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 도시에서 창조적인 문화도시로
20세기가 국가의 시대라면 21세기는 도시의 시대다. 20세기를 지배하던 협소한 국경의 개념은 사라지고, 세계는 도시 간 네트워크로 연결됐다. 이들 도시들은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며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지난 2011년 발족한 세계도시문화포럼은 세계 주요 도시들이 서로의 문화정책을 공유하고 최신 이슈를 토론하기 위해 만든 기구다. 현재 런던, 뉴욕, 베를린, 도쿄, 베이징 등 25개 국 32개 도시가 회원으로 참여 중이다.
WCCF의 출범에 산파 역할을 했으며 현재 의장을 맡고 있는 저스틴 사이먼스 런던 문화부시장이 3월 12~16일 서울을 찾았다. 사이먼스 부시장은 서울에 있는 동안 류경기 부시장을 비롯한 문화정책 관계자들을 만나 서울 총회 주제를 최종적으로 조율하는가 하면 DDP, 서울돈화문국악당 등 다양한 시설을 둘러봤다.
사이먼스 부시장은 현대무용 프로듀서, 축제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다가 2000년 런던시 공무원이 됐다. 이후 런던의 문화예술 분야를 진두지휘한 그는 역대 최고로 평가받는 2012년 런던올림픽의 문화 프로그램 총책임자이기도 했다.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해 사디크 칸(Sadiq Khan) 런던 신임 시장 취임 후 문화부시장으로 임명됐다. 현재 런던시는 9명의 분야별 부시장을 두고 있다.
“20년 전만 하더라도 문화정책은 교통이나 주거처럼 도시의 핵심 정책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21세기 들어 세계의 많은 대도시들이 문화정책의 중요성을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성공한 도시들을 보면 문화를 통해 정체성을 새롭게 구축했거든요.
WCCF는 문화정책 분야의 리더들이 모여 아이디어, 성공사례, 시행착오를 공유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문화예술 관련 데이터를 모으고 공유하는 것도 WCCF를 설립한 주요 이유입니다. 사실 문화예술은 다른 분야와 달리 수치로 개량화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논의를 발전시키려면 공통된 데이터가 필요한데요. 그동안 문화예술 데이터는 박물관이나 극장의 수 등으로 단순했지만 우리는 이런 시설은 물론 시민의 향유와 참여 등까지 포함해 60가지 지표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증거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1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2016년 WCCF 총회.
출처_ 세계도시문화포럼 홈페이지
2 런던을 대표하는 댄스 축제 ‘Big Dance’도 2012년에는
런던 문화 올림피아드와 연계하여 진행됐다.
출처_ London 2012 Festival 페이스북
3 설치미술가 제레미 델러는 2012 런던 문화 올림피아드의 일환으로, 스톤헨지에서 뛰어놀고 싶은 자신의 상상을 구현한 작품을 설치했다.
출처_ London 2012 Festival 페이스북
문화예술의 지표를 만들다
사이먼스 부시장은 WCCF의 설립 배경으로 리더십과 데이터 구축을 꼽았다. 설립 이듬해인 2012년부터 매년 다른 회원 도시에서 총회를 열고 있는데, 아시아 도시에서 총회가 열리는 것은 올해 서울이 처음이다. 서울 총회의 주제는 ‘문화와 민주주의’로 최종 확정됐다. WCCF 총회의 주제는 매년 개최도시의 의견을 많이 반영해 결정하는 만큼 이창현 교수가 답변에 나섰다.
“산업화 도시에서 창조적인 문화도시로 변모해가는 것이 세계적 어젠다라는 점에서 이번 총회는 서울에 시사점이 크다고 봅니다. 런던과 뉴욕 등의 사례를 통해 배울 수 있는 것들이 많으니까요. 한국의 경우 민주화와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문화예술이 많이 소외됐습니다. 서울이 대표적인 곳이죠. 다만 서울 총회는 블랙리스트로 상징되는 최근 한국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 예술가들과 활동가들은 블랙리스트를 극복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광화문의 공공극장 블랙텐트는 민주주의의 회복에 앞장섰던 예술가들의 활약을 보여주는 사례죠. 게다가 우리나라 예술가들은 산업화 이후 도시의 발전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세운상가, 낙원상가 등 산업화의 현장이 예술가와 손잡고 변모하고 있으니까요. 그동안 민주화와 산업화 과정에서 외면받았던 예술가들이 이제 민주주의의 선봉장이자 산업화 이후 생활문화를 이끄는 주역이 된 것은 한국만의 특별한 점이 아닐까 싶어요.”
