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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2월호

작가의 방
서울문화재단은 다양한 장르에 걸쳐 새로운 작업을 시도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합니다. ‘작가의 방’에서는 지원작가들 가운데 눈에 띄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작가를 선정해 소개합니다.
윤한솔 연출가공옥진 춤 새롭게

윤한솔 연출가

“왜 전통은 재미없고 따분하며, 즐겁지 않을까?”

파격적인 실험으로 주목받는 연출가 윤한솔은 사라져가는 전통에 대한 고민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는 이미 전작 <이야기의 방식, 노래의 방식-데모 버전>(2014)에서 구전심수(口傳心授: 악보 없이 일대일로 전수되는 방식)로 계승되는 판소리를 소재로 해 공연을 올린 바 있다. 그러나 “공연할 때 판소리를 좋아했던 배우들도 공연이 끝나면 듣지 않았다”며 삶과 동떨어진 전통예술의 명맥이 언젠가 끊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했다.
이런 전통에 대한 아쉬움은 지난 10월 4일부터 14일까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무대에 오른 <이야기의 방식, 춤의 방식-공옥진의 병신춤 편>에서 ‘춤’으로 이어졌다. 이 작품은 ‘키네트(동작 인식 센서)를 활용한 게임으로 공옥진(1931~2012)의 춤을 배울 수 있을까?’라는 상상에서 출발했다.
수많은 무용 중에서 왜 공옥진의 춤을 선택했을까? 이에 대해 그는 “공연에 앞서 4개월 동안 사전 조사를 했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기 어려웠다”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지만 전수자가 없어 사라져버린 공옥진도 한국무용에서는 주류가 아니라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의 공연은 어떤 면에서는 ‘한때는 정설이었을 전통’에 반한다. 연출이든 스토리 전개든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정설에 반기를 드는 도발’을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배경음악을 없애 숨 쉴 틈을 주지 않거나, 공옥진의 일대기를 꿰뚫어야 알 수 있는 에피소드를 부연 설명 없이 대사로만 녹여냈다. 이런 그의 연출은 사라져가는 전통의 끈을 놓치지 않으려면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는 의미로도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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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한솔은 한양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연극영화학 석사학위를, 미국 컬럼비아대 대학원에서 연극연출 석사학위를 받았다. 혜화동1번지 5기를 거쳐 현재는 그린피그 상임연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교수로 있다. 제2회 두산연강예술상(2011), 제34회 서울연극협회 올해의 젊은 연극인상(2013), 제18회 김상열연극상(2016)을 받았다.

이강욱 연출가한 사건의 다른 관점

이강욱 연출가

“같은 주제를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젊은 연출가 이강욱은 10월 5일부터 14일까지 명동의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공연된 연극 <외국인들>을 통해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들려줬다. 2003년 연극판에 뛰어든 뒤 줄곧 연기를 해온 그는 이 작품의 연출을 맡으면서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한국식 옴니버스극을 완성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옴니버스’란 한 주제를 중심으로 여러 개의 짧은 이야기를 엮어내는 영화 용어 아닌가. 그런데 한 작가에서 파생된 여러 개의 에피소드는 있어도, 여러 작가가 한 작품을 위해 모인 사례는 없었다. 이런 상황을 두고 그 자신도 “대학로에서 사례를 찾기 어려운 시도”라고 했다.
이 연출가는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본 사건의 다양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공동 창작 기법’을 채택했다. 우선 극작가 집단 ‘창작집단 독’에 소속된 9명의 작가들에게 각각 하나의 작품씩 총 9개의 에피소드를 만들게 했다. 제작에 앞서 작가들에게 “현실과 동떨어진 외국에서 허기를 느끼는 한국인이 등장한다”는 전제만 던져줬을 뿐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외국인들>에서는 인도, 일본, 이탈리아, 중국, 미국 등 9개의 공간을 배경으로 18명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상처받은 여자와 여행을 떠난 커플, 사막에 남겨진 신혼부부 등 평범한 사람들이 외국인이 되어 겪는 사건들이 이어진다. 그는 “하나의 조건에서 파생된 작가 9명의 상상력이 담긴 인생사를 보면 9개국을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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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욱은 한양대 경영학부를 졸업했으며,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현재는 ‘극단 아어’에서 연출가이자 배우로 활동한다. <누수공사>, <카르밀라>를 연출했으며 <죽음의 집>, <미인>, <과학하는 마음-숲의 심연>, <오해>, <템페스트>, <말들의 무덤>에 출연했다.

