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잃은 삶을 위로하고 안내하다
주변에서 전하는 ‘잘하고 있어, 괜찮아’라는 몇 마디로 ‘퉁’ 치기엔 이 값싼 위로가 어딘가 모르게 억울하고 막막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 괜찮기를 바라지만 그렇지 못한 자신이 미워질 때, 답을 찾듯 서점을 찾아 자기계발서나 심리학 코너 사이를 방황하는 이들도 있다. ‘이게 아닌데, 이게 아닌데’라고 되뇌다 방향을 잃은 채 삶의 운전대에서 힘없이 두 손이 떨구어질 때, 비로소 우리는 자문한다. 어디로 가기를 바랐던 건지.
“남편과 아이의 매니저가 진짜 꿈은 아니었는데…. 전업주부 10년의 시간 동안 묻고 또 물었다.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작지만 단단한 나의 신화를 찾고 싶었다. 그때 만난 것이 그림책이었다.” 책방지기인 정해심 대표가 펴낸 책의 표지에 적힌 글귀다. 그는 결혼과 출산을 겪으며 남편을 따라 충남 당진으로 내려가 전업주부의 삶을 시작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갇힌 일상에서 그를 위로한 건 다름 아닌 그림책. 아이에게 좋은 책을 읽어주기 위해 시작한 공부였지만 그 속에서 뜻밖에 넓은 세상을 만났다. 그가 그림책을 읽고 글을 쓰며 버틴 10년의 기록은 <이 나이에 그림책이라니>라는 책으로 엮였다. 미혼 시절 호기심으로 배운 타로부터 지난한 일상의 돌파구를 찾고자 공부했던 심리학, 그리고 그림책을 접하며 관심을 가지게 된 독서치료까지. 그가 무심결에 찍은 인생의 점들은 어느덧 이어져 하나의 선이 되었다. 그리고 선이 가리키는 곳에 책방이 있었다. “그림책에서 발견한 위로를 사람들과 나누는 것.” 이 공간을 사명이라 생각한다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1 카모메그림책방 전경.
2 타로톡과 그림책톡에 사용되는 타로 카드.
‘나’를 읽는 시간, 타로톡과 그림책톡
가족과 상경하여 금호동에 정착하면서 책방을 준비한 정 대표는 이곳의 콘셉트를 잡는 일이 가장 어려웠다고 한다. “책방을 열면서 이름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어요. 제가 가게를 차린다면 꼭 ‘카모메’라는 이름을 넣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영화 <카모메 식당>의 주인공처럼 사람들에게 위로를 주고 싶었어요.” 하지만 제각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림책을 통해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네려면 서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법. 그가 꺼내든 카드는 바로 타로였다. “타로 카드로 당신을 읽습니다. 그림책으로 당신을 위로합니다.” 책방 입구에 이 문구를 새기자 카모메그림책방의 밑그림이 완성되었다. 22명의 여신을 주제로 하는 타로의 상징을 통해 삶을 돌아보고 그에 맞는 책을 추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카모메그림책방의 무게중심은 단순한 독립서점 운영이 아니라 독서모임과 상담에 있다. ‘타로톡’과 ‘그림책톡’으로 불리는 프로그램은 책방지기와 일대일로 만나 타로를 매개로 상담을 진행하는 것이다. 상담만을 원한다면 타로톡을, 상담을 바탕으로 그림책을 추천받고자 한다면 그림책톡을 신청하면 된다. 예약제로 운영되는 프로그램 시간에는 외부에 책방을 개방하지 않기 때문에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하여 삶을 천천히 돌아보고 책을 음미할 수 있다.
3 서가 전경.
4 그림책 낭독 풍경.
함께 만들어가는 ‘그림책 낭독’
책방을 열고 난 후 그림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체감했다는 정 대표는 ‘그림책 낭독’을 “카모메그림책방의 꽃”이라고 말했다. 금요일 낮과 저녁, 한 달에 두 번 열리는 그림책 낭독은 자신에게 감동을 준 책을 한 권씩 가져와 서로 읽고 나누는 시간이다. 그림책에 관심이 있어도 모일 구심점이 없었던 사람들이 하나둘 찾아와 소중히 간직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다. 이 책을 왜 골랐는지, 어느 대목이 마음에 와 닿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어느덧 한 권의 책은 한 사람의 삶으로 풍성한 옷을 덧입는다. 숨어 있던 그림책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얻을 수 있다. 이때 소개된 책들은 또 다른 주인을 기다리며 카모메그림책방의 서가에 오르기도 한다. 그래서 함께 만들어가는 카모메그림책방만의 베스트셀러 목록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는 정 대표에게 마지막으로 그림책 추천을 부탁했다.
사람들이 상담에서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이 일과 관계라며, 이 두 덩어리가 우리 삶을 가만히 놔두질 않는다고 말하던 그는 오래 고민하다 두 권의 책을 꺼냈다. 숲을 너무나 무서워하는 주인공이 두려움을 극복하고자 홀로 숲 속을 찾아 들어가는 모험을 다룬 <숲 속에서>(클레어 A. 니볼라 지음, 비룡소), 9형제 중 막내로 태어나 사랑받기 위해 애쓰는 꼴찌 강아지의 이야기를 다룬
<꼴찌 강아지>(프랭크 애시 지음, 그림책공작소). 두려우면 피하고, 인정받기 위해 지나치게 애쓰다 나가떨어졌던 우리들의 민낯이 여기에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다, 이 자리에 앉아 고개를 끄덕일 사람들의 모습이 오버랩됐다.
- 글 방유경 서울문화재단 미디어팀
- 사진 제공 카모메그림책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