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는 상처 없는 코미디죠”
공연에 서는 배우는 네 명이지만 옹알스 멤버는 총 일곱 명이다. 초기 멤버인 조수원, 조준우, 채경선 외에 최기섭, 하박, 이경섭, 최진영이 합류해 더블 캐스팅 체재로 운영된다. 최기섭은 ‘옥동자’ 정종철에게 비트박스를 배웠다고 한다. 2010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하려던 정종철이 아내의 임신으로 불참하자, 최기섭이 합류하며 고정 멤버가 됐다. 뮤지컬계에서 비트박서로 일하던 최진영은 2013년부터 최기섭과 더블 캐스팅으로 활동하고 있다. 비보잉과 댄스에 강한 하박은 최기섭의 소개로 2012년에 합류해 조수원과 더블 캐스팅으로 활동 중이다. 마술사였던 이경섭은 2013년 합류해, 저글링을 장기로 구사하는 조준우와 같은 배역을 맡았다.
옹알스 공연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했다고 들었습니다.
조준우 2008년 1월 ‘옹알스’라는 이름으로 첫 공연을 했으니까 공연으로는 10주년인데, 팀 결성으로 따지면 11주년이죠. 2007년
KBS <개그콘서트> ‘옹알스’ 코너로 방송에 데뷔해서 7개월간 활동했으니까요.
채경선 사실 옹알스의 원형은 2006년 조수원 선배와 제가 장난으로 시작했던 슬랩스틱 개그였어요. 나중에 준우 형이 합류하면서
멤버가 세 명이 됐고, 그 개그를 1년간 대학로 무대에서 선보이다
2007년 <개그콘서트>로 첫 방송을 탔죠.
보통 코너가 끝나면 새 코너로 방송에 나오지 않나요? 방송사로부터 독립해서 활동한 이유가 있나요?
조준우 ‘옹알스’ 후속 코너가 있긴 했어요. MBC <개그야>에 나왔던 ‘외바퀴 패밀리’라고, 초기 멤버 세 명에 신인 개그맨 두 명, 개그우먼 한 명이 외발자전거를 타고 코미디를 하는 코너였어요. 6개월간 준비했지만 6주 만에 내려갔죠. 우리는 우리가 가진 무기를 바탕으로 깊이 있는 프로그램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매주 새 이야기로 업데이트하는 우리나라의 방송 시스템과 맞지 않았죠. 하지만 TV 시청자가 대상이 아니라 매번 관객이 바뀌는 공연 무대라면, 같은 공연을 하더라도 연륜이 쌓이면서 깊이와 재미를 같이 추구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국내에서 해외로 무대를 넓힌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조준우 2008년 여름 <개그콘서트> 멤버들과 장애인 시설에 봉사를 간 적이 있어요. 모두 몸이 불편한 중증 환아여서 의자에 앉지 못하고 바닥에 누워 관람하더라고요. 아이들이 내용을 이해할 수 없는 상태여서, 다른 개그맨들은 아무도 못 웃기고 내려왔어요. 같은 나라 사람인데도 언어 장벽이 있더라고요. 근데 저희 공연에는 반응이 뜨거운 걸 보고 언어를 넘어선 웃음 코드가 있다는 걸 알았어요. ‘말이 안 통하는 외국인 앞에서도 공연이 통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방송국을 떠나 개별 팀으로 공연을 준비하려면 어려움이 많았을 텐데요.
채경선 2010년 말까지 연습실도 없었어요. 대학로 소극장 갈갈이홀에 나갈 때였는데 낮 공연이 없을 때는 거기서 연습하고, 마로니에공원에서 회의하고 그랬죠. 그러다 구한 게 지금 사당동 연습실이에요. 지하철역과 가깝고, 천장이 높아 저글링하기도 좋고, 월세도 35만 원밖에 안 하더라고요. 수도시설도 없는 허름한 지하창고였지만 페인트칠도 직접 하고 거울도 붙이면서 지금의 모습이 된
거예요. 근데 전기시설이 낡아서 에어컨을 못 써요.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밖으로 피신해요.
조준우 2010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할 때도 힘들었어요. 항공료 말고도 체류비 등이 만만찮았죠. 40일 정도 체류해야 하는데 제일 싼 민박에 묵어도 1인당 7만 원이었거든요. 2011년 같은
페스티벌에 다시 참여했을 때는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어서 갔어요.
다행히 거기서 그해 9월 열리는 영국 템즈 페스티벌에 초청받으면서 해외 공연의 물꼬가 트였죠.
1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주최로 2013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2K13 Feel Korea> 공연. 토이 박스에서 꺼낸 마이크를 사탕으로 착각한 아이의 모습으로부터 비트박스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2 2017년 12월, 마침내 런던 웨스트엔드 무대에 입성한 옹알스 멤버들.
