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도시 서울의 역할은”
송형종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
2025년은 서울의 위상이 격변한 해다. 아무도 예상 못한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전 세계에 걸친 메가톤급 히트 덕이 크다. <케데헌>에 서울성곽·명동·남산타워 같은 서울의 명소가 비친 덕에 7월 한 달간 서울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지난해 같은 달(110만 명) 대비 23.1퍼센트 증가한 136만 명을 기록하며 역대 최대를 달성했고, 1월부터 7월까지 누적 관광객 수도 828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트래지 트래블Trazee Travel’ 선정 ‘MZ세대에 가장 사랑받는 도시 1위’, 세계 최대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가 뽑은 ‘나 홀로 여행하기 좋은 도시 1위’, ‘글로벌 트래블러Global Traveler’ 선정 ‘최고의 아시아 레저 목적지 부문 1위’를 동시에 차지했다.
관광객만 찾는 건 아니다. <케데헌> 이전인 지난 4월 ‘현존 최고의 안무가’로 꼽히는 존 노이마이어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전방위 예술가 윌리엄 켄트리지, 컨템퍼러리 발레 거장 요한 잉에르 등이 동시에 서울을 찾았고, 11월엔 클라우스 메켈레와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 키릴 페트렌코와 베를린 필하모닉, 크리스티안 틸레만과 빈 필하모닉 등 세계 유수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이 연달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서울이 K-팝의 성지를 넘어 ‘예술도시’로도 뜨고 있다는 얘기다.
서울문화재단 송형종 대표도 조바심이 났을 법하다. 시민이 문화예술을 일상으로 즐기게 하겠다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지향하는 ‘매력도시’에 바짝 다가선 시점인 만큼, 예술가를 지원하고 시민의 문화예술 향유를 위한 각종 사업을 주관하는 재단의 역할이 막중해졌기 때문이다. 2025년 1월 1일 취임해 1년을 어느 해보다 바쁘게 보냈을 송형종 대표를 만났다. 서울연극협회장을 지낸 연극 연출가 출신으로, 2년간 서울시 문화수석으로 일하며 도시 브랜딩에 앞장서온 그는 진정한 ‘서울다움’을 만들어가는 데 ‘예술가’의 역할이 막중하다고 했다.
“서울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자마자 해외 관광객이 가고 싶은 도시 2위로 꼽혔는데, <케데헌> 덕분에 정점을 찍었죠. 과연 우리가 그들에게 보여줄 매력적인 것이 준비돼 있는가 조바심이 컸습니다. 한류는 대중예술 중심이지, 순수예술의 매력은 아직이라고 생각되니까요. 한류의 깊이를 고민하는 게 재단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6000년 도시, 600년 도읍이잖아요. 그만큼 깊이 있는 도시란 걸 알릴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몸짓과 생각이 근현대에 갑자기 나온 것이 아니고, 기초예술이 근간이 돼 정말 긴 여정을 거쳐 나왔다는 걸 알리려고 하니 숙제가 많더군요.”
“그때는 서울시장의 시점에서 문화를 바라봤으니 뭐든 서울의 브랜드라는 큰 덩어리를 망원경을 통해 본 거죠. 재단에서는 핵심이 예술가인 만큼, 어떻게 그들을 성장시킬 것인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있어요. 예술가도시를 만들려면 디테일이 필요하잖아요. 오자마자 10개 장르별 예술가들을 만나고 22개 기초문화재단을 직접 찾아갔죠. 서울은 1개인 동시에 25개의 서울, 467개의 서울이기도 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거든요. 25개 자치구가 저마다 공간의 서사를 살려서 자치구별 색깔을 입힌다면 서울이 굉장히 입체적으로 보이리라 생각합니다.”
