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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2월호

막이 오르기 전, 예술가와 예술가의 대화

데뷔의 문턱에서 춤의 무게를 묻다
무용가 전보람 & 살사 프로젝트

정리 전보람 무용가

전보람 무용가와 살사 프로젝트 팀원들

사진 Studio Kenn

대학 졸업을 앞둔 청년들과 그 시간을 지나온 전보람이 마주 앉았다. 첫 작품 발표를 앞둔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보다 오히려 차분한 무게감이 서려 있었다. '데뷔'라는 문턱에서 낭만과 불안을 함께 체감한 시간. 소개와 인사를 나누고 대화가 시작된다.

전보람 오늘 이 자리는 졸업과 동시에 데뷔를 앞둔 두 분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했습니다. 청년예술청에서의 인연이 이렇게 이어지니 뜻깊네요. 먼저 무용이라는 길을 선택하게 된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정강한 저는 시작이 남들보다 꽤 늦은 편이었어요. <댄싱9> 프로그램을 보며 막연히 현대무용을 동경했죠. 그러다 우연히 최호종 무용수를 만난 게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됐습니다. 춤을 잘 추는 것을 넘어 무용수의 삶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보게 되었거든요. 늦은 만큼 더 절실하게 준비했고, 군대 문제를 해결한 후 입시를 거쳐 진학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쭉 하게 되었습니다.

김평온 저는 고등학교 때 스트리트댄스를 접하고 현대무용으로 전향한 케이스예요. 저 역시 <댄싱9>의 김설진 님을 비롯해 많은 선배 무용수의 작업을 보며 제가 진짜 추고 싶은 춤이 무엇인지 고민이 깊어졌죠. 사실 실용무용으로 진학하려다가 거의 막판에 현대무용으로 방향을 틀었어요. 그렇게 대학에 와서 강한이 형도 만났네요. 요즘에 제임스 티에리의 작업을 접하며 '움직임'과 '춤'의 경계에 대해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꼭 춤이라고 규정하지 않아도, 몸이 내뱉는 표현이 어떻게 예술적 언어로 변하는지 그 방법을 알고 싶어졌어요.

전보람 안무를 직접 해 보니 무엇이 다르게 느껴지나요?

정강한 안무하면서 오히려 춤에 대한 혼란이 오기도 했어요. 예전에는 그저 춤을 출 때 안에서 생겨나는 감정을 표현하고 '춤추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고, 그 에너지를 무대에서 그대로 쏟아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안무를 접하다보니 이게 정말 관객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되묻게 되더군요. 지금은 그 '완급 조절'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특히 요즘 제 최대 숙제는 '덜어냄'이에요. 무엇을 더 채우기보다, 핵심만 남기고 비워내는 것이 어렵다는 걸 느낍니다.

김평온 저도 여러 장르의 춤을 접하며 춤과 안무의 상관관계를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어요. 움직임 자체가 재미있어서 그 움직임을 나열한다고 해서 다 춤이 되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전체를 놓고 보면 아무리 역동적인 동작이어도 반복되면 단조로워지는 순간이 와요. 저도 모르게 자꾸 화려한 동작을 찾게 되는데, 작업 전체 흐름에서는 오히려 독이 되거든요. 어떻게 하면 이를 피하고 관객이 끝까지 흥미를 잃지 않게 할 것인가가 제 화두입니다. 무용이 어렵다는 편견을 깨고 싶어서, 관객이 지루하지 않게 다가갈 수 있는 적정선을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두 사람은 표현을 키우기보다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고민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전보람 졸업과 첫 발표를 앞둔 지금,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정강한 요즘 제일 많이 느끼는 감정은 불안이에요. 경제적인 문제도 있고, '과연 무용을 계속할 수 있을까'를 스스로 묻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언젠가 흥미를 잃어버리거나 현실의 벽 앞에서 쉽게 포기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어요. 그래서 이번 공연을 거창한 '선언'처럼 만들고 싶지는 않아요. 제가 무용을 계속하기 위한 단단한 출발점이었으면 합니다. 이 과정을 지나며 저 자신이 조금 더 성장했다는 것을 느끼고 싶어요.

