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위의 섬,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기까지
도시의 잠재력은 육지에만 머물지 않는다. 바다와 강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그 안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보여준다. 각기 다른 역사와 환경 속에서 생태·문화·관광 등 임무를 수행하며 도시의 상징이 된 섬을 살펴본다.파리를 대표하는 콘서트홀 ‘라 센 뮈지칼’ ⓒArthur Weidmann
센강 위에 있는 세갱섬Ile Seguin은 시대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로 변모하며 프랑스 현대사를 고스란히 반영한 곳이다. 불로뉴 빌랑쿠르Boulogne-Billancourt와 세브르Sevres 사이 센강 한가운데 있는 이 섬은 다양한 역사를 거쳐 파리 서쪽의 문화 중심지로 거듭났다.
평범한 농경지였던 세갱섬은 17세기에 베르사유 궁전과 파리를 잇는 요충지 역할을 했다. 18세기 들어 프랑스의 가죽 공업을 이끈 세갱이라는 인물이 가죽 태닝 공장을 세우면서 발전했고, 19세기 초에는 수많은 노동자가 유입되며 가죽 산업 중심지로 명성을 떨쳤다. 벨 에포크 시대에는 보트 타기와 낚시, 비둘기 사냥 등 여가와 휴식의 공간으로 변화했다. 당시 윌리엄 터너J. M. W. Turner와 장 바티스트 카미유 코로Jean-Baptiste-Camille Corot 같은 예술가들이 센강의 빛과 풍경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1919년 프랑스 자동차 산업을 이끌던 루이 르노가 세갱섬을 인수해 르노 자동차 공장을 세우면서 섬은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1950년대까지 프랑스의 산업화를 상징하는 장소로 자리한 이곳은 자동차 산업이 쇠퇴하고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오랜 시간 방치되고 만다. 하지만 2008년에 오드센 지역 의회가 섬을 중심으로 센강 주변을 예술과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오드센 문화지구 프로젝트La Vallee de la Culture des Hauts-de-Seine를 시작하며 다시 활기를 띤다. 반 시게루와 장 가스틴이 공동 설계한 공연장 라 센 뮈지칼La Seine Musicale이 섬에 들어서며 파리를 대표하는 공연장으로 주목받았다. 영화관·호텔·레저 시설뿐 아니라 시민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고 산책을 즐길 수 있는 녹지 공간도 늘어났으며, 다양한 조각 작품이 자리했다. 이렇듯 프랑스 현대사의 흐름과 함께 성장한 세갱섬은 현재도 예술과 자연, 삶이 공존하는 문화예술 거점으로 인정받고 있다.
센강 중심에 자리한 세갱섬의 풍경 ⓒShigeru Ban Architects
맨해튼 허드슨강 위에는 독특한 풍경을 연출하는 인공 섬이 있다. 마치 물 위에 공원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이는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다. 2021년 개장한 약 9,712m2 규모의 이 섬은 자연과 문화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뉴요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리틀 아일랜드는 20세기 초부터 뉴욕의 여러 역사적인 순간이 쌓인 부두Pier 54에 터를 잡았다. 1912년 타이태닉호 참사 당시 생존자들이 카르파티아호를 타고 도착한 곳이자 1915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의 격침으로 침몰한 여객선 루시타니아호가 출항한 곳이 바로 이 부두다. 이후 수십 년간 항구로 운영되다가 1986년부터 뉴욕의 대표적인 LGBTQ+ 행사 ‘댄스 온 더 피어Dance on the Pier’의 주요 무대가 됐을 뿐 아니라 1998년 허드슨강 공원의 일부로 편입되면서 다채로운 이벤트가 열리는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12년 허리케인 샌디가 뉴욕을 강타하면서 부두가 심각한 피해를 보자 2013년 딜러 폰 퓌르스텐베르크 가족 재단The Diller-von Furstenberg Family Foundation의 후원으로 재개발이 추진됐다.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이 설계를 맡아 마치 강물 위에 떠 있는 듯한 형태의 곡선형 콘크리트 기둥 280개 위로 공원이 조성됐다. 기둥 위에 식물, 잔디밭, 소규모 공연장과 원형 극장 등을 설치해 방문객이 물 위에서 자연을 느끼면서도 문화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유도했다.
리틀 아일랜드는 개장 후 빠르게 뉴욕의 대표적인 문화 공간으로 자리잡았고, 첫해 100만 명 넘는 방문객을 모으며 관심을 끌었다. 뉴욕의 랜드마크이자 도시의 지속 가능한 재개발 사례로 주목받는 리틀 아일랜드는 과거의 역사적 흔적과 현대가 어우러진다는 점에서 도시 개발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뉴욕 리틀 아일랜드 ⓒTimothy Schenck
LGBTQ+ 행사 ‘댄스 온 더 피어’ ⓒChris Gagliardi
오스트리아 빈의 도나우강(다뉴브강)은 예전부터 잦은 범람으로 홍수가 자주 일어나던 지역이다.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겪자 빈 시는 1972년부터 홍수를 방지하기 위한 대규모 치수 사업을 시작했다. 강 주변에 노이에 도나우Neue Donau(신 다뉴브)라 불리는 물길을 만들고, 공사 과정에서 나온 토사를 활용해 섬을 조성했다. 이렇게 길이 21km에 달하는 인공 섬 ‘도나우인젤Donauinsel’이 탄생했다.
