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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공연계에 만연한 임금 체불 문제 스태프는 웁니다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의 제작사 대표가 공연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공연 스태프에게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소식이 SNS에서 퍼져 논란이 되었다. 제작사 대표는 해명에 나섰지만 약속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고, 사실상 임금을 포기한 스태프가 더 많은 상황이다. 국내 공연계에서 출연료 미지급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이 된 지 오래다.

“공연 끝난 지 1년이 지난 이 시점까지 저를 포함한 진행팀 전원이 1원도 받지 못했습니다. 1원도 주지 않은 대표는 ‘지방 공연이 끝나면 주겠다’ ‘연말 지나고 주겠다’ 하루하루 미루다 끝내는 ‘노동청에 고소한 걸 취하하지 않으면 줄 수 없다’라고 하며 페이 지급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18일 페이스북에 올라온 한 공연 스태프의 고발은 삽시간에 퍼지며 화제로 떠올랐다. 논란이 된 작품은 고두심, 이종원, 이유리, 안재모, 김영옥 등 TV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제작사 대표는 지난해 같은 공연에 출연한 스태프 수십 명의 보수를 지급하지 않았고, 일부 배우와 연주자도 출연료를 다 받지 못했다.
구설에 오른 정철 스토리팜 대표는 “형편이 어려워서 임금 지급을 미뤘지만, 이번 공연에서 수익을 내 갚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페이스북에 글을 쓴 위 스태프가 소속됐던 무대 크루 10여명의 밀린 임금 1,000여만 원을 갚았을 뿐이다.
보도 이후 임금과 출연료를 받지 못한 배우와 스태프들은 1인 릴레이 시위에 나섰지만 한 달이 넘는 시위에도 달라진 것이라고는 피해자 상당수가 희망을 접었다는 사실뿐이다. 지난해 이 작품에서 조연출을 맡았던 오택상 씨는 “임금, 출연료를 못 받은 사람이 30~40명인데, 기사가 나간 후 대표 태도를 보고는 이제 다들 잊으려고 한다. 끝까지 받아내겠다는 사람은 4~5명”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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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5년차라면 누구나 경험

사실 국내 공연계에서 임금 출연료 미지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웁니다>는 다만 TV스타들이 대거 출연하는 상업 공연에서 임금체불 사태가 벌어져 수면으로 떠올랐을 뿐이다. “메르스 여파로 관객이 적었다”는 대표의 말과 달리 “매 공연 80% 이상 객석이 찼던 작품”(조연출 오택상)이고, 그래서 재공연에 또다시 호화 캐스팅을 했고, 이걸 돈 떼먹은 스태프들에게 미리 말하지 않고 대규모 기자간담회까지 열어 이 소식을 ‘기사로’ 알게 된 피해자들이 줄줄이 언론사에 제보하며 일반에 알려졌을 뿐이다.
연출 15년차인 오씨는 “대학로에서 임금체불은 종종 있는 일”이라며 “15년 전부터 못 받은 경험이 계속 있어왔기 때문에 저도 (<…웁니다> 임금 체불에 대해) 악착같이 받으려고 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분야에서 일하면 무조건 떼인 임금 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겠는데 예술 장르라 돈 얘기 자꾸 꺼내기가 민망하다”는 게 이유다.
“대기업이 투자하는 대형 뮤지컬 아니면 이런 위험은 언제나 산적해 있죠. 작품 10편 중 7편의 임금을 미뤄서 받았던 거 같아요. 받더라도 100만 원에 계약했는데 흥행이 안 돼서 50만 원을 받는 경우도 많죠.” 오씨는 “대학로 극장에서 5년 이상 일한 배우, 제작진 중 임금을 미뤄 받거나 떼인 경험이 없기는 힘들다”고 덧붙였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9월 ‘한국예술인복지재단’으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불공정행위 신고 규정이 신설된 2014년 이후 ‘예술인 복지법’에 따라 신고된 불공정행위 283건 중 92.2%에 해당하는 261건이 ‘임금 등 미지급’이었다. 261건의 ‘임금 등 미지급’ 사건 중 금액을 특정하기 어려운 15건을 제외한 246건을 살펴보니 25.6%가 100만 원 이하 금액을 미지급했다. 100만~200만 원 이하는 18.3%, 200만~300만 원 이하는 19.5%, 300만~400만 원 이하는 5.3%, 400만~500만 원 이하는 6.5%, 500만 원 초과도 24.4%나 됐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1 지난해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제작에 참여했다 임금이 체불된 스태프의 일인 시위 장면. 8월 대학로에서 일인 시위를 벌인 이들은 거듭된 요구에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자 최근 공연 중인 극장 용 연습실 앞에서 시위하고 있다. (페이스북 화면 캡처)
2 올해 재공연을 진행하는 악극 <불효자는 웁니다> 포스터.

만연한 구두계약·열정페이 문제 풀어야

제작 관행상 구두계약이 빈번한 것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예술인 복지법상 불공정행위로 신고된 261건 중 절반이 넘는 151건(57.9%)이 계약서를 쓰지 않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정대경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은 “공연판 자체가 선후배, 동료가 제작하고 출연하기 때문에 지금까지는 계약서 쓰는 게 튀는 행동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사고가 나면 보호해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신인들에게 ‘경험 쌓는 기회’라며 열정페이를 요구하는 분위기도 이유로 꼽힌다. 지난 8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예술인 패스를 발급받은 연극 분야 종사자 55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경력을 쌓기 위해 돈 한 푼 안 받고 일한다”는 ‘자발적 무급’이 12.3%나 됐다.
이런 연극인들의 임금 출연료 체불이 발생하면 어느 조합이 나서서 해결할까. 정답은 ‘한국에는 없다’는 것이다. 정대경 이사장은 “개인적으로 연극협회가 유니온 형태의 성격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현재는 임금체불 문제를 책임지고 담당하는 곳이 없다. 그나마 최근 정부가 모든 공연 지원사업에 표준계약서 조항을 강제한 게 전부”라며 “계약서를 썼더라도 막상 체불이 되면 중재할 기구가 없다”고 지적했다. “장기적으로 표준계약서를 지키지 않으면 제작자에게 강력한 페널티를 부과하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해결을 위해서 예술인복지재단이 설립됐는데 구체적으로 중재에 나서야 한다고 보고요. 재단에 권한이 강화된다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문화+서울

글 이윤주
한국일보 문화부 기자
사진 제공 PRM
(<불효자는 웁니다>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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