김평온 형의 말에 공감해요. 불안은 늘 따라다니죠. 하지만 지금까지 무용을 해오면서 느낀 건, 사소한 경험에서 '아, 좀 더 해 봐도 되겠구나' 하는 확신이 조금씩 생겨난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도 첫 발표에 대해 대단한 기대를 걸기보다는, 관객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현대무용이 난해하기만 한 게 아니라는 것, 제가 지금 흥미를 느끼는 움직임과 이야기를 솔직하게 담아내는 것. 그게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전보람 스스로를 '예술가'로 받아들이는 감각은 어떤가요?

정강한 사실 '예술가'라는 단어가 아직 저에게는 너무 과분하고 모호해요. 내가 하고 있는 활동이 정말 예술인가 하는 반문을 하게 되거든요. 현실적으로 당장 생계가 걱정되는 상황에서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부르는 게 좀 거북하다랄까요. 예술에 대한 저의 개념도 아직 확실하지 않아 더 조심스러운 것 같아요.

김평온 저도 비슷해요. '예술가'는 무언가 자기만의 색깔이 분명하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가진 대가에게 어울리는 말인 것 같아요. 저 스스로 예술가라는 정의를 내리기엔 아직 제가 만들고 싶은 예술조차 선명하지 않거든요. 때로는 이게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하는 일인가 싶기도 하지만 다른 일을 병행하더라도 춤을 추겠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합니다.

이들은 통통 튀는 대담함을 드러내기보다 지속성을 먼저 고민하고 있다. 그 태도는 '젠지GenZ 세대'에 대한 나의 피상적인 기대를 되돌아보게 했고, 젊음의 가벼움이 아닌 이 시대 청년이 감당하고 있는 현실의 무게가 느껴졌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계속하기 위한 조건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졌다.

전보람 생존과 작업의 지속성 사이에서, 본인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느끼는 지원이나 환경은 무엇일까요?

정강한 물질적인 보상도 중요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쓴 시간과 마음을 생각하면, 그 과정에서 얻는 게 분명히 있어요. 그 경험이 결국 제 값어치를 올려준다고 믿어요. 또한 정서적으로 만족할 수 있는 경험도 저에게는 소중합니다. 아직은 제 현재에 만족하는 편이지만 점점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막연하지만 기대하고 있어요.

김평온 선배들이나 선생님들 뵈면 가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로또가 답인가' 할 때도 있죠.(웃음) 농담이고요. 현실적으로는 작업을 계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마련되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그리고 제가 하는 작업을 통해 물질적 만족이 없다면 감성적으로, 정서적으로 지속할 힘을 얻기를 바라요.

전보람 그렇다면 불안정한 삶을 어느 정도 예상하면서도 무용을 계속하게 되는 동력이 무엇일까요?

정강한 저는 미국 투어 때의 경험을 잊을 수가 없어요. 다섯 개 도시를 돌며 공연을 했는데, 그때 '무용하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세상이 넓다는 걸 느꼈고, 공연이 끝날 때마다 쏟아지는 기립박수를 받으며 한국에서 느껴보지 못한 벅찬 환대를 경험했습니다.

김평온 저도 미국 공연에서 관객의 즉각적인 반응을 보며 꽤 충격을 받았어요. 한국 극장은 너무 격식을 차려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잖아요. 실용무용이나 클럽 문화처럼 관객이 함께 호응하고 즐길 수 있는 요소가 현대무용에도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전보람 이번에 두 분이 함께하는 작품에 대해서도 짧게 이야기해주세요.

김평온 이번 작품은 우리가 가진 불안한 상태나 감정을 중심에 두고, 이를 타조알이라는 오브제로 풀어보고 있습니다. 타조알은 쉽게 깨질 것 같은 연약함도 있지만, 동시에 부화와 가능성을 품고 있잖아요. 이를 활용해 장면들을 만들어가고 있어요.

정강한 이 작업은 정강한이나 김평온 개인의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결국은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의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이를 치우친 하나의 메시지나 감정으로 규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전보람 두분의 본연의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이 기대됩니다. 오늘 이렇게 인터뷰를 위해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남은 공연 준비 힘내시고요. 다음번에 또 좋은 기회로 만나 뵙기를 바라요.

