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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9월호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디자인 표절 논란 ‘진정성 결여’가 표절만큼 실망스럽다
지난 6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국가 브랜드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 (CREATIVE KOREA)’를 발표했다. 그러나 디자인 표절 논란이 불거지면서 국가 브랜드 선정을 둘러싼 복합적인 문제가 도마에 함께 올랐다. 표절 논란을 차치하더라도 디자인의 완성도 자체가 떨어지며 문구 또한 진부하다. 문체부 측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명했지만 진짜 문제는 감각과 진정성이 결여됐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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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부가 지난 6월 발표한 국가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CREATIVE KOREA)’에 대해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이 비난을 퍼부으면서 많은 비판과 동조의 말이 여기저기서 쏟아졌다. 비판의 요지는 ‘크리에이티브 코리아’가 프랑스 무역투자 진흥청이 사용하는 투자 촉진 슬로건인 ‘크리에이티브 프랑스(CREATIVE FRANCE)’를 표절했다는 것이다. 문체부는 법적 검증을 거쳤고, 형태나 색채 면에서도 창의적이라고 반박했다. 손 의원과 경력 면에서 쌍벽을 이루는 여당권 홍보 실력자는 ‘작업자의 고뇌가 느껴진다’며 추상적 감상 즉 어떤 것도 설명하지 못하는 단어로 이 디자인을 옹호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안의 핵심은 법적 해석의 문제나 작업한 사람들의 고뇌, 결단 등 디자인과 관계없는 요소들로 설명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창작물이 지닌 문제는 디자인 요소의 조합이 만들어내는 감각의 표절이라는 것이다. 감각은 결코 변명을 허락하지 않는다. 단맛의 정도 차이는 인정할 수 있을지언정 단것을 짜다고 할 수는 없다. 어디에건 이 두 슬로건이 나란히 걸릴 때 그중 하나는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뻔하지 않을까? 이미 크리에이티브 프랑스는 ‘크리에이티브 발명’ ‘크리에이티브 정신’ 등의 단어와 이미지를 넣고 세계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한국이 어떤 식으로 사용하건, 그 사용법에서 프랑스를 모방하는 길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다.

이슈&토픽 관련 이미지한국의 문화와 대한민국 브랜드 ‘크리에이티브 코리아’를 홍보하는 사이트(creativekorea.kr)의 메인 페이지.

