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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캐리돌 제작하는 시사IN 양한모 기자 공감이라는 외줄 타기
캐리돌(CariDoll)은 캐리커처(caricature)와 돌(doll)의 합성어로, 얼굴의 특징을 과장해 그린 캐리커처를 인형으로 만드는 것이다. 시대를 향한 날선 비판을 담은 풍자에 주로 쓰이는 캐리돌은 시사주간지 시사IN의 양한모 기자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새로운 형태의 <캐리돌 뉴스>로 시청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으며, 현재 시사IN에 <양한모의 캐리돌 만평>을 연재 중이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시사IN 505호, 2017년 5월 20일자 <양한모의 캐리돌 만평>에 실린 문재인 대통령 캐리돌.

캐리돌을 입체로 만드는 이유

캐리돌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한 편을 끝내려면 꼬박 8시간 이상 작업해야 한다. 작업은 소재 선정의 고통과 함께 시작된다. 매일 뉴스를 검색하지만 마땅한 인물은 잘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나 다시 검색해도 적당한 인물이 없다. 캐릭터 표현이 쉽고, 인지도도 높은 정치인이면 좋은데….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무궁무진한 만평 소재가 있어 행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의 국정농단이 그야말로 ‘끝장 드라마’였기에 대충 만들어도 풍자가 됐다.
만평은 캐릭터 표현에 성패가 달렸다. 평면에 인물의 정확한 표정을 묘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선으로 그려진 얼굴의 각도와 자세만으로는 감추어진 거짓과 위선을 표현하기 어렵다. 캐리돌은 모델을 촬영하듯 방향과 자세를 바꿔가며 적절한 표정을 연출한다. 굳이 입체로 만드는 이유이다.
그동안 300여 개나 만들었건만 아직도 어렵다. 늘 시간이 부족하다. 작업 시간을 단축하려고 여러 재료를 써봤는데, 한지만큼 좋은 재료는 없는 것 같다. 정치판을 표현하는 데 있어 한지의 거친 질감과 색감은 안성맞춤이다. 철사로 뼈대를 만들고 권력자들의 비리와 갑질 소식이 넘쳐나는 신문지를 뭉쳐 종이테이프로 살을 붙이고, 색한지를 풀로 붙여 완성한다.
“걍 그려도 될 걸 무알라꼬 인형으로 만들고 X랄인교?”라는 모 의원 지지자의 항의 전화가 기억난다. 어떤 정치인은 나름 큰돈을 제시하며 캐리돌 구매를 원했지만 거절했다. 눈, 코, 입을 고쳐달라고 했지만 나는 성형외과 의사가 아니라며 거절했다. 자신의 캐리돌을 보며 자랑스러워할 모습을 생각하니 팔고 싶지 않았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2 캐리돌과 양한모 기자. 상설 전시관을 꿈꾸며 300여 작품이 상자 속에서 잠자고 있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3 SBS플러스 <캐리돌 뉴스>에 출연했던 전직 대통령 캐리돌.

중심을 잘 잡아야 살아남는다

만평 작업은 독자의 공감이라는 외줄 위에서 벌이는 줄타기다. 한쪽으로 떨어지면 표현의 자유, 또 한쪽으로 떨어지면 명예훼손이다. 중심을 잘 잡아야 살아남는다. “정치는 교도소 담장”이라던 어느 정치인의 말이 생각난다.
만평은 풍자 속에 감추어진 진한 욕이다. 비리 권력자들을 향한 욕을 풍자 속에 감춘다. 감추어진 욕을 느끼며 독자들은 통쾌해한다.
요즘과 같은 정권 초기에는 소재가 더욱 부족하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여야가 바뀐 정치 지형 탓이다. 풍자의 칼끝을 반대 방향으로 돌려 세우기가 아직 어색하기 때문이다.
<캐리돌 만평> 시즌 1의 첫 작품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의 모습으로 표현했다. “나는 헌법을 준수하고… 대한민국의 아내로서 책임을 성실히 수행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합니다.” 취임선서를 혼인선서로 바꿨다. 결혼 4년 만에 서약을 지키지 못하고 쫓겨나 구속됐다.
새 정권의 출범과 함께 <캐리돌 만평>의 시즌 2가 시작됐다. 문재인 대통령을 환경미화원으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공약이 지켜지길 바란다.
최순실은 국정을 농단했을 뿐만 아니라 지난해 말에 전시 예정이었던 <한국가수 100인 전>도 농단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외치는 촛불들이 광화문을 가득 메우기 시작할 무렵, 꼴 보기 싫은 이들을 만들며 지친 내 안구를 정화하려 기획했던 <한국가수 100인 전>이었지만 80번째 가수를 끝으로 중단해야 했다. 촛불을 든 마음으로 <박ㄹ혜뎐>으로 작품 내용을 바꿨다.
박근혜 전 대통령 관련 <캐리돌 만평> 30여 점과 촛불의 마음을 담아 새 작품 10여 점을 허겁지겁 만들었다. 박근혜 마리오네트를 만들어 공연도 했다. 전시를 통한 나만의 촛불시위였다. 마침 전시장도 청와대 근처였고, 주말 시위에 참여한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인형으로 만드니 정말 실감나요. 국정농단의 시작과 끝이 모두 있네요”라며 즐거워했다. 어느 시사IN 독자는 “책에서 볼 때는 포토샵 합성 이미지인 줄 알았는데 직접 만든 인형이었군요”라며 놀라워했다.
<박ㄹ혜뎐>이 끝나갈 무렵 나의 캐리돌이 방송 출연 제의를 받았다. SBS플러스에서 <캐리돌 뉴스>라는 타이틀로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장르의 시사풍자 인형극에 출연할 인형을 만들어달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뉴스의 진행자와 등장인물을 모두 캐리돌로 만들었고 배칠수, 전영미 등이 성대모사에 참여했다. 눈동자와 눈꺼풀, 턱을 움직이는 장치도 고안했다. 머릿속에 손을 넣어 조종해야 하기 때문에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두 달간 먹고 잘 시간도 아껴 방송 준비에 전념했다.
첫 방송이 나간 후 정말 반응이 뜨거웠다. 시청자들의 환호에 피곤함도 잊었다. 국내 유일의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제작진의 긍지와 자부심이 대단했다. 캐리돌을 들고 뉴스의 현장을 찾아 녹화할 정도로 열정도 컸다. 그러나 그 열정도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에서 악의적으로 만든 고 노무현 대통령의 타임 지 이미지를 걸러내지 못한 편집 실수로 결국 10회 방송을 끝으로 잠정 중단됐다. 제작진의 한 사람으로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유가족에게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 그리고 시청자 여러분에게도 죄송하다. 허무하고 아쉽다. 아직 더 보여줄 것이 많은데…. 조심스럽게 <캐리돌 뉴스>의 방송 재개를 바란다.

글 양한모_ 시사IN 기자
사진 제공 양한모, SBS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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