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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2월호

레고 사진가 이제형 어느 ‘성덕’의 즐거운 ‘덕업일치’
바야흐로 ‘덕후’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좋아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즐기며, 나아가 창의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덕업일치(좋아하는 분야를 직업으로 삼는 것)’ ‘성덕(성공한 덕후)’과 같은 신조어도 생겨났다. <스타워즈> 마니아로, 국내 최초의 레고 사진가가 된 이제형도 성덕이라 칭할 만하다. 레고 사진은 그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창이자,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예술가의 밥그릇 관련 이미지

지금은 레고 사진가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 나는 16년째 교량 설계 업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회사원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러 교량을 설계해왔는데, 2015년에는 강원도 춘천 중도에 들어서게 될 레고랜드 진입교량을 설계하기도 했다. 이만하면 레고와 정말 각별한 인연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어쨌든 토목 설계 엔지니어인 내가 어떻게 레고 스타워즈 사진을 찍게 되었는가 하면, 이는 내가 <스타워즈>의 광팬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1980년대 초 KBS <토요명화>를 통해 접한 <스타워즈>(1977년작)로부터 시작된 나의 팬심은 지금껏 변함이 없고, 사진 또한 약 30년간 함께해온 취미다. 과거에는 주로 인물사진을 촬영했고, 레고를 전문적으로 촬영하기 시작한 것은 7년 정도 됐다. 아들과의 공통 관심사를 찾기 위해 시작한 일이지만 이제는 내가 더 깊이 빠져 버렸다.

레고 사진가는 어떤 일을 할 수 있을까

레고 사진가라는 개념이 생소하거나, 레고 사진가로서 과연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아마추어 사진가’를 자처했던 나도 처음에는 레고 스타워즈를 예술적으로 담고 싶다는 바람 외에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사진이 하나둘 쌓이기 시작하면서 여러 차례 개인전을 열게 됐고, 레고를 이용한 공연과 다양한 협업을 하는 모아이(MOAICO) 소속으로 호텔과 컬래버레이션 전시를 진행하는 등 점차 활동의 폭을 넓혀갈 수 있었다.
국내 최대 포털 사이트의 의뢰를 받아 레고 사진으로 웹툰을 제작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는 사진이 아니라 의뢰인이 원하는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점이 부담스러울 때도 있지만 레고 사진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수 있음을 확인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이미 해외에서는 꽤 많은 작가가 레고 사진가로 활동하고 있다. 키덜트 문화가 대중화하고 창작 영역이 확장된 만큼 관련 콘텐츠에 대한 요구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분야는 특수하고, 가능성 있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사진에 이야기를 담다

레고의 모토는 ‘단순함(simplicity)’이다. 내 사진도 언뜻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레고 사진 촬영에는 생각보다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사진 한 장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모두 담아야 하므로 구상 작업에도 오랜 시간이 소요되며, 국내에는 레고 부품이 많지 않아 사진 작업 전 2~3주 정도 여유를 두고 필요한 부품을 해외에서 주문해야 한다. 회사 업무와 사진 작업을 병행해야 하는 나로서는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에 근무 중에 갑자기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을 메모하고 스케치해두었다가 휴일에 촬영하고 있다.
레고 피겨는 구조상 팔과 다리는 앞뒤로만, 머리는 좌우로만 움직일 수 있다. 따라서 피겨의 표정과 포즈가 입체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내는 일 또한 쉽지 않다. 수차례 촬영 각도를 조정하고, 조명 위치를 변경해야만 비로소 한 장의 사진이 완성된다. 이는 레고 사진 촬영만의 특수성이자 어려움이지만, 또한 매력이기도 하다. 수많은 과정을 거쳐 완성한 사진을 보며 사람들이 레고가 살아 있는 것 같다고 말할 때 정말 보람되고 즐겁다.
작업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스토리텔링이다. 사진에 이야기가 녹아 있지 않다면 제품의 자료 사진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다. 내 사진이 국내보다는 해외에 먼저 알려졌고, 현재도 해외에서의 반응이 더 좋기 때문에 언어의 장벽을 넘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담으려 노력한다. 조명의 중요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사진은 빛을 담아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빛을 얼마나 아름답게 포착해내는지가 매우 중요하다. 사진 속 상황과 어울리는 조명을 가미함으로써 표현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더욱 힘을 실어줄 수 있다.
지난 7년간 영화나 그림 등 유명 작품을 패러디하거나 사회적 메시지를 해학적으로 표현하는 등 다양한 작업을 해왔지만, 가장 높은 비중을 둔 것은 아무래도 <스타워즈>의 말단 병사인 스톰트루퍼의 일상을 그려내는 작업이었다. 사실 스톰트루퍼는 하루하루가 고달픈 우리네 샐러리맨들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다. 회사원으로서 겪게 되는 희로애락을 캐릭터에 담아 재미있는 사진으로 만들어온 것이다.
스톰트루퍼는 값진 경험을 선물해준 고마운 캐릭터이기도 하다. <사막에서의 캠핑>이라는 사진 한 장 덕분에 있었던 일이다. 제국군 병사인 이들이 사막을 행군하는 도중 캠핑을 하며 통기타를 튕기고 마시멜로를 구워 먹는 모습을 표현한 사진인데, 영국 DK출판사의 요청으로 이 사진이 전 세계에 출판되는 레고 서적에 실리게 됐다. 세계 각국의 레고 팬들이 내 사진을 볼 수 있다니, 정말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

레고 사진가를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할 만큼 전문적인 영역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릴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레고 사진 촬영이 매우 전문적인 분야라고 생각한다. 레고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탄탄한 스토리텔링, 뛰어난 사진 기술을 접목하지 않으면 결코 좋은 작품을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레고 사진가에 도전하는 이도 점차 늘어날 것이라 믿는다. 이들에게 나는 완벽한 기교보다는 레고와 사진에 대한 애정을 갖고 나만의 이야기를 구상하는 데 몰두하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이런 격려도 함께 덧붙이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한 일이라고 말이다.문화+서울

글·사진 이제형
교량 설계 엔지니어이자 레고 전문 사진가. MOAICO 소속. SNS에서는 ‘장군운전병’이라는 닉네임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취미로 즐겨온 사진을 레고에 접목해 작품 사진을 찍기 시작하면서 개인전을 수차례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www.stormtroop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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