이성국 작가재개발 마을의 흔적

이성국 작가

“20년 전 1차 재개발 당시의 문제를 반복하지는 말아야죠.”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를 채록한 이성국 작가는 10월 19일부터 11월 2일까지 백사마을(노원구 중계동 104번지)에서 열린<기억의 방> 전시의 개막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전작들을 살펴보면 알 수 있듯 작가는 ‘재개발로 사라져가는 도심의 마지막 모습’에 관심이 많다. 이 전시의 배경인 ‘백사마을’도 1967년 도심 재개발 시 쫓겨난 철거민들이 모여 마을을 이룬 곳이다. 서울이 주변부를 식민화한다는 의미에서 한때 이곳을 ‘식민마을’이라고도 했다. 백사마을은 개발제한구역과 군사보호지역으로 묶여, 지금까지 1960년대의 주거 형태가 거의 그대로 보존되었다.
이성국 작가는 20여 년간 백사마을의 변천사를 기록한 사진, 회화, 오브제를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폐가와 빈 점포에 설치했다. 2003년부터 마을이 변해온 과정을 담은 사진들은 영업이 정지된 슈퍼마켓에서, 외곽으로 쫓겨난 기층민의 생활상을 담은 초상화는 ‘104랑 재생지원센터’에서 전시했다. 마을의 골목길에서는 물지게, 호롱불, 양동이 등 이성국 작가가 수십 년간 동고동락하며 수집한 추억의 생활용품을 공개했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 3학년 때 이주해 30년 넘게 이곳에 거주한 한 주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45분간 들려주기도 했다.
현재 빈집이 80%가 넘는 백사마을을 소재로 전시회를 연 이유를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반세기 전 철거민 강제 이주촌으로 시작된 백사마을이 20년 만에 또다시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사람들이 떠난 황무지에서 추억을 잡아야 하는 이유는, 언젠가 사라지고 없어질지 모를 지난날의 기억을 가슴속에 담아두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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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국은 세종대와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했다. 인간의 삶과 사회를 담는 미술을 지향한다. 참여한 주요 전시로는 <경계155>(서울시립미술관, 2017), <아파트 숲이 된 북서울> (서울역사박물관, 2016), <강북의 달>(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2014), <중계동·104>(백사마을, 노원문화예술회관, 2012) 등이 있다.

라오미 작가금강산에서 이상을 보다

라오미 작가

“사라져가는 옛것을 개선하고 복원해야 합니다.”

동서양을 접목한 화가 라오미는 ‘현실과 이상, 과거와 현재’가 혼재하는 틈에서 끊임없이 양쪽을 연결하는 노력을 이어왔다. “예전에는 불로장생한다고 믿었던 10가지 사물 ‘십장생’을 그렸는데, 이제는 현실에서 이루고 싶은 ‘이상’을 그린다”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철학이 바뀐 것일까? 아니란다. “과거에서 현재로 시점만 이동했을 뿐, ‘지금 여기’에서 이루고 싶은 유토피아를 그리는 것은 변함이 없다.”
라오미 작가는 몇 해 전부터 작품의 주제를 ‘금강산’으로 정했다. “우연한 기회에 북한 설화의 배경인 금강산을 보고 ‘현존하는 유토피아’라는 느낌을 받았다.” 올해 초에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선보인 <유람극장>은 종로구 바다극장으로 자리를 옮겨 10월 27일부터 11월 2일까지 <동시상영>이라는 제목으로 펼쳐졌다. “<유람극장>에서는 극장이 단순한 개념에 불과했는데, <동시상영>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며 전시 장소에도 의미를 부여했다.‘금강산’과 ‘바다극장’이 어떻게 하나의 작품을 이루었을까? 답은 ‘과거로부터 단절돼 복원되길 원하는 유토피아’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 화해 무드로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지만 아직 재개되지 않았다. 바다극장은 1970년대 가족극장에서 게이극장으로, 2012년 동시상영관에서 멈춰버렸다. 둘은 “사라져버린 무언가를 현재로 환기시키는 유토피아를 동시대에 ‘동시상영’하고 싶다”는 작가의 의도를 완성한다.
사실 바다극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조차 “굳이 여기서 전시를 하는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것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변화하면 좋겠다. ‘이 공간이 이렇게 좋았었나?’라는 느낌을 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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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상>, 2018.

라오미는 추계예술대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으며,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화과에 재학 중이다. 사극영화 미술과 무대미술을 경험했고, 문화재연구소에서 복원모사가를 꿈꾸기도 했다. 개인전 <밤보다 긴 꿈>(2017)을 열었으며, 현재 OCI미술관 레지던시 작가,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프로젝트A>의 멘토로 활동하고 있다.