디자인의 조형적 완성도조차 떨어진다는 문제

표절 논란을 떠나 디자인의 조형성을 잠깐 보자. 첫 번째 너무 평이하고 경직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형상은 생명력 즉 움직임의 기미를 품고 있을 때 공감을 얻는다. 자연이 언제나 경이로운 것은 살아 있는 기운이 그들만의 고유한 형상을 창조해내기 때문이다. 글자체가 레귤러 폰트(정체 글자체)여서 프랑스의 장체와 다르다는 것은 맞지만, 이 글자가 과연 창의적인지는 의문이다. 타이포그래피(글자체 디자인)에서 글자와 글자 사이를 자간이라 하는데, 대부분 한 단어인 브랜드 디자인의 결정 기준은 시각적 자극성이다. 그리고 이는 생명체의 핵심인 유기적 구조성에 의해 결정된다.
하나하나가 건축물 같은 글자체들 간의 자간을 좁혀 순식간에 읽히는 깔끔한 한 덩어리로 할 것인지, 아니면 확실히 띄어 쓰거나 글자체의 변형을 줄 것인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이 디자인에서는 단어가 순식간에 들어오지 않는다. 글자 사이의 공백이 드러나면서 윗줄이 고르게 맞춰지지 않는 시각적 착각을 주기에 유기적 밀도감이 떨어진다. 브랜드 사업 65억 원 중에서 고작 2,020만 원만을 디자인 비용으로 썼다니 그 결과인 듯하기도 하다. 프랑스의 로고 역시 그 형상이 특출하지 않다. 하지만 이들은 한 번에 읽히는 구조를 지니며, 날카로운 세모의 악상테귀(accent aigu)는 온라인 화면에서 반짝반짝 움직이는 세 갈래 점의 잊지 못할 자극으로 폰트의 평이함을 덮고 있다.
한국의 경우, 알파벳 ‘I’만을 소문자로 만들어서 원을 얹어 프랑스 것의 모방 의혹만 짙게 하고 있다. 색채는 채도(색의 순도)가 낮아 아이들의 색감에 가깝다. 이 정도의 강도를 지닌 색채는 강렬한 서사를 핵심으로 하는 한류적 감성, 또 하나의 한국적 코드라는 열정을 표현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슬로건 자체가 같고, 디자인적 유기성도 떨어지는 데다가 색채, 구성 방식, 형상 등 거의 모든 것이 프랑스의 것과 같으니 어찌 어설픈 모방 혐의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인가?
게다가 이런 모방 지적에 대한 답변 또한 문제의 핵심에 도달하지 못한다. 단어의 동일성 지적에 대해 ‘누구나 쓸 수 있는 단어’라는 대답을 한다. 내가 쓰려고 해도 상대방이 이미 선점했다면 그것이 아까워도 버리는 것이 창작 아닐까? 학생들이 학위 논문을 쓸 때조차 같은 주제의 기존 논문을 참고하는 이유는 그것과 다른 것을 주장하기 위함이라는 기본적인 상식에 위배되는 대답이다. 기존의 것을 더 특출 나게 쓰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아류, B급의 불명예를 벗어나지 못한다. 또한 그런 지적에 대해 “변리사가 괜찮다고 한다”는 설명은 아무래도 궁색하다. 디자인을 변리사가 결정할 문제인가? 수십억 원의 국민 세금으로 만들면서 꼭 이렇게 구차한 변명으로 국민의 얼굴에 대해 해명하는 현실이 대한민국 디자인의 수준인지 의문이 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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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브랜드, 설득 의지도 자존심도 없나

또 하나, 국민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빅데이터를 거론하는 부분이다. 공모를 했고, 3만 999건의 공모 작품과 약 127만 건의 ‘한국다움’에 대한 키워드를 수집한 결과 창의, 열정, 화합을 핵심 가치로 뽑아내 여기서 ‘크리에이티브’(창의)가 도출되었다고 한다. 좋은 단어이고 현실을 반영하지만, 그것을 모두에게 공감을 줄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개념으로 만드는 것이 브랜딩 디자인의 조건이 아닐까. 미래 사회학자 닐 포스트먼(Neil Postman)은 사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지를 설문 조사한 과학자를 비꼰 적이 있다. 수치와 통계를 들이대면서 과학적 조사 방식으로 진행해 나온 결과이니 꼼짝 마라 하는 태도를 비웃은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 또한 인문학이나 사회학에서의 과학성은 설득력이지 수치와 도표가 아니라고 하면서 자연과학적 통계 방식에 매몰된 인문사회학 연구 풍토에 일갈을 가했다. 만약 문체부가 과학적 통계에 자신 있다면 일반인 집단, 무작위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이 결과에 대한 설문 조사를 해보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이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그 과정에서 힘을 쓰지 못하거나 그 과정을 몰랐다고 하는 국가브랜드개발추진단 전문가들의 역할을 보자. 그들은 이것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결정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전문가들이 비전문적인 힘에 의해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지 못할 때 그 명칭을 거부하는 자존심은 보여줘야 그나마 존재감을 인정받지 않을까. 한국에 디자인 비평 문화가 자리 잡지 못하는 것도, 지난 70년간 디자인계에 형성된 학맥이나 인맥이 강해서일 것이다. 말로써 감각을 해석하다 보니 선후배의 감정이 어긋나버릴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자문 정도로 전문가의 사회적 역할을 포지셔닝하면서 그 역할이 주는 권위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진정한 크리에이티브는 모든 허식에 대한 질문, 사안에 대한 진정성 있는 자세에서 탄생할 것이다. 전문가 집단이 이러한 자세를 갖출 때 더 큰 권력에 좌우되는 한국의 공공디자인은 비로소 진정한 창의성의 발판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문화+서울

글 조현신
국민대 테크노디자인 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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