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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송인서적 부도를 통해 본 출판계 현실 유통의 투명성과 장기적 관점의 지원이 필요하다
2017년 새해 1월 2일. 다들 복과 덕담을 주고받느라 정신없던 그때 출판도매상 송인서적의 부도 소식이 출판계를 강타했다. 출판사 채무 277억 원, 부도어음 100억 원, 서점 잔고 212억 원, 은행 부채 59억 원, 도서 재고 40억 원이니 모두 688억 원 규모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알라딘 중고서점 신촌점

“미결제 어음이 어느 정도 쌓이면, 돈 안 주면 출고 정지를 하겠다고 강하게 얘기해서라도 일단 잔고를 낮췄어야 했는데…. 조금 늦기는 해도 막상 또 결제는 그럭저럭 되니까…. 급하면 급한대로 일단 몇 백 줄 테니 참아달라, 이런 식으로 읍소도 하니까. 뭐 그런가 보다 하다가 이렇게 된 거죠.” 띄엄띄엄 말을 이어가던 김홍민 북스피어 대표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해 어쩐지 책이 좀 된다 싶었어요. 이래저래 따져보니 지난해 벌어놓은 거 다 까먹겠더라고요. 지금은 그냥 막 웃음만 나네요.”

갑작스러운 부도, 원인은 저물어가는 시장

워낙 급작스러운 부도 소식이라 일각에선 고의 부도 얘기도 나돌았다. 부도 소식이 알려진 뒤 송인서적 쪽과 처음 접촉한 한 출판인은 “처음엔 어려운 점을 미리 털어놓고 상의라도 했으면 이런 꼴은 안 당하지 않았겠냐고 책망도 했는데, 막상 이런저런 설명을 들어보니 최후까지 어떻게든 살길을 뚫어보기 위해 버둥대면서 최선을 다했다는 느낌이었다”며 씁쓸해했다.
출판계가 송인서적 부도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은 단지 ‘한 도매상의 죽음’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어서다. 출판계 고질병이 터져서다. 송인서적은 출판사와 서점을 연결해주는 도매상이다. 교보, 영풍이나 예스24, 알라딘 같은 대형 서점들은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지만, 수도권과 지방의 중소형 서점에는 송인서적이 책을 공급해준다.
문제는 이게 저물어가는 시장이라는 점이다. 일단 책 읽는 문화가 사라지고 있다. 나이키가 경쟁 상대로 아디다스가 아니라 닌텐도를 지목한 이유는 출판계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디지털 시대, 책 보는 이들은 자꾸 줄었다. 그나마 지방 서점을 버티게 해준 건 학습지나 EBS교재 시장이었다. 그러나 이마저 취학 아동 인구의 감소세에 따라 크게 줄었다. 1990년대 5000여개가 넘던 전국 서점 수가 2015년 기준 1500개 수준이라는 점이 이를 말해준다. 원래 더 가파르게 감소할 예정이었는데, 요즘 ‘동네책방’ 유행이 불면서 폭락세가 진정됐기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2 송인서적 홈페이지.

출판사, 서점은 바빴고 주무 부처는 무관심했다

도매상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음에도 이를 외면한 출판계도 문제라는 지적이다. 여기엔 ‘갑을’ 논리가 개입한다. 가령 많은 종류의, 인기 있는 책을 내놓는 대형 출판사는 도매상에 ‘갑’이다. 상대적으로 많은 돈을, 현금으로 받아 챙긴다. 어음을 받더라도 보증이나 기타 안전판을 확보할 기회가 많다. 반면, 도매상에 기대서라도 지방 서점에 책을 내놓고 싶은 소형 출판사들은 ‘을’이다. 몇 달짜리 어음을 끊어주고 좀 더 기다리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한다. ‘갑을’ 논리의 특징상 최악의 폭탄은 ‘을 중의 을’을 찾아간다는 점이다. 어음을, 나쁜 조건의 어음을 받아 든 출판사는 결국 이 어음으로 종이 회사, 인쇄소, 외주 디자인업체 등에 대금을 지급한다.
서점들도 마찬가지다. 책 공급에 가격 조건만 내세운다. 무조건 싸게 내는 곳의 책을 받는다. 이런 곳들은 유통이 투명하지도 않다. 포스(POS) 시스템을 안 쓰는 곳이 많다. 포스 시스템은 편의점 계산기 같은 것이다. 책이 팔리면 일목요연한 통계가 만들어진다. 편의점 통계자료를 가지고 요즘 소비의 트렌드를 들여다볼 수 있듯, 포스 시스템이 깔리면 책의 유통이 투명해진다. 그러나 소매상들은 소득 노출이 싫다는 이유 등으로 이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 아직도 책의 전반적인 유통 흐름이 투명하지 못하고 어음 거래가 남아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게 출판사, 소매 서점 사이에 샌드위치 신세가 된 송인서적이 최근 2~3년간 아무것도 안 남는 장사를 해왔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런 전체적 흐름을 봐줄 사람이 없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출판사, 서점들이 제 살길에 바빴다면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무관심했다. 문체부조직상 ‘출판인쇄산업과’가 ‘미디어정책관’ 산하라는 게 대표적 예다. 영상·게임·대중문화가 ‘콘텐츠정책관’ 산하인 것과는 다르다. 출판계에서는 “별문제 아닌 것 같지만 한쪽은 규제 위주, 다른 쪽은 진흥 위주라는 기본적 시각이 투영되어 있다고 봐야한다”고 말한다.
한 출판계 인사는 “세종도서 같은 이런저런 사업으로 각 출판사들을 소액 지원하는 걸 넘어서서 유통 현대화 같은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서적의 부도는 자금력 달리는 작은 출판사의 부도로 이어진다. 애석하게도, 제 색깔 가진 책을 내는 곳은 작은 출판사가 많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은 “출판 생태계 다양화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영미권이나 유럽의 주요 신간들을 신속하게 소개하는 ‘의미 있는 작은 출판사’들의 부도가 가장 걱정된다”고 말했다. 문체부와 서울시가 각기 지원책을 내놓고 팔을 걷어붙인 건 그나마 다행이다.문화+서울

글 조태성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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