“BTS가 이매방의 삼고무를 알렸고, 케데헌이 서울성곽을 알렸잖아요. 대중문화도 의미가 있지만, 매력도시 서울의 핵심과 본질을 알리는 데 우리 예술가들이 할 일이 많아요. 가시적인 한류 현상을 지켜내려면 기초예술의 깊이를 더하는 게 우선입니다. K-컬처 300조 시대를 실현시키려면 기초예술 1조 시대를 먼저 열어야 한다는 게 제 주장이예요. 저는 ‘서울다움’이란 용어를 써서 서울의 매력을 설명하는데, 현장 예술가에게 제일 중요한 서울다움은 문화유산 안에 흐르는 장인정신이라 생각해요. 과연 지금 시대에 장인이 있는가부터 고민해야죠. <서편제>에서 득음의 경지를 추구하는 것처럼, 연극·무용도 근본적 깊이를 보여줄 때 세계적으로 주목받을 겁니다.”
올해 재단은 서울어텀페스타를 야심 차게 시작했다. ‘공연예술, 서울을 잇다’라는 슬로건 아래 10월 4일부터 40일간 서울에서 벌어지는 116편 공연과 축제 띄우기에 매진했다. 서울이 역사상 가장 ‘핫’해진 지금, 자타공인 문화예술도시로 자리매김하려는 시도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비슷한 콘셉트의 축제가 생기고 또 사라졌지만, 송 대표는 ‘민간 주도형’을 어텀페스타만의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정권에 휘둘리지 않도록 민간을 주체로 내세워 정체성을 이어가게 한다는 취지다. 에든버러 페스티벌이나 아비뇽 페스티벌, 파리가을축제처럼 역사와 전통의 공연예술 축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게 그의 포부다.
“재단에 오자마자 한정된 예산 안에서 가장 크게 할 수 있는 일부터 찾았죠. 논으로 치면 물꼬를 터줘야 하잖아요. ‘연결하다’, ‘이어주다’를 올해의 키워드로 삼은 이유죠. 현장에서도 늘 예술가들이 홍보와 유통을 어려워한다는 걸 느꼈고, 그걸 대신할 플랫폼이 절실하다는 생각에서 출발했어요. 오랜 기획을 거쳤다면 좋겠지만, 욕을 먹더라도 지금 시작해야 한다고 봤어요. 7월에 아비뇽과 파리를 직접 돌아보며 서울의 위상이 대단하단 걸 느꼈거든요. 아비뇽도 내년에 한국어를 공식 초청 언어로 선정하면서 서울에 프러포즈를 하더군요. 파리가을축제를 15년간 이끌고 있는 에마뉘엘 드마르시 모타 감독을 만나고 나니 이걸 지금 안 하면 역사의 죄인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파리가을축제가 53년이 됐으니, 서울은 최소한 김대중 정부의 지방자치제와 함께 시작해야 했는데, 늦어도 너무 늦은 거죠.”
“야외 행사 특성상 날씨와 안전 문제는 늘 긴장되게 하는 요소죠. 개막 직전까지 기상 상황을 예의주시했고, 장비·조명·무대 동선까지 여러 차례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실제로 그날 갑작스러운 비가 내리기는 했지만, 담당자들이 잘 준비한 덕분에 무사히 치렀죠. 오히려 비가 내려서 시민과 예술가가 더 끈끈하게 하나가 되는 특별한 장면이 만들어졌어요. 내년엔 한강과 연계해 시민들과 더 건강하게 만날 계획을 다 세워놨습니다.”
“우리의 차별점은 140명의 민간 자문위원이 맨 앞에 있다는 거예요. 많이들 도와주셔서 브랜드는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다만 올해 예술가들에게 체감 가능한 혜택을 드렸느냐 하는 면에서는 미흡했죠. 그래서 내년에는 70일, 후년에는 100일간으로 확대하고, 당장 킬러 콘텐츠를 제작할 겁니다. 서울어텀페스타 기간에 재단이 운영하는 모든 공간을 자체 제작 콘텐츠나 초청 공연으로 채우는 거죠.”