권순관 사진작가보이지 않는 학살

권순관 사진작가

“이데올로기에 의한 폭력과 피해를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사진작가 권순관은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순간마다 이 질문을 가슴속에 새긴다. 작가는 10월 19일부터 11월 10일까지 학고재 신관에서 공개된 <더 멀치 앤드 본스>(The Mulch and Bones)를 통해 지배층이 자행한 물리적 폭력과 정신적 피해를 어떻게 피사체에 담을지 고민한 결과를 보여줬다.
‘뿌리 덮개와 뼈’로 직역되는 전시 제목엔 어떤 의미가 숨어 있을까. 작가는 “거름을 썩힐 때 덮는 천과 시체의 뼈를 의미한다”며 “첨예한 대립 속에서 무고하게 희생된 망자의 모습”이라 했다. 몇 년간 계속된 그의 작품은 정치적 대결이 극한으로 치달은 ‘한국전쟁 전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전시장에서는 7m가 넘는 거대한 작품 <어둠의 계곡>(2016)이 눈에 띄었다. 짙은 색 나무들로 빼곡하게 채워진 이 작품은 1950년에 벌어진 ‘노근리 양민 학살 사건’에서 영감을 얻었다. “어딘가 시신이 묻혀 있다면 부패해 잎사귀와 풀로 변하지 않았을까” 상상해 찍었다고 한다.전시장 아래층에서는 ‘제주 4·3’ 당시 정방폭포에서 학살돼 바다에 버려진 희생자들을 담은 작품 <파도>(2018)가 전시됐다. “70년이 지났지만 그곳은 해변의 묘지로 보인다. 현장에서 학살될 때 희생자들은 마지막으로 무엇을 봤을까?” 작가가 찾은 답이 바로 파도였다.
그는 이렇게 ‘학살’을 그대로 보여주지 않는다. 이는 미국 시인 월리스 스티븐스의 ‘장소 없는 묘사’ 개념과 겹쳐 보인다. 장소 없는 묘사란 “사건을 직접 담는 것이 아니라 그 사건을 통해 기인한 영감이나 느낌을 다른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장소 없는 묘사처럼, 보이지 않는 막연함을 촬영하는 것은 ‘침묵의 공간’에 숨겨진 폭력의 기억을 현실로 끌어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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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계곡>, 2016.(학고재갤러리 제공)

권순관은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졸업했다. 2005년 대안 공간 풀의 ‘새로운 작가’로 선정됐으며, 2007년 5·18기념재단으로부터 ‘올해의 사진가’로 선정됐다. 그동안 성곡미술관, 아트센터나비 등에서 개인전을, 부산비엔날레와 아르코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에서 단체전에 참여했다. 그의 작품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경기도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김설진 안무가다면적 기억의 춤사위

김설진 안무가

“정형화된 무용수의 몸짓을 보고 싶지 않았어요.”

연기와 무용의 경계를 넘나드는 안무가 김설진은 11월 8~9일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열린 <더 룸>(The RoOm)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가수 이효리의 춤 선생으로, 케이블 방송의 서바이벌 프로그램 <댄싱9 시즌2>의 우승자로 대중에게 알려진 그는 현대무용의 예측 가능한 몸짓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했다. 방법은 무용수 자신들의 이야기를 무용에 보태는 것이다.
<더 룸>은 국립무용단의 무용수 8명이 펼친 공연이다. 다양한 사람의 흔적이 묻어 있는 평범한 방 안. 소파와 의자가 놓인 평범하면서도 낯선 이 방을 무용수 8명이 80분간 쉴 틈 없이 들고나며 자신들의 사연을 춤사위에 담아 채웠다. 8명의 이야기는 각각 따로 노는 것 같지만, 서로의 다면적 기억을 ‘콜라주’처럼 매듭짓는 과정이기도 했다.
공연에 참여한 8명은 김설진 안무가가 50명의 국립무용단원 중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드러내는 사람을 기준으로 선발했다. “어차피 전문 무용수이기 때문에 춤보다는 살아온 이야기에 궁금증이 생기는 이들을 뽑았다.” 그리고 이들을 모은 뒤 말했단다.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을 이야기해달라. 서로의 고백이 끝난 뒤에 ‘진짜야?’라고 묻지 않는 조건으로.” 그 이야기들은 김설진 안무가의 연출을 통해 춤에 녹아들었다. 이 방법이 틀에 박힌 몸짓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은 움직임을 표현하기 위한 ‘김설진만의 레시피’다.
그는 벨기에의 세계적인 무용단 ‘피핑 톰’의 단원으로 활동하면서 이런 ‘이야기가 담긴 무용’에 대한 꿈을 키웠다고 한다. ‘이야기’는 실제 무용이 만들어지는 데 있어 필수 과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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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극장 제공

김설진은 현대무용단 ‘무버’의 대표이자 벨기에 ‘피핑 톰’ 무용단의 단원이다. 영국 공연계 최고 권위의 로런스 올리비에상에서 ‘뉴 프로덕션 상’을 수상한 <반덴브란덴가 32번지>로 2013년 내한해 주목받았다. 2014년 <댄싱9 시즌2>에서 우승하며 대중문화계에 현대무용 신드롬을 일으켰다. 2014년에 창단한 무버의 <방>, <온더 스노우>를 비롯해 국립현대무용단 <쓰리 볼레로> 안무 등에 참여했다.

글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미디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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