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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전시 <장영혜중공업>과 <요세프 쿠델카> 날것 그대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드러나는 현실
길들지 않은 예술과 마주했을 때 가슴 뛰는 경험을 해본 적 있는지. 새해 포문을 연 서울 종로구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의 <장영혜중공업>전은 오랜만에 그 경험을 선사하는 전시다. 장영혜(한국)와 마크 보주(미국) 부부로 이뤄진 웹아티스트 팀 ‘장영혜중공업’은 우리가 처한 정치사회 현실의 이야기를 가장 직설적으로, 그리고 가장 감각적인 방식으로 풀어 대중에게 내놓았다. 체코 출신 프랑스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전은 좀 더 은유적으로, 좀 더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유럽의 현실을 반추한다. 한국 첫 개인전에서 소개된 쿠델카의 초기작 ‘집시’ 시리즈 흑백사진들은 1970~80년대 유럽 집시들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이민자 문제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1 장영혜중공업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전시 전경 (사진: 김상태, 2017).
2 장영혜중공업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 -무엇을 감추나?> 전시 전경 (사진: 김상태, 2017).

거친 메시지를 실어 나르는 감각적인 영상
<장영혜중공업>전, 1. 6~3. 12, 아트선재센터

전시장 3개 층에 작품이 1점씩 설치돼 있다. 한국어와 영어 2채널로 분리된 화면에는 고딕체의 텍스트만이 이미지를 구성하는 요소다. 1층 ‘불행한 가정은 모두 엇비슷하다’, 2층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3층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정치인들-무엇을 감추나?’라는 주제로 각각의 내러티브가 있는 이야기를 10분 안팎의 영상으로 보여준다.
명절날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술을 한잔 걸치다가 시작된 사소한 다툼이 결국 충동적인 폭행, 살인으로 이어지는 한 가정의 불행과 비극을 그다지 놀라울 것 없다는 건조한 말투로 풀어놓는다거나, 삼성병원에서 태어나 삼성아파트에서 살면서 삼성을 다니다가 삼성장례식에서 생을 마감하는, 결국 죽음으로 끝나는 삼성공화국에서의 삶을 마치 라임을 맞춘 랩처럼 유희한다. 머리를 검게 물들이는 행위로 정치인들의 ‘기만’을 은유하며, 결국 그들의 오래된 기만에 눈을 감고야 마는 우리 자신들에 대한 자조는 사사로운 감정 없이 있는 그대로 던져진다.
“머리카락을 검게 물들이려고 얼마나 많은 시간을 허비하는가”라는 대목은 머리를 매만지려고, 피부 미용을 위해 다양한 ‘보안손님’이 드나들었다는 인왕산 끝자락 푸른 집을 연상케 한다. “심려를 끼쳐드렸다는 말 한마디뿐인가, 우리는 그런 바보들이야,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라는 마지막 메시지에서는 뜨끔해진다. 정말 우리는 그랬고, 또 그럴지 모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센’ 메시지들을 실어 나르는 방식이 더없이 모던하고 감각적이라는 점은 놀랍다. 직접 제작한 드럼 비트 위주의 사운드에 맞춰 표출되는 텍스트와 저퀄리티 이미지들의 조합은 사뭇 유튜브적이고 또한 컨템포러리하다. 보고 듣노라면 이 넘치는 위트와 통렬함 사이에서, 이들의 유쾌한 줄타기에 함께 올라타고 싶어진다.
<장영혜중공업>은 이번 개인전의 주제를 ‘세 개의 비디오 자습서로 보는 삶’이라고 붙였다. 국정농단이니, 또는 블랙리스트니 하는 말이 한국 사회를 집어삼키기 이전부터 이러한 작업을 준비했다니, 이 예술가들의 예지력이 새삼 놀랍다.
미술관 외벽에 원색, 보색의 볼드체로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마치 과격 시위대의 구호 같은 포스터를 보더라도 놀라지 말자. <장영혜중공업>의 미술관 외벽 배너 작업 일부다. 전시장에 놓인 리플릿도 꼭 챙기자. 이 또한 작품의 일부이니. 작가들을 만나고 싶다면 2월 9일 오후 4시에 열리는 아티스트 토크에 참여하면 된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3 <모라비아>(1966) ©요세프 쿠델카/ 매그넘 포토스.
4 <보헤미아>(1966) ©요세프 쿠델카/ 매그넘 포토스.

오래된 사진에서 읽히는 삶의 보편성과 고단함
<요세프 쿠델카>전, 2016. 12. 17~2017. 4. 15, 한미사진미술관

1968년 구소련의 프라하 침공을 전 세계에 알리고 이듬해 ‘로버트 카파 골드 메달’을 수상한 ‘익명의 프라하 사진가’, 미국·유럽 자유 보도사진 작가그룹인 ‘매그넘포토스’ 회원인 체코 출신의 프랑스 사진작가 요세프 쿠델카(78)가 한국 첫 개인전을 열었다. 1960년대부터 찍어온 ‘집시’ 시리즈 전작으로 지난해 연말부터 서울 송파구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한국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집시’ 시리즈는 쿠델카의 초기작이다. 국내 작가들에게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작품이고, 작가의 가장 순수했던 시절의 감성이 담긴 작품이 바로 이 ‘집시’ 시리즈다.
1938년 체코슬로바키아 모라비아에서 태어난 쿠델카는 제빵사인 아버지의 친구를 통해 처음으로 사진을 접했다. 프라하 공업대학교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항공엔지니어로 일하면서 연극무대 사진을 찍던 그는 1967년 체코 등 동유럽 집시들을 찍은 ‘집시’ 시리즈를 선보이면서 전업 사진가의 길을 걸었다.
1968년 구소련의 프라하 침공 현장을 찍은 사진을 당시 ‘매그넘포토스’ 대표이던 엘리엇 어윗에게 비밀리에 전달했고, 이 사진들이 미국 CBS 뉴스를 통해 보도되며 ‘익명’으로 그의 존재를 세상에 알리게 됐다.
1970~80년대 ‘무국적자’를 자처하며 그는 집시는 물론 유럽인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후 1987년 프랑스에 귀화, 프랑스 문화부에서 주최한 ‘국립 사진 그랑프리상’을 수상했다. 2014년 미국 시카고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연 그는 이번 한미사진미술관 전시에 이어, 내년에는 ‘망명’ 시리즈로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전시를 개최한다.
쿠델카는 왜 집시를 찍었느냐는 질문에 “모른다”고 답했다. “무언가를 즐기거나 누군가를 사랑하려면 그 이유를 모를 때 더 즐길 수 있고 더 잘 사랑할 수 있다”면서 “다만 인간의 삶과 보편적 가치를 이야기하는 데 집시는 매우 강렬한 피사체였다”고 했다.
쿠델카의 ‘피사체’로서 집시들은 현실 속 집시들과는 사뭇 달라 보인다. 고단한 현실 속의 삶은 흑백 프레임 안에서 삶을 너그럽게 관조하는 여유마저 느껴질 정도다. 작가는 “작가의 가치관을 최대한 배제하고 관객들이 각자의 경험에 비춰 해석하길 바란다”고 주문했다.문화+서울

글 김아미
뉴스1 기자
사진 제공 아트선재센터, 한미사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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