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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5월호

전시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와 <훈민정음·난중일기 전(展): 다시, 바라보다> 몰입의 힘, 예술의 힘
‘덕후’의 시대다. 덕후는 이상하고 폐쇄적인 사람으로 취급받았던 예전과 달리, 요즘에는 ‘학위 없는 전문가’나 ‘능력자’로 인정받고 있다. 덕후란 한 분야(애니메이션)에 열중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 ‘오타쿠’를 누리꾼들이 이와 유사한 발음인 ‘오덕후’로 바꾸어 부르며 생겨난 줄임말이다. 일본의 하위문화를 상징하는 오타쿠라는 단어에서 출발했지만, 오늘날 덕후는 긍정적인 인식을 내포한 문화적 코드로 자리한다. 이러한 덕후의 현상과 의미와 함께, 덕후가 만들어낸 ‘수집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 전과 우리나라의 최고 덕후로 불릴만한 ‘1세대 컬렉터’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훈민정음·난중일기 전(展): 다시, 바라보다>이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에 전시된 박미나 작가의 2000-2004 핸드폰 액세서리, 20×20×60cm.

덕후의 반란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
4. 11~7. 9,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의 <덕후 프로젝트: 몰입하다> 전에서는 좋아하는 분야에 깊이 몰입해 생기는 기질이나 자세, 행동양식의 의미를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게임, 영화음악 등을 소재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그림을 그려온 작가 신창용은 자신의 작업을 덕질의 결과물, 이른바 ‘덕화’라고 말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쿠엔틴 타란티노의 영화 <킬빌>과 코엔 형제의 영화 <파고>의 특정 장면을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다.
박미나 작가는 10년간 모은, 자신의 휴대폰을 장식했던 액세서리를 소개한다. 과거 휴대폰 모델의 초소형 액세서리 소품들을 통해 당시 유행했던 만화·애니메이션 캐릭터 등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한편, 교통카드, USB 등 휴대폰 시장의 확산으로 다양한 형태와 기능이 반영된 액세서리를 전시하며 시대적 의미를 되새긴다. 또한 독립잡지 <The Kooh>의 편집장 고성배의 <더쿠 메이커>에서는 덕후의 습성 10가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편집증적인 성격을 예술로 승화한 10명의 덕후 작가들이 선보이는 영상·회화·설치작품들은 ‘별것도 아닌 것들’의 반란이다. ‘몰입’의 경지를 스스로 즐기는 이들은 삶을 향한 능동적 태도를 생각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있다. 덕후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던 고정관념을 깨고 수집과 소비 지향적 덕후들의 습성이 어떻게 창조적으로 변화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다양성을 존중하고 전문성이 부각되는 새로운 문화의 흐름을 체감할 수 있는 전시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2, 3 <훈민정음·난중일기 전(展): 다시, 바라보다> 전시장 모습.

지혜와 용기의 역사

<훈민정음·난중일기 전(展): 다시, 바라보다>
4. 13~10. 12,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디자인박물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배움터 2층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는 <훈민정음·난중일기 전(展): 다시, 바라보다>는 ‘수집 덕후’가 아니었다면 볼 수 없었을 귀한 전시다. 간송 전형필이 1938년 설립한 간송미술재단의 국보 <훈민정음>과 현충사가 소장한 <난중일기> 를 처음으로 한자리에서 선보여 화제다.
간송 전형필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밀반출될 뻔했던 우리나라의 중요 문화재들을 수집하여 지켰다. 수집한 문화재는 총 1만여 점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을 포함한 국보 12점, 보물 10점 등이 있다. 간송은 민족문화말살정책으로 <훈민정음 해례본>이 훼손될 것을 염려하여, 기와집 10채 값을 들여 급히 사들였다고 한다. 특히 한국전쟁으로 인한 피난길 와중에도 자신의 품에서 1분 1초도 내려놓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446년에 펴낸 <훈민정음 해례본>은 훈민정음 해설서로서 한글의 창제 원리를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국보 제70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록된 <훈민정음 해례본>은 그 값을 매길 수 없어 ‘무가지보’(無價之寶)라고도 불린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쓴 사람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서체는 최고로 평가받고 있는데, 당대 최고의 명필이었던 안평대군(1418~1453)이 쓴 것으로 추정된다. 간송미술재단은 “종이 역시 이보다 더 좋은 한지를 만날 수 없고, 먹 빛깔도 바로 어제 찍은 것처럼 윤기가 넘치며, 책의 장정(裝訂) 역시 보통 솜씨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라며, “서양 최초의 활자 인쇄인 구텐베르크 성경은 7권이 남아 있지만, 우리에게는 <훈민정음 해례본> 단 한 권뿐이다. 그 의미를 생각해볼 때 이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이 공개된 전시에서는 <동국정운> 등 간송 소유의 유물 2점과 함께, 국보 제76호 충무공 이순신의 <난중일기> 등 현충사의 충무공 관련 유물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현대미술 작가들과의 협업도 이루어졌다. 30년간 한글 타이포그래피를 연구해온 정병규 작가가 한글 예찬에 관한 그간의 철학을 시각적으로 발현했고, 설치미술가 김기라는 LED 패널 작업으로 한글 고유의 아름다움을 시적으로 응축했다.
전시는 지난해 탄핵 정국 때문에 마련됐다. ‘촛불 혁명’이 일어났던 광화문광장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의 동상에서 착안된 것이다. 세계에서 독보적으로 한글을 만들고 찬란한 문화를 만들어낸 우리의 역사, 처절한 어려움 속에서도 국난을 극복하겠다는 불굴의 의지로 나라를 지켜낸 영웅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다. 전시의 키워드는 지혜와 용기로, <훈민정음>을 통해 지혜를, <난중일기>를 통해 용기를 보여준다. 예술은 우리의 영혼을 일상의 먼지로부터 씻어준다. 난국의 시대, 지혜와 용기로 희망찬 미래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예술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전시다.

글 박현주 뉴시스 기자
사진 제공 서울시립미술관, 간송미술문화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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