이들의 데뷔는 완성의 선언이기보다, 앞으로 이어질 문장의 첫 줄처럼 보인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고 솔직하고 서늘하다. 두 사람은 같은 듯 다른 방식으로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나는 어떤 몸으로, 어떤 속도로 이 세계와 만나야 하는가.




전통의 뿌리를 딛고 예술가로 오롯이 서는 일
거문고 연주자 이재하 & 비나리즘

정리 박채림 [문화+서울] 편집팀

이재하 연주자와 비나리즘 팀원들

사진 Studio Kenn

선율에 축원의 마음을 담는 앙상블 '비나리즘'의 오늘은 매 순간 선택과 고민으로 가득하다. 이재하 연주자는 이들에게 정답을 찾는 대신 스스로를 믿으라고 조언한다. 저마다의 방향을 따라 묵묵히 내딛는 걸음 자체가 예술가로서 성장하는 가장 확실한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재하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를 통해 비나리즘의 음악을 만났습니다. 편안한 선율 속에서도 음악을 향한 치열한 고민이 느껴지더군요. 전통 장르에 존재하는 수많은 창작 음악 중에서도 비나리즘만의 온도가 인상적입니다. 팀 이름을 이렇게 정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이영호 누군가의 행복을 기원하는 '비나리'에 철학적 체계를 뜻하는 '-이즘ism'을 더했습니다. 사람들이 힘들 때 찾게 되는 음악을 하고 싶었거든요. 전통음악을 대중에게 좀 더 편안하게 전달하는 것이 팀의 지향점입니다. 팀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며, 현재는 각자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재하 저 역시 같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무대에 서는 독립 예술가와 학생이라는 두 자아가 충돌하는 시기지요. 그런 와중에 지원사업에 참여하며 도전하는 행보는 무척 유의미합니다. 대학원 진학을 선택한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하네요.

이영호 초등학교 때 가볍게 시작한 가야금이 어느덧 대학 전공까지 이어졌습니다. 합주하는 즐거움, 앙상블을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가 좋아 음악을 계속하고 싶었습니다. 아직 배울 게 많다고 생각해 진학은 필연적인 선택이었어요. 다만 그 과정에서 졸업한 대학에 남을지, 새로운 환경에서 다시 도전할지를 두고도 고민이 많았습니다. 아직은 제가 추구하는 음악이 어떤 느낌인지 탐색하는 과정이니 작은 선택도 무척 중요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고유진 저 역시 같은 시기, 같은 고민을 이어가고 있어요. 계속 연주자의 길을 걸을지 아니면 또 다른 선택을 하게 될지 모르는 데서 오는 막막함이랄까요. 다니던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하면 익숙한 궤도 안에서 마음 편히 배우며 비나리즘 활동을 병행할 수 있겠지만, 다른 학교를 선택해 도전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여전히 고민이 이어지고 있고요.

이재하 예술가와 학생의 길을 동시에 걷고 있군요. 결론부터 말하면 정답은 없다고 생각해요. 본인 성향과 이루고 싶은 방향에 맞춰 고민하면 됩니다. 예술가로서 전체 여정을 두고 보면 일부분일 뿐이고, 어떤 선택도 나름의 장단점이 있습니다. 장기적으로는 한 사람의 예술가로서 꾸준히 성장하겠다는 지향점이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예술가들이 무대 뒤에서 마주하는 것은 진로와 생존이라는 현실적인 선택지들이다. 배움의 즐거움과 현장의 치열함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은, 청년 예술가들이 겪는 성장통이 얼마나 밀도 높은지 짐작하게 한다.

이재하 자신의 방향성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현재, 스스로 예술가라고 느끼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이영호 무대에 서는 순간, 직관적으로 예술가라고 느껴집니다.

고유진 저는 음악을 더 잘하고 싶어 연구하고 배우는 모든 과정이 스스로를 예술가로 만들어준다고 생각해요. 다가오는 2월에 열리는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 무대를 앞둔 지금의 순간까지도요.

