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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6월호

아이러니의 아우라,
스트리트 컬처를 만나다

논리에 의해 유지되는 권력의 위계가 전복되는 것 같은 짜릿함.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몸과 마음을 온전히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환희에 빠진다.
그것이 스트리트 컬처의 매력이다.




도시를 ‘게임의 장’으로 만드는 스트리트 아트의 세계

김홍식 미술가, 『스트리트 아트는 거리에 없다』 저자

“도덕은 예술처럼 어딘가에 선을 긋는 것을 의미한다Morality, like art, means drawing a line someplace”(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예술과 도덕을 연관 짓는 오스카 와일드의 명문만큼 예술의 힘을 명확히 짚어낸 텍스트도 없을 것이다. 이 문장을 곱씹어보면 예술이 긋는 선은 유희의 영역 너머, 도덕이 규정하는 바를 갱신할 수 있다는 역설에 다다를 수 있다. 우리 사회의 틀이라 할 수 있는 법은 도덕의 표피이기도 하다. 스트리트 아트는 그 단단한 표피가 뚫리는 파열음과 함께 탄생했다. 이 소리는 ‘아이러니’의 미학을 주장한다. 이 주장 위에 범법 행위와 예술의 얼굴을 가진 야누스의 탑이 세워진다.

스트리트 아트는 직역하자면 ‘거리예술’이다. 여기서 ‘거리’란 좁게는 캔버스라는 물성의 대체재, 넓은 의미로는 아카데미-미술관이라는 생태계 ‘바깥’을 지칭한다. 미술사 안에서 캔버스를 벗어나고자 하는 실험이 무수히 많았던 점을 감안하면, 스트리트 아트의 본질은 후자 쪽으로 자연스럽게 기울어진다. ‘바깥’이란 단순히 비제도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카데미-미술관은 문명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지속적으로 가시화한다. 작업에는 분류가 수반되는데, 이 과정에서 예술 작품이 통념·국가·민족·장르·시대 등 대주제에 귀속된다. 스트리트 아트는 이것을 거부한다. 스트리트 아트는 철저히 그 행위자를 지칭한다. 자신의 이름을 거리에 남기고 다니는 행위, 그라피티graffiti로부터 비롯했기 때문이다.

스트리트 아트는 그라피티의 ‘전술적 진화 형태’다. 단편적으로는 ‘글자-쓰기’에서 ‘이미지나 아이콘-그리기’로의 변화라고 정의할 수도 있겠다. 스트리트 아트는 ‘낙서’가 아니라 ‘작품’을 남긴다는 논리로 존재 의미를 확보하려고 한다. 대중을 설득하려는 의지를 내포한 그라피티인 것이다. 순수한 그라피티는 그야말로 에고ego 덩어리다. 그것을 정제하고 적절하게 꾸며서 내보내는 노력, 즉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그라피티를 스트리트 아트로 변하게 만든다. 그라피티는 자체적인 문화적 규범을 따르지만, 스트리트 아트는 예술의 이름 아래 자유롭다. 그러므로 모든 스트리트 아트는 크든 작든 부분적으로 그라피티의 특성을 보이지만, 모든 그라피티가 스트리트 아트일 수는 없다. 2010년 무렵을 기점으로 스트리트 아트와 (거의) 동일한 의미로 병기되어온 ‘어반 아트Urban Art’는 1990년대에 이르러 스트리트 컬처의 영향력이 거대해짐에 따라 자연스럽게 유입된, 혹은 전부터 스트리트 아트의 주변에 존재해오던 다양한 유형의 ‘스트리트 컬처적인’ 예술 형식의 통칭이라 할 수 있다.