사이먼스 부시장은 이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면서도 약간 다른 견해를 내놓았다. 세계 대도시들은 각각의 독특한 특성으로 차별화되어 있지만 공통점도 많다는 것이다. 국제화를 통해 비슷한 문화를 누리고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 있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도시들은 비슷한 부분이 매우 많아요. 각각의 대도시에서 보통 사람들이 스타벅스 커피를 마시는데서 알 수 있듯 비슷한 문화를 누리니까요. 런던의 경우 영국의 북부 소도시보다는 미국 뉴욕과 훨씬 닮아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도시의 스케일을 고려할 때 세계 대도시들은 공통된 문제점이 있거든요. WCCF 총회는 이를 바탕으로 공통적인 주제를 뽑아냅니다. 예를 들어 회원들을 보면 과거에 올림픽을 개최했거나, 조만간 올림픽을 개최할 예정이거나, 앞으로 올림픽을 개최하려는 도시들이거든요.”
런던, 도시 재생의 세계적 성공 사례
런던은 1990년대 후반부터 영국 정부의 ‘Creative Britain’ 정책에 발맞춰 큰 발전을 이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공공 디자인 중심으로 펼친 도시 재생 사업 덕분에 런던은 전통을 유지하면서도 현대적인 도시로 변모했다. 창조산업을 앞세운 런던은 21세기 들어 세계에서 가장 매력적인 도시 중 하나가 됐다.
“런던이 변화할 수 있었던 전환점은 2000년 광역시(Greater London Authority)로 바뀌고 시장을 직접선거로 뽑게 되면서부터입니다. (2000년 전까지 런던 시장은 정부가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1986년 광역시가 해체되면서 1999년까지 우리나라의 구에 해당하는 33개 기초지자체로 각각 운영됐다.) 통합된 도시가 등장하면서 문화정책을 본격적으로 추구하게 됐거든요. 덕분에 문화예술 발전을 위한 토양이 마련됐죠. 예를 들어 과거 런던은 영화를 촬영하기 어려운 곳이었죠. 그러나 런던시가 2000년 ‘필름 런던’이란 기구를 만들면서 영화 촬영 환경이 개선됐습니다. 제작자들의 애로사항을 듣고 촬영 승인 절차를 간소화한 거죠. 필름 런던 설립 이후 런던에서 영화 촬영 횟수가 30% 이상 늘어났습니다.”
런던은 또 2012년 런던올림픽을 도시 재생에 성공적으로 활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천문학적인 공공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그 효과가 지속되길 바란 런던은 낙후됐던 런던 동부 지역 재생을 목표로 삼았다. 쓰레기 매립장에 올림픽 공원을 조성했으며 8개의 경기장은 올림픽 이후 해체, 축소하거나 주민들의 생활체육시설로 활용했다. 또 예술가들이 몰려 있던 지역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문화예술 거점 공간들을 구축했다.
“런던올림픽은 런던에 큰 유산을 남겼습니다. 교통 네트워크 확충과 동부 지역 재생은 대표적이죠. 동부 지역 재생은 이제 주택개발 등 2단계 사업들이 진행 중입니다. 예술가들도 이곳으로 계속 몰려들고 있습니다. 5월 서울에서 공연하는 영국 안무가 웨인 맥그리거도 이곳에 스튜디오가 있죠. 올림픽을 계기로 런던에 자원봉사자가 늘어난 것도 중요한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림픽 당시 자원봉사자로 7만 명이 나섰는데, 올림픽 이후에도 3만 4,000여 명이 런던 곳곳에서 꾸준히 활동 중입니다. 또한 새로운 자원봉사자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천문학적인 개최 비용 때문에 올림픽 개최 도시는 돈을 벌 수 없는 구조입니다. 런던올림픽이 적자라고 단언하기 어려운 것은 올림픽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도시 재생과 시설이용에
따른 주민들의 이익을 계산하지 않았기 때문이죠.”
‘문화 올림피아드’로 성공한 런던올림픽
런던올림픽과 관련해 역대 올림픽 가운데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던 문화 프로그램도 빼놓을 수 없다. 올림픽 문화
프로그램이 중요한 이유는 국가와 도시의 브랜드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문화 올림피아드’라는 이름으로 선보인 런던올림픽 문화 프로그램은 문화예술 강국으로서 영국의 자신감과 국제도시 런던의 매력을 지구촌에
뚜렷하게 각인시켰다. 사이먼스 부시장은 바로 런던올림픽 문화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였다.
“올림픽은 어느 도시에서 열리든 정형화되어 있어요.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는 형태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문화를 통해 개최지 도시를 알려야만 합니다. 문화 올림피아드를 준비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만들었는데, 가장 핵심은
‘내 인생의 한 번뿐인 올림픽’이라는 테마 아래 시민들을 참여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사는 도시에서 평생 한 번 만나는 올림픽이니만큼 예술가들과 기획자들에게 최고의 아이디어를 내라고 독려했죠. 덕분에 멋진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어요. 예를 들어 제레미 델러 같은 아티스트는 스톤헨지를 만들고 싶어 했어요. 그렇게 해서 스톤헨지와 똑같이 만든 레플리카가
올림픽 기간 동안 런던에 설치돼 큰 인기를 끌었죠. 올림픽 이후에는 영국 도시들은 물론 해외 여러 도시로 투어를 다녀왔습니다. 이외에도 런던의 모든
조각상에 동시에 모자를 씌우는 퍼포먼스, 피카딜리 서커스 광장에서 이름대로 서커스를 개최한 것 등 흥미로운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런던을 세계에 홍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죠. 조각상에 모자를 씌우는 퍼포먼스의 경우 영국 모자산업에도 도움이 됐어요.”
