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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4월호

‘가족과 함께하는 날’ 지정에 관한 논란 문화생활 하는 금요일? 야근 없는 평일!
최근 정부는 일본의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하여 ‘가족과 함께하는 날’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발표했다. 직장인들이 금요일 오후 4시에 퇴근해 가족과 함께 여가를 보낼 수 있다면, 관람 인원 증가와 공연 활성화라는 측면에서 문화예술계 또한 두 팔 벌려 환영할 만한 정책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시 퇴근도 힘든 우리나라의 직장 문화에서, 금요일 조기 퇴근이 제대로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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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조기 퇴근, 중소기업은 언감생심?

정부가 내수 활성화를 위해 ‘가족과 함께하는 날’을 추진하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근자 들어 일본에서 시행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했다는 이 방안에 따르면, 한 달에 한 번씩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0분간 업무 시간을 연장하고, 금요일에는 오후 4시에 퇴근해 가족과 함께하는 건전한 여가 문화를 활성화한다. 이렇게 해서 침체된 소비심리 회복을 기대한다고 한다. 물론 금요일 조기 퇴근 제도가 시행되고 자리를 잡는다면 토요일 못지않은 ‘황금요일’ 특수를 기대하며 금요일 공연 횟수를 추가하거나 공연 시간을 앞당기는 등 문화예술계의 움직임도 활발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시 퇴근도 힘든 한국의 직장 문화를 감안할 때 실제로 뿌리내릴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일본의 경우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시행 첫날인 지난 2월 24일, 대기업을 포함한 1,300여 개 회사들이 참여 의사를 밝혔으나, 실제로 조기 퇴근한 사람의 비율은 3%대에 불과했다. 당초 일본 내 전문가들은 금요일 조기 퇴근 제도가 전국적으로 확대되면, 1,200억 엔 수준의 경제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는 핼러윈 당일의 경제 효과(1,300억 엔)와 맞먹는 수치다.
그러나 일본의 민간 조사 회사인 인테지가 실시한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시행 직후 설문조사에서, 응답자 2,200명 중 조기 퇴근 제도를 이용했다는 응답은 3.7%에 그쳤다. 시행을 앞두고 실시한 일본 SMBC 닛코증권의 자체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60%가 ‘조기 퇴근 때 집에서 쉴 예정’이라고 답했다. ‘프리미엄 프라이데이’ 실시율은 종업원 1,000명 이상의 기업이 5.8%, 100명 미만 기업은 2.4% 등으로 조사돼 규모가 큰 기업일수록 정부 시책에 호응한다는 차원에서 참여 비율이 다소 높았을 뿐,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에게는 언감생심인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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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전한 여가 문화보다 건전한 직장 문화가 우선

한국 근로자들의 연간 근로시간은 2,113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2위다. 최근 몇 년간 ‘야근 줄이기’ ‘정시 퇴근’ ‘근로시간 단축’ 등이 우리 사회의 주요 화두로 떠오른 이유다. 다가오는 대선에서도 여러 주자들이 근로시간 단축과 ‘칼 퇴근’을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정시 퇴근만큼 어려운 과제도 없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16년 3월부터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문화가 있는 날’에 2시간 조기 퇴근제를 시행하고, 이를 관련 기관과 지자체로 점차 확산시키겠다고 했으나 유명무실해졌다. 삼성그룹이 1993년 실시한 오전 7시 출근, 오후 4시 퇴근 역시 별 효과를 못 봤다. ‘가족과 함께하는 날’ 도입을 앞두고 많은 직장인들은 평일 야근만 늘어날 것이라 우려한다. 준비를 철저히 하지 않으면 이 또한 탁상정책에 그칠 것임을 일본 사례가 시사하고 있다. 한국판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도입하겠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떠오른 건 한 편의 시였다.

서로 먼저 오려고 다투다가/ 수요일은 화요일 다음에 온다/ 은종이 같은 수요일이 오면/ 나뭇가지마다 쌀알 같은 꽃이 핀다/ 수요일은 이 땅이 처음이어서 다음에 또 오려고/ 이파리마다 햇빛 발자국을 찍어놓는다/ (중략)/ 나, 너 그리고 그, 그 사이가 세상 한복판이다/ 식물들에게 수요일이 먼저 오면/ 인간의 마을에도 수요일이 따라온다
- 이기철, <저 식물에게도 수요일이 온다> 중 (문학사상, 2017년 1월호)

시인은 “수요일이 사람한테만 오는가? 나는 수요일의 나뭇잎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을 보았다. 수요일의 꽃이 분주히 열매로 가는 것을 보았다. 식물에게도 골고루 수요일이 온다”라고 ‘시작 노트’에 썼다. 식물들은 요일에 관계없이 햇살을 즐기며 양분을 열매로 실어 나르는 완전 무위의 상태를 유지한다. 식물에게 물어본다면 햇살은 수요일에도 목요일에도 금요일에도 공평하다. 그러나 사람에게 금요일은 공평하지도 않고 평등하지도 않다. 여가 선용이란 게 결국은 돈과 시간의 문제인 까닭이다. 게다가 일본의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벤치마킹했다니 얼핏 문화사대주의적 발상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슬로베니아 출신의 철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슬라보예 지젝이 지적했듯, 일본의 최고 경영자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불교에서 유래한 젠(禪) 경영(Corporate Zen)이 폭넓게 유지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난 150년 동안 훈육과 희생의 윤리를 바탕으로 한 일본의 빠른 산업화와 군국주의는 대다수 젠 사상가에 의해서 유지되어왔다. 국가의 근대화와 산업화를 위해 개인의 희생은 불가피한데, 그 불가피성을 젠이라는 제어장치로 다독이고 관리해왔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 근대를 이끈 무사도(사무라이 정신)가 작용하고 있다. 무사도는 원래 불교의 형이상학에서 진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시(戰時) 계몽주의의 한 폐단인 개인의 희생의지를 높인다는 목적을 가진 교묘한 영적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이런 역사적 배경에서 탄생한 일본의 근대를 답습하듯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여과 없이 베낀다는 게 영 마뜩치 않다. 게다가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30분씩 일을 더 한다는 발상도 그 측정의 주체를 고려할 때 비현실적이다. 30분 연장 근무의 객관성을 입증하는 주체는 직장 상사다. 그것도 조기 퇴근하지 않을 게 분명한 상사말이다. 그러니 ‘가족과 함께하는 날’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상사들이 스스로 목에 방울을 달고 조기 퇴근을 솔선수범해야 할 판이다. 건전한 여가 문화 이전에 건전한 직장 문화가 먼저이고 금요일도 어차피 세상 한복판이다.

글 정철훈_ 문학저널리스트·시인
사진 제공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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