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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와 <웃는 남자>사랑, 한여름 밤의 꿈같은
한 생을 넘어 영원히 이어지는 사랑을 꿈꾼 적 있는지. 한 몸인 듯 서로를 아끼고 의지하다 함께하기 위해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사랑을 생각한 적 있는지.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와 <웃는 남 자>는 서로 다른 시공간을 배경 삼아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의 의미를 묻는다. <번지점프를 하다>의 서정적 넘버들은 초연부터 수많은 마니아를 낳았고, <웃는 남자>의 화려한 무대는 지금 당장 브로드웨이에 내놓아도 손색없을 만큼 압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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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남자는 왼발이 먼저 앞으로, 여자는 오른발이 먼저 뒤로 가는 거예요.” 처음 왈츠를 출 때 태희(김지현)가 인우(강필석)에게 건넨 말은 17년 뒤 교사가 된 인우의 학교 운동회 2인 3각 경주로 되살아난다.

2 뮤지컬 <웃는 남자>. 유랑곡예단 두목 우르수스(양준모·가운데)와 곡예단 사람들의 공연은 무대장치와 의상, 음악과 춤 등 모든 면에서 가장 흥겹고 화려한 명장면 중 하나다.

3 뮤지컬 <웃는 남자>. 압도적 화려함을 자랑하는 이 뮤지컬에서 가장 극적이며 아름다운 마지막 장면.

영원한 사랑을 믿으십니까?<번지점프를 하다> 6. 12~8. 26,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첫눈에 반해 영원으로 가는 사랑이 있을까. 흘러간 옛 노래 같은 이 질문에 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연출 김민정)는 천연덕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있다’고 답한다. 이 뮤지컬은 사랑에 대한 순진하고도 견고한 확신을 꽤 설득력 있게 객석으로 전염시킨다. 서사는 섬세하고, 무대는 영리하며, 무엇보다 넘버들은 포근하고 따뜻하다.
갑자기 비가 온 날, 어리숙한 대학생 인우(강필석, 이지훈)의 우산 속으로 한 여학생이 뛰어든다. “저기 버스 정류장까지만 데려다주실래요?” 그렇게 잠시 만났다 헤어진 뒤 우여곡절 끝에 찾아낸 빗속의 그녀 태희(김지현, 임강희)는 왜 그동안 자신을 보고도 모른 척했느냐고 인우에게 말한다. “조심하고 싶었어요. 아는 척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릴까 봐.” 운명은 두 사람에게 가혹하다. 인우는 태희를 교통사고로 잃고, 17년 뒤 교사가 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실에서 자기 반 남학생 현빈(이휘종, 최우혁)이 태희의 환생인 것을 알아본다.
자칫 구전 설화처럼 들릴 뻔한 이야기를 그럴싸하게 풀어내기 위해, 뮤지컬은 개연성의 벽돌을 섬세하게 쌓아올리는 정공법을 택한다. 다시 태어났어도 연인은 물건을 들 때면 새끼손가락을 펴고, 숟가락과 젓가락의 첫 글자 받침이 다른 이유를 묻는다. 대학 시절 ‘오른발, 왼발’ 하며 함께 췄던 왈츠의 옛 기억은 현재의 학교 운동회에서 2인 3각 경주로 되살아난다. 배우 이병헌과 고(故)이은주가 주연한 동명의 영화에서 꼼꼼히 옮겨온 설정들이다.
무엇보다 이야기를 설득력 있게 만드는 일등공신은 서정적 뮤지컬 넘버들이다. “만약에/ 추운 바람이 우리를 괴롭혀도/ 서로를 더 꼭 안아줄 이유일 뿐야”로 이어지는 인우와 태희의 노래 <그게 내 전부라는 걸> 등의 감미로운 노래들이 흐르면, 객석 여기저기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린다. 무대미술은 벽돌 사이에 벌어진 빈틈을 메워 깔끔하게 포장하는 솜씨 좋은 미장 같다. 영화의 장면을 전환하듯 조명과 영사막으로 무대 위 공간을 빠르게 변환하고, 옛 대학 강의실과 지금의 학교 교실도 무대의 깊이를 활용해 영리하게 교차시킨다.
사랑은 통장을 스치고 지나가는 월급처럼 잠깐 머물다 사라지지 않는다. 마음에 뚫린 구멍 역시 버튼만 누르면 리셋되는 게임처럼 단박에 복구되지 않는 것이었다. 이 뮤지컬이 관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한 생을 건너 재회한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며 잊은 줄 알았던 각자의 애틋한 기억이 되살아나기 때문일 것이다.