이재하 동의해요. 사실 예술을 하는 누구나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느낄 수 있습니다. 전업 예술가로 활동할 수 있고, 일을 하며 활동을 이어갈 수도 있지요. 어떤 형태로 존재하든 우리 사회에 예술가에게 부여한 일종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우리의 예술 활동이 그저 나만 즐겁기 위해 하는 일은 아니니까요. 무대에서의 연주를 보고 누군가의 하루가 바뀔 수 있고, 어떤 음악은 때로 삶을 송두리째 변화시키기도 합니다. 어떻게 보면 공익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단순히 내 이익이 아닌 무언가를 위해 하고 있다는 생각을 갖고, 나아가 저마다의 '무언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내가 하고 있는 예술이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현재의 모든 순간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게 마련이니까요.

이영호 오랫동안 곱씹고 싶은 말씀이네요. 사실 이제 시작하는 팀으로서는 이익, 그러니까 금전적인 면에 대한 고민도 이어가던 참입니다. 이번 서울 커넥트 스테이지 공모도 무척 절실하게 여겨졌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지원사업에 참여하게 될 텐데요. 이와 관련해 조언을 구할 수 있을까요?

이재하 공모 사업을 준비하고 또 직접 심사에도 참여하면서, 결국 기본적인 가치들이 참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팀 이름이 심사위원에게 충분히 매력을 주는지부터 서류의 들여쓰기, 맞춤법 같은 사소한 부분까지도 말이죠. 특히 첫 선정 사업의 경우, 주최 측은 새로 선정된 팀이 오랫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렇기에 사업을 잘 마무리하고 지속할 의지가 보이는지 서류를 꼼꼼히 살피게 되더라고요. 공모에 도전하는 젊은 팀들에게 가장 기본이 되는 서류 단계부터 충실히 신경쓰라고 조언하고 싶어요.

고유진 대중이 아닌 심사자의 관점에서 저희의 음악이 어떻게 들릴지에 대해 고민도 컸어요.

이재하 비나리즘은 추구하는 방향이 느껴지는 팀입니다. 여기에 지속적인 동력을 가지려면, 곡을 꾸준히 개작하며 연주력을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음악 자체가 듣기 편안한 스타일인 만큼, 연주는 팽팽한 긴장감을 주면 어떨까요? 조금 더 복잡한 주법이나 화성을 활용해서 '음악은 편안하되 연주는 예사롭지 않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면, 팀의 행보에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비나리즘 팀이 아닌 개인으로서 각자의 계획도 궁금해요.

고유진 비나리즘 활동을 이어가며 제가 하고 싶은 음악을 충분히 펼쳐보고 싶어요. 현대적이고 난해한 음악보다는 국악을 잘 모르는 분들도 가야금의 매력을 편하게 느낄 수 있는 음악을 하고 싶습니다. 특히 민속악적인 색채를 녹여내면서도 대중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는 창작을 고민하고 있어요. 무엇보다 동료들과 함께 합주하는 과정 자체에 큰 관심이 있습니다.

이영호 지금은 비나리즘 외에 다른 실내악단에서도 연주자로 활동하고 있어요. 최근에는 직접 공연 기획부터 연출까지 맡아봤는데, 한번 해 보니 여전히 배울 점이 많더라고요. 조명 같은 기술적인 부분도 더 공부할 계획입니다. 나중에 기획서를 쓸 때 이런 디테일이 큰 힘이 될 것 같아 대학원에 진학해서도 꾸준히 채워가려 합니다.

현실의 무게를 응시하는 이들의 시선은 막연한 불안에 고여 있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선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구체적인 노력으로 뻗어 나간다. 누군가는 기획의 디테일을 채우고, 누군가는 전통음악의 문턱을 낮추는 교육자로서의 내일을 꿈꾼다. 이렇듯 개인이 각자의 영역에서 전문성을 쌓아 올리는 과정은, 결국 '비나리즘'이라는 팀을 더욱 단단하게 지탱하는 뿌리가 된다.

이재하 두 분의 먼 훗날 꿈도 궁금하네요.