스트리트 아트와 어반 아트의 구분점은 행위자의 작업 방식에 있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는 거리에서의 (불법적인 과정을 감수하는) 실험과 그 기억을 작품에 담아낸다. 어반 아티스트의 경우에는 경험의 여부와 상관없이 ‘스트리트 컬처’라는 거대한 정보의 바다에서 이미지를 건져 올려 조합한다. 필요에 따라 어떤 정보든 받아들이고, 그것을 다시 스트리트 컬처적인 태도와 섞어낸다. 그라피티-스트리트 아트-어반 아트로 진행되는 진화의 화살이 그리는 궤적은 힙합이 브롱크스Bronx라는 뉴욕의 한 지역에서 세계가 공유하는 문화로 발전한 양상과 매우 닮았다. 많은 래퍼가 거리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그곳에 없는 것처럼, 스트리트 아티스트들도 그렇다.





스트리트 컬처,
자신을 위한 존재 증명 게임

스트리트 아트라는 용어는 2000년대부터 차츰 쓰이기 시작한 신조어지만, 최초의 분기점은 세상에 그라피티의 존재가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1980년대 초로 봐야 한다. 1984년 뉴욕의 미술계에서 포스트 그라피티Post Graffiti라는 용어가 사용된 일이 있었는데, 이는 장-미셸 바스키아Jean-Michel Basquiat와 키스 해링Keith Haring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 갈라짐 현상은 그라피티와 스트리트 아트를 다른 단어로 치환하면 쉽게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그라피티를 ‘개구리’, 스트리트 아트를 ‘파리지옥’이라고 해 보자. 둘 다 파리(관객)에게 관심을 두지만 사냥 방식이 다르다. 파리라는 목표물을 취하기 위해 개구리는 혀를 뻗어 낚아채고, 파리지옥은 덫을 놓아 유혹한다. 개구리는 파리와 공유하는 정보가 없다. 이것은 일방적인 커뮤니케이션이다. 파리지옥은 파리가 선호하는 형태의 이미지(냄새)를 공유하고 그것을 구현해 파리를 사냥한다. 바로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다. 그라피티에도 물론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은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그라피티 커뮤니티 내부의 커뮤니케이션이었다.

단일 문화로서 그라피티를 심도 있게 다룬 최초의 다큐멘터리 <스타일 워Style Wars>1983에서 10대 흑인 소년 스킴Skeme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반박한다.

“그건 우리를 위한 거예요It’s for us

스킴의 작품은 그가 원하지 않더라도 뉴욕의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에게 노출된다. (당시 뉴욕의 그라피티 신scene에서는 지하철 열차 외벽에 커다랗게 자신의 이름을 새겨넣는 것이 최고의 영예로 여겨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특정 다수의 시민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단지 ‘우리를 위해’ 그렸다는 말은 그라피티가 소수의 문화 공동체 안에서 사용되는 독자적인 언어로 작용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스킴이 그려놓은 꾸불꾸불한 알파벳은 그라피티 문화의 글자를 변형시키는 놀이의 재미와 멋을 이해하는 사람에게만 통용되는 언어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그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자신의 이름을 구성하는 알파벳 철자가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지하철 열차의 외벽에 작업하기를 감행한 자신의 용기와 악조건 속에서 결과물을 무사히 도출해냈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바로 아카데미-미술관 ‘바깥’, 즉 ‘스트리트 컬처’의 언어다.

스케이트 보더들은 공중도덕을 무시하고 광장의 난간과 벤치를 놀이 기구로 만든다. 서퍼들은 안전 수칙을 위반하고 즐거움을 위해 커다란 파도에 뛰어든다.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은 허락받지 않은 공공미술로 도시를 채운다. 스트리트 아트를 대표하는 아티스트 셰퍼드 페어리Shepard Fairey·카우스KAWS도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전까지는 모두 스트리트 컬처의 언어로 세상과 소통했다. 셰퍼드 페어리는 건물 옥상이나 지면에서 잘 보이는 높은 곳에 커다란 포스터를 붙이기를 즐겼고, 카우스는 버스정류장의 광고 포스터를 몰래 훔쳐다가 그 위에 자신의 시그니처 캐릭터를 덧그린 후에 제자리에 돌려놓는 식으로 스트리트 컬처의 일원임을 증명했다.

