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어 있던 창작자들이 ‘잠깐’ 모여들었을 때
1년에 한 번 독립출판물 제작자가 한자리에 모여 각자 새로운 작업물을 선보이고 판매와 재생산을 북돋우는 시장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기획한 2009년으로 돌아가본다. 핵심 설정은 그때부터 지금까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뒤편에 있던 사람들을 갑자기 앞으로 불러 모으자.’ 이 문장을 쪼개보면 전 세계적으로 아트북페어가 부흥하는 이유에 접근할 수 있다.
제작자들은 왜 뒤에 있는가. 독립출판은 일반적으로 작가 자신, ‘나’를 내세운 작업을 기초로 한다. 만든 사람의 자아와 감정과 철학과 고집으로 가득 차 있다. 과잉으로 넘치기도 하지만 절대 모자라는 법은 없다. 책 한 권이 그 자체로 자신을 대변하기 때문에 이들은 특별히 자신을 규범적으로 서술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산업이 흘러온 대로 마케팅 할 생각이 없다. 회관에서 발간 기념회를 열거나 책을 사면 사인을 해주는 뻔한 사인회를 하거나 살 법한 사람과 회사에 전화를 돌려 정기 구독을 권유하지 않는다. 나 자신을 편집해 책 한 권을 만든 후, 그 책 뒤에 숨어버린다. 이 태도가 독자들을 새로운 신비주의와 소극적인 단절 사이를 오가게 만든다. 당연한 일이다. 산업의 바깥에서 태어난 책들이 산업구조 안에 쌓인 관성적인 홍보를 반복할 리 없다.
신(scene)의 천성이 신의 고립을 부른다. 독립출판 신은 조금씩 확장하면서 언제나 동떨어져 있다. 거대 매체는 어떻게든 아직도 1990년대식 풀이(‘개성 만점’ ‘톡톡 튀는’ ‘광고가 없는’ ‘놀이로서의 출판’)를 거듭하지만 그런 낡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기성의 논리에 쉽게 편입되지 않는다. 2016년 현재에도 거대 독자층에게 여전히 불친절한 벽(해설이 멀고 작가가 멀고 서점이 멀다)으로 가득한 신이다.
그렇게 고립된 문화가 한정된 공간과 시간에 모이면, 굉장한 힘을 발휘한다. 그들이 책 뒤에 숨어 고립된 것은 일종의 기법이지 욕망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모두의 욕망은 대단하다. 그래서 나는 그 욕망이 언어의 형태로 부글부글 끓는 아트북페어 현장의 기운을 무척 좋아한다. 누구도 협회식 사고(산업에 기여한다)를 하지 않지만, 역설적으로 그러지 않아서 끝내 전체 산업에 기여하게 된다. 방문객들은 독립출판이라는 큰 덩어리와 모두 다른 방식으로 끓고 있는 개인의 욕망을 동시에 보기 위해 이곳을 찾는다.
공간과 이벤트, 다양한 필요와 욕망과 지향의 움직임
2010년대에 부각되고 있는 여러 행사(과자전, 굿-즈, 레코드폐허, 언리미티드 에디션 등)는 그 역학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한다. 이들 행사는 제작자들이 ‘고립되어 있었음에도’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에’ 폭발할 수 있다. 평상시에 이 신을 회전시키는 작업실, 신생 공간, 전시장, 서점, 상점은 모두 상업 지역 혹은 대로에서 도망치는 형태로 위치한다. 인식과 접근에서 계속 바깥을 지향하던 예술가들이 일제히 안쪽으로 방향을 틀고 전진하면, 비정상적인 형태로 잠깐 팽창된다. 평소에 그 공간들을 찾던 1,000명 내외의 독자?방문객 역시 이 행사의 주역이 되는데, 누구보다 신을 깊게 이해하는 이들은 단기간의 행사에 맞춰 자발적인 개인-매체로 변모한다. 주최 측-참여 예술가-핵심 관객-일반 관객이 서로 역할을 주고받거나 혼용하며 뒤섞인다. 이 벨트가 ‘이상한 잉여의 함성’을 만들어낸다. 그 누구도 전설로 남을 만한 이윤을 남기지 못하면서, 일견 무의미해 보이는 콘텐츠를 소비 가능한 형태로 만들고, 보상 없이 민첩하게 움직이면서, 협동조합이나 사회적기업처럼 튼튼한 목표를 향하지도 않는다. 이 한 문장에 들어 있는 모순과 불편함이 실은 현재 문화 공간과 행사의 원동력이라고 생각한다.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통해 ‘출판의 다양성’도 느낄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움직일 수 있는 욕망의 총합이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가’ 역시 제대로 염탐할 수 있다.
욕망의 총합이기에 행사를 구성하는 요소도 자연스럽게 복합적인 양상을 보인다. <과자전>에서 그래픽 디자인과 제품 디자인은, <굿-즈>에서 퍼포먼스와 음악은, <레코드폐허>에서 포스터 디자인과 음반 디자인은, <언리미티드 에디션>에서 미술과 목공은 어떻게 연동되는가. 위 행사들의 다층적인 면모는 주최 측 역시 수요자?소비자이기에 발생한다고 굳게 믿는다. 행사 자체를 전문 업체에 위탁하거나 따로 팀을 꾸려 부자연스럽게 기획할 때 생기는 공급자와 수요자 사이의 공백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주최 측이 곧 관객이므로 관객을 예상해 행사를 디자인하지 않아도 그것이 나와 유사한 실제 관객을 위하는 길이 된다.
현재 대두되는 흐름은 서로가 상정한 관객층을 넘어설 때 일종의 벽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신은 이 정도다’라고 그려놓은 범주가 깨질 때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어떻게 지형을 다시 그리거나 봉합할 수 있을까. 그 질문에 답하는 2016, 2017년이 되리라 예상한다. 불편하면서 뾰족한 문화의 확장은 어느새 이 신의 주체들에게 축제이자 과제로 남았다.
- 글 이로
- 무명의 쓰는 사람. 2009년부터 책방 ‘유어마인드’와 아트북페어 ‘언리미티드 에디션’을 운영하고 있다. <책등에 베이다>(이봄)를 썼다.
- 사진 제공 유어마인드
- 그림 손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