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만에 재연되는 뮤지컬 <스위니 토드>에는 최고의 티켓파워를 지닌 배우 조승우, 옥주현이 캐스팅돼 공연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양준모의 토드와 전미도의 러빗 부인도 캐릭터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8월 공연의 정점에 달할 <스위니 토드>와 <위키드>는 천편일률적인 뮤지컬 시장에 기분 좋은 균열을 내는 존재들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뮤지컬 거장 작사?작곡가 스티븐 손드하임의 그로테스크한 매력으로 점철된 <스위니 토드>, 또 다른 뮤지컬 거장 작사·작곡가 스티븐 슈왈츠의 발칙하면서도 클래식한 정서가 기분 좋게 공존하는 <위키드>는 작품성뿐만 아니라 흥행성까지 갖춘 수작들이다. 나란히 이번이 두 번째 라이선스 무대로 관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무대는 배우의 장르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라는 말도 있지만 <스위니 토드>와 <위키드>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그 자체로 장르라 할 만하다. 대중적인
티켓 파워도 갖춘 이들이다. 특히 저마다 투 톱의 시너지가 상당하다.
9년 만에 다시 오르는 <스위니 토드>는 사실 국내 초연 당시
흥행 면에서 재미를 보지 못했다. 류정한, 임태경, 홍광호라는 막강한 캐릭터를 자랑했으나 쇼뮤지컬이 뮤지컬의 전부라 여기던 당시에 호응을 얻지 못한 건 당연했다. 당시보다 터치가 가벼워지긴 했으나 이번에는 화력이 더 세졌다.
조승우, 옥주현이라는 최고의 티켓 파워를 자랑하는 남녀
뮤지컬 배우가 만나 공연 전부터 화제가 됐다. 자신의 가정을 파탄시킨 터핀 판사에게 복수하는 과정에서 광기의 살인을 저지르는 이발사 ‘스위니 토드’를 연기하는 조승우는 자신이 그간 보여준 연기의 총합을 보여준다. 토드가 내놓은 시체로 인육 파이를
만들어 파는 ‘러빗 부인’ 역의 옥주현은 그간 쌓은 우아한 이미지를 내려놓고 수다스럽고 어이없이 최후를 맞는 캐릭터의 종국을
맞춤형으로 보여준다. 조승우, 옥주현뿐만이 아니다. <스위니 토드> 초연 배우 중 한 명인 양준모의 토드는 강렬한 광기의 서늘함, 귀여움까지 갖춘 전미도의 러빗 부인은 드라마틱한 캐릭터의 변화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위키드>의 캐스팅도 만만치 않다. 흥행 열풍을 일으켰던
2013년 라이선스 초연의 진용 못지않다. 당시 초록 마녀 엘파바
역을 맡았던 옥주현의 빈자리는 이번에 MBC TV <복면가왕>의
스타 차지연이 채웠다. 누구에게도 절대 뒤지지 않는 가창력과 탄탄한 체구를 자랑하는 차지연은 겉모습은 거칠게 보이지만 내면은 누구보다 순수한 주인공 엘파바에 그대로 겹쳐진다. 발랄하고 유쾌한 백색마녀 글린다 역의 정선아는 초연에 이어 명불허전 연기를 선보인다. 역시 초연에서 엘파바 역으로 깜짝 발탁, 스타로 떠오른 박혜나의 엘파바는 여전히 믿음직스럽다. 새로 글린다 역에 가세한 아이비는 사랑스러움을 더해 자신만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차지연과 박혜나가 엘파바를, 정선아와 아이비가 글린다 역을 맡은 <위키드>도 아름다운 음악과 의미있는 메시지를 전하며 기대감을 높인다.
탄탄한 음악성 그리고 감각적인 풍자까지
아무리 무대가 배우의 장르라지만, 원작의 힘이 탄탄하지 못했다면 모래성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스위니 토드>와
<위키드>는 견고한 성채다.
특히 음악 면에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스위니 토드>는 상업적인 뮤지컬 장르에서 이례적으로 전위적인 음악과 무대
언어를 선보이는 손드하임의 정점이다. 불협화음으로 점철된 넘버들은 긴장감을 조성하는데 귀를 불편하게 하는 가운데서도 선율만 흐르는 곳에서 마치 거기 있었다는 듯이 배어나오는 서정성 등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쾌감을 안긴다. 클래식, 재즈, 팝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면서도 귀에 감기는 멜로디를 절대
놓치지 않는 <위키드>의 넘버들은 마치 놀이공원에 놀러온 듯한
설렘을 안긴다. 축제 같은 콘서트로 유명한 영국의 팝 스타 미카(MIKA)는 <위키드>의 대표 넘버인 <파퓰러>를 재해석해 자신의
공연마다 들려줄 정도다.
두 작품은 아울러 생각할 거리도 던진다. 빈부 격차가 심하던 산업혁명 시기의 런던이 배경인 <스위니 토드> 1부의 마지막은 토드와 러빗 부인이 시체를 가지고 파이를 만들기로 결심하는 장면이다. “선거철에 별미인 정치인 뱃살은 뻔한 맛” 등은 현재에도 통용 가능한 농담이다. 미국 동화작가 L. 프랭크 바움의
소설 <오즈의 마법사>의 이야기 중 대중이 알지 못하는 이야기를
전하는 <위키드>에서 엘파바를 마녀사냥하는 권력자와 대중의
모습은 현재 온?오프라인 공간에서 쉴 새 없이 벌어지는 현실이다. 남들과 다른 초록 피부로 부당함에 맞서는 엘파바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책임감 있게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 글 이재훈
- <뉴시스> 문화부 공연담당 기자
- 사진 제공 오디컴퍼니, 클립서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