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변화에 귀 기울일 때
여기, 융합예술 창·제작지원 선정 작가 10명을 소개한다.세상의 변화를 관찰하고 귀 기울이는 이들의 관점은 현시대의 예술을 오롯이 보여주고 있다.
미디어와 테크놀로지의 비선형적 계보에 주목하며, 동시대 시각문화에서 발견되는 사용자의 재현적 특성과 기술 메커니즘의 관계를 비평적인 맥락에 위치시키는 작업을 전개하고 있다. 프로젝트 <문어는 스크린>2024은 인공지능 시대의 새로운 인간상을 탐구하며, 기술 환경에 적응하는 인간의 양가적 모습을 문어의 의태에 빗대고, 이를 인류의 미래상으로 제시한다. 이 작품은 관람객이 실시간으로 소켓을 조종하고 그 결과를 이미지 데이터로 송출하는 구조를 통해 인간과 인공지능 간 협업과 공진화를 상상한다. 초기 컴퓨터가 기계가 아닌 소켓을 옮겨 계산을 수행하는 여성 노동자를 지칭한 것처럼, 관객은 소켓을 직접 움직여 물리적 코딩을 수행하며 문어와 인간이 결합하는 주술적 타임라인을 구축한다.
장치를 제작하고 소리와 물성 사이에서 하나의 맥락을 만드는 일에 집중한다. 장치를 통해 다양한 사람들과 소통하며 새로운 쓰임새를 제공하는 방식을 탐구하는 것이 중요한 작업 요소다. 사운드 인터페이스로써 작가의 장치는 협업을 통해 확장되며, 연주 도구가 될 수도, 이미지와 소리를 연결하는 광학 장치가 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전자 장치가 가진 매체적인 가능성을 포착하려 한다. 전자 장치에서 은폐된 회로의 기술을 공간을 통해 가시화하기 위해 노력한다. 로보틱스와 키네틱 설치 및 사운드로 이뤄진 <해저 광케이블을 위한 에코챔버 시스템>2024은 해저 광케이블에 주목해 인터넷 요청과 반응 사이의 짧은 시간 차를 에코핑echo ping으로 가시화한다. 실시간으로 송신된 핑이 돌아올 때마다 사운드와 영상이 시작되며, 물질적 웅성거림과 더듬거림을 드러낸다.
회화와 인터랙션 디자인을 전공했으며, 기술 환경 안에서의 감각과 경험, 데이터와 물질의 상호작용, 기술적 오류의 창의적 활용 등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접근을 통해 기술·인간·환경의 복잡한 관계를 생태계 관점에서 조명하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과 시스템의 변화에 주목한다. <OOX 2.0-지구물질인간존재도를 위한 어플리케이션>2024은 전작 <인간 물질론과 합성의 존재도>에서 이어지는 인간과 인공지능의 관계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OOX’란 ‘객체 지향의 XObject Oriented X’를 의미하며, 인과성과 개연성이 없는 임의의 차원을 뜻한다. 작품은 동양의 달력 주기를 활용해 인간의 식별 데이터로부터 관계성을 추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인공지능 페르소나가 시를 작성한 후 그것을 프롬프트로 활용해 이미지를 생성하는 애플리케이션이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바이오브BiOVE의 창립자 겸 공학 연구자다. 작가로서 확장현실XR 및 AI 기술, 그리고 공연예술의 경계에서 ‘3D 퍼포머티브 장치-환경’을 창작하고 있다. 이 장치-환경은 다양한 (비)인간의 행동, 반응, 표현을 포함하고, 특히 (바이오-)식민주의, (생명)공학 중심적 체제와 그 역사에서 구축된 소수자들을 위한 무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작가는 관객-퍼포머의 수행성 개념, 관객-퍼포머와 장치-환경 간 상호 수행성 개념을 탐구한다. 확장현실XR 기반의 관객 참여형 퍼포먼스 <솔라소닉 밴드>2024는 기후 위기 시대에 태양이 떠 있는 한 야외 공연을 이어가고자 희망하고, 관객을 기후 공동 행동으로 끌어들인다. 관객은 스크린 중앙에 마련된 ‘밴드 리드’ 단상 위로 올라가 증강현실AR 기반의 ‘밴드 스탠드’ 악보를 연주하며 가상현실VR로 구현된 5개의 기후 권역을 위한 순회공연의 리허설을 이끈다.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무의식과 기술, 집단과 개인의 주체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작가의 영상·사진·설치 작품은 베를린국제영화제·뉴욕현대미술관·타이페이 비엔날레 등에서 전시·상영됐다. 베를린국제영화제 넷팩상을 받았고, 리움미술관 아트스펙트럼 작가상,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상 후원 작가 등 국내외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며 인정받고 있다. <피드백>2024은 관객과 로봇 카메라 간 상호작용을 통해 자기 인식의 과정으로서 보는 행위를 탐구한다. AI 알고리즘을 사용해 기존 장비로는 구현할 수 없는 앵글로 인간 퍼포머의 모습을 촬영해 화면에 비추며, 거울 속 이미지를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기계와 기술, 인간의 시선이 교차하며 관객은 자신이 기계의 피드백 루프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인간이 기술을 앞세워 다양하고도 고도화된 방식으로 주변 환경에 개입하고, 본질적인 변화를 끼치는 것에 주목한다. 기술이 장애 및 실패의 결과물을 대할 때 반응하는 관성적 태도와 주류와 정상正常만을 향하는 첨단 기술의 태생적 한계와 사회적 난제를 통해 기술에 의존할 때 발생하는 모순을 드러내고 고민과 질문을 심화하고 있다. 〈에코 메트로 팰리스〉2024 연작은 자연, 환경 파괴, 기술 발전, 그리고 인간의 관계를 탐구하는 작품이다. 작가는 인간의 필요에 의해 심어졌다 쉽게 제거되는 나무에서 영감을 얻어 작업을 시작했다. 벚나무·느티나무·조팝나무가 수목장을 위해, 은행나무와 플라타너스가 거리의 미관을 위해 심어지는 등 인간의 취향에 따라 조성되고 파괴되는 과정을 ‘불안정한 기념비’로 정의한다. 관객은 이를 통해 인간 중심의 환경 조성과 기술의 문제를 성찰하게 된다.