고유진 저는 배우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기에, 나중에 누군가를 가르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직 일반인들에게는 가야금을 배울 기회가 많지 않잖아요. 피아노처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악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정에도 비나리즘이 함께하길 바라고요.

이재하 팀을 지속한다는 건 사실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여러 팀을 거치며 깨달은 사실이죠. 팀이 오래가려면 그 팀이 수익을 통해 내 삶을 지탱해주거나, 혹은 팀과 상관없이 내 삶이 이미 충분히 안정돼야 해요. 당부하고 싶은 건, 팀이 내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에요. 무조건 '나'라는 개인이 먼저 단단히 서야 팀도 존재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자리잡은 음악인이 됐을 때 팀도 비로소 더 건강하게 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해요.

이영호 앞날을 알 수 없다 보니, 제가 언제 어디에 존재해야 할지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늘 있는 것 같아요.

이재하 오늘 이 자리가 끝나면 다시 저마다의 삶으로 돌아가겠지요. 졸업 후 사회로 나가면 훨씬 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그 인연이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무도 모르죠. 공연은 결코 혼자 만드는 게 아니기에 순간순간의 인연이 무척 소중합니다. 인연을 소중히 여기고 나와 상대에 대한 믿음을 지키세요. 각자의 자리에서 음악을 치열하게 해나가고 있을 거라는 서로를 향한 믿음 말이죠. 후배들과 나누는 오늘의 대화가 저에게도 내일을 책임감 있게 살아가는 연주자로서 큰 원동력이 되듯 말입니다. 우리의 만남이 먼 미래에 또 어떤 대화로 이어질지 문득, 기대가 됩니다.

누군가의 안녕을 비는 '비나리'의 마음이 자신들의 앞날 또한 환하게 밝혀주리라는 믿음, 그리고 그 길 위에서 언젠가 다시 마주할 인연에 대한 기대를 품은 채 이들은 다시 가야금 앞에 앉는다. 비나리즘이 국악의 지평 위에 새롭게 새겨 넣을 음표들이 벌써부터 기다려지는 이유다.




연극이라는 불안 속에서 나아가는 법
연출가 이오진 & 프로젝트 파일

정리 박채림 [문화+서울] 편집팀

이오진 연출가와 프로젝트 파일 팀원들

사진 Studio Kenn

무대 밖의 시간은 러닝타임보다 길고 그래서 더 고단하다. 막이 오르기 전, 각자의 겨울을 지나고 있는 여덟 명의 연극과 재학생과 이오진 연출가가 마주 앉았다.

이오진 제 소개부터 시작해 볼까요? 저는 '호랑이기운'이라는 1인 제작 극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23세에 대산대학문학상 희곡 분야에 당선되면서 극작가로 데뷔했어요. 그 후 전업 작가로 활동하다가 30대 접어들며 연출을 시작했죠. 작·연출로 시작한 경우가 아니라, 작가로 활동하다 연출가가 된 셈입니다.

황예솔 저희는 청주대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연극팀 '프로젝트 파일'입니다. 제가 연출을 맡고 있고, 오늘 참석하지 못한 인원을 포함해 팀원 대부분이 졸업을 앞둔 3~4학년 학생입니다. 연출님에 대해서는 <콜타임> 작업에 참여하신 장호 디자이너님의 특강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이력이 독특하시다고 생각했어요. 작가로 활동하시다가 연출의 길을 걷게 된 구체적인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오진 제가 연출을 시작한 계기는 2017년 연극계에 일어난 미투 운동이었어요. 당시 여성 서사를 다루는 극단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고, 서울문화재단 지원사업에 신청해 첫 작품을 선보이게 됐죠. 말씀하신 <콜타임>이 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고요, 현재는 동료들과 함께 혹은 혼자 작업하며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있습니다.

김정희 지원사업 신청부터 무대를 올리는 전 과정을 혼자 도맡아 하고 계시잖아요. 일련의 과정이 버겁지는 않으신가요?

