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로이츠베르크의 그라피티
2 크로이츠베르크 박물관 전경
사연은 이랬다. 2020년이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음악제(Salzburger Festspiele)가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 이를 기념하는 행사로 축제의 미래를 모색하는 글로벌 세미나에 한국 참가자로 초청됐다. 게다가 행사 장소가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무대인 레오폴드 궁이라는 사실은 매우 설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일주일간의 빡빡한 세미나 일정만으로 유럽 왕복을 감수하기에는 시간이 매우 아까워 일주일 먼저 와서 오랜만에 개인 시간을 갖기로 야무진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출발 즈음해 코로나19로 한국인에 대한 입국 제약이 심해지던 시점이라, 나의 참석에 대해 다른 참가자나 주최 측이 가질 우려가 부담된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서 가더라도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멀찌감치 떨어져 구석에서 참관만 할 상황도 각오했다. 설마 그 큰 규모의 국제 행사가 아예 취소될 수도 있다는 개연성은 상상하지도 않았건만, 현지 도착 후 확인한 것은 비행 도중에 와 있던 행사 연기 통지 메일.
갑작스레 빈 일정으로 잠시 망연자실했지만, 선물 같은 이 시간을 잘 보내야 했다. 그렇다면 새 행선지는 주저 없이 베를린. 자체적인 ‘베를린 열흘 살기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내게 스스로 정한 원칙 딱 한 가지, 그곳에서는 무조건 걷는다. 모바일 운송 플랫폼 우버와 지하철 우반(U-Bahn)을 이용하면 방문객에게도 이동의 불편함이 전혀 없으나, 도심 걷기를 통해 예술적 영감을 만끽하며 재충전을 하자, 뭐 이런 정도의 느슨한 계획을 세우고 이 도시를 스스로 정한 키워드에 따라 탐험했다.
베를린 도착 후 거리에서 첫눈에 들어온 것은 “AMT ABER SEXY” 라는 옥외 홍보물 문구. 독일어를 모르지만 문장의 맥락으로 짚이는 게 있다. 2000년대 초 클라우스 보베라이트(Klaus Wowereit) 당시 베를린 시장이 한 유명한 말, “베를린은 가난하지만, 섹시하다(Berlin ist arm, aber sexy).” 이를 패러디해 만든 말인데, 대강 눈치로 번역하면 ‘공공기관·관공서(amt)지만 매력적이다’. 우리 식으로는 ‘정부 2.0 박람회’ 정도로 유추된다. 그렇잖아도 딱딱하고 원칙에 충실한 국가인데 관공서는 오죽했을까, 그런 선입관을 깨고 이제 공공행정도 혁신적으로 변화하려 노력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이 말이 나오던 당시 베를린은 통일 독일의 수도가 됐으나 재정적으로 풍족하지 않고 정치적으로 불안정한 상황. 그러나 많은 예술가가 이 도시로 몰려오기 시작하고 다양한 분야의 창의적·대안적·실험적인 사람들이 모여들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며 도시의 매력을 높여가기 시작한다. 이른바 크리에이티브 클래스의 새로운 서식지가 돼가고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유럽치고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도 한몫했다. 우리나라의 예술가도 임선혜·조성진·성시연·김선욱·선우예권 등이 이곳을 거점으로 국제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
내 일생 첫 베를린 방문은 정확히 30여 년 전. 해외여행 자유화 직후 당시 유레일 패스를 들고 유럽 배낭여행을 한 1세대가 나다. 많은 도시 중에서도 가장 호기심이 가는 곳은 베를린. 통일되기 전이라 서독과 동독으로 나뉘어 있고, 당시 베를린만 금단의 땅 동독 영토 안에 섬처럼 갇혀 있던 터였다. 그래서 기차를 타고 베를린으로 가는 길은 사뭇 긴장의 여정이었다. 어린 나이에 공산국가 영토를 지나고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검문소인 체크포인트 찰리에서 스탬프를 받으면 잠깐 동독 땅을 밟고 올 수 있었고, 먼발치에 서 있는 높디높은 방송탑은 여러모로 서독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던 동독의 자존심으로 기억한다.
