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 ‘공씨책방’ 외관과 내부.
2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되었음을 알리는 동판.
책 덕후들의 아지트
“한 번만 발을 들여놓았다가는 도무지 헤어나지 못하는 광화문의 개미귀신굴을 아십니까? 책을 사랑하시는 분은 광화문을 지나칠 때 공씨책방을 조심하십시오.” 1990년 8월 발행된 <옛책사랑> 여름호 뒷면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이 문구를 쓴 이는 공씨책방의 창업주 공진석 씨다.
‘책 덕후’. 그를 이보다 잘 표현하는 말은 찾기 어려울 것이다. 집안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채 못 마치고 1960년에 서울로 올라와 온갖 잡일을 하다가 마침내 찾은 업이 책장수였다. 1972년 경희대 앞에 헌책방을 냈고, 1977년 청계천으로 옮겼다가 1985년부터는 광화문 시대를 열었다. 바쁜 와중에도 문인의 꿈을 저버리지 않고 꾸준히 글을 썼다. 단골손님들의 원고를 모아 계절마다 <옛책사랑>을 펴내 손님들에게 나눠줬다. 호마다 직접 쓴 글도 빠짐없이 넣었다. 그 시절, 공씨의 책방은 책 덕후들의 아지트였다. 정호승, 이문재 시인 등도 자주 이곳을 찾았다.
공 씨는 1990년 7월 26일 헌책을 구해오던 중 시내버스 안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광화문 재개발로 서점이 헐릴 위기에 처한 때였다. 고인의 지극한 책사랑을 외면할 수 없었던 처제 최성장 씨와 조카 장화민 씨가 서점을 이어받기로 했다. 가게를 어디로 옮길지 막막해하던 두 사람에게 단골손님이던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가 ‘대학이 많은 신촌으로 가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그렇게 1991년 공씨책방의 신촌 시대가 열렸다. 1995년 신촌로의 현재 위치로 옮긴 이래 공씨책방은 23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아르바이트로 형부의 책방에서 일을 시작했던 최성장 씨의 나이는 이제 일흔이 넘었다. 손때 묻은 나무 사다리에 올라 책을 정리하고, 어떤 책이 들고 나는지 몽당연필로 기록하고, 손님이 찾는 책을 찾아주는 것은 최 씨의 여전한 일상이다.
이 일상은 어쩌면 조만간 무너질지도 모른다. 지난해, 책방이 세 들어 있는 건물의 주인이 바뀌었다. 새 주인은 재산 증식을 위해 빚을 내서 건물을 샀다며, 월세를 2배 이상 낼 자신이 없으면 나가라고 했다. 장화민 사장은 수많은 책과 함께 당장 옮길 곳을 찾지 못했다. 건물주는 ‘계약이 종료됐으니 가게를 비워 달라’며 명도소송을 냈다. 소송에서 이기면 건물주는 강제집행으로 공씨책방을 쫓아낼 수 있다.
단숨에 매출이 뛰어오를 일이 없는 헌책방에 갑자기 2배 이상 오른 월세를 감당할 능력이 있을 리 없다. 실상 많은 자영업자가 이런 문제로 삶의 터전을 잃는다. 임차료가 오르면 싼 곳을 찾아 변두리로 밀려나다가 마침내 가게를 포기한다. 자본의 증식욕은 우리 사회에 필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는 묻지 않는다.
오래된 책방의 운명에 주목하는 이유
이렇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고, 반기를 들고 나선 사람들이 있다. 지난해 10월, 공씨책방이 문을 닫을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젊은 예술가들이 모여 책방을 지키기 위한 반상회를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 오후 4시에 모여 시도 낭송하고, 작은 공연도 하면서 책방을 어떻게 살릴지 논의한다. ‘시민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으면 책방은 떠나지 않는다’고 이들은 믿는다. 공 씨가 세상을 떠난 후 끊겼던 <옛책사랑>도 다시 펴낸다.
서울시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골목책방이 모두 사라지면 우리의 삶은 그만큼 피폐해지고 말 것입니다. 대형 슈퍼와 화려한 소비문화가 도시를 가득 채우고 서점과 인문의 풍토는 쇠퇴하고 말 것입니다.” 공씨책방이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접한 박원순 시장은 SNS에 이렇게 썼다. 또 “서울시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검토해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공씨책방은 지난 2014년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서울시는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았지만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가치가 있는 것들을 서울미래유산으로 선정한다. 근·현대 서울시민의 모습이 담긴 문화가 빠르게 없어진다는 위기의식에서 만든 정책이지만, 지정된 문화유산에 대한 지원책이나 보존방안은 지금까지 따로 없었다.
공씨책방과 건물주 간의 소송이 어떻게 결론 날지, 서울시가 공씨책방 보존을 위해 어떤 방안을 내놓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분명한 것은 시민들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면서 이 문제가 한 임대인과 한 임차인 간의 분쟁에서 공공재 보존의 문제로 확대됐다는 점이다. 자본의 논리와 문화의 가치가 충돌하는 사례는 전에도 있어왔고 앞으로도 같은 양상으로 계속해서 나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45년 된 이 책방의 운명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돈은 되지 않지만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들, 이제는 점점 만나기 힘든 손때 묻은 것들을 지켜낼 희망을 공씨책방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가치를 알아보는 시민들과 정책 당국이 힘을 모아 전에 없던 어떤 방법을 찾아낸다면 이는 두고두고 선례로 남아 이 도시의 문화적 자양분이 될 것이다.
- 글 최미랑_ 경향신문 기자
- 사진 제공 한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