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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1월호

<서울을 바꾸는 예술: 소셜프로젝트> R3028을지로 뒷골목을 가꾸는 예술가들의 아지트
‘탕탕’ 철물들이 부딪치는 소리, ‘위잉’ 절단기가 내뿜는 날카로운 쇳소리, ‘파지직’ 불꽃이 튀는 용접 소리. 을지로3가에서 청계천3가 사이에 펼쳐진 산림동 철공소 골목에 들어서면 굉음에 흠칫 놀라게 된다. 재개발되지도, 정비되지도 못한 채 과거의 시간이 멈춘 동네, 이 오래된 골목 사이에 3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는 ‘R3028’이 있다. ‘세상을 위한 예술’이라는 모토 아래, 예술을 통해 지역사회와 소통하며 다양한 실험을 펼치는 그들은 이제 골목을 지날 때마다 가게 사장님들과 친근하게 인사를 주고받을 만큼 ‘산림동 사람’이 다 됐다. 나름의 방식으로 차근차근 뒷골목의 풍경을 바꿔가고 있는 R3028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을지로에 모인 예술가들

“세운상가에 있는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어요. 그때 이 주변에 작업실을 얻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침 중구청 예술가 지원사업이 있어서 2016년 이곳에 공간을 얻었죠.” 고대웅 대표는 을지로에 둥지를 트게 된 계기를 담백하게 설명했다.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한 그에게 을지로 일대의 공구상가나 공업사는 재료를 구하고 작품을 만드는 데 최적의 장소였다. R3028의 문을 열 당시 예술 교육에 관심 있던 8명의 친구들과 함께 사업을 시작했지만 각자 진로를 찾아 떠나고 프로젝트 단위로 다양한 예술가들과 협업하면서, 현재는 고대웅, 이원경, 류지영 세 명이 팀을 꾸리고 있다. 이들이 만난 계기도 독특하다. 을지로5가 인근에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작업하던 이원경 작가는 사업을 접을 즈음 R3028 공간을 우연히 발견하며 합류했고, 현재 프로젝트 기획 및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 류지영 작가는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작업실 공간을 찾던 중 을지로 주변을 배회하다가 이곳을 알게 되어 자연스레 합류했다. 지금은 공간 운영 및 아카이브 등 살림을 맡고 있다. 세 사람 모두 을지로를 배회하다 만난, 을지로가 맺어준 인연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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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R3028에서 열린 ‘밤의병원’ 전시 전경.

을지로를 가꾸는 예술, 서울을 바꾸는 예술

고대웅 대표는 방치된 채 아래층 주인의 창고로 쓰이던 2층 공간을 직접 고쳐 전시와 공연이 가능한 공간으로 꾸몄다. 과거의 지적도와 자료를 보면 1920년대 초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개보수 및 증축이 이루어지면서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를 띠게 되었다. 계단을 오르면 전시장 주변으로 부속실 같은 작은 방들이 둘러싸고 있는데, 일부는 작가들의 작업실로, 일부는 창고로 활용한다. 바닥 높이가 달라 실마다 단차가 계속 변화하는 내부공간과 그때그때 만들어져 들쑥날쑥한 천장 높이를 보면, 때마다 모습을 바꾸며 성장한 건물과 도시의 역사가 오롯이 전해진다.
R3028은 작업실을 비롯한 주변 공간의 역사를 예술작업으로 표현하는 한편, 그 역사를 만든 주변 제조업 장인들과 소통하고 협업하는 다양한 실험을 모색한다. 이들이 시도한 다양한 프로젝트는 일련의 과정을 압축해서 보여준다. 저녁 시간에 발길이 끊긴 철공소 골목 마당에서 공연을 펼친 ‘철의 골목:도시음악’ 프로젝트, 예술가와 지역아동들이 가게 셔터에 그림을 그린 ‘골목길러리 셔터아트’ 프로젝트, 골목 안에 쓰레기가 방치된 30m 길이의 벽을 따라 장인들과 함께 정원을 조성한 ‘장인의 화원’ 프로젝트, 제조업 장인의 기술을 발굴하고 예술가와 협업하여 실험적인 작품을 만든 ‘을지로사용법’, 그리고 ‘예기창작소’까지. 작은 이벤트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인적 자원을 활용하고 그들과 소통하기 위해 매년 꾸준히 워크숍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늦가을 을지로 일대에서 열리는 큰 행사 중 하나인 ‘을지로 라이트웨이 2018’에는 이원경 작가를 중심으로 예술가 거버넌스 대표로 참여했고, ‘을지 서편제’에서는 지역의 문화기획자들과 함께 을지로에 산발적으로 흩어진 예술공간들을 엮어 그간의 프로젝트 결과물을 선보이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지난 3년간 R3028은 을지로 일대의 노동자뿐 아니라 사업을 발주한 공무원, 사업 수혜자인 주민 등 공간에 얽힌 여러 주체들을 만났다. 그리고 이들 사이를 중재하면서 예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며 접점을 찾기 시작했고, 창작만 하는 것이 아닌 ‘사회 속 예술가’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이다. 이들이 성장해온 과정은 예술이 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주목받으면서, 올해 서울문화재단 지역문화팀 ‘소셜프로젝트’ 지원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연말에는 을지로 일대에서 진행한 프로젝트를 모아 예술가의 시선으로 기록한 책이 지원사업 결과물로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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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철의 골목:도시음악’ 공연.

3 ‘장인의 화원’ 프로젝트

4 R3028 현판.

진짜 ‘예술가’가 되는 공간

“저를 포함한 예술 전공자들은 사회에 나와 뭘 해야 할지 막막한데, 저는 이곳에 와서 시야를 넓혀 내 작업만이 아닌 사회의 변화와 흐름을 읽게 되었어요. 그리고 ‘작가’라는 이름을 얻었죠. 정부나 지자체, 단체 등에서 공모하는 사업의 과정과 목적을 알고 나니 사회가 어떤 역할을 원하는지, 결과물을 내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예술가로서의) 포지션을 찾은 것 같아요.” 이원경 작가의 말처럼 R3028은 예술을 주제로 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사람들을 모으고 기회를 제공한다. 학생들이 전시 이력으로 남길 수 있도록 예술공간 등록도 마쳤다. 공간을 대관해주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핫한’ 지역으로 손꼽히는 을지로에 새로운 동력을 불어넣고 있는 예술가들의 보이지 않는 움직임이 궁금하다면 R3028로 가보자. 그곳에서 진짜 예술가로 거듭나고 있는 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글 방유경 서울문화재단 미디어팀
사진 제공 R3028

※ 본 코너는 서울을 바꾸는 예술시리즈의 일환으로 12월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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