이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 냉전의 상징 인물이던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는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바흐의 무반주 첼로 조곡을 연주함으로 전 세계에게 감동을 전했다. 베를린에 사는 지인들은 베를린 장벽의 콘크리트 조각으로 만든 기념품을 보내오곤 했다. 이제 당시의 긴장감은 사라지고 갤러리·박물관·조형물 등으로 꾸며진 활기찬 관광지가 돼 있다. 지금은 검문소를 가운데 두고 옛 미군 관리 지역에는 러시아문화원이, 소련 관리 지역에는 맥도날드가 있으니 아이러니하다.
베를린은 대안적 라이프스타일 수행자의 둥지다. 미국형 히피와 유럽형 보헤미안 문화를 합친 듯한 특징의 서브컬처가 시내 곳곳에 스며들어 있어 문화 다양성이 더욱 풍부해졌다.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예술적 결과물들은 베를린이 독일 순혈주의 클래식 예술만의 도시가 아님을 보여준다. 이런 문화의 게토라 할 수 있는 크로이츠베르크 지역의 아우라는 실로 이러한 매력의 극치를 보여준다. 허름한 건물을 개조한 크로이츠베르크 박물관은 도시 아카이빙 센터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노인 도슨트가 덤덤히 건넨 오디오 가이드의 설명을 좇다 보면 이 지역의 변천사를 상상하게 한다.
그라피티, 스쿼팅(squatting·빈집을 무단 점유해 그곳에서 지내는 것), 아방가르드, 버스킹, 타투, 요가, 공예, 디자인, 비건, 파티, 시장 등은 이곳에서 서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독립예술가와 함께 기존 이주자와 새로 유입되는 외국인 노동자와 난민은 지역의 정체성을 재구성하고 있다. 이런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옛 동독 지역에 방치된, 소유권이 불분명한 건물의 재활용에서 기인한다. 장벽이 무너지고 왕래가 자유로워진 옛 동독 지역은 새로운 해방구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래서 거리에서 발견하는 슬로건이나 홍보물, 상호 등은 여전히 전투적이고 공격적이다.
3 25년 만에 만난 필자(왼쪽)와 우파 파브릭의 대표 만프레드(오른쪽)
4 우파 파브릭 입구
그러나 이 음습함과 긴장감, 그리고 각종 정치적인 이슈들은 역설적으로 베를린 관광의 주요 소재가 돼가고 있다. 베를린은 전후 복구를 시작으로 옛 산업 유산의 활용, 구동독 지역 개발, 원도심 활성화, 녹지 공간 확충 등 여러 가지 이슈가 이어지는 난제의 도시이기도 하다. 특히 공업 역사가 오랜 이 나라의 방대한 산업 유산의 재생과 활용에는 많은 재원을 들여 부흥을 꿈꾸고 있다. 한국에서도 공연한 극단 베를린의 연극 <태그피시(Tagfish)>의 스토리를 보면, 이런 일은 언제 올지 모르는 투자자와 관광객으로 넘쳐나는 영광의 그날을 기다리며 끊임없는 토론과 합의의 연속임을 알게 해주고, 그 과정의 지난함을 보여준다. 옛 양조공장을 개조한 쿨투어 브라우어라이(Kultur Brauerei) 같은 유명한 공간 역시 문화와 관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쫓으며 재정적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예술과 상업의 기로에서 고민하고 있다.
