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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10월호

음악분수 연출가 이시재 물결을 춤추게, 관객을 즐겁게
공원이나 거리에서 시원하게 쏟아지는 분수를 만나면 그 물줄기의 움직임에 잠시나마 마음이 시원해지곤 한다. 즐거움을 더하는 것은 해가 저물고 음악과 조명이 분수에 함께할 때다. 리듬에 맞춰 다양한 형태의 물줄기를 뿜는 ‘음악 분수’. 이런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는 것은 보이지 않는 데서 작업하는 연출가다. 즐겁지만 조금은 고독한 일일 수도 있다.

예술가의 밥그릇 관련 이미지1 인천 청라호수공원 음악분수.

예술가의 밥그릇 관련 이미지

드디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위해 내가 출근한 곳은 사무실이 아닌 분수대 공사 현장이다. 서울 인근의 현장도 있지만 대부분은 몇 시간을 차로 가야 하는 곳이다. 분수대 현장이 여러 지역에 있다 보니 다양한 곳을 방문할 수 있는데 이는 참 재미있는 일이다.
출근하는 현장은 분수대 공사가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 있다. 이후부터는 분수를 연출하는 나의 손길이 필요하다. 나는 음악분수 연출가다. 음악에 따라 때로는 여리게 때로는 강렬하게, 화려하게 또는 슬프게 분수를 연출해 관객의 반응을 끌어내고 제품의 가치를 높이는 작업을 한다.
누군가는 연출하는 직업을 화려하거나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일단 여기는 공사 현장이다. 현장 대부분은 쇼룸에 전기 설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에어컨이나 온풍기를 가동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하실에서 CCTV 하나에 의지하거나, 볕이 뜨거운 광장의 한 귀퉁이에서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여러 개의 분수 아이템으로 역동적인 움직임을

연출의 시작은 분수대 현장을 구성하는 아이템의 종류를 파악해 연출할 수 있는 물줄기의 형상을 머릿속에 구상하는 것이다. 그런데 막상 대부분의 현장은 시공된 분수대 아이템의 종류도 파악하기 전에 분수대 완료 시점이 먼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연출 작업에 주어지는 시간이 제한적이다.
분수 연출은 분수 아이템에 따라 결정되는데, 아이템이 많을수록 다양한 연출을 기대할 수 있다. 작업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 많아지므로 적어도 5가지 이상의 아이템을 가져야 연출하는 데 문제가 없고 연출력도 좋아진다. 분수의 아이템은 물줄기의 형태, 배치와 움직임 형태, 물줄기 경사도 등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된다. 수직으로 높이 솟아오르는 고사분수, 나무 형태의 트리분수, 물이 뿜어 나오는 힘에 의해 회전하면서 춤추는 발레분수, 여러 개의 물줄기가 넓게 펼쳐지는 선플라워분수, 노즐을 다양한 방향으로 제어해 연출할 수 있는 멀티분수 등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아이템 중 몇 개씩 조합해 하나의 음악분수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예술가의 밥그릇 관련 이미지2 영천 금호강 음악분수.

정확한 시간, 음악과 빛에 대한 감각도 중요

분수는 물을 밀어주는 펌프가 필요하고, 펌프에서 밀어주는 물이 배관을 따라 이동하면 아이템 각각의 노즐을 통해 분출되는 것이 기본인데, 분출되는 물줄기를 단속함으로써 연출력을 배가시키는 자동 밸브를 설치한다. 그리고 여기에 조명을 설치해 물줄기를 밝게 비춰준다.
연출 작업을 하기 전에 펌프, 밸브, 조명을 고려한 다양한 형태의 분수 패턴을 묶음, 매크로 등의 방법으로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분수 패턴을 음악의 적절한 부분에 적용함으로써 음악의 해당 부분에서 분수 패턴이 연출되도록 한다. 따라서 분수 패턴은 시작 시간과 종료 시간, 분수의 속도와 높이를 적절히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너무 많은 아이템을 동시에 연출하면 지저분해 보이고, 너무 적게 연출하면 전체적으로 초라해 보일 수 있다.
한 가지 더 보탤 사항은 다양한 색의 조명이다. 조명은 분수를 더욱 화려하게 하는데, 이를 제대로 확인하려면 밤에 작업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음악분수는 밤에 조명 연출 작업을 하고, 밤에 공연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렇듯 많은 조건을 고려하다 보니 집중력이 필요하고, 한 곡의 연출을 완성하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이렇게 몇 곡의 연출이 완성된다면 20~30분 동안의 음악분수 공연을 진행할 수 있다. 아무리 연출을 잘하고 이를 재생시킬 수 있도록 공연 준비를 했더라도 막상 공연이 진행되면 연출자는 항상 긴장의 연속이다. 그러나 공연이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관객들이 즐거워하면 그것만으로도 긴장은 확 풀린다. 이렇게 비로소 지금의 현장에서 연출 작업이 완료되면 나는 나의 손길을 기다리는 다른 현장을 찾아가 새작업을 시작한다. 음악분수 연출은 특수한 직업이다. 기계적인 원리와 제어 능력에 더해 음악과 빛에 대한 감각, 창의성을 발휘해 작업하고 이를 관객과 나눈다는 점에서 예술가의 영역을 공유한다. 아직 국내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일이라는 점에서 도전해볼 만하고, 현장 업무를 즐기는 이들에겐 매력적인 일임에 분명하다.문화+서울

글·사진 이시재
플러스파운틴(주) 연구소 소속 분수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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