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영화 <어느 가족>.
가족이라는 이름으로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
할머니(키키 키린), 아빠 오사무(릴리 프랭키), 엄마 노부요(안도 사쿠라), 고모 아키(마쓰오카 마유)까지, 어린 쇼타(죠 카이리)가 사는 작은 집은 늘 북적거린다. 할머니의 연금과 일용직 업무 수입으로 살아가는 가족의 경제는 늘 빠듯하다. 아빠와 아들이 ‘다정하게’ 슈퍼마켓을 털어 생필품을 조달하는 것은 익숙한 가족 일과 중 하나다. 경제적으로 궁핍한 이 가족의 상황은 한 발짝 떨어져 있는 남들이 보기엔 썩 좋지 않다. 가족은 가난하기도 하거니와뉴스에 나올 만큼의 심각하고도 말 못할 비밀을 숨긴 채 아슬아슬하게 살고 있다. 어느 날 부자가 길에서 발견한 소녀 유리(사사키 미유)로 인해 이 가족의 비밀 속으로 들어갈 기회가 생긴다. 추운 겨울, 집을 나와 길에서 떨고 있는 유리를 가족들은 외면하지 못하고, 집으로 데려와 한 가족처럼 보살핀다.
<어느 가족>은 유리의 출현으로 위기를 맞은 이 이상한 가족의 이야기를 스릴러적인 형식으로 담아낸다. 장르적으로는 조금 낯설지만, 고레에다 감독의 영화를 꾸준히 보아온 관객들에게는 기시감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도 모른다> 이후 꾸준하게 가족의 속내를 탐구해온 고레에다 감독의 신작이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바닷마을 다이어리>, <태풍이 지나가고> 등에 이르기까지, 고레에다의 작품 속에서 보아온 가족 구성원들이 마치 한자리에 모인 것 같다. 실제 키키 키린, 릴리 프랭키 등이 그의 작품에 다수 출연한 배우라는 점도 감독이 의도한 바를 보충해준다.
카메라가 노부요 가족의 비밀로 점점 가까이 다가갈수록 영화는 물질적 풍요와 혈연이 맺어준 관계망 속에서, 진짜 가족들이 놓치고 있는 것을 깨닫게 한다. 간직하고 싶은 이 영화의 많은 장면들 중 하나는 처마에 모여앉아 멀리 터지는 불꽃을 바라보는 가족들의 모습이다. 카메라는 화려한 불꽃을 잡는 대신 쏟아지는 불꽃에 행복해하는 가족을 내내 비춘다. 객관적으로 우리가 요구하는 물질이 없더라도 함께 모여 있는 시간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그러니 누군가 멀리서 바라보고 섣불리 평가하는 시선은 가족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어느 가족>은 고레에다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클로즈업 컷을 활용한 작품이다. 아이들을 돌보지 못하는 죄책감으로 몰래 흐르는 눈물을 닦던 <아무도 모른다>의 엄마와 달리, 이번엔 감정을 숨기지 않고 우는 장면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감독은 “평소에는 ‘오프’로 할 감정인데 오히려 토로하는 장면을 작품에 남겼다”고 밝혔다. 영화는 이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던 가족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3, 4 영화 <박화영>.
10대에게 가족이란이환 감독의 <박화영>
‘가출팸’은 ‘가출 패밀리’를 줄인 10대들의 용어로, 10대들이 형성한 일종의 가족을 말한다. 가출한 청소년들이 모여 살며 그들끼리 숙식을 해결한다. 원룸, 모텔, 고시원 등이 그들의 아지트가 된다. 또래끼리의 모임이지만, 가출팸 내에서 아이들은 각각 역할을 분담하고, 규칙을 따르며 살아간다. 특히 집을 소유한 아이들이 가출팸 내의 규칙을 정하는 ‘아빠’ 혹은 ‘엄마’의 역할을 맡는다. 가정과 사회의 보호망 아래 있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범죄의 유혹은 늘 가까이 있다. 가출팸 내의 폭력은 물론, 생계를 위해 도둑질을 일삼거나, 여학생들의 경우 조건만남에 동원되는 등 청소년 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박화영>은 지난해 가출팸을 통해 소외받은 10대들의 실상을 전한 <꿈의 제인>에 이어 가출팸의 실상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영화다. 18살 소녀 박화영(김가희)은 가출팸의 ‘엄마’로 통한다. 화영은 모델로 활동하는 ‘얼짱’ 미정(강민아)의 단짝친구다. 미정은 화영을 ‘엄마’라 부르고, 화영은 그런 미정의 보호자라도 된 듯 그녀를 위해 밥과 빨래는 물론, 미정을 괴롭히는 아이들을 대신 상대해주는 등 무엇이든 다 해준다. 미정의 남자친구 영재(이재균)가 미정을 두고 가출팸 내의 다른 아이에게 한눈을 팔 때, 미정보다 분노한 이도 화영이다. 미정을 향한 엄마 화영의 애정은 미정이 조건만남으로 중년남자와 모텔에 들어가면서, 결국 걷잡을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는다.
화영의 미정을 위한 ‘헌신’은 일반적인 친구들 사이의 것 이상이다.그래서 미정에게 무엇이든 다 베풀어주는 화영의 행동이 선뜻 이해되지 않을 수 있다. 정작 집을 나온 화영은 가족에게 애정을 받지 못하는 10대로, 친구에게 ‘엄마’라 불리는 순간, 오히려 자신이 받지 못한 사랑을 주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 장면부터 육중한 몸에 “씨발” 같은 욕설을 숨 쉬듯 내뱉는 박화영의 존재감이 화면을 압도한다. 엄마라고 부르라며 아이들을 윽박지르고, 백주대낮 집 앞에서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며 경찰에게 “한 번 줄까?”라며 팬티를 내리려 하는 모습은 그녀의 폭력성을 한층 강화하는 에피소드들이다. 하지만 미정을 제외한 타인에게, 특히 어른들에게 날을 잔뜩 세우는 화영의 모습은 사뭇 슬프다. 마치 한없이 여린 살을 숨기기 위해 딱딱한 껍질을 지닌 갑각류를 보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환 감독은 문제적 아이라고 일컫는 10대들의 생활 속을 리얼하게 파고들어, 그들을 방치한 어른들, 그리고 가족의 역할을 되짚게 한다.
- 글 이화정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