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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대형서점의 도서관화 논란 책 안 사는 사회
지난 3월 7일, 출판사 대표 A씨의 페이스북 계정에 올라온 글이 며칠씩이나 출판업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광화문 교보문고에 들를 때마다 몹시 뿔이 난다”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300자가량의 짧은 글에는 분노, 억울함, 우려 비슷한 감정들이 한데 뒤섞여 있었다. 대형서점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그는 “그 책들은 출판사가 팔기 위해 갖다 놓은 책이지, 읽고 가라고 둔 책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 싶다면 도서관에 가라”고 일침을 놓았고, 대형서점에게는 “남의 책으로 생색내면서 독자 서비스 베푸는 양하지 말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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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더럽혀진 책은 어찌하나요?

본의 아니게 화제의 주인공이 된 광화문 교보문고는 필자도 한 달에 두세번 들러 책을 보는 곳이다. 책을 구매하기 위해서 서점을 찾는 경우가 반, 그렇지 않을 때가 반이다. 심심해서, 약속 시간이 남아서, 어떤 책들이 나왔는지 보기 위해 서점을 찾는다. 집에서 멀지 않기도 하거니와 최대 100명이 이용할 수 있다는 대형 독서 테이블에 간이의자도 군데군데 마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통로 사이에 비집고 앉아 수십 분씩 책을 읽어도 누구 하나 타박하지 않는다. 요즘에는 서점 안에서 식사도 해결할 수 있다.
지난달 둘러본 종로구 소재 대형서점 3곳은 모두 독서삼매경에 빠진 사람들로 가득했다. 어색하지 않은 광경이었다. 누군가는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비어 책을 보러 왔다”고 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형편이 좋지 않아 책을 다 살 수 없어서 서점에서 읽고 가곤 한다”고 했다. 아이를 데려온 한 주부는 “독서 습관을 들이기 위해 서점을 찾는다”고 말했다. 구매 여부를 확인할 수는 없었으나 아예 필요한 책들을 책상에 쌓아두고 공부하는 사람도 군데군데 보였다.
출판사 입장에서는 답답할 노릇이다. 출판사와 서점은 위탁판매 형태로 계약하는 경우가 많아, 서점에 비치했다 팔리지 않은 책은 그대로 출판사로 반품된다. 여기에는 물론 고객 손때가 묻어 상품 가치가 떨어진 책들도 껴있다. 독서 공간을 늘리면서 진열 공간이 사라진 것도 문제다. “고객이 책을 발견할 확률이 사라진 만큼 판매율이 낮아지는 건 당연하지 않느냐”는 거다. 실제로 광화문 교보문고에는 100인의 독서 테이블을 들이면서 5만 권 가까운 책이 매장에서 사라졌다. 누군가는 “책을 구매하지 않고도 공짜로 읽을 수 있다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문제”라고 했다. 결국 장기적으로 출판시장에 악영향을 끼칠 거란 이야기다.

대형서점, 우리만 잘살자는 건 아니다

대형서점 역시 억울한 표정이다. 어차피 독서 공간을 마련하기 전에도 서점에는 ‘독서족’이 있었다는 거다. 서서, 혹은 쪼그리고 앉아 불편하게 읽느니 편하게 읽게끔 하는 게 좋지 않냐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독서 공간 마련은 나름의 선의였는데, 마치 모든 피해를 출판사에 떠넘기는 악덕 갑질 업체정도로 비춰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했다. 판매되지 않은 도서를 반품하긴 하지만 상도를 지킨다고도 했다. 훼손이 심한 책들은 차마 반품할 수 없어 견본 도서로 활용한다고 한다.
무엇보다 “출판업이 불황이라 어쩔 수 없다”는 것이 대형서점의 주장이다. 한 대형서점 관계자는 “책이 하도 안 팔리니까, 우리도 외국 사례들을 살펴보며 연구를 엄청 많이 한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서점에 오게 할지, 책을 사게 할지 고민하는 것이다. 독서 공간을 마련하고, 문구점을 들이면서 욕을 먹기는 했지만 우리로서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 다른 관계자도 비슷한 말을 했다. “서점만 살자고 이러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아주었으면 한다. 가뜩이나 책을 안 읽는데, 이렇게라도 사람들이 읽어 버릇해야 장기적으로는 우리도, 출판사도 살아남을 수 있지 않겠는가?”

책 읽는 사회, 책 사는 사회를 바란다

출판사와 서점의 목소리를 담아 ‘서점이 책 읽는 곳인가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지난 3월 15일 한국일보에 게재했다. 기사가 나가자 포털 사이트에는 2,7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렸다. “서점 내 독서 공간이 늘고 나서 소장하고 싶은 책은 꼭 사게 되었다”는 댓글도 있었고, “책값도 비싼데, 남이 침 묻히면서 본 책을 굳이 사고 싶지는 않다. 꼭 인터넷에서만 구매한다”라는 댓글도 있었다. 또 “출판사가 이런 피해를 받고 있는지 몰랐다. 앞으로 서점에 구비된 책을 조심스럽게 다뤄야겠다”는 반성의 글도 있었다. “고객들이 읽는 샘플용 책은 대형서점에서 따로 구매해야 할 것 같다”라거나, “온라인 미리 보기 서비스를 활성화하는 건 어떨까?”와 같은 대안 제시도 있었다. 간간이 “도서관이 할 일을 서점이 하고 있는 것 같다. 도서관이 제 역할을 찾아야 할 때 아닌가 싶다”는 꾸짖음도 보였다.
마침 지난 3월 5일, 통계청은 전국 1인 이상 가구 월평균 서적 구입비가 전년 대비 7.9% 줄어든 1만 2,066원으로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조사한 지난해 신간 단행본 평균 가격이 1만 8,108원임을 감안하면 한 가구가 한 달에 책 한 권도 채 사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심지어 도서 구입비는 2010년 1만 7,939원을 기록한 이래 1만 6,937원(2011년), 1만 5,502원(2012년), 1만 5,147원(2013년), 1만 4,614원(2014년), 1만 3,108원(2015년), 1만 2,066원(2016년)으로 6년 연속 감소했다.
이러쿵저러쿵 서로 입장을 다투지만 대형서점의 도서관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어쩌면 여기에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모든 일은 책 안 읽는 사회에서, 책이 너무 안 팔려서 일어나는 일 아니냐”는 한 출판사 대표의 시름 짙은 읊조림이 귓가에 맴돈다.

글 신은별_ 한국일보 사회부 기자
사진 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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