“얼마 전 도쿄도역사문화재단과도 MOU를 맺었지만, 국제 교류는 한류의 깊이 유지에도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다고 봐요. 1998년에 국제극예술협회ITI 사무국장을 하면서 국제 교류가 얼마나 중요한지 인지했고, 서울연극협회에 있을 땐 동유럽까지 진출했죠. 그때 예산 2억 원으로 시작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은 후배들이 아부다비, 이집트 연극제까지 뻗어나갔어요. 우리 재단의 미션은 기차에 레일을 까는 거라고 생각해요. 얼마 전 중앙아시아에 가서 광복 80주년 기념으로 <열차 37호>를 공연했듯이, 예술가들을 태워 보낼 수 있는 레일을 해외로도 깔아 나갈 겁니다.”
“서울어텀페스타는 일반 축제와 달라요. 파리는 118일 동안 하더군요. 지리멸렬하지 않게 서사를 잘 만들어야겠죠. 초반엔 에든버러 프린지처럼 진행하고, 후반엔 마켓을 만들어 해외 바이어들이 와서 볼 수 있게 대표적인 작품들로 라인업을 꾸리고, 마지막엔 국제 포럼과 해외 초청작까지 올릴 거예요. 그렇게 아시아 공연예술의 얼굴을 만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있습니다.”
“서울어텀페스타는 현재 진화하고 있거든요. 그림이 다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술감독을 임명하면 사적인 시점으로 좌지우지될 우려가 있습니다. 제가 오랜 시간 현장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내년까진 직접 촘촘히 설계하고, 3회째엔 뽑으려 해요. 과거와 단절하지 않고 본래 취지를 오래도록 이어갈 수 있는 시스템부터 만들어야죠.”
“예전에 서울연극협회 부회장을 할 땐 서울문화재단에게 예산이 적다고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어요. 막상 대표가 되고 보니 당시 대표의 입장이 곧바로 이해되더군요.(웃음) 공공의 여러 측면을 고민할 때 부딪침이 많을 수밖에 없고, 쉽지 않은 자리더라고요. 당장은 현장 예술가들에게 비판받을 수도 있겠지만, 서울 시민 전체를 위하는 일인가가 제 기준이에요. 유럽의 웬만한 국가와 비슷한 크기인 서울의 문화예술을 책임지고 있으니 제일 중요한 게 사명감, 역사의식이라 생각해요. 미래전략실을 만들어서 10년 후를 바라보고 정책을 짜고 있습니다. 얼마 전 정책자문위원회도 꾸렸는데, 서울의 문화를 다양한 시각으로 봐줄 수 있는 분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으려 해요.”
송 대표는 연극인 특유의 기질과 연출가로서의 감각을 적재적소에 발휘하는 아이디어맨이다. 올해 서울문화재단 소셜미디어 채널 트래픽이 10배 폭증하는 등 큰 화제를 모았던 광복 80주년 기념 노들섬 태극기 전시를 비롯해 서울거리예술축제에 역사와 건강까지 더해 리모델링한 ‘아트레킹’, 원로예술가 지원사업에 멘토링 콘셉트를 끼얹어 청년 세대와 만남을 주선한 ‘마스터피스 토크’ 등 재단의 인기 사업 대부분이 그의 머리에서 나왔다.
“예능 프로그램 <미운 우리 새끼>에서 오사카 마라톤대회를 보여준 적이 있어요. 마라톤과 먹거리를 연결시키는 걸 보면서 거리예술축제도 아트와 건강을 연결하자는 아이디어를 얻었죠. 청계천 복원 20주년까지 포함해서 청계천의 서사를 한번 읽어보는 시간으로 만들어봤는데, 그 기간에 하필 비가 와서 속은 상했지만, 그 와중에도 16만 명이나 왔다갈 정도로 의미 있는 성과였어요. 저는 우리 재단이 끊임없이 새로운 시대의 니즈에 도전하고 축제도 시민에게 발맞춰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에는 한강 변에서 한강버스까지 연결한 아트레킹을 구상하고 있어요.”
