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2 단편·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자체휴강 시네마.
3 편안한 좌석이 준비되어 있는 아담한 상영관.
4 차례를 기다리며 이용할 수 있는 대기 공간.
젊은 시네필의 아지트
“글은 책으로, 음악은 음반으로, 영화는 스크린으로 나올 때 작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어요. 관객들과 만나지 못하는 영화가 과연 의미 있을까요?” 한겨레 교육문화센터에서 영화 연출을 공부한 박래경 대표는 영화를 완성하고도 상영할 공간이 없는 현실을 마주하고 직접 작은 상영관을 열었다. 대학동 녹두거리 초입에 위치한 이곳의 이름은 ‘자체휴강 시네마’. ‘관객에게 선택의 기회를, 영화인에게 상영의 기회를’이라는 모토대로 관객과 영화인이 좋은 영화를 매개로 모이는 아지트 같은 공간이다. 박 대표의 의도처럼 언제든 편히 들를 수 있는 ‘생활 밀착형’ 공간인 셈이다.
자체휴강 시네마는 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오전 11시부터 밤 10시까지 문을 연다. 상영하는 영화는 단편 혹은 독립영화로, 국내외 영화제에 초청돼 작품성을 입증받은 영화들이 주를 이룬다. <검은 사제들>의 원작이자 제13회 미쟝센 단편영화제 절대 악몽 부문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며 2014년 최고의 단편으로 회자된 <12번째 보조사제>, 정동진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등 각종 영화제에 소개되며 입소문을 탄 <병구> 등 단편영화 팬들에게 익숙한 작품들을 상영했다. 관객들의 보편적인 입맛을 고려해 수상작 위주로 리스트를 꾸렸지만 박래경 대표는 연출을 전공하지 않은 초심자들의 작품 또한 한두 편씩 꾸준히 상영할 생각이다. 이를 위해 진입장벽이 높지 않은 고시촌 단편영화제의 작품들을 눈여겨보고 있다. 영화 한 편당 관람료는 2,000원으로, 웬만한 카페의 음료 한 잔보다 저렴하다. 2~3주 단위로 새로운 작품을 개봉한다.
자체휴강 시네마에서 가장 돋보이는 공간은 단연 상영관이다. 시야각을 고려한 알맞은 크기의 스크린, 1인용 침대라고 해도 좋을 만큼 푹신한 좌석이 상영관에 들어서 있다. 관객 5명이면 상영관이 꽉 찰 정도로 아담한 크기다. 관객이 1명이든 2명이든 보고 싶은 작품을 고르면 영화를 바로 볼 수 있다. 늦게 온 관객들은 상영관 밖의 안락한 대기공간에서 기다리면 된다. 멀티플렉스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주전부리도 즐길 수 있다. 지금은 아메리카노, 콜라, 팝콘 등 기본적인 메뉴들만 판매 중이지만 앞으로는 일반적인 카페에서 즐길 수 있는 음료들도 준비할 생각이다.
이제 갓 3개월 차에 들어선 새내기 영화관이지만 벌써 단골이 생길 정도로 대학동 일대에서 반응이 뜨겁다. 서울대, 삼성고, 서울정보산업고 등 주위에 학교가 많은 만큼 영화를 좋아하는 젊은 시네필들이 주 관객층이다. “좌석 수도 적고, 지하에 있고, 여러모로 불편한 점이 많은데 한 번 온 이후로 계속 찾아오는 분들이 많아요. 특히 영상 공부하는 어린 친구들이 공부 겸해서 영화를 자주 보고 가요. 그럴 때면 ‘틀린 일을 하진 않았다’ 싶어 기분이 좋죠.”
특유의 소담한 공간은 모임용으로 활용하기에도 알맞다. 자체휴강 시네마는 관객들에게 언제나 열려 있다. 다만 주요 시간대에 대관을 하면 일반 관객들이 이용하기 힘드니, 관객이 드문 시간대에 맞춰 대관 업무를 진행할 계획을 고려하고 있다. 대관 업무에서 나아가 박래경 대표는 자체휴강 시네마를 구심점으로 삼은 영화 소모임을 추진 중이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 공간에 모여 같은 영화를 보고 토론하며 친목을 다지는 것이다. 크기는 작지만 쓰임만큼은 무궁무진하다.
지금도 누군가는 어딘가에서 영화를 찍는다
자체휴강 시네마 외에도 전국 곳곳에 소규모 영화관들이 있다. 그중 용산구 이태원의 극장판, 춘천의 일시정지시네마 등은 자체휴강 시네마처럼 모두 작지만 힘 있는 영화 공동체다. 세 곳은 최근 봄 상영작 공모를 함께 진행했다. 38편이 출품됐고 그중 5편을 4월 한 달간 세 영화관에서 동시에 상영할 예정이다. 이옥섭, 구교환 감독의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허준석 감독의 <강냉이>, 강진엽 감독의
<백패킹>, 이동환 감독의 <트랙>, 박윤진 감독의 <퍼펙트 마라톤>이 그 작품들이다.
지금은 영화관 업무에 주력하고 있지만 박래경 대표 역시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꾸준히 시나리오를 쓰고 있다. “상영작을 고르다 보면 자괴감이 들 정도로 뛰어난 영화들이 많아요. 지금도 어디선가는 영화를 찍고 만드는 사람이 있다는 걸 관객들이 알아주었으면 해요.” 박 대표는 자체휴강 시네마가 관객들의 공간을 넘어 영화인들이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 영화 촬영 후 기술시사를 하거나 스태프들이 함께 모이는 용도로 쓰였으면 하는 것이다.
그의 장기적인 바람은, 이곳에서 소개한 영화의 배우, 감독, 스태프가 장편영화 신에서도 활약하는 것이다. 훗날 큰 스크린에서 그들을 다시 만났을 때, 그들의 시작을 함께했던 이 공간을 관객들이 기억한다면 더없이 뿌듯할 거라고 한다. 물론 자체휴강 시네마도 그 자체로 더욱 다양하고 많은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영화관으로 커나가길 꿈꾼다. 지금은 단편영화만 상영하지만, 장편영화도 수익 구조에 맞춰 상영하는 방안을 계속 고민 중이다. 최종적으로는 단편과 장편을 반반씩 틀고 싶다는 게 그의 구체적인 소망이다. 공간만큼 알차고 튼실하게 그의 꿈이 영글어나가길 기원한다.
- 글 김수빈
- 사진 제공 자체휴강 시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