베를린에는 기존의 티어가르텐(Tiergarten·독일 베를린 중앙의 큰 공원)이나 템펠 공항을 개조한 공원 같은 녹지 공간 이외에 이른바 생태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간이 도시의 새로운 거점으로 자리 잡고 있다. 고립되고 배타적인 커뮤니티가 아닌 지역사회와 긴밀히 소통하고 교류하며 훌륭한 어반 셸터(urban shelter)로 기능하고 있다. 도시농업, 유기농, 친환경 생활, 재생 에너지, 자급자족, 대안예술, 생태건축, 목공, 플리마켓, 협동조합, 물물교환, 공유경제, 축제와 워크숍 등은 이들의 테마이자 콘텐츠다. 열악한 형편에서 이런 것들은 이벤트나 레토릭으로서가 아니라 현실적 생존 방안이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우파 파브릭(ufa fabrik)’은 이런 생태 공동체의 성지다. 옛 베를린 영화촬영소 부지를 활용해 조성된 이곳은 다양한 문화·예술·생태·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생태마을이자 복합문화공간이다. 나는 이곳에서 1996년에 김덕수 사물놀이패, 안숙선, 전통무예인 육태안, 재즈밴드 트라이빔, 한지공예가 김경 등을 모시고 <베를린난장>이라는 한국 문화 축제를 기획한 바 있다. 당시 이를 지원한 삼성SDS는 단순 후원을 넘어 당시 막 도입된 인터넷 시스템으로 행사 전체를 아카이빙하고 중계하는 역할을 했다. 당시 함께 기획했던 우파 파브릭의 대표 만프레드를 구내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것은 대반전이었다. 팔팔한 청년이었던 두 사람은 이제 중년과 환갑이 돼 흰머리를 쓸어 올리며 세월의 무상함에 웃는다.
음식과 관련 돼 늘 평가절하되는 나라가 영국·독일이 아닌가 싶다. 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 요리에 비해 독일은 맥주와 소시지 그리고 투박한 몇몇의 육류 요리로만 이야기된다. 그러나 창의적인 사람이 몰리는 곳은 음식 문화도 함께 변하기 마련이다. 다양한 국적의 이주자는 자국의 음식을 소개하게 되고, 그러다 보면 독창적인 퓨전 음식이나 컬래버레이션이 돋보이는 메뉴가 등장하게 된다. 가히 베를린은 이제 음식에 관해서는 코즈모폴리턴적인 취향을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는 도시가 됐다.
5 코워킹스페이스 내부
베를린의 음식 문화 변화의 물결에 부응하는 우리 한식의 약진도 인상적이다. 과거 외국의 한식당이라 하면 ‘서울’ ‘남대문’ ‘아리랑’ 같은 상호로 불고기, 비빔밥 등의 메뉴를 내세우고 운영했으나, 이제 한식당도 문화적 감수성으로 무장한 청년창업가에 의해 진화하고 있다. 이곳 베를린에서 만난 ‘앵그리치킨’ ‘김치공주(Kimchi Princess)’ ‘서울주방(SEOULKITCHEN)’ ‘분식집 파치피고(Pacifico)’ ‘고추가루(Kochu Karu)’ 등은 디자인과 마케팅에서 뛰어나다. 알고 보니 건축가가 주인인 앵그리치킨 외에도 음악과 디자인 등 예술을 전공한 주인들의 탁월한 안목으로 한국 식당은 당당히 현지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베를린은 디지털 노마드와 자유로운 아티스트를 위한 최적의 작업 환경을 제공하고 있다. 코워킹(Co-working) 스페이스는 거의 코피잉(Co-feeing) 스페이스라 할 정도로 일과 휴식을 동시에 할 수 있으며, 저렴하지만 쾌적하고 편안한 숙소가 즐비하다. 사람들은 어디서나 일상성을 유지하고 생활의 편의를 도모하며, 지역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고 있다. 앱과 웹을 활용해 네트워크를 가동하며, 언어의 한계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글로벌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
베를린은 이제 보수적·전통적 역사문화 도시에서 벗어나 실험적인 예술과 창조적인 교육, 첨단 과학기술과 미디어를 활용한 창업 및 프로젝트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글로벌한 감각을 갖춘 창의적인 사람들이 몰려들어 창조적인 네트워킹이 이루어지고 있다. 베를린 인구의 상당수가 문화예술계 종사자이고, 이들이 베를린 경제에 기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이에 베를린시는 외국인 예술가에게도 무상의료보험 혜택을 주는 등 창작 환경을 제공한다. 매력 있는 도시는 그만한 투자가 있기에 가능하다. 그 투자의 핵심은 사람이다.
- 글·사진 이선철_서울문화재단 이사, 감자꽃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