컴퓨팅 시스템과 회로를 매체로 활용해 설치 미술과 인터랙티브 환경을 창작하는 뉴미디어 아티스트이자 디자이너다. 작가는 질서와 혼돈 사이에 놓인 현상을 연구하며, 예상치 못한 요소를 포함한 작품을 만들어낸다. 독일·스위스·일본 등지의 페스티벌과 갤러리에 작품이 전시한 바 있다. <경계의 고리>2023-2024는 자연의 난류 현상에 인공적으로 개입하고 그 결과를 시각적으로 구현하는 설치 작품이다. 작가는 공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난류에 층류라는 인위적인 방향성을 부여하고, 이 공기의 흐름을 조각하고 가시화한다. 작품은 자연을 통제하려는 인간의 시도와 그 한계를 드러내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인공적인 흐름은 사라지고 자연의 본질로 돌아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인체 위를 덮는 피부와 그 위에 걸치는 옷의 물질성과 행위성을 중심으로 인체·사물·공간으로 확장되는 다층적 관계를 극 무대의 형식으로 선보여왔다. 작가가 천착해온 신체와 사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입고 걸치는 물리적 행위는 신체와 공간의 관계로 전이되며 점진적인 확장을 성취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웨어러블 테크놀로지와 플로팅 캡슐을 통해 인간 감각의 경계를 구현하는 <부유하는 피부>2024를 선보인다. 웨어러블 테크놀로지는 단순히 인간 신체를 강화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신체가 변화하는 직접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작품은 기술이 이미 우리 신체의 일부로 통합돼 있으며, 플로팅 캡슐에 담긴 액체처럼 공간·기술, 그리고 인간 신체 간 유동적인 관계를 드러낸다.
스피커와 마이크 등 직접 수집하고 제작한 음향 장치를 사용해 조각과 설치, 사운드 퍼포먼스 작업을 해오고 있다. 음향 출력 장치와 소리의 성질을 탐구해온 작가의 창작은 전기 신호를 음파로 변환하는 장치, 스피커의 물리적 진동과 소리의 파동에 관한 연구에서 비롯한다. 입력과 출력, 수신과 발신 등 의사소통의 형태로써 평소 지각하기 어려운 피드백 고리를 빛과 소리, 진동과 공명으로 공간에 구현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영소닉>2024은 영소nidification와 소닉sonic의 합성어로, 번식을 위한 동물의 집짓기와 소리를 결합한 단어이다. 지름 7미터의 반구 안에서 오디오 객체들이 상상의 공간을 구성해 존재하고, 세대를 거듭하며 자연스럽게 소멸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작품은 알고리즘이 생성한 소리와 그 소멸 과정을 통해 인간 외 객체의 존재에 주목하고 그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자 한다.
점점 가속화되는 기술 발전에 의해 엄청난 정보를 감지하고 분석하는 데 한계를 느끼는 흐름 속에서 작가는 기술 발전에 의해 변화하는 인간의 감각에 주목하고, 무뎌지는 감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환경 인지 장치’를 제작해 이러한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환경 인지 장치’는 인간에게 직·간접으로 이식되는 디지털 보철물의 형식으로 제작되며, 사운드를 매개로 사유하고 표현한다. <무심한 귀를 위한 애피타이저 시리즈>2024는 일상에서 멈추고 주변 소리에 귀 기울이는 행위에서 시작된다. 평소 의식하지 못했던 ‘노이즈’는 단순한 소음이 아닌 그 공간의 고유한 색과 생명력을 지닌 매개체로 변모한다. 작가는 곧 사라질 것 같은 지역의 소리를 기록하고 이를 담는 ‘플레이어’를 제작한다. 그렇게 소리에 집중하고 의식적으로 관조하는 과정을 통해 본질적인 소리를 찾는 여정을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