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교류를 넘어 세계에 길을 내야
서울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세계와 소통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다양한 창·제작자가 이곳에 와 활동할 수 있는 길을 내야 한다.
그리고 그 플랫폼이 바로 서울문화재단이어야 한다.
필자는 [문화+서울] 8월호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잊어야 한다’며 세계 일류도시를 꿈꾸던 서울은 이제 세계 문화수도를 향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글이 게재된 후 우리나라는 또 바뀌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서 비롯하는 문화 현상이 우리 사회를 한 차례 쓸었고, 이제 정부가 나서 우리나라를 문화 강국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대통령은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의 입구에 들어서고 있다며 K-컬처의 성과를 굳히기 위해 종합적인 대책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실제 SM 엔터테인먼트·YG 엔터테인먼트·하이브 등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주요 기업이 참여하는 대중문화교류위원회도 만들었다.
최근 변화를 보면 분명 K-컬처에 대한 변화는 현실로 느껴지고 있다. 중국인 관광객 무비자 입국의 영향도 있겠지만, 국경절에 걸친 추석 연휴에 중국인의 방문이 눈에 띄게 늘었고 세계 주요 국가에서 오는 여행자 또한 급증했다. 연휴 기간 백화점을 찾은 필자도 중국 손님 접대에 여념이 없는 백화점에 스스로 물건을 골라 빠르게 계산하고 나온 적이 있다.
분명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이전 K-컬처와 다르다. ‘한류’라 부르는 이전 K-컬처는 무국적의 새로운 세계관을 내세운 K-팝이나 우리나라 사회의 갈등을 극대로 표현한, 예컨대 <지금 우리 학교는>이나 좀비 시리즈, <기생충> 등과 같은 드라마·영화 등이 중심이었다. 그러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명확히 우리 문화에 근거해 있고, 남산을 비롯해 현재 우리 도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 방문객의 태도가 달라졌다. 쇼핑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영화의 소재가 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우리나라 전통이 있다고 하는 경주나 제주·강릉 등 전국 곳곳으로 퍼져나간다. ‘상업적 관광’에서 ‘문화적 관광’으로, 서울 중심에서 전국으로 번져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긴 어렵다. 여전히 대다수 방문객은 관광객으로서 쇼핑에 열중한다. 그 나머지도 우리나라 예술, 예컨대 공연이나 전시·영화를 보는 관광객은 거의 없다. 그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K-팝도 보지 않는다.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저 서울의 명소나 한국의 문화라 볼 수 있는 전국 각 지역을 찾아다니며, 갓을 쓰고 한복을 입는 방식으로 우리의 문화를 즐기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이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확실히 현 정부는 지방을 중심으로 다극 체계로 전환을 꿈꾸고 있는 것 같다. 새롭게 개편된 지방시대위원회는 지난 9월 30일 첫 회의를 열고 ‘국가균형성장 추진전략 설계도’를 의결했다. 이 설계도에 따르면 향후 우리나라는 ‘5극 3특’으로 변화한다. 5극은 수도권을 포함한 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을 말하고, 3특은 제주와 강원·전북 등 특별자치도를 의미한다. 이 체계에 따라 각각 해당 지역에 맞는 산업 체계로 재편되고, 새로운 성장 전략을 구성하게 된다. 서울을 포함한 경기와 인천 등 수도권은 ‘경제문화중심’이다. 금융과 콘텐츠, IT, 스타트업 등 성장성이 강한 산업을 중심으로 재편된다. 이 중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콘텐츠다. K-팝을 포함해 영화·드라마·게임 등 거의 모든 콘텐츠 자원이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된 만큼, 이것은 당연한 결과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에 대해선 여러 고민이 필요하다.