“통계에 따르면 예술대학 졸업생 중 현장에 뿌리내리는 비율이 18퍼센트밖에 안 되더군요. 대학 재학 중에도 공공에서 손 내밀어 잡아주는 사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커넥트 스테이지’를 만들었고, 마지막 원로예술가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마스터피스 토크’를 만들어 원로와 청년 예술가의 멘토링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사이클을 설계했습니다. 처음에 미술 분야에서 시범적으로 시작했는데, 작가분들이 너무 만족하시면서 누구 아이디어냐고 물었다더군요. 거기 힘입어서 무용·국악·연극 쪽으로 확대한 것이죠.”
“오세훈 시장 1기에 기존 공장들을 개조해 금천예술공장·문래예술공장 같은 창작공간을 만들어놨는데, 접근성보다 노후화가 문제예요. 예술가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김치가 익어가듯 몰입할 공간이 마련돼야 하죠. 공간에 대한 예산 투자가 더 많아져야 하고, 거기서 정말 서울의 장인을 길러내야 합니다. 성장형 지원체계는 단계별로 장인을 길러내기 위한 것이고, 그와 같이 가야 하는 게 공간지원이예요. 공간마다 서사가 있거든요. 서울연극창작센터의 경우 1층은 블랙박스, 2층은 프로시니엄으로 만들었어요. 수많은 실험을 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든 블랙박스에서 다른 걸 하면 안 되는 거죠. 공간의 서사에 답해야 하고, 거기서 서울다운 예술가들이 탄생해야 합니다. 접근성 문제는 기부채납에 근거하다보니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시민의 예산을 들여서 예술가들이 성장할 수 있는 고마운 공간인 거죠. 궁극적으로 접근성이 좀 떨어져도 어디든 좋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면 관객들은 찾아간다고 봅니다.”
“대중음악을 평가하는 빌보드, 도시 경쟁력을 평가하는 모리지수처럼 해외에는 여러 가지를 선정하고 평가하는 플랫폼이 있잖아요. 왜 우리가 주도하는 플랫폼은 없는가, 하는 생각에 2027년도엔 글로벌 문화예술 트렌드를 우리가 선정하자는 목표로 서울국제예술포럼SAFT을 발족했습니다. 앞으로 예술이 어디로 갈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죠. ‘뇌과학자가 바라본 예술’ 같은 외부의 시선에서 배울 점이 많더군요. 근본적인 예술에 대한 질문도 던져야겠고요. 그런 성찰과 담론을 생산해내는 포럼을 만들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요.”
“서울이 트렌드를 답습한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어느 도시나 장단점이 있지만, 우린 무조건 따라 하는 데 익숙하다가 갑자기 대중문화가 뜨니까 그동안 잘한 건가 하면서 더 이상 공부하지 않는 예술가도 많거든요. 재단의 국제 교류는 ‘서울다움’을 가장 잘 이해하고 주체적으로 ‘서울다움’을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랜 역사의 깊이만큼 예술가가 긴 호흡으로 장인처럼 빚어내는 예술이 많이 나오도록 재단이 움직여야겠죠.”
송형종 대표는 내년 글로벌 문화재단으로 도약을 선포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서울은 더 이상 우리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계 속에서 뉴욕·베를린의 역할이 있듯 서울의 역할이 필요한 시대고, 서울다움을 빨리 갖춰야 한다고 봅니다. 시장님이 세계 5위 도시를 선언하셨으니, 재단도 그 기준으로 예산도 세워야죠. <만선>이란 연극 제목을 참 좋아해요. 잔잔한 바다에선 고기가 안 잡히니까 태풍이 불 때 위험을 무릅쓰고 바다에 나가는 겁니다. 바다가 뒤집힐 때 고기도 잡히는 법이니까요. 문화예술도 그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글 유주현 중앙SUNDAY 기자 | 사진 Studio Ken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