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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8월호

소규모 생산자들의 흥미로운 기지 ‘소생공단’ 삶을 채우는 물건, 삶이 되는 생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분주하게 마우스를 클릭하는 때가 있다. 싼값에 쉽게 산 물건은 버리기도 쉬워진다. 생산과 소비가 철저히 분리된 현실에서 삶의 공허함이 커지는 때, 한 켠에서 ‘손노동’의 가치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직접 무언가 만들어내는 것, 잘 만든 물건을 오래 아껴 쓴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소생공단에서 그 답을 조금 구해보았다.

공간, 공감 관련 이미지

물건의 문화적인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는 공간

지난 7월 초 마포석유비축단지에 자리한 ‘소생공단’의 오프라인 매장이 재정비하고 문을 연다는 소식이 들렸다. 소생공단은 ‘소규모 생산자 공업단지’를 줄인 말로, 한국의 창의적인 소규모 생산자를 찾아 그들을 알리고, 정성 들여 만든 물건에 이를 쓰는 사람의 아끼는 마음이 묻어나 사물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끔 하는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곳이다. 2013년에 시작된 소생공단은 2015년 홈페이지를 열고 소규모 생산자들의 제품을 홍보·판매해왔으며, 오프라인 매장을 열어 물건을 직접 보여주는 ‘쇼룸’ 및 생산자들이 강사로 참여하는 워크숍을 운영해, 관심 있는 이들이 물건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고 있다.
이곳의 대표인 이정혜 씨는 디자이너로 18년 정도 활동하다 ‘소생공단’이라는 프로젝트를 구상하게 됐다. 특정 산업 안에서 클라이언트와 협업해 제품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의 역할에 한계를 느끼던 때였다.
“해외에서는 ‘디자이너=메이커(maker)’라고 인식하기도 하는데 한국은 다르죠. 책상 앞에 앉아 도면을 그려 제조업체에 보내면 그곳에서 생산하는 식으로, 구상과 실행이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이 있는데, 디자이너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한계에 많이 부딪혔고 이 직업에 대한 정의가 바뀔 때도 되었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기 손을 직접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생산자’로 변해가야 하지 않을까 고민했죠.”
디자이너이자 장인인 사람도 있을 수 있고, 디자인과 관련 없었더라도 새로운 물건이나 형태를 계속 만들어내는 사람들이 디자이너가 될 수 있는 환경이 그가 생각하는 바였다. 그러나 막상 생산자가 되어 물건을 팔거나 홍보하려다 보면 그 기반이 없다시피 느껴졌기에 시장을 만들고 소규모 생산자의 기반이 될 매체를 만들고자 한 것이다.
2013년 소생공단프로젝트를 착수한 이후 실제 3년 사이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노동시장이 더욱 불안정해지면서 이른바 ‘청년세대’를 중심으로 노동자로서만 사회에서 활동하기보다는 스스로 대안을 찾고 생산하면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방식에 대해 많은 관심과 논의가 진행됐다. 이 대표는 그런 흐름 속에서 일반적인 상점과는 다른 의미의 판매 공간, 문화적인 의미와 가치를 생산하는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소생공단은 조금씩 자리를 잡아 지난 7월 7일 정식으로 ‘쇼룸’을 오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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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삶은 어떻게 채워지고 있나요

소생공단이 추구하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긴 시간과 엄청난 공을 들여 몇 안 되는 좋은 물건을 만들어내는 사람(생산자)이 있고 그 물건이 매우 가치 있음을 알리는 것이 하나이고, 다른 하나는 누구나 자신의 손을 직접 움직여 물건을 만들어내는 기쁨을 나누고 그로부터 무언가 새롭게 출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불과 40~50년 전에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서 남는 시간에 산이나 들에서 나는 재료로 뭔가를 만들어냈다. 신발과 자리, 바구니를 짜거나 옷을 해 입던 것, 그 문화와 손재주는 한국에 공예의 기반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70년대 이후 새마을운동과 함께 ‘만드는 문화’가 파괴돼버리며 산업과 사람(소비자)의 영역은 철저히 분리됐다. 유럽은 산업화 과정을 먼저 거쳤지만 공예의 기반이 안정적으로 이어져 소규모 자영업자(장인)들이 생산을 계속할 수 있고 가치를 존중받으며 일반인도 공예에 접근 가능한 환경이 존재해왔다. 그에 비해 한국은 짧은 시간 안에 전통적인 기반이 뿌리 뽑힌 셈이다. 이를 조금씩, 재미있는 방식으로 회복해가려는 것이 소생공단 활동의 큰 축이다. 워크숍이 이에 해당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데, 그 방식이 조금 독특하다.
“특정한 물건을 만들어내기보다, 조금 더 원시적인 도구를 가지고 자급자족할 수 있는 활동, 자연 재료를 가지고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예를 들어 선사시대 도구인 ‘가락바퀴’를 가지고 반려동물의 털을 모아 실을 만드는 워크숍이 있어요(웃음). 인류가 동물의 털을 모아 실을 직접 뽑아낸 것을 체험해보는 것이죠. 뜨개질 워크숍을 한다면 단순히 하나의 물건을 완성하기보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형태의 물건을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직접 생산의 절차를 알려주는 거예요.”
그 과정을 체험함으로써 어떤 물건은 한 번 만드는 데 시간과 정성이 많이 들어간다는 것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꼭 필요한 물건은 아끼며 오래 간직해 쓸 수 있음을, 생산과 쓰임이 하나의 물건에 축적되는 경험을 나누고자 한다. 소생공단에서 소개하는 제품은 결코 저렴하지 않지만 그 과정을 생각하면 단순히 가격을 낮출 수는 없음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옻그릇의 경우 옻칠을 해서 습한 방에 4~5일 동안 말리고 그걸 반질반질하게 갈아내 또 옻칠을 하고 말리는 과정을 30번 반복해 완성한다. 하나를 제작하는 데 180일이 걸리는 그릇은 몇 천 년이 지나도 그대로 보존된다. 쉽게 사고 버리는 소모품으로서가 아니라, 사용하면서 삶이 충만해질 수 있는 경험을 사람들이 가져갔으면 하는 것이 소생공단의 바람이다.
“사람들이 물건에 대한 생각을 바꿀 수 있으면 좋겠어요. 많은 것을 가지지 않더라도 좋은 물건을 아껴서 잘 쓰고 물려줄 수있는 경험이 삶을 조금 더 채울 수 있지 않을까요.”
많은 이가 ‘이케아’나 SPA브랜드로 대표되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쉽게 구입할 수 있는 물건들로 실제 삶의 공간을 채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스스로 생산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진다. 이 아이러니한 풍경은 생산과 소비에 대한 많은 이의 인식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것의 방증이기도 하다. 현대인에게 흔하다는 ‘쇼핑 중독’은 대개, 끊임없이 일하지만 자신의 손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음을 확인한 ‘공허함’의 표현이다. 그 공허함을 아주 차근히, 손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듦으로써, 또는 한 물건에 담긴 집약적인 노동과 시간의 가치를 가늠해봄으로써 채워가는 것은 어떨까. 소생공단은 그런 재미있는 판을 벌려보려고, 엉뚱하면서도 실현 가능한 일들을 마포석유비축기지 내 작은 공간에서 기획하고 있다.문화+서울

글 이아림
사진 제공 소생공단 (sose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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