이렇게 세상 만물의 절대성을 부숴가며 노는 것을 게임의 법칙으로 삼아 행동하는 것이 거리의 방식이다. 이 부분에서 누군가는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모든 현대미술이 그러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단연코 이 둘은 다르다. 미술은 기존 상징체계를 대상으로 한다. 그것은 겉보기에는 마냥 숭고해 보일지 모르지만, 담론 앞에 서면 어릿광대의 처지를 면치 못한다. 스트리트 컬처의 대상은 자기 자신이다. 일종의 존재 증명 게임인 것이다. 게임은 다가오는 위협에 대처하는 저마다의 방편을 내놓으라고 요구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개성이 도출된다. 비보이 배틀B-Boy Battle은 하나의 음악에 반응하는 개성의 우열을 따지는 게임이다. 배틀에 참여한 이는 음악을 고를 수 없다. 그저 반응할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게임의 형식에 대응하는 저마다의 형식을 무의식 중에 갖추고 있는데, 예술가들은 그것을 ‘스타일style’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변화무쌍한 형상의 씨앗이며 존재가 삼라만상을 대하는 일관적 태도다.


촉발하는 미술관,
스트리트 컬처의 미래

스트리트 컬처에 빠져들면 논리에 의해 유지되는 권력의 위계가 전복되는 순간(의 착각)을 느낄 수 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나의 몸과 마음을 온전히 내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다는 환희에 빠지게 된다. 대중이 스트리트 컬처에 매력을 느끼고 그 파생 상품을 소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본주의가 21세기 들어 스트리트 컬처를 선택한 배경도 이와 일치한다. 많은 기업이 더 이상 쪼개질 수 없을 만큼 세분화된 욕망과 소비를 장려하고 그것을 다시 카테고리화하기 위한 방편 중 하나로 스트리트 컬처를 활용한다. 이는 어디까지나 스트리트 컬처를 상징 자본으로 소비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이러니’가 제거돼 있기 때문이다. 아이러니는 갈등을 촉발할 가능성을 항시 내재하고 있지만, 소비재로서 스트리트 컬처는 갈등을 정형적인 이미지에 가둬 바람직한 방식으로 휘발시킨다.

오늘날 우리가 백화점이나 갤러리에서 마주치는 스트리트 컬처·스트리트 아트란 ‘아이러니’가 제거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이것들은 무가치한 것일까? 어찌 되든 우리는 거리의 그라피티풍 벽화, 비보이 공연, 티셔츠에 새겨진 혁명적 문구에서 자유의 향기를 맡을 수 있다. 그것들은 ‘스프레이 페인트도 미술 도구가 될 수 있다’, ‘춤으로 싸움을 대신할 수 있다’, ‘혁명적 언어를 언제 어디서든지 표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의 화석이다. 조금 과장을 보태 말하자면, 스트리트 컬처·아트는 이 시대에 마지막 남은 진정성의 파편 중 비교적 최근인 20세기 말부터 21세기 초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것들의 흔적과 그 재현일지도 모른다.

스트리트 아트는 20세기의 산물이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우리의 현재와 미래를 가늠하기 위한 유용한 자료가 될 수도 있다.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raphical User Interface가 세상에 소개된 1970년대는 활자에서 이미지-아이콘의 시대로 이행하기 시작한 전환기다. 마찬가지로 이 시기에 그라피티의 기본 형식이 확립됐고, 단순한 글자들이 그림을 닮은 형상으로 진화했다. 더불어 그라피티에는 디지털 환경적 행동 양식의 원형이 숨어 있다. 그것은 달리 말하자면, 게임적 태도라 할 수 있다. 마킹 행위를 통해 세상을 가상으로 정복하는 게임인 그라피티는 세계를 시뮬레이션화하기에 앞서 자신을 캐릭터화함으로써 시작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인식하게 되면 도시의 낙서는 하나의 e-스포츠 플레이처럼 다가오게 된다. 그라피티-스트리트 아트뿐만 아니다. 스트리트 컬처의 모든 행위가 도시를 게임의 장으로 만든다. 언제 어디서든 이동과 접속이 가능한 형태로 발달해온 이 문화는 인류의 문명을 접었다가 펼치며 즐기도록 허용한다. 그것은 우리를 향해 튀어오르는, 촉발하는 미술관이다.

