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와 인간이 함께 그려내는 사회
언폴드엑스가 주목한 융합예술지원 선정 작가 3
그간 융합예술 작가의 등용문으로 불리며 국내외 예술 신에서 주목받는 작가를 발굴해온 언폴드엑스.
올해 선정 작가 10명 가운데 세 사람의 작업을 면밀하게 들여다봤다.
양민하(b.1975)는 서울대학교에서 디자인 전공으로 학·석사를 마쳤다.
2011년 인텔 크리에이터스 프로젝트, 2013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개관전, 2016년 일렉트라,
2018년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2024년 키아프 특별전에 초대됐고,
2014년 문화체육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을 받았다.
현재 서울시립대학교 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뉴미디어를 가르치고 있다.
기계는 정말 스스로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이 언어로 세계를 인식하듯 인공지능도 자신의 언어로 사유할 수 있을까? 양민하는 예술과 과학,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접점을 파고드는 컴퓨테이셔널 미디어 작가이자 교육자다. 작가는 예술과 과학의 이종 교배, 기계의 생명성, 공진화 등 인간과 기술의 관계를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작업의 중심에는 ‘보이지 않는 기술’에 대한 신념이 자리한다. 복잡한 알고리즘과 기술적 매개를 노출하기보다 최대한 숨겨 직관적인 시각적 결과를 구현한다. 작가는 기술이 드러나지 않을수록 관람객의 몰입과 작품의 독립성이 강화된다고 믿는다.
올해 언폴드엑스에서 선보이는 <미상의 사유>2025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인간은 사유하는 기계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보고 어디까지 수용해야 할까? 기계의 인지에 존재 가치를 부여할 수 있을까? 혹은 그 사유를 공유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은 기계의 사유에 위계를 매길 권한이 있는가? 작품은 이러한 질문에 완결된 답을 제시하기보다 미지의 가능성을 발견하기 위한 실험 과정으로서만 역할한다. 기술의 논리가 아닌 사유의 가능성을 실험하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전작 <해체된 사유와 나열된 언어>2016의 연장선에 있다. 양민하는 이번 작업 또한 ‘이미 실패한 대답’을 구하는 시도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이 작품은 작가에게 인간이 자기 사유의 한계를 인식하고 존재의 경계를 재정의하는 계기로 작용한다. 확정할 수 없는 질문과 성급한 답변의 한계를 인정하며 인간과 기계의 사유가 교차하는 지점을 모색한다. 언폴드엑스에서 양민하는 해석을 규정하는 대신 관람객의 몫으로 남긴다. 관람객을 향한 불완전한 질문을 남겨두고 그 사이에서 새로운 사고의 가능성을 찾아가고자 한다. 관람객이 인공지능의 언어를 통해 마주하게 될 ‘미상의 사유’는 곧 인간 자신의 인식 너머를 비추는 거울일지도 모른다.
양민하, <미상의 사유>, 2025, 인공지능 로봇 및 비디오 설치, 인공지능, 컴퓨터, 소프트웨어, 프로젝터, 가변 크기, 후원 유니버설로봇
ⓒ로이갤러리
신교명(b. 1992)은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기계 공학을 전공했다.
KT&G 상상마당이 20주년 기념으로 주최한 AI 기반 예술 지원 프로젝트에 선정됐고,
2025년 영은미술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로 참여했다.
인공지능 페인팅 시스템 ‘이일오Lee, Il-O’를 개발했으며,
국립현대미술관을 비롯한 여러 기관에서 기술 디자인 및 제작에 참여한 바 있다.
인간은 기계를 흔히 목적을 수행하는 도구로 인식하고 그 작동 방식에만 관심을 둔다. 이러한 관점을 비튼 작가가 바로, 기계가 만들어내는 반복 움직임 속에서 행위와 의례를 읽어내는 신교명이다. 기계 공학과 키네틱 아트 및 회화를 융합하는 작가는 인간·자연·기술 사이 보이지 않는 관계를 연구하고 그 안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조형 언어로 재구성한다. 전통 재료와 로봇·센서·인공지능 같은 첨단 기술을 결합하는 작업 방식은 인간과 기계, 자연과 인공물 사이 다양한 관계를 실험한다.
