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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테이핑 아티스트 조윤진 독특한 질감과 색감으로 인물의 감정을 표현하다
박스테이프는 조각 난 것들을 이어 붙이거나 봉투, 박스를 단단히 봉하는 데 주로 사용하는 재료다. 우리 눈에 익은 ‘누런색 박스테이프’를 물감으로 본 것은 작가가 지난한 탐색의 과정에 얻은 ‘신의 한 수’였다. 다양한 색상의 박스테이프를 이용해 독특한 인물화를 그려내는 조윤진 작가의 이야기다. 그에게 테이프는 작업할수록 매번 다른 색과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신묘한 재료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작품에 표현된 인물은 대체로 조윤진 작가가 좋아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라고. <Thom Yorke>(2015, 위)와 <Untitled>(2015).

계속해도 좋은 그림, 단 ‘남과 다른’ 방식으로

외동딸인 나는 세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그 외로움과 심심함을 그림을 그리며 이겨낸 것 같다. 책을 봐도 글은 안 읽고 그림만 보며 따라 그린 기억이 난다. 그림을 그릴 때마다 사람들이 ‘잘한다’ 칭찬하니 그게 좋기도 했고, 어쩌면 어릴 적부터 그림을 그리며 사람들과 소통했는지도 모르겠다. 외로움을 달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 받기 위해 어린 시절 시작한 그림 그리기는 초·중·고교 시절까지 계속돼 원하는 대학 입학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그때부터 과제는 뒤로하고 그림도 안 그리며 대학 시절 원 없이 펑펑 놀았다. 서양화과만 졸업하면 바로 작가가 될 줄 알았던 나는 2011년 대학 졸업 후 운 좋게 작업실을 얻게 되었지만, 내 작업은 하지 못하고 동네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치며 돈 벌기에 급급했다. 돈만 좇던 내게 찾아온 것은 심한 우울증. ‘어떤 그림을 그려야 뜰까? 어떻게 해야 내 스타일을 찾을 수 있을까? 유명해지지 못할 것, 그저 그렇게 살다 갈 인생, 왜 태어난 것 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져 3개월을 보냈다. 그러다 문득 이 상황이 지긋지긋해진 나는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다시 연필을 잡았고, 대학교에 입학했을 때의 초심으로 돌아가 하루에 하나씩 내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무조건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그림을 그리면서 항상 생각만 하고 시도하지 않았던 것들을 하게 되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테이프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인지 일반적인 재료에 싫증을 잘 내는 편이었고, 그래서 물감 대신 어떤 재료가 있을까, 다른 재료로 어떻게 하면 내가 원하는 느낌을 낼 수 있을까 고민했다. 처음엔 주로 신문지나 잡지, 색종이를 사용해 콜라주를 하다가, 우연찮게 누런 박스 테이프, 문구점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바로 그 테이프를 두 번 겹치게 된 것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아, 이거다. 나에게 테이프는 물감이 될 수 있겠다!’

매일 새로운 색상을 발견하고 새롭게 인물을 표현한다

박스테이프의 색상은 한정적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는 의외로 많지만(12색) 물감만큼 다채롭지는 않다. 그러나 그 한정적인 색을 이용해 인물과 사물을 표현하는 것이 흥미롭고, 색테이프가 여러 겹 중첩될 때 나타나는 독특한 느낌은 어떤 재료보다 나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물감을 섞듯 테이프의 색상도 섞으면 다른 색을 낼 수 있는데 여기엔 물론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빨강과 파랑을 섞으면 보라색이 되는데, 물감은 섞는 순서가 바뀌어도 같은 보라색이 되지만 테이프는 붙이는 순서에 따라 다른 색이 나올 수 있다. 대학 시절 내내 유화를 다뤘기 때문에 색을 만드는 데 어려움을 느끼는 일은 없었고 그래서 테이프도 물감이나 다른 재료와 별반 차이는 없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다만 나는 매일 테이프를 붙이며 새로운 색을 발견하는 것 같다. 색상표를 만들어놓으면 편하지 않으냐고 주변 사람들이 말하지만, 어떤 매뉴얼을 만들기보다 그 새로운 빛이 나에게 스며들었으면 한다.
테이프를 이용해 주로 표현해온 것은 사람이다. 작가, 배우, 뮤지션 등 셀러브리티가 많고 슈퍼히어로 작업도 많이 알려졌는데, 이들은 대체로 내가 좋아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다. 스케치하고 테이프를 붙여 인물을 표현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작품에 그 인물의 감정이 담겼으면 하는 점이다. 그림을 그리고 붙일 때 나는 내가 그 사람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림에는 자연스레 내 감정도 고스란히 담기게 된다. 인물이 지닌 감정을 잘 살리는 동시에 그림을 통해 ‘진짜 조윤진’이 되고자 하는 바람도 새긴다.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1 <Andy Warhol(3)> (2014).
2 <JOKER>(2014).

‘반복에 지치지 않는’ 삶을 일구도록

지금도 나는 송파구 문정동의 지하 세계에서 ‘미술의 신’이라는 작은 화실 겸 작업실을 운영하고 있다. 수강생을 가르치는데, 가르치면서 그들에게 배운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누군가를 가르치는 일은 여러모로 지금의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함께 공부한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내 작업을 하며 기업과도 종종 일하게 되는데 함께 일하며 의견을 조율하고 맞춰가는 과정 역시 흥미롭다. 작업실에서 혼자 그림만 그려서는 나를 세상에 알리기 어렵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점에서 기업과의 작업은 내게 여러모로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느낀다.
얼마 전에는 ‘반복에 지치지 않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는 글귀를 본 적이 있다. 그걸 보고 정말 많이 공감했다. 무엇이든 반복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없는데 그 반복에 지치기도 하지만 언제든 새로운 것을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하루하루가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역시 만만치 않은 일임에도 다행히 나는 그림 그릴 때만큼은 아무 생각도 안 하게 된다. 매일같이 하는 것들이 매일 새롭다. 작업은 너무나 즐거운 일이지만 봐주는 사람이 없다면 어려운 일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과 만나고 새로운 것을 발견해내고 반복을 거듭하는 데 지치지 않도록 노력하려고 한다. 작업이 언제나 우선순위인 작가로서의 삶을 오래도록 이어가고 싶다.문화+서울

사람과 사람 관련 이미지

글·사진 조윤진
성신여대 서양화과 졸업. ‘미술의 신’이라는 화실을 운영하며 박스테이프를 이용해 인물을 개성적으로 표현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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