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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책 <포르투갈의 높은 산>과 <아버지의 유산> 죽음을 바라보는 두 가지 시선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살아 있는 사람의 삶도 달라진다. 죽음이 삶의 질을 좌우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문화권이나 종교의 차이에 따라 죽음을 받아들이 는 태도는 조금씩 혹은 아주 많이 다를 수 있지만 궁극적 으로 내면에 깃든 죽음에 대한 공포는 모두 같을지 모른 다. 여기에 소개하는 두 권의 책은 하나는 픽션이고 또 하 나는 팩트를 바탕으로 한 진지한 에세이다. 지어낸 이야 기이건 사실이건 간에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일견 다른 듯하지만 기실 그 기저는 같은 빛깔이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모든 죽음은 ‘신의 살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작가정신

<파이 이야기>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의 신작 <포르투갈의 높은 산>은 세 남자가 극심한 상실을 견디며 대처하는 모습들이 3부작으로 이어진다.
포르투갈 동북부 높은 지대의 한 마을에서는 장례에 참여한 모든 조문객들이 슬픔의 표현으로 뒤로 걷는다. 뒤로 걷는 행위를 이 지역에 퍼뜨린 최초의 사내는 애초에 ‘애도’의 의미로 뒤로 걸은 게 아니었다. 사람들은 “그가 뒤로 걷는 것이, 세상을 등지고 신을 등지고 뒤로 걷는 것이, 애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발하면서 걷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이 사내는 일주일 사이에 사랑하는 이들을 연거푸 잃었다. 아들은 월요일, 아내는 목요일, 아버지는 일요일에 세상을 떠났다. 이 사내는 “신은 내 사랑하는 이들에 한 짓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것”이라는 고문서 속 신부의 말을 가슴에 새긴다.
2부에서는 남편의 시체를 트렁크에 넣어온 아내가 의사에게 해부를 부탁한다. 그들 부부는 일찍이 어렵사리 얻은 금쪽같은 아이를 사고로 잃고 비참한 삶을 살아왔다. 해부한 남편의 심장에서는 침팬지 한 마리와 새끼 곰이 나왔다. 아내는 옷을 벗고 침팬지와 새끼곰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누워 그대로 봉합해달라고 부탁한다. 그 의사 또한 아내의 죽음을 겪은 사내였다. 의사에게 아내는 환영으로 찾아와 말했다. “슬픈 사실은 의사들이 뭐라고 하던 자연사는 없다는 점이에요. 모든 죽음은 살해로, 사랑하는 이를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죠.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살면서 적어도 한 번의 살해를 맞닥뜨리지요. 바로 자신의 죽음 말이에요. 그게 우리의 운명이에요. 우리 모두는 자신이 피해자인 살해 미스터리에서 살아요.”

죽음은 삶의 연장이다

<아버지의 유산>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문학동네

모든 죽음은 그것이 자연사든 아니든 ‘신의 살해’라고 받아들이는 얀마텔과 달리 미국의 원로작가 필립 로스는 에세이 <아버지의 유산>에서 죽음을 진지한 삶의 연장으로 받아들인다.
미국으로 이민 온 가난한 유대인의 아들로 태어난 필립 로스는 자신의 아버지를 “그냥 여느 아버지가 아니라, 아버지라는 존재에게서 미워할 모든 것을 갖추고 사랑할 모든 것을 갖춘 바로 그런 아버지”라고 회고한다. 자신의 기준을 강박적으로 모든 이에게 적용하는, “자신의 극기심과 강철 같은 자기 규율 능력이 특별한 것이지 모두가 공유하는 자질은 아니라는 사실을 절대 이해하지 못하는” 아버지이지만 “빈곤 상태에서 성장해 약 40년 동안 노예처럼 일하면서 가족에게 소박하지만 안정된 가정생활을 제공했고 이목을 끄는 소비, 허세, 사치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는 사람” 또한 그의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도 죽음 앞에서는 결국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필립 로스는 평범한 이의 죽음을 다룬 <에브리맨>에서 “노년은 전투가 아니라 대학살”이라고 썼거니와 이 에세이에는 “늙는 건 소풍이 아니다”라고 써넣었다. 아버지와 얽힌 가족사,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 이야기, 유대인으로 겪는 차별 같은 다양한 에피소드를 삽입하다가 필립 로스는 특유의 냉정하고 강인한 문체로 아버지의 죽음을 직면한다. “아버지는 3주 후에 죽었다. 1989년 12월 24일 자정 직전에 시작되어 다음날 정오 직후 끝난 12시간의 시련 동안 아버지는 평생에 걸친 고집스러운 끈기를 멋지게 분출하며, 마지막으로 과시하며 숨 한 번 한 번을 위해 싸웠다. 볼 만한 광경이었다.”
“볼 만한 광경이었다”는 서술은 방관자의 자세라기보다 죽음과 벌인 아버지의 싸움을 높이 평가하는 태도다. 그는 아버지와 함께 작성해두었던 생명 연장 포기 각서인 ‘사망 선택 유언’을 실천한다. 이미 “그때쯤 아버지는 들것 위에서 조 루이스와 100라운드는 싸운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는 진술한다. “죽는 것은 일이었고 아버지는 일꾼이었으며, 죽는 것은 무시무시했고 아버지는 죽고 있었다”고.
모든 죽음은 자연사조차 ‘신의 살해’라고 단언한 여인, 십자고상에 매달린 존재가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유인원이라고 울부짖는 사내, 얀 마텔이 만들어낸 소설 속 이런 인물들도 결국 말미에는 “아버지, 당신이 필요합니다!”라고 절규한다. 죽음과 대면한 인간의 절대 고독을 극복할 대안이 있을까. 필립 로스의 저 차분하고 냉철한 태도도 결국 고독을 극복하기 위한 또 하나의 마음자리일 것이다.

글 조용호_ 소설가. 소설집 <베니스로 가는 마지막 열차>, 장편소설 <기타여 네가 말해다오>, 산문집 <꽃에게 길을 묻다> 등을 펴냈다.
사진 제공 작가정신,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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