그 고민 중 하나는 K-컬처가 과연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가 하는 것이다. 혹자는 이게 늘 하는 고민이라 그다지 중요지 않다고 말할지 모르나, ‘산이 높으면 계곡도 깊은 법’. 어느덧 거의 정상에 다 온 느낌이라 그다음을 준비하는 것은 분명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문화라는 건 하나의 트렌드다. 변하기 시작하면 쉽게 따라잡을 수 없어 금방 뒤처진다. 예컨대 1990년대 초중반 아시아를 넘어 세계 시장을 주도한 홍콩과 중국영화를 생각해보라. 홍콩의 반환이라는 역사적 충격이 있었지만, 과다하게 노출된 누아르 방식의 홍콩영화와 중국 무술은 곧 그 위치를 상실했다. 일본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보다 일찍 J-컬처로 세계를 지배하며, ‘쿨 재팬Cool Japan’을 외친 것이 일본이다. 그들은 1990년대 중후반 X-재팬Japan을 축으로 초밥을 세계화했고, 일본식 정원 문화를 퍼뜨려 뉴욕의 아파트에 정원이 들어서도록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2005년 ‘쿨 재팬’을 공식 국가 브랜드로 내세우고,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일본 콘텐츠의 판촉에 나선다. 그러나 한국 문화에 갇혀 그들의 성장판은 닫혔다. 그뿐 아니라 일본적인 것을 내세우는 콘텐츠의 특성으로 확장성을 상실한 채 더 이상 성장하지 못했다. 세계인의 일상에 파고들며 영원할 것 같았던 일본 문화도 그렇게 시들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가장 중요한 방향 중 하나는 수출국가에서 생산국가, 즉 창조국가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지금의 힘을 지속하려면 우리의 문화를 ‘파는 방식’에서 세계가 들어와 우리 사회에서 섞이고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생산 방식’으로 전환해야 세계의 트렌드에 앞서가는 그런 창조국가, 문화 생산국가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사실 K-팝을 포함한 K-콘텐츠 생산 체계는 이를 많이 수용했다. 특히 K-팝은 우리가 아닌 세계, 특히 북유럽의 작곡가에 의해 생산됐다. 공연팀도 각각의 다른 유닛으로 구성, 때와 장소에 따라 유연하게 운영해 이미 세계화된 생산시스템을 갖췄다. K-팝에 우리의 세계관은 없다. 거기엔 보편적이고 전 세계적인 세계관이 담겨 있다. 아울러 피나는 연습을 통해 세계가 감동할 만한 퍼포먼스를 만들어 보편적인 세계 시민을 유혹한다. 역사 이래 이런 음악 장르는 없었다. 최신의 문화는, 패션쇼의 오트쿠튀르를 일반인이 그대로 입을 수 없듯 아무나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K-팝은 다르다. 보편적 세계관과 예쁜 가사, 그리고 멋진 아이들이 나와 세상 누구도 할 수 없는 퍼포먼스를 연출했다. 저항도 없고, 거침도 없는데 즐기지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K-팝은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장르를 만들어 세계를 자기 시장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런데 아직 나머지 분야는 그렇지 않다. 깊은 사회적 문제에 의존해 우리의 문제를 우리가 이야기한다. <기생충>이 대표적인 예다. 우리 한류의 역사를 보면 제1기는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등 남북문제가 주도했고 2기는 <시크릿 가든>과 같은 보편적 연애 이야기, 3기에 들어서면 <기생충>이나 학교 시리즈, <지옥>과 같은 좀비 시리즈가 주도했다. 즉 우리 사회의 양극화와 대립, ‘헬조선’으로 이야기되는 극단의 현실이 한류의 중심이 된 것이다.
물론 이 생산 체계를 세계화하자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드라마·영화가 세계화된 데는 우리나라 제작 시스템이 갖고 있는 작가주의와 감독주의가 큰 힘을 차지한다. 그래서 오히려 이건 보호받을 필요가 있다. 다만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 시스템 내에 세계 보편적 요소를 넣자는 게 아니라, 우리의 문화와 콘텐츠의 생산 시스템에서 좀 더 다양한 생산 주체를 놓자는 것이다. 곧 세계의 다양한 예술과 창작 주체가 우리 사회에 들어와 이 시스템에서 여러 활동을 하며, 자신을 키워나가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어 좀 더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가 있는 나라로 발전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아니라 세계가 함께 만들어가는 우리의 문화, 그래야 식상함으로 초라해진 앞의 문화처럼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새로움으로 지속하는 문화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문화 강국의 중심 도시이자 5극 3특 체계에서 경제문화수도에 해당하는 서울은 좀 더 적극적으로 세계와 소통할 필요가 있다. 세계의 다양한 창·제작자들이 서울에 와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열어야 한다. 예컨대 서울에는 금천예술공장이 있다. 2009년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해 시각예술 분야의 국제적인 창작공간으로 운영된 금천예술공장은, 팬데믹 이후 국내 작가의 작업 공간으로 변했다. 물론 국내 작가에게도 창작공간이 필요하고, 작업 공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다만 국제 교류 차원에서 검토해볼 필요는 있다. 서울시와 서울문화재단의 국제 교류 사업을 살펴보면, 여전히 포럼이나 학술 토론회를 여는 등 형식적인 면에 그치고 있다. 재단이 설립된 지 20년이 넘은 시점에서 여전히 형식적 교류에 그친다는 점은 다소 고민이 필요한 문제다. 실질적인 작가의 성장이나 새로운 작업 기회의 부여라는 재단의 역할 면에서의 성과가 제한되기 때문이다.