도나우인젤은 평소 안정된 수위를 유지하다가 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수문을 열어 물을 신 다뉴브로 분산시키고 이후 다시 수문을 닫아 물을 정화한다. 이 시스템 덕분에 도나우강 주변 지역의 홍수 위험은 현저히 줄고 깨끗한 수질이 유지되면서 시민이 안심하고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친환경 수역이 조성됐다.
도나우인젤은 현재 시민의 대표적인 레저 공간이다. 섬 전체를 따라 자전거 도로가 이어질 뿐 아니라 수상 스포츠 시설, 작은 보트가 드나드는 마리나, 조류 서식지 같은 자연 친화적인 공간도 다양하게 갖추고 있다. 1984년부터는 여름마다 유럽의 대표적 야외 음악 축제 나우인젤페스트Donauinselfest를 개최하며 섬의 약 6.5km 구간 전체를 활기찬 음악으로 채우는데, 이 대규모 축제에 해마다 300만 명 이상이 찾는다.
도나우인젤은 기존의 하천 정비 사업과 달리 자연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개발한 사례로 평가받으면서 빈을 세계적 친환경 생태 도시로 끌어올렸다. 자연 속에서 휴식과 문화생활을 누릴 수 있는 도나우인젤은 살아 있는 도시 공간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도나우강 주변에서 열리는 도나우인젤페스트 ⓒMarleen Linke
쇼핑몰과 박물관, 각종 문화시설로 유명한 오다이바Odaiba는 도쿄만 위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섬이다. 도쿄의 랜드마크이자 관광지로 널리 알려졌지만, 사실 이 섬은 원래 관광지와는 거리가 멀다. 1853년 에도 시대에 미국 페리 제독의 흑선 내항 이후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 요새로 건설됐기 때문. 섬 이름인 ‘오다이바’ 역시 포대砲台라는 의미에서 유래했다.
시간이 흘러 오다이바가 다시금 주목받은 건 1980년대 말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호황기를 맞이하면서 정부는 도쿄만 위에 작은 섬들을 매립해 하나의 미래형 도시를 조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1990년대 초 버블 경제가 급격히 붕괴하며 개발이 중단됐고, 섬은 오랜 기간 미완성 상태로 방치됐다. 그러다 1990년대 후반부터 다시 개발에 속도를 내면서 후지 TV 본사, 도쿄 빅 사이트 같은 상징적인 건물이 생겨나 점점 현재의 모습을 갖춰나갔다. 다이버시티 도쿄 플라자, 아쿠아시티 오다이바, 도요타 메가 웹 등 유명 쇼핑몰과 박물관이 차례로 들어섰고, 레인보우 브리지와 미니 자유의여신상 등이 자리했다.
특히 2021년 열린 도쿄 올림픽 때는 오다이바에서 철인3종 경기와 수영 장거리 종목 경기가 개최되면서 더욱 주목받았다. 이렇게 군사적 용도의 요새에서 출발한 오다이바는 이제 일본 수도 도쿄를 대표하는 상징적 관광지가 됐다. 지금도 과거와 미래가 만나는 공간으로서 끊임없이 진화하며 도시의 역사적 의미와 현대적 삶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일본 도쿄를 대표하는 관광지 오다이바 ⓒNesnad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항 근처 두와미시강의 준설토와 시애틀 도심에서 나온 흙을 활용해 만든 인공 섬이 있다. 바로 하버 아일랜드Harbor Island다. 처음 약 1.4km2 규모로 조성된 이곳은 곧 조선업과 물류 산업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발전했고, 1967년 확장 공사를 거쳐 약 1.6km2까지 확장됐다. 1918년 토드 조선소가 이곳에 들어선 후 제1차 세계대전 당시 활발하게 선박을 건조했고, 본격적으로 산업 중심지로 떠올랐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모인 원자재를 싣고 오는 선박이 드나들면서 활기를 띠었고,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섬의 역할은 더욱 증대됐다. 1940년대 초반 태평양 전쟁이 시작되자 미국은 시애틀을 군수물자의 거점으로 삼았고, 전쟁 후에도 하버 아일랜드는 지속적으로 성장했다. 비록 1939년 샌프란시스코 박람회를 계기로 트레져 아일랜드Treasure Island가 생기면서 규모 면에서 ‘미국 최대’라는 타이틀은 내줬지만, 시애틀 경제를 지탱하는 해운과 물류의 핵심적인 역할은 계속 이어졌다. 현재도 컨테이너 물류, 철도와 트럭을 통한 물류 운송 등 시애틀항의 주요한 산업 활동 대부분이 이곳에서 이뤄진다.
최근 하버 아일랜드는 친환경적인 항만으로 재개발과 물류 효율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지속 가능한 발전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환경 문제까지 고려한 미래 지향적 항만으로 변화하려는 것이다. 전쟁과 산업화라는 격동의 역사를 경험하고 친환경 도시로 변화를 꾀하는 하버 아일랜드의 미래가 더욱 기대된다.
친환경 도시로의 변화를 꾀하는 시애틀 하버 아일랜드 ⓒPink Sands Resort
글 백아영 미술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