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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국립합창단 티켓 강매 논란뿌리 깊은 ‘관행’에서 비롯된 문제
최근 국립합창단이 단원들을 연주회 티켓 판매 실적으로 평가해왔다는 시비가 불거졌다. 티켓 판매액을 점수로 매겨 성과급을 지급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 티켓을 팔아야 성과급을 받는 내부 규정이 있다는 의혹에 대해 실태조사와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립합창단은 최근의 논란에 대해 “단원에게 성과급을 지급할 때 티켓 판매를 기준으로 하지는 않는다”라면서 “한 예로 2018년 1분기와 2분기에 티켓 판매액이 0원이었던 단원이 성과급 최고 등급인 A등급을 받았다”고 해명했다. 국립합창단에 따르면, 단원의 분기별 성과급 지급 평정은 100점을 기준으로 ‘기여도 평정 30점’, ‘복무 평정 40점’, ‘가점 30점’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이 중 단원들의 ‘티켓 판매액’은 ‘가점 30점’ 내 여러 평가 항목 중 ‘합창단 제반 활동 기여’(5점) 항목에 포함돼 있다. 국립합창단 역시 “단원 성과급 평정 요소 중 일부라도 ‘티켓 판매액’이 포함돼 있는 것은 잘못된 관행”이라고 인정하며 “즉시 개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행이라 하더라도 합창단원의 성과급 산정 기준을 공연 티켓 판매 실적으로 삼는 건 불공정 행위이자 예술인복지법을 어기는 행위라는 지적이 있다. 특히 1973년 창단한 국내 최초의 전문 합창단이 예술 활동의 성과 기준으로 공연 티켓 판매액을 일부 포함시킨 것 자체가 문제라는 비판도 있다. 한편에서는 이와 관련해 국립예술단체 전반에 대해 실태조사를 실시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빈약한 시장 구조가 문제

합창단이 단원 평가에 티켓 판매금액을 포함시킨 이유는 빈약한 시장 구조 때문이다. 국내에서 클래식 음악 공연은 적지 않게 열린다. 국공립을 비롯해 사립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꾸준히 공연한다. 하지만 청중은 항상 모자란다. 대형 해외 오케스트라의 내한공연과 스타 연주자의 공연에는 청중이 구름떼처럼 몰리지만, 일반 클래식 공연에는 빈 객석이 눈에 많이 띈다. 특히 합창 공연은 국내에서 청중이 몰리기 힘든 장르로 분류된다. 그러다 보니 단원들까지 티켓 판매에 내몰린 것이다.
일부 지역 합창단에서는 지휘자까지 나서서 티켓을 구매했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해당 지휘자는 합창단을 살리기 위한 취지라고 밝혔다. 객석을 채우기 힘들어 초대권을 남발하는 것은 물론 연주자들에게 티켓 판매를 요구했다는 한 클래식 음악단체의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암암리에 떠돌았다. 특히 사설 클래식 음악단체의 경우 존속마저 위협받으니, 티켓 판매에 팔을 걷어붙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에는 공연 출연자에게 티켓을 판매해서 출연료로 삼으라고 하는 경우도 있었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인력이 주가 되는 클래식 음악 공연의 제작비는 높은 편이다. 하지만 청중이 많이 들지 않기 때문에 티켓 가격을 무턱대고 높게 책정할 수는 없다. 특히 국립 예술단체의 경우 시민의 문화향유를 위해 티켓을 저렴하게 팔아야 하니, 수익구조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해 정부의 예술기관 평가에서 낮은 등급을 받을 확률이 높아지고 이로 인해 지원금이 깎이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티켓 판매를 강요당하는 현상만 보지 말고, 수면 아래에 있는 취약한 한국 클래식 구조의 저변을 먼저 톺아보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청중이 자연스레 공연을 찾도록 공연의 질을 높이고, 관련 단체는 이를 위한 기반을 조성하며 지원해야한다.

관련사진

1 국립합창단 공연 모습. (국립합창단 제공)

2 티켓을 판매하는 온라인 사이트. (내용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자료사진. 출처 인터파크 화면 갈무리)


고질적인 관행부터 바로잡아야

예술단체에서 예술가 본인이 티켓을 판매하는 것을 관행처럼 여겨온 것은 그 뿌리가 깊다. 예술가들은 음대 시절부터 낡은 관습을 견뎌내야 한다. 담당 교수의 연주회 티켓 판매가 대표적인 예다. 일부 음대 교수가 자신의 독주회 때 수십 만 원어치의 티켓을 사라고 강요한 사실이 알려져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항간에는 억지로 산 티켓을 나눠줄 데가 없어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얘기도 있다. 국내 클래식 음악계는 도제 시스템이 강하다. 교수와 제자의 관계가 일대일 레슨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관계가 수직적이다. 2010년대 초반 국립음대 교수가 학생들에게 티켓 판매를 강요한 것도 모자라 상습적으로 폭행해온 사실이 드러나 클래식 음악계가 발칵 뒤집어진 적이 있다. 가족 행사에 제자들을 시켜 노래를 부르게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처럼 상하관계가 평생 음악 활동의 기반이 되는 상황에서, 연주자들은 예술단체의 단원이 되더라도 명령 체계의 시스템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프로가 돼서도 자신의 지도교수가 참여하는 공연에 무료로 출연하는 경우도 있다. 교수가 절대 권력자처럼 군림하는 상황에서 이런 문제가 노출돼 공론화되는 것도 버겁다. 이처럼 위계가 분명한 사회에서 지내다 보니, 부당한 관례에도 큰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묵인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지라도 계속 노출되다 보면 감각이 무뎌진다. 관행으로 불합리한 상황들을 유야무야하기에는 그 정도가 뼈아프다. 클래식 음악계에서 티켓을 강매했다는 의혹 이면에는 이 업계의 다양한 고질병이 똬리를 틀고 있다. 근본적으로 그것을 도려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글 이재훈 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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