될 만한 책을 서점에서 찾아보기 위해.
“더 레퍼런스를 ‘전시가 있는 서점’이라고 소개해 왔어요. 책을 보다가 전시를 볼 수도 있고, 전시를 본 분들이 책으로도 관심을 이어가는 등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죠. 책을 매개로 시각예술의 이해를 넓히고, 이런 활동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공간이 필요하다고 느꼈거든요.”
더 레퍼런스의 김정은 대표는 사진 및 시각예술 관련 전문 도서를 만드는 출판사 이안북스(IANN)의 운영을 겸하고 있다. 아트북과 사진 전문 매거진 《IANN》을 발행하면서 막상 예술 분야 전문 도서를 취급하는 서점이 턱없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책을 선보일 공간을 직접 마련했다. 그 과정에서 사진집이 대개 작품을 설명 없이 시각적으로만 전달하기에 이를 보완할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서점에 더해 전시와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을 기획하게 된 것이다.
개관전 <아시아 아트북 라이브러리>는 더 레퍼런스가 보여주고자 하는 콘텐츠(아트북)의 방향(아시아·도시)과 보여주는 ‘방법’을 잘 드러낸 전시였다. 아시아 작가들의 다양한 아트북을 전시하며 판매를 겸했는데, 한국의 서울 역시 아트북의 수요가 분명 존재하지만 플랫폼이 마땅하지 않았던 터라, 개관전은 화제성과 책 판매 모두 의미 있는 성과를 냈다. 이후 2년간 더 레퍼런스는 시각예술 작품과 아트북을 소개하는 전시 및 프로그램을 꾸준히 이어왔다. 전시와 연계한 아티스트 토크 프로그램은 작가에게 직접
작품 설명을 듣는 자리로, 사진과 ‘사진집’ 작업에 대해 관객·독자와 입체적인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할 수 있는 한 다양한 것을 ‘꾸준히’ 시도하고 유지하는 것이 이 공간의 1차 미션이었다.
2019년 4~5월에 진행한 두 번째 <아시아 아트북 라이브러리> 전시 전경
‘책’에 방점 찍고 확장하기
2020년 3월, 더 레퍼런스는 개관 2주년을 맞이했다. 해마다 선보인 <아시아 아트북 라이브러리> 기획전을 시작할 시기, 갑작스레 닥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로 인해 더 레퍼런스 역시 전시 및 프로그램을 잠정 연기해야 했다(2층 서점은 정상 운영). 아시아 작가들과 교류를 활발히 해온 터라 이 변수가 달가울 리 없지만, 김정은 대표는 멈춤의 시간을 내부 재정비의 기회로 삼고 있다.
“서점의 기능을 더 강화할 방법을 고민하고 있어요. 궁극적으로 저희는 책을 만들고 책에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니까요. 지금까지 시각예술을 알리는 매개가 전시였다면 이제는 ‘책’을 더 비중 있게 가져갈 생각이에요. 독자들께 전문성 있는 콘텐츠가 어렵지만은 않다는 걸 저희가 알려드려야 하는데, 북 큐레이션으로 이를 전달하려면 내부에서 스터디가 필요할 것 같아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공간의 강점과 존재 이유를 분명하게 찾고자 합니다.”
일단 가깝게는 5월 말부터 사진과 책이 다채롭게 결합된 강연 프로그램을 재개한다. 한 회당 한 사진작가의 대표 사진집과 문학·인문서 등을 매칭해 사진예술에 대한 사고를 확장하는 <김소희의 Book Curation-사진, 책을 읽다>가 그것이다. 2021년 2월까지 예정된 이 프로그램은 긴 호흡으로 책과 사진을 두루 만날 기회다. 더불어 더 레퍼런스는 올해 북 큐레이션 작업으로 외연을 넓히게 됐다. 무지호텔(베이징·긴자)의 기획·디자인을 맡아 유명한 일본의 건축사무소 UDS에서 오는 여름 ‘호텔 앤티룸 서울점(Hotel Anteroom Seoul)’을 오픈하는데, 이곳 전시 공간과 서가의 큐레이션 자문 및 운영을 맡은 것. 더 레퍼런스에서 기획한 서재가 다른 공간에 심어지는 셈이다. 공간의 특성과 장점에 맞춰 서가를 기획하고 그와 연계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진행할 예정이다. 책의 매력을 ‘경험’하게 함으로써 예술을 전하는 작업, 다른 공간에 개성 있는 서재로 틈입하는 일은 더 레퍼런스가 찾은 서점의 미래라고 할 수 있겠다.
가장 전통적인 매체의 힘을 믿어온 공간은 가장 역동적인 방식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 있다. 시각예술 이론서와 아시아 사진작가들의 작품집, 이안북스의 출판물이 사이좋게 이웃한 효자동 더 레퍼런스의 작은 서가에 올해는 부쩍 많은 책과 이야기가 쌓일 것 같다.
- 글 이아림_객원 기자
사진 제공 더 레퍼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