이오진 지원서 작성부터 스태프와 배우 섭외까지 직접 하기에 형식적으로는 '1인'이라 할 수 있지만, 사실 막상 작업을 함께하는 동료들과는 대부분 6년 이상 손발을 맞춰왔어요. 지원서를 낼 때부터 누구와 함께할지 고민해 결정하고, 작품 기획 단계에서 그들에게 의견을 구하기도 합니다. 프로젝트의 틀을 먼저 잡아놓은 뒤 협업을 제안하거나 새로운 배우를 찾는 식이지요. 다만, 공연예술 창작산실처럼 규모가 큰 공모 사업에 참여한다면 기획 단계부터 프로듀서와 함께 시작하길 추천해요. 예산 관리나 기획 콘셉트 설정, 타깃 선정 단계에서 유능한 프로듀서가 합류하면 공연이 더 오래 유지될 수 있거든요.

김정희 저희도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프로젝트 파일의 대표 작품이 있긴 하지만, 지방을 돌며 학교폭력 예방 연극도 병행하고 있거든요. 작업을 지속하다 보니 연출님 말씀대로 운영 측면이나 관객 연령층에 대한 고민 등, 창작 외적인 시선과 전문적인 역할에 대한 갈증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글을 쓰는 연출가, 배우가 가진 저마다의 고민은 결국 작업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방향을 향한다.

황예솔 저는 글을 쓰며 연출을 병행하다보니 고민이 많아요. 곧 졸업인데 선배마다 다른 조언을 건네시죠. 연출 전공자로서 졸업 후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지, 그 첫발을 떼는 일이 막막하게 느껴집니다.

이오진 외부에서 보기에는 제 상황이 안정적이거나 어떤 궤도에 오른 듯 보일 수도 있겠지만, 사실 저도 여전히 지원서를 쓰고 작품 앞에서 방향을 못 잡아 헤매기도 하는 똑같은 상태라는 걸 먼저 말씀드리고 싶어요. 다만 연출가로서 다음 스텝을 고민한다면, 한 가지에만 몰두하기보다 여러 가지를 병행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수업도 듣고, 친구들과 커뮤니티를 만들어보기도 하고, 담론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든 가보세요. 그런 경험을 쌓아 지원서에 녹여내다보면, 그중 하나가 물꼬를 터주는 계기가 될 거라 생각해요. 이것저것 시도하다보니 조금씩 어딘가에 닿게 되는 느낌이랄까요? 사실 저도 정답은 모르겠어요.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살펴볼 수 있는 몇 가지 시도를 해 보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입니다. 특히 연출은 배우처럼 오디션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자기 작업은 기본으로 이어가되, 배울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채워 넣으세요. 당장 내일 결과가 나오지는 않겠지만, 연출이라는 길은 긴 호흡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김민준 현재 연극계의 트렌드를 파악하기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이오진 트렌드는 사실 저도 참 알고 싶은 부분이에요. 다만 트렌드는 단순히 정보를 얻는 게 아니라 직접 '감각'해야 하는 영역입니다. 공모전에 당선되는 작품 혹은 담론이 쏟아지는 작품을 꾸준히 접하면서 스스로 인사이트를 채워가야 하죠. 무엇이 정답인 트렌드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지만, 조금 과감하게 접근한다면 '내가 곧 트렌드'라는 자신감으로 자기만의 색깔을 밀고 나가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 본연의 이야기를 하되, 지금 연극 신에서 다루는 화두를 한 끗 얹어보는 식이죠.

연극의 수신자는 결국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존재들이다. 어떤 발신에 응답할지 알 수는 없지만 말 걸기는 성실하게, 그리고 꾸준히 계속되어야 한다. 일종의 버티는 힘이 필요한 셈이다. 묵묵히 자기 생각과 방식을 전언하다 보면 결국 닿을 수 있다는 믿음도 필요하다.

서정찬 작품을 쓸 때 창작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는지 여쭤보고 싶어요.

이오진 영감이라는 건 사실 정해진 규칙 없이 문득 찾아오는 것 같아요. 특별한 비결이 있기보다 책을 읽고, 뉴스를 챙겨보고,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는 일상적인 자극에 제 자신을 내맡기는 편입니다. 주변의 자극들이 제 안을 자연스럽게 통과하도록 두다 보면, 어느 순간 써야 할 이야기들이 하나둘씩 맺히기 시작하더라고요.