국제 교류의 문제는 오래전부터 여러 번 논의된 바 있다. 그러나 대부분 창의적 거점이나 공간을 만들어 선진국의 특정 작가를 유입하거나 MOU를 맺고 일정 기간 상호 교류하는 방식이 전부였다. 예술가들이 해외와 관계하며 다양한 기회를 통해 성장할 계기를 만드는 것과는 다소 먼 셈이다. 이제 세계와 교류를 위해서는 새 판을 짤 필요가 있다.
필자는 그 새로운 판을 위해 좀 더 다양한 나라에 기회를 개방할 것을 제안한다. K-컬처가 번성하고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지금 선진국뿐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활동하고 싶은 수많은 (청년) 예술가 혹은 뮤지션, 드라마나 영화 제작자가 무척 많을 것이다. 특히 아시아를 비롯한 중남미에 얼마나 많겠는가? 이들이 서울에서 다양한 작업을 한다면, 우리의 문화는 분명 더 커질 것이다. 우리의 문화를 수출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세계의 문화를 유입하며 호흡하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요지는 우리 문화의 다양함과 풍부함을 갖기 위해 세계와 호흡하는 것에 있다. 그래야 글로벌 서울도, 세계 문화중심도시 서울도 가능할 것이다. 세계 속의 서울로 바로 서는 것, 지금 필요한 것이다.
2004년 설립 이래 서울문화재단은 여러 경로로 성장해왔다. 초기에 재단은 예술지원에 집중해 다양한 사업을 실험적으로 추진해왔고, 서울시의 갖은 축제를 넘겨받아 전문 능력으로 그 질을 높이며 예술기관으로서 자기 역할을 다해왔다. 이어진 단계에서는 10여 개에 달하는 창작공간을 조성해 예술 창작의 기반이자 활동 거점으로 역할을 해왔고, 최근까지는 예술교육과 생활예술, 지역문화 등 시민사회와의 접점에서 다양한 사업을 기획하며 서울 문화와 예술의 중심으로서 역할을 해왔다. ‘예술’에서 ‘시민과 서울의 문화’로 자신의 영역을 넓혀 온 것이다.
지금 재단은 이 길의 끝에 서 있다. 더 이상 확장할 수 없는 경로 끝에서 이제 새 길을 찾아야 한다. 나는 그 길로 ‘글로벌 선언’을 제안한다. 글로벌 선언이란 국제 교류에 바탕을 두고 서울의 작가들이 세계 속에서 활동하도록 돕고, 세계의 예술가들이 서울에서 활동하도록 그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다. 즉, 새로운 플랫폼으로 재단을 발전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간 재단이 서울의 예술과 문화 발전에 노력했다면, 앞으로 재단은 세계 속에서 호흡하며 서울의 예술가가 세계로, 세계의 예술가가 서울로 들어오는 통로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내실 있는 예술과 예술인 교류를 바탕으로 세계의 문화와 하나 되어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기관으로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의 문화를 파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눈앞에 보이는 이익일 뿐, 진정 중요한 것은 우리가 지치지 않는 문화 생산국가로 발전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울문화재단이 세계 문화를 선도하는 도시로서 서울을 문화 생산도시로 만드는 역할을 하기를 기대한다.
글 라도삼 서울연구원 선임연구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