미디어 이론의 선구자 마셜 매클루언Herbert Marshall McLuhan은 『미디어의 이해Understanding Media: The Extensions of Man』를 통해 현대인에게 예견된 미래를 다음과 같이 기록해두었다.

“우리는 (…)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회에 참여해야 하는 부담스러운 위협을 갑자기 받게 됐다. 이것은 사람들이 사회 속에서 예술가의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는 필연적인 운명처럼 보인다.”

그리고 이 말은 실현됐다. AI 기술은 우리를 전인적 인간이 되라고 부추긴다. 예술가가 아닌 나머지 모두에게도 예술가의 역할이 부여된다면 그 결과는 필경, 담론의 손아귀를 벗어난 바깥으로 뻗어나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바깥’의 예술-스트리트 아트가 다시 한번 호출된다. 세계의 정보가 개인에게 집약적으로 재가공돼 산출되는 현시점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계와 인간을 구분해줄 넓은 의미의 예술적 태도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정체성을 스스로 규정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대에 필요한 덕목이다. 이러한 관점은 스트리트 아트를 바라보던 당신의 기존 관념 위에 새로운 마킹을 새겨넣을 것이다. 도시의 발랄함을 유지하기 위한 일탈의 상징이 아닌, ‘아이러니’의 아우라를. 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만을 가리키는 이미지의 위대함을. 이름 모를 어느 존재의 몸부림을.


우리만의 독창성이 발휘된
스트리트 댄스의 장

박성진 서경대학교 교수, 위너스크루 단장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유희 문화로 시작한 스트리트 댄스는 세대와 국경을 넘어 오늘날 전 세계 도시에서 통용되는 글로벌 문화예술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스트리트 댄스는 자기표현의 자유, 즉흥성과 창작성을 바탕으로 자신의 몸을 악기로 삼아 음악을 자유롭게 연주한다는 개념을 모토로 프리스타일·배틀·퍼포먼스 등 여러 형태로 발전해오고 있다.

도시 젊은이들의 자유로운 생활 양식이라는 뜻의 ‘스트리트 컬처Street culture’에서 파생된 스트리트 댄스는 생활 속의 춤으로, 혹은 K-팝의 안무로, 그리고 올림픽 무대 위에서도 만날 수 있는 예술 장르로 발전했다. 생성기인 1960년대 이전에도 시대별로 유행하던 여러 형태의 스트리트 댄스가 있었으나 단순히 유행하는 춤을 넘어 스타일로 인정받아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향유되고 있는 팝핑·락킹·브레이킹·왁킹·프리스타일 힙합·하우스·댄스홀·크럼프 등을 대표적인 장르로 구분할 수 있다.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를 중심으로 팝핑·락킹·왁킹·크럼프 등이 퍼졌으며,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는 힙합으로 대변되는 브레이킹·프리스타일 힙합·하우스 등이 생성됐다. 그리고 나아가 각각의 스타일은 음악과 매칭되며 특유의 테크닉을 바탕으로 문화 속에서 성장했고,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하나의 문화적 현상이 됐다.