이희원 작가와 연출을 겸하면서, 개인적인 창작 세계와 사회적 현실 사이의 연결고리를 어떻게 만드시는지 궁금합니다.

이오진 저라는 개인의 이야기가 사회적 흐름과 맞닥뜨리는 지점을 찾으려 노력해요. 당장 어떤 사건이 바로 작품으로 연결되지 않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제 안에 쌓인 서사와 사회적 화두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과정인 것 같아요. 주변의 일들과 저의 내면이 연계되어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셈이죠.

김정희 연극 위기론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저희 같은 예비 예술가들이 스스로 어떻게 돌파구를 찾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사회에 나가면 늘 좋은 사람만 마주할 순 없으니까요. 환경이든 사람이든, 닥쳐올 현장에서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지 현실적인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이오진 어떤 사람은 대체로 괜찮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정말 별로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상한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사람에 대한 애정 자체를 버리지는 마세요. '저 사람은 나쁘지만, 다음에 만날 사람은 괜찮을 거야'라는 믿음으로 스스로를 보호하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돌파구에 대해 말씀드리자면 멈추지 않고 계속하는 것, 그리고 자기가 맡은 일을 성실히 잘 해내는 것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본질 외의 부수적인 것들이 자꾸 커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때일수록 기본을 지키는 일이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노은솔 졸업 후 배우로서 역량을 쌓는 데 집중해야 할지, 일단 오디션을 통해 부딪쳐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무엇보다 선택받아야만 작업을 이어갈 수 있다 보니 심리적으로 위축될 때가 많습니다. 작가이자 연출가로서 함께 일할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이오진 사실 저는 오디션을 한 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현재 시스템 안에서 오디션이 얼마나 효율적인 루트인지 명확히 말씀드리기는 어렵습니다. 영화 쪽은 오디션이 활발한 편이지만, 연극계는 제작 환경 제약도 많고 여전히 지인 추천이나 인맥을 통해 작업이 성사되곤 합니다. 그래서 오디션 자체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루트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만약 오디션에 도전하고 싶다면 국립극단 시즌단원처럼 규모가 크고 신뢰할 만한 곳을 우선 고려해보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배우를 선정할 때 거창한 기준은 없지만, 무대 위에서 인상적이었던 배우를 마음속 데이터처럼 차곡차곡 저장해둡니다. '어떤 공연 어느 장면에서 그분이 왜 좋았는지' 성함과 함께 기억해두는 거죠. 일단 무대 위에서 반하는 게 우선이에요. 비중은 전혀 상관없습니다. 비록 단역일지라도 무대 위에서 자기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내는 분들이 계시거든요. 제가 믿는 건 연기를 잘하고 좋은 태도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좋은 기회가 온다는 사실입니다. 글을 잘 쓰고 진심으로 사람을 대하는 작가에게 기회가 오는 것처럼요. 예술은 본질적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니 한계에 대해 마음속으로 미리 선을 긋지는 마세요. 끊임없이 문을 두드리다 보면 결국 진심과 실력이 닿는 지점이 분명히 나타날 겁니다.

이희원 새삼 졸업을 앞둔 저희가 나누는 대화의 끝은 늘 '불안' 그리고 '막막함'으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이오진 저 역시 여전히 불안에 관해 글을 쓰고 주변 동료들과 그 감정을 공유합니다. 얼마 전 <히스테리 앵자이어티 춤추는 할머니>라는 연극을 마쳤는데요, 저보다 한참 선배인 배우님들도 미래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똑같이 느끼시더라고요. 어쩌면 이 불안은 평생 다루며 살아야 하는 당연한 감정 같습니다. 마치 아침에 일어나면 자연스레 양치를 하듯 우리 삶에 늘 붙어 있는 존재죠. 그러니 불안을 없애려 애쓰기보다, 이를 다루는 자신만의 요령이나 방법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오진 연출은 무엇보다 자신을 잘 보호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매일의 식사를 잘 챙기는 일, 무력함 앞에서 희망을 선택하는 일, 엄습하는 불안과 잘 공존하기 위한 노력까지. 이 모든 당부는 부디 당신들이 잘 존재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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