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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월호

책 <가인 김병로>와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사람을 말하는 책 두 권을 골랐다. 한 권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 책이고, 다른 한 권은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다고 들려주는 책이다. 한 책에서는 인생의 결기를, 다른 한 책에서는 세상을 향한 온기를 느꼈다. 세상은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두 책에서 얻었다면, 안일하거나 과장이 심한 독후감일 수 있겠다. 대신 한 지은이의 당부는 꼭 전하고 싶다. “이렇게 살다 간 사람이 있었다는 것만 알아도 우리의 삶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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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공무사(至公無私)의 생애

<가인 김병로> 한인섭 지음, 박영사

한인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쓴 <가인 김병로>를 먼저 소개한다. 한 교수가 꼬박 10년을 매달린 대한민국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1887∼1964)의 전기다. 920쪽에 달하는 대작이지만 술술 읽힌다. 법학자의 문장이 이리 고울지 미처 몰랐다.
가인은 대한민국 법률의 초석을 닦은 법조계의 어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이른바 ‘사상변호사’로 이름이 높았다. 가인은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 허헌, 이인 등과 함께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다. 사회주의 세력이 독립운동을 주도하던 시절이었다. 1932년까지 그들이 맡은 사건 600여 건 중에서 7∼8할이 사상사건이었다. 그렇다고 가인이 좌익은 아니었다. 안창호, 여운형, 박헌영, 조용하, 이재유 등 좌·우익을 가리지 않고 독립운동가를 변호했다.
가인(街人)은 ‘나라를 되찾기 전에는 방황하는 거리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광복 이후에도 아호로 썼다. 가인은 이승만 정부가 임명한 대법원장이었다. 그럼에도 가인은 정부를 비판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요즘 헌법은 잘 계시는가?” 이승만 대통령이 법무부 장관에게 했다는 말이다. 대통령의 말을 듣지 않는 대법원장을 향한 불편한 심사를 이승만은 이렇게 표현했다. 1957년 대법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도 가인은 이승만 정부를 비판하는 데 앞장섰다. 1959년 경향신문이 폐간됐을 때 가인이 쓴 문장에는 이런 것도 있었다. “앞으로 민주주의라는 말도 없을 것같이 생각된다.”(740쪽)
가인의 삶은 선공후사(先公後私)가 아니라 지공무사(至公無私)의 정신으로 요약된다. 사생활이 아예 없었다는 뜻이다. 공사의 구분이 유난히 엄격했다. 이를테면 선생의 가족 중에서 대법원장 관용차를 타본 사람은 없었다. 손자(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군면제를 받을 수 있었지만 현역으로 복무했다.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판사는 가난해야 해. 판결문은 추운 방에서 손을 혹혹 불어가며 써야 진짜 판결이 나오는 거야.”(547쪽)
한 교수는 “법률가로서 가인의 인생을 좇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법률가가 아닌 독자에게는? “가인처럼 살다 간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만 알아도 우리의 삶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이번에는 가인으로부터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주인공으로서의 답이었다.

아주 작은 착한 일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 고바야시 세카이 지음, 이자영 옮김, 콤마

<가인 김병로>가 한 위인의 생애로 돌아본 한국의 근현대사라면 <당신의 보통에 맞추어 드립니다>는 식당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록한 일기에 가깝다. 지은이는 고바야시 세카이. 도쿄 헌책방 거리에 있는 건물의 지하 1층에서 열두 평짜리 ‘미래식당’을 운영하는 주인장이다. 미래식당에는 ‘한끼알바’라는 별난 시스템이 있다. 식당에서 50분을 일하면 한 끼를 먹을 수 있는 식권을 준다. ‘종업원의 밥’을 뜻하는 ‘마카나이’를 한끼알바라고 번역했다. 세카이는 “인건비를 절약하려고 한끼알바를 시작한 것이 아니다. 한끼알바는 누군가와 관계를 잇는 일이다”라고 강조했다.
세카이의 말마따나 한끼알바는 또 다른 관계를 만들어낸다. 한끼알바로 얻은 식권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어서다. 식당 앞에 붙여놓은 식권을 떼 오면 누구나 공짜로 한 끼 밥을 먹을 수 있다. 무료 식권. 일본어로는 ‘공짜 밥’을 뜻하는 ‘타다메시’다.
무료 식권을 만든 이유보다 더 궁금한 건 무료 식권이 가능한 현실이다. 날마다 똑같은 사람이 무료 식권을 내밀면 어쩔 것인가. 실제로 한 젊은 여성이 15번 이상 무료 식권을 쓰기도 했단다. 그러나 세카이는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책에는 이런 구절도 있다. “내가 신경 쓰고 있는 것은 ‘그 자리의 성선설’이다. ‘최소한 미래 식당에 있는 동안만은’ 착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191쪽)
마카나이와 타다메시의 관계는 특별하다. 남에게 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번 밥을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식당이 타다메시 서비스를 시작한 건 2016년 1월이다. 그날 이후 식당에 무료 식권이 한 장도 붙어 있지 않았던 날은 없었다. 세카이는 무료 식권을 “아주 작은 착한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밥을 공짜로 주는 식당이 흑자를 내는 이유’다. 실제로 미래식당은 흑자를 낸다. 큰돈을 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허덕이지는 않는다. 나는 이 대목을 높이 산다. 세상에는 착한 일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남에게 손을 벌리지 않고 착한 일을 하는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글 손민호_ 중앙일보 문화부 기자. 문학, 공연, 출판, 여행 등 문화 영역의 취재가 20년 가까운 신문기자 경력의 8할을 채운다. <문학터치2.0>, <규수올레>, <제주, 오름, 기행> 등의 책을 썼다.
사진 제공 박영사, 콤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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