미국의 거리 문화로부터 시작했지만, 한국의 스트리트 댄스는 독창적인 창의력이 발휘되는 형태로 또 하나의 창조성과 집단성을 지닌 문화로 발전했다. 초기에는 클럽 문화와 언더그라운드 신scene을 중심으로 전파됐지만 곧 댄스 배틀, 퍼포먼스, 방송 프로그램 등을 통해 급속히 대중화된 것이다. 특히 한국은 정교한 테크닉, 팀워크가 강조되는 군무와 상당한 연습량을 통해 특유의 스타일을 확립하고 K-스트리트 댄스의 브랜드를 형성해왔다. 이는 단순히 수입된 문화가 아니라,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민족답게 예술에 대한 열정과 교육 시스템 등이 결합해 새로운 창작 문화로 진화하는 양태로 성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하여 단순한 수용을 넘어 진화하고 창조된 한국의 스트리트 댄스는 현대 문화의 생동감 있는 예술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이렇듯 스트리트 댄스는 단순한 춤 이상의 의미가 있다. 자신을 표현하고, 공동체와 소통하며, 억압된 감정을 해소하고, 때로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이에 따라 스트리트 댄스는 음악·패션·언어 등 다양한 문화 요소와 결합해 복합적인 문화 현상으로 확장됐다. 그리고 이제는 스트리트 댄스가 교육 현장에서도 활발히 접목되고 있다. 청소년 대상 문화예술교육, 학교교육, 지역 커뮤니티 프로그램 등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스트리트 댄스를 접하고 참여할 기회를 얻고 있다. 그리고 각 지역의 댄스 스튜디오와 배틀, 워크숍, 국제 교류 프로그램 등을 통해 세대와 국경을 넘어 소통하고 교류하며 발전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 각국에서 한국 댄서들의 기술력과 창의성을 인정받으며 한국은 명실상부 스트리트 댄스의 강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다양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댄서들이 해외 대회에서 활약하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이들의 콘텐츠가 실시간으로 전 세계에 공유되고 있는 것. 이제 스트리트 댄스는 모든 세대가 즐길 수 있는 문화이며, 예술이자, 교육이고 사회적 소통의 도구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여전히 진화 중이며, 그 중심에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험하는 댄서들의 열정과 힘이 있다.




서울의 스트리트 컬처,
거리의 취향, 일상의 문화

강필호 도시문화 기획자·에디터

2018년, 하이엔드 명품 패션의 대명사 루이비통은 남성복 컬렉션 예술감독Artistic Director으로 버질 아블로Virgil Abloh를 임명했다. 스트리트 웨어 브랜드 ‘오프화이트’의 창립자이자, 건축학을 전공한 흑인 디자이너인 그는 하이패션의 상징적인 무대에 진입하며 문화 질서의 변화를 알렸다. 이는 단지 패션 산업 내의 인사이동이 아니라 거리에서 자라난 취향이 이른바 주류 문화의 심층부로 진입한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10여 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덧 스트리트 컬처는 더 이상 주변부의 것이 아닌 무엇으로 자리잡은 모양새다. 그것은 오히려 가장 감각적인 전위 문화이자, 대중의 취향과 기호에 가장 가까이 서 있는 일종의 ‘동시대적인 미감’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우리는 ‘스트리트 컬처’의 개념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단지 거리에서 소비되는 상품의 일종일까, 혹은 주류 바깥에서 성장해온 문화적 에너지가 응축된 일종의 거대한 흐름인 것일까?

당연하게도 스트리트 컬처는 패션에 국한되지 않는다. 음악·춤·그라피티·음식 등 다양한 장르에서 태동해 성장해온 스트리트 컬처는 영역별로 각기 다른 사회적 배경과 맥락 속에서 발전해왔다. 이처럼 폭넓은 콘텐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트리트 컬처의 기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빈자의 미학으로
세계를 뒤흔든 거리 문화

스트리트 컬처의 뿌리는 미국 도심 빈민 지역, 그중에서도 뉴욕 브롱크스의 흑인·라틴계 커뮤니티다. 1970년대 말, 산업화 시대의 끝자락에 들어선 미국 내 치열한 계층 경쟁에서 밀려난 이들은 음악과 춤, 낙서와 의상 등으로 자신들의 고단한 일상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남겼다. 힙합은 그들의 삶을 음률과 언어에 담은 일종의 다큐멘터리였고, 브레이킹은 이를 거리 위에서 온몸으로 표현한 행위 예술이었다. 화이트 큐브가 허락되지 않은 이들에게 그라피티는 도시라는 캔버스를 공유하는 유일한 방식이었다.