3 관객 중 한 명을 즉석에서 불러내 함께한 핸드벨 연주. 당황하면서도 열심히 참여한 관객의 표정이 또 다른 웃음 포인트다. 2017년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의 소호 시어터 공연.
공연 의상도 초기와 최근이 다른데요. 조금씩 개선을 거듭한 건가요?
채경선 처음에는 동대문에서 아동용 캐릭터 팬티랑 스타킹에 알록달록한 티셔츠를 사다 입었어요. 그러다 내복으로 의상을 바꿨는데, 성인용 내복은 귀여운 게 없잖아요. 아동용 내복 중에서 제일 큰 사이즈를 두 벌씩 사고, 그걸 어머니가 재봉틀로 이어 붙여주셨죠. 나중엔 의상디자이너에게 의뢰해 땀에 강한 소재로 지금의 의상을 만들었어요. 자세히 보면 턱받이에 한글도 적혀 있어요. 해외 공연이 많으니까 한글을 알리고 싶어서요.
‘퍼포디언’(Perfordian)이라는 단어도 직접 만들었다면서요?
조준우 ‘퍼포먼스’와 ‘코미디언’을 조합해서 만든 단어예요. 외국에서는 ‘옹알스’라면 뜻을 이해하지 못하니까, 해외에서도 우리를 알릴 새로운 단어가 있어야겠다 싶었던 거죠.
태극 문양 바탕에 ‘Perfordian’이라고 적은 심벌마크도 한국을 알리기 위한 시도였다고요.
채경선 조수원 선배의 지인 중에 오토바이 판매점을 운영하면서 그라피티와 로고를 디자인하는 분이 있었어요. 담배 한 보루 사들고 가서 심벌마크를 디자인해달라고 부탁했죠.
5분 미만의 방송용 무대를 1시간 이상의 공연 무대로 확장하려면 쉽지 않았을 텐데요.
채경선 ‘옹알스’ 코너를 <개그콘서트>에서 7개월 했으니까 소재를 다 합치면 2시간 분량이 넘어요. 매일 대학로에서 공연하면서 다듬고 보완해서 해외로 가져갔죠. 사실 방송에서는 옹알거려도 대사를 좀 했는데, 넌버벌 코미디로 세계에 나가려면 말을 안 해야 하니까 그게 어려웠죠. 말로 하면 정말 웃긴 내용인데, 대사를 사용하지 못할 때 정말 아쉬웠어요.
무대 중앙의 토이 박스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채경선 옹알스의 공연은 ‘아기의 시선으로 물건을 재해석’하는 거예요. 토이 박스에는 휴대폰, 물병, 마이크, 풍선처럼 실생활에서 보는 평범한 물건들이 들어 있죠. 그걸 아이들이 처음 보는 물건인 양 가지고 놀면서 이야기가 전개돼요.
조준우 부시맨 아시죠? 콜라병을 처음 본 부시맨의 반응이 재미있잖아요. 저희 공연도 그래요. 공을 모두 가지려는 아이들이 서로 공을 뺏다 저글링이 되죠. 마찬가지로 비트박스도 도구를 갖고 놀다 보니까 다양한 소리가 나는 거고요.
(왼쪽부터) 하박, 최기섭, 채경선, 최진영, 조준우, 이경섭, 조수원으로 이루어진 옹알스.
코미디 공연 중에 마술이 등장하는 것도 흥미로웠어요.
이경섭 입에서 줄이 나온다든지, 풍선을 먹는다든지 하는 마술이 등장하는데, 대표적인 게 콜라 마술이에요. 배우들이 콜라를 나눠 마시는데, 셋은 먹고 저만 못 먹는 바람에 화가 나서 콜라 캔을 찌그러트리는 장면이 나와요. 마술로 찌그러진 캔을 펴고, 캔 뚜껑이 막히고, 제가 그걸 따서 콜라를 부어 마시는데 다들 신기해해요.
해외 공연에서 본격적으로 인정받은 게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이었죠? 2010년, 2011년 연속으로 최고 평점을 받았어요. 지금까지 세계 20개 국가 43개 도시에서 공연했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요?
조준우 한국 코미디언 최초로 2017년 12월 영국 런던 웨스트엔드 무대에 섰을 때죠. 뮤지컬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니까요. 코미디 전문 극장 소호 시어터의 초청을 받아서 2017년 12월부터 5주간 패밀리 코미디 쇼로 진행했어요. 거기서 아시아권 배우들이 장기간 코미디 공연을 한 건 처음이라고 하더라고요. 돈을 벌 만한 조건은 아니었어요. 소호 시어터와 입장권 수익을 나눠 가졌고, 에이전시도 있어야 해서요. 하지만 저희의 꿈이었던 웨스트엔드 무대 진출만으로도 의미가 있죠.
문턱 높기로 유명한 예술의전당에서도 옹알스 10주년 기념 공연을 진행하고 있잖아요.