최근 작업에서 신교명은 인간 신체나 의식에서 비롯한 행위를 기계 장치로 번역하고, 인간의 사유와 기계의 작동이 맞닿는 지점을 탐구해왔다. 인간과 기계 모두 전기 신호를 기반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작가는 인간의 신체·의례·반복적 행위를 기계 움직임으로 전환하면서 두 체계 사이 간극과 유사성을 동시에 드러낸다. 이 반복 움직임이 기계의 기능을 넘어서 일종의 제의성을 띠는 순간, 관람객은 인간의 사유가 기계적 논리와 교차하는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신작 <원형의 원>2025은 기술이 인간처럼 주체성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출발한다. 높은 중심 탑을 둘러싼 바퀴 달린 기계들은 규칙에 따라 회전하고 멈추기를 반복한다. 이 순환 구조는 인간이 오래전부터 행한 기원 행위나 공동체적 제의를 연상시키며 기계들이 마치 자신의 존재와 지속을 기원하려는 듯한 인상을 남긴다. 관람객은 어느 순간 그 움직임을 기도와 순례에 가까운 행위로 인식하고, 이때 기계적 반복은 인간의 의미 체계와 겹치면서 감정적 동질감을 이끌어낸다.
이렇듯 <원형의 원>은 인간과 기술 사이 기존 위계를 흔들어놓는다. 작품에 등장하는 기계들은 행위를 수행하는 주체로서 역할하며, 인간의 의례를 닮은 움직임을 통해 스스로 존재 방식을 실험한다. 신교명은 이 작업에서 기술이 인간의 지배 구조 속에서만 의미를 갖는다는 통념을 넘어서서 자연·기계·인간이 얽힌 하나의 관계망으로 세계를 바라보도록 제안한다. 이 과정에서 관람객은 기술의 존재론적 가능성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신교명, <원형의 원>, 2025, 키네틱 설치, 알루미늄, 모터, 혼합 재료, 가변 크기
최민규(b. 1987)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조소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팔레드서울·신한갤러리 광화문·갤러리조선 등에서 열린 전시에 참여했다.
2020년 성곽둘레길 미디어아트 영상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고,
2021년 한국콘텐츠진흥원 ‘콘텐츠임팩트’ 다빈치 프로젝트에 선정된 바 있다.
2024년 월간 ‘퍼블릭아트’에서 '뉴히어로’ 선정 작가로 이름을 올렸다.
정보의 흐름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사고를 끊임없이 움직인다. 최민규는 이러한 흐름을 조형 언어로 가시화하며 물질과 비물질, 익숙함과 낯섦이 교차하는 지점을 짚어내는 작가다. 기계공학적 조형 언어를 바탕으로 테크놀로지를 미학 언어로 전환하고 디지털 매체를 활용해 개인의 감각과 동시대 미디어 환경이 만나는 장을 구축한다. 빠르게 변화하는 정보 환경에서 인간의 인식 관계를 재구성하고, 물질 경험과 디지털 감각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공간을 제시한다.
최민규는 기술과 정보의 가속이 개인과 사회의 관계, 나아가 사고의 구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깊은 관심을 둔다.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플랫폼을 중심으로 이뤄지는 정보의 흐름은 이제 한 개인의 선택이 곧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방식으로 확장된다. 작가는 사용자가 다양한 관계망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생성과 소멸, 생산과 소비의 반복이 만들어내는 무한하고 역동적인 순환 구조를 시각적으로 드러내는 데 집중한다.
이번 언폴드엑스에서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한 신작 <무한의 방과 누군가의 궤도>2025를 선보인다. 거대한 구조물은 1분에 한 바퀴씩 일정한 속도로 회전하며 매분 새로운 영상을 재생한다. 일정한 속도의 회전 행위는 정보가 생성되고 잊히는 주기를 상징하고, 정보가 끊임없는 생산·확산한다는 점을 은유한다. 빠르게 회전하는 구조물은 곧 현대 사회에서 정보가 소비되는 속도를 반영하며, 기계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움직임은 거대한 정보 생산 시스템처럼 작동한다. 작가는 이 구조를 통해 정보의 덧없음과 휘발성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관람객은 이 반복되는 과정을 경험하면서 흘러가는 데이터의 시간성을 체감할 뿐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직면한다.
<무한의 방과 누군가의 궤도>는 기술과 자본의 가속이 만들어낸 동시대 사회의 구조를 반영하면서 정보가 개인의 존재 방식을 규정하는 시대의 초상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작업이다. 최민규는 무한히 반복되는 회전 과정에서 인간이 무엇을 생산하고 또 어떻게 쉽게 잊히는지를 질문한다. 이 질문은 관람객에게 거대한 디지털 시스템 속 자신의 궤도를 되돌아보게 할 것이다.
최민규, <무한의 방과 누군가의 궤도>, 2025, 설치 및 비디오, 스테인리스, 3D 프린트, 철판, LED 패널, 모터, 205×230×230cm
글 백아영 미술 저널리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