스트리트 패션 또한 이와 맞닿아 있다. 스케이트보드와 서핑 같은 이른바 서민적인 액티비티, 스포츠에서 출발한 스트리트 웨어는 기능성과 자기 표현의 영역 사이를 가로지르며 진화했다. DIY 감성과 로고 플레이, 한정판 협업은 모두 이 문화가 가진 ‘반항의 미학’을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러한 정체성은 점차 상업 플랫폼과 연결되며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어냈다. 나에게 딱 맞는 스케이트보드, 내가 만들고 싶은 서핑 웨어를 꿈꾸며 출발한 스투시·반스·슈프림 등 브랜드는 거리의 상징에서 세계적 아이콘으로 성장했고, 이는 하이패션의 언어마저 변화시켰다. 오늘날 이들의 런웨이에는 예술과 거리, 실용과 메타포가 혼재한다.

스트리트 푸드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요소다. 타코와 케밥, 반미와 핫도그 등은 모두 서구권 이민자 커뮤니티의 주방에서 태어난 음식이며, 도시에서의 식생활과 취향이 절묘하게 섞인 결과물이다. 이러한 음식은 저렴한 가격과 즉흥성, 그리고 손맛이라는 감각적 요소를 통해 도시인의 일상을 구성하는 중요한 매개체가 됐다.


시대의 반영,
서울의 거리 문화

서울의 스트리트 컬처는 서구권의 스트리트 컬처를 수용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지만, 외래문화의 단순한 수입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특수성과 고유성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광복 이후 엄혹한 군부 독재 기간이 존재했고 이러한 정치 환경으로 인해 일종의 치외법권이었던 미군 기지촌 정도를 제외하면 스트리트 컬처의 자유로운 창작과 향유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스트리트 컬처의 수용과 표현은 1990년대 문민정부 출범 이후 정치적 자유화와 대중문화의 개방이 맞물리며 가능해졌다. 제도 밖 문화가 자생할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이태원은 미군 부대 인근의 클럽 문화와 다국적 문화가 융합된 공간으로, 조기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의 실험장이었다. 특히 클럽 문나이트·케이크샵·소프 서울과 같은 장소는 흑인 음악과 언더그라운드 댄스의 교차점이었다. 홍대 일대는 인디음악과 스트리트 아트의 거점으로, 거리 공연과 벽화, 독립 브랜드의 생태계가 자리잡았다. 성수동에선 공장과 창고 등 재생 공간을 플랫폼 삼아 새로운 세대의 감각을 반영한 창작과 소비가 이어지고 있다.

분야별로 살펴보자면, 음악에서는 DJ와 언더그라운드 힙합 신이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 시대의 대중음악을 이끌었고, 패션에서는 ‘코리안 스트리트 웨어’로 통칭되는 무신사 중심의 브랜드들이 세계적으로 호명되고 있다. F&B 분야에선 과거 좋은 양돈 부위를 모두 수출하고 남은 부위를 악착같이 먹어야만 했던 식문화를 반영한 삼겹살·순대·곱창 등 음식이 재해석돼 파인 다이닝 메뉴로도 입지를 넓히고 있다. 서울의 스트리트 컬처는 이처럼 다양한 감각과 시대적 배경이 중첩된 거대한 복합문화의 군집이자, 동시대 시민성의 실천 공간이기도 하다.


‘합’을 위한 ‘반’,
그리고 다시 만날 ‘정’

스트리트 컬처의 본질은 주류 문화, 사회적 규범, 제도 바깥에서의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버질 아블로의 사례처럼, 하이엔드 문화조차 스트리트 컬처를 받아들이는 이유는 문화가 늘 새로운 사유와 메시지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전복의 상상력, 예상 밖의 미감, 불균질한 조합, 이런 요소들이야말로 예술과 문화가 끊임없이 진화할 수 있는 동력이다. 또한 스트리트 컬처는 소수의 디렉터나 큐레이터가 기획한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에서 만들어진 ‘생활문화의 총합’이라는 것 역시 잊어서는 안 될 지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거리의 문화를 관찰하고, 재구성하고, 응원하는 행위는 곧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이 된다.

앞으로도 서울의 스트리트 컬처는 다음 세대의 감각,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 그리고 그들이 입고 먹고 즐기는 생활로부터 다시 쓰일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만드는 미래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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