네 미소가 내 안의 괴물을 비추네<웃는 남자> 7. 10~8. 26,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 오페라극장 9. 4~10. 28,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

무대 위 장막엔 길게 찢어진 붉은 입술 형상이 가로질러 걸려 있다. 이 형상 주변으로 파열하듯 장막이 걷히면, LED 영상과 조명의 도움을 얻은 무대장치들이 파도처럼 일렁인다. 풍랑이 이는 거대한 바다, 마지막 참회의 기도를 하는 악한들, 거칠게 휘몰아치는 라이브 오케스트라 연주…. 뮤지컬 <웃는 남자>(연출 로버트 요한슨)는 도입부터 압도적 무대로 관객을 빨아들인다.
18세기 영국, 기괴하게 웃는 모양으로 찢어진 입을 가진 남자 그윈플렌(박효신, 박강현, 수호)이 있다. 어린아이를 납치해 기형으로 만들어 곡예단에 파는 악당들에게 어릴 적 납치돼 생긴 흉터. 그의 곁엔 앞을 보지 못하지만 세상 누구보다 순수하고 아름다운 여인 데아(민경아, 이수빈)가 있다. 두 사람은 어릴 적 추위와 배고픔으로 죽어가던 둘을 거둬준 곡예단 두목 우르수스(정성화, 양준모)를 아버지처럼 의지하고, 함께 악극 <웃는 남자>를 공연하며 떠돌아다닌다. 어느 밤, 이 공연에 왕의 사생아 조시아나 공작부인(신영숙, 정선아)이 찾아와 그윈플렌을 유혹하면서 운명의 소용돌이가 모두를 집어삼키기 시작한다.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지어진 것이다.” 이 뮤지컬은선언처럼 뚜렷한 이 대사를 반복해 제시하며, 대립하는 두 세계를 교차·대비하는 방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귀족 세계는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키치 취향. 하지만 가식적이며 잔혹하다. 반면 평민과 곡예단원의 세계는 그로테스크하지만 따뜻하고, 인간적 온정이 살아 있다. 반원형으로 여러 겹 겹쳐지며 무대를 입체적으로 감싸는 배경장치는 깊이에 따라 액자처럼 작용하며 두 세계를 대비시킨다.
부와 명예를 위해 거래되는 귀족의 사랑 역시 데아와 그윈플렌의 지고지순한 사랑과 명징한 대비를 이룬다. 그윈플렌을 침대로 끌어들이려다 거절당한 조시아나는 노래한다. “넌 달라/ 네 미소가/ 내 안의 괴물을 비춰주네….” 누구나 마음 깊은 곳에 괴물 하나 품지 않은 사람 있으랴. 하지만 그윈플렌은 겉모습은 괴물이지만 잠시 흔들릴지언정 마음의 순결을 잃지 않는다. 반면 착취와 억압 위에 기생하는 귀족들은 고결한 척하지만 그 영혼은 이미 괴물이다.
화려하고 장엄한 무대와 의상은 압도적이다. 최고의 찬사를 받아 마땅하다. 다만 이야기의 구조가 리듬감 있게 기승전결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 부분은 취향에 따라 호오가 갈릴 것이다. 프랑스 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주인공 그윈플렌의 찢어진 입은 배트맨의 숙적 조커의 모티브가 됐다.

글 이태훈 조선일보 기자
사진 제공 세종문화회관·달컴퍼니, EM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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