조준우 1월 16일부터 2월 4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의 1차 공연이 끝나면, 2월 12일부터 23일까지 앙코르 공연을 열 예정이에요. 대관 공연이 아니라 예술의전당 30주년 기념 초청 기획공연이라 의미가 있어요. 예전에도 대관을 신청한 적이 있는데 코미디 장르라 거절당했어요. 그러다 2015년도 수시 모집에서 갑자기 허가가 나서 2주간 공연했죠. 메르스 사태가 있던 때라 정확히 기억해요. 2015년 6월 1일이에요. 그 덕분인지 2016년 3월 국립극장 달오름 무대에도 입성했죠.
코미디 장르에 대한 편견 때문에 어려움이 많았겠어요.
채경선 2010년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여할 때 돈이 없어서 지원을 받기 위해 예술경영지원센터라는 곳을 찾아갔죠. 근데 선정이 안 됐어요. 코미디는 지원 사례가 없다고요. 그러다 저희가 자비를 들여 해외 공연을 다녀오면서 차츰 인정받게 됐죠. 이후 지원 장르에 코미디가 신설됐고요. 나중에 다시 신청했을 때는 해외 페스티벌 참여에 대한 항공료를 지원받았어요. 코미디가 국내에서 공연예술로 자리를 잡아가는 것 같아 기쁩니다.
조준우 작년에 서울문화재단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에서 진행했던 ‘서커스 넥스트’ 워크숍도 개인적으로 큰 도움이 됐어요. 재단에서 초빙한 ‘태양의 서커스’ 저글러에게 한 달간 120시간 수업을 듣는 교육 프로그램이었는데, 오디션으로 교육 대상자를 뽑았거든요. 올해도 개설되면 좋겠어요. 이번엔 이경섭 씨도 수업을 들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코미디가 국내외에서 공연예술로 재조명되면서 힘이 나시겠어요. 공연 10주년을 맞은 옹알스의 향후 계획이 궁금합니다.
채경선 올해는 ‘고진감래’(苦盡甘來)로 표어를 정했어요. 이제는 그간의 노력을 보상받을 때도 되지 않았나 싶어서요. 코미디가 과연 어디까지 인정받을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선배들이 못했던 것도 이뤄보고 싶어요. 좋은 선례가 되어서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었으면 해요.
조준우 올해 라스베이거스 무대에 도전할 계획이에요. 저희 예술의전당 공연 홍보를 전담하는 윤소그룹이 일본 코미디 그룹과 자매결연되어 있어서, 일본 공연도 타진해보려 합니다. 멤버 중 한 명이 현재 아프다 보니 각자의 컨디션 보완에 신경 쓰고 있어요.
멤버들마다 자기 관리 비법도 다양하다. 비트박스 담당인 최기섭은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한여름에도 마스크를 쓰고 다닌다. 그와 같은 파트인 최진영은 비타민제와 오메가 3를 즐겨 먹는다고. 땀이 많은 이경섭은 실수를 막기 위해 땀 억제제를 먹는단다. 댄싱머신 하박은 “최상의 컨디션을 위해 집 밖에 잘 안 나간다”는 독특한 건강법을 내놓았다. 쉬는 날 술을 마셔도 집에서 마시고, 친구도 집으로 부른다고. 건강 문제로 인터뷰에 불참한 조수원은 혈액암으로 1년 넘게 투병 중이다. 항암치료로 호전되어 가던 중 웨스트엔드 무대에 서기 직전 암이 재발했지만, 꿈의 무대를 포기할 수 없었기에 공연에 함께했다. 귀국 후에는 아픈 몸을 이끌고 예술의전당 10주년 공연 첫 무대에 섰다. 지금도 항암치료 중이지만 무대에 서려는 의지가 강하기에 반드시 털고 일어나리라 동료들은 믿는다.
옹알스는 “우리 웃음의 대상은 전 지구인”이라고 말한다. 나이, 국가, 언어, 성별에 관계없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를 꿈꾸기 때문이다. 신체적 결함이나 인종, 성별을 웃음 코드로 삼아 비꼬는 일부 코미디에 비하면 착하기 이를 데 없는 목표다. 조준우의 다음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아무렇지 않게 한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좀 덜 웃기더라도 다 같이 웃을 수 있는 코미디, ‘상처 없는 코미디’를 지향하게 됐어요.”
옹알스 멤버들을 만나기 전에는, 공연 10주년을 맞이한 그들이 10년 후에 이어갈 공연이 궁금했다. 그 질문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소재는 달라지더라도, 누구도 모멸감을 느끼지 않고, 어떤 언어를 쓰는 인종도 이해하고, 남녀노소 상관없이 함께 웃을 수 있는 코미디인 건 변함없을 테니까.
- 글 고경원_ 자유기고가
- 사진 최성열
- 사진 제공 옹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