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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7월호

박찬경 개인전 <안녕>과 노순택 개인전 <비상국가 Ⅱ - 제4의 벽> 작가적 예민함, 대한민국의 현실을 관통하다
미술가가 작품으로 개인의 감정을 표현한다는 얘기는 맞는 말이 아니다. 역사를 되짚어보아도 화가는 신(神)과 왕 혹은 권력자와 부자를 위해 봉사했고, 자신의 이름을 앞세워 작업한 것은 꽤 나중의 일이다. 자신을 드러낼 여건이 마련됐건만 오히려 그들의 관심은 밖으로 쏠렸다. 사회와의 교감이 ‘향유’의 근원임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 작가들의 예민한 감각은 정치와 사회상을 앞질러 내다보곤 한다. 수년 전부터 진행해온 작업이 최근 대한민국의 정치상황을 예언하듯 적나라하게 관통한 박찬경과 노순택의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박찬경 <시민의 숲>, 26분 6초, 3채널 영상작품 중 한 장면, 2016.

구시대를 보내며 희망을 말하다

박찬경 개인전 <안녕> 5. 25~7. 2, 국제갤러리

갓을 쓴 여고생이 긴 나팔을 불며 산을 오른다. 이 얼마나 기괴한 풍경인가. 쫓기듯 황급히 움직이는 묘령의 여인, 사형수의 얼굴을 가리기 위한 고깔모양 바구니를 쓴 사람이 숲으로 들어간다. 낫을 들고 있던 사내는 머리가 잘린 채 허공을 향해 죽창을 던진다. 눈도 머리도 없는 그가 숲에서 주워든 삐라(유인물)에는 ‘조국을 통일하라’고 적혀 있다. 무엇을 보고 어떻게 생각해야 한단 말인가?
작가 박찬경이 지난해 제작해 타이베이 비엔날레를 통해 처음 공개한 26분 6초짜리 3채널 비디오·오디오 작품 <시민의 숲>이 종로구 삼청로 국제갤러리 2관에서 전시 중이다. 5년 만에 연 이번 개인전의 제목은 <안녕>(Farewell). 안녕은 희생자에 대한 애도이자, 구시대를 보내는 안녕이고, 희망을 말하는 안녕이기도 하다. 총 12점의 근작들을 7월 2일까지 선보인다.
작가는 한을 안고 원통하게 죽은 사람들을 그린 판화가 오윤(1946~1986)의 미완성작 <원귀도>와 김수영(1921~1968)의 실천시 <거대한 뿌리>에 착안해 이 작품을 제작했다. 흑백 영상 속 등장인물은 무전기를 숨기고 농부로 위장한 남자, 가방을 멘 학생들, 셰퍼드를 끌고 나온 양복 신사, 목사 차림의 남자와 함께 굿판을 벌이는 망령 같은 사람들이다. 첨예한 이념과 진영의 대립이 결국 ‘망령’이라는 뜻일까. 굿부터 기도까지 이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제의를 지내며 ‘안녕’을 기원한다. 물에서 꺼낸 해골, 지나가는 꽃상여 등이 의미심장하다.
서울대에서 서양화를, 캘리포니아 예술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한 박찬경은 1990년대 평론가로 먼저 이름을 알렸고 1997년 금호미술관 개인전을 시작으로 냉전과 남북 갈등을 소재 삼아 실재와 허구를 넘나들며 역사의 재구성 같은 작업을 펼쳐왔다. 특히 최근에는 소외된 역사의 한 부분인 무속신앙을 통해 성찰 없이 달려온 한국 근대화의 틀어진 부분을 지적한다. 무당들이 굿할 때 사용하는 액막이 금속용구인 ‘명두’(明斗)를 소재로 제작한 신작 <밝은 별>은 단청 채색한 자작나무 판에 둥근 구멍을 내고 명두를 넣은 것인데, 뒷면에 북두칠성이 새겨져 있다. 서구 중심 혹은 기존의 사고틀을 깨고 우리 식으로 오늘의 현실과 문제를 직시하자는 제안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다.

한국사회의 오작동

노순택 개인전 <비상국가 Ⅱ - 제4의 벽> 6. 2~8. 6, 아트선재센터

꽃잎과 폭탄의 공통점은 ‘떨어진다’는 것. 갑작스레 떨어진 폭탄에 창문은 부서지고 아랫목 이불 속에 누웠던 집주인은 혼비백산 피신했다. 화사한 꽃잎 무늬 벽지는 졸지에 마구 갈긴 총구의 흔적처럼 처참해졌다. 지난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직후 현지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 찍은 사진작가 노순택의 연작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중 하나이다.
아름다움과 처참함의 경계에서 줄타기 하는 대한민국의 기괴한 풍경은 이뿐만이 아니다.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계단을 촬영한 <비상국가>는 크리스마스트리 아래로 줄지어 선 경찰들의 모습이 마치 동화 <호두까기 인형>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현실에는 성탄의 동심이 없다. 경찰의 손에는 시위 주도자를 찾는 수배 전단지가 들려 있고 눈은 매섭게 시민들을 가른다. 근래의 한국사회를 “믿기 어려울 만큼 연극적이고 초현실적이며 비현실적”이라고 말하는 노순택의 개인전 <비상국가Ⅱ-제4의 벽>이 아트선재센터에서 8월 6일까지 열린다. 조명이 켜져 무대 위의 배우가 관객을 보지 못하게 되는 상태를 가리키는 ‘제4의 벽’은 연극 무대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벽을 두고 극단적 대치 상황을 이룬 남북관계, 진영 간 대립을 보이는 국내 갈등 상황을 모조리 아우른다.
분단 체제가 만든 남북한의 기괴한 긴장과 갈등을 ‘오작동 상태’로 규정한 노순택의 개인전은 앞서 2008년 독일에서 <비상국가 Ⅰ>이라는 제목으로 선보였다. 그 연장선에서 기획된 이번 전시는 계획보다 많이 늦어졌고 우여곡절 끝에 9년 만에 열렸다. 그 시간의 간극을 최근의 사회적 이슈를 다룬 <비상국가> 시리즈가 채웠고 <가뭄>, <강정-강점>, <고장난 섬> 등 200여 점이 걸렸다.
노순택은 ‘섬’이라는 개념에 주목했다. 뭍과는 분리된 섬의 고립이 한국사회의 오작동을 부른다는 것이다. 한국을 3면의 바다와 휴전선으로 갇힌 거대한 섬으로 표현한 그는 백령도의 천안함, 연평도 포격, 미 공군의 훈련지였던 매향리 농섬 그리고 제주 강정 해군기지를 사진에 담았다. 시위 진압을 위해 동원된 살수차의 물대포를 찍은 <가뭄> 연작은 우아한 추상사진처럼 아름다워 ‘찬란한 아픔’의 역설을 배가시킨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2 노순택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2010.

글 조상인_ 서울경제신문 기자
사진 제공 국제갤러리, 아트선재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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