2020년 올림픽을 개최하는 도쿄는 런던올림픽의 문화 올림피아드 사례를 벤치마킹해 더 나은 문화 프로그램을 선보이겠다는 각오다. 그래서 그를 비롯한 문화 올림피아드 관계자들을 여러 차례 초청해 조언을 구했다.
“도쿄의 문화 프로그램 관계자들에게 런던을 넘어서라고 격려했어요. (웃음) 사실 문화 올림피아드 준비 과정은 쉽지 않았어요. 런던의 경우 2004년, 올림픽 유치도시로 확정됐을 때부터 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체계적인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된 것은 올림픽 개최 2년 전부터입니다. 2년도 너무 촉박했기 때문에 도쿄에는 좀 더 빨리 시작하라고 조언했어요.”
세계 도시의 공통 과제, 젠트리피케이션
런던이 창조도시로서 각광받아왔지만 다른 대도시들과 마찬가지로 해결해야할 문제가 적지 않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문화정책은 무엇에 방점을 두고 있는 걸까.
“런던의 창조산업 규모가 420억 파운드(약 59조 원) 안팎이고, 런던시민 6명 중 1명이 창조산업에 근무한다는 통계도 나와 있어요. 표면적으로 봤을 때 런던은 강력한 문화 DNA를 보유한 성공한 도시예요. 하지만 표면 아래로 내려가면 문제가 많아요. 특히 인구 급증, 부동산 가치 상승으로 런던에서 생활하는 것 자체가 도전 과제가 됐어요. 개발 초기 런던에 들어온 사람들은 이제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쫓겨나고 있습니다. 창조산업 커뮤니티는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거나 없어지고 있어요. 대중음악의 산실인 라이브클럽의 경우, 지난 8년간 40~50%가 사라졌어요. 이런 라이브클럽은 비틀즈 같은 밴드가 젊은 시절 활동하는 곳으로 영국 음악유산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다행히 최근 안정되었지만 20년 앞을 내다보고 문화정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도시 계획을 세울 때 처음부터 문화 인프라를 포함해야 한다는 거죠. 마치 건물을 세울 때 전기배선 계획을 세우듯 세밀하고 전략적으로 문화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아직 어떤 도시도 이런 방식의 문화정책을 시도하지 않았는데, 런던이 선도적인 역할을 하려고 합니다.”
젠트리피케이션은 한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다. 대학로, 인사동, 홍대, 성미산마을, 북촌, 서촌 등 곳곳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대학로와 홍대는 특히 아티스트들의 피해가 크다. 이 교수는 런던과 서울이 각각 젠트리피케이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관심을 드러냈다.
“서울에서도 도시 재생에 예술가들이 큰 역할을 하지만 부동산 가격이 상승되면서 쫓겨나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어요. 도시 재생을 위해 아티스트가 필요한 게 아니라 아티스트를 위해 도시가 재생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부동산 업자가 아니라 서울시가 해야 할 일입니다. 런던이 젠트리피케이션을 해결하는 방식은 서울에도 도움이 될 겁니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는 런던의 또 하나의 도전 과제다. 런던은 유럽에서 창조산업의 50%를 차지하는 곳으로 자유로운 인적 교류야말로 창조도시로 성공하는 밑거름이 됐다. 앞으로 2년간 유럽연합과 협상을 벌이지만 탈퇴는 기정사실이다.
“런던 시민들의 브렉시트 반대 비율은 국민 평균보다 높습니다. 창조산업 분야에서는 무려 96%가 브렉시트에 반대했죠. 런던에는 약 100만 명 정도의 유럽 출신이 일하고 있는데, 브렉시트 이후에도 유럽과 활발하게 교류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런던은 전 세계에 늘 열려 있을 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끝으로 현대무용 분야에서 일하던 그가 어떤 계기로 런던시 공무원이 됐는지 궁금했다. 한국에서 그와 같은 커리어는 찾아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어릴 때 청소년 무용단에서 활동했어요. 무용 테크닉도 배웠지만 창의성, 리더십, 문제해결 능력 등 학교에서보다 더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프로 무용수가 되지는 않았고 대학에서 예술경영을 공부했어요. 이후 무용단에서 매니저와 프로듀서를 거쳤고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도 활동했습니다. 예술계 현장에서 일하면서 늘 정책 분야에 관심이 컸어요. 그러다가 2000년 런던이 광역시가 되고 본격적인 문화정책을 추진할 때 공무원에 도전했습니다. 현재 런던시 문화예술 분야 공무원들은 하나같이 현장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탁상공론으로 끝나겠지만 서로 다른 두 세계를 잘 이해하는 만큼 좋은 문화정책을 만들 수 있습니다.”
- 글 장지영_ 국민일보 기자, 공연 칼럼니스트
- 사진 서울문화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