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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토크

10월호

“클래식과 대중의 만남, 제가 주선합니다”
테너 존노

TV 프로그램으로 대중에 이름을 알렸지만, 그의 행보는 좀 달랐다. 기다리기보다는 기회를 스스로 만들어갔다.
마침내 이루게 된 국내 전막 오페라 데뷔는 그래서 더욱 특별하다.
  • 촬영 협조 |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용산

    다양한 예술 경험을 통해 삶의 감각을 깨우고 생각의 지평을 확장함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탐색해볼 수 있는 공간. 복층 구조의 라운지로 꾸려진 센트럴파크타워 1층과 강의실 등이 자리한 공공시설동 5·6층으로 구성된다. 매주 화요일부터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한다.
    용산구 서빙고로 17 | 02.3785.3199

‘팬텀싱어’ 테너 존노가 국내 전막 오페라에 데뷔한다. 10월 19일과 20일 열리는 한강노들섬오페라 <카르멘>에서 돈 호세 역할을 맡았다. 이 소식이 유독 반가운 이유가 있다. 사실 JTBC 음악 예능 프로그램 <팬텀싱어>는 양면성이 있다. 뛰어난 실력을 갖췄으나 인지도가 떨어지는 성악가들을 널리 알리기도 했지만, 클래식 음악계가 좋은 인재를 대중음악계에 뺏긴다는 시선도 있다. 실제로 스타로 뜬 뒤 트로트·뮤지컬계를 주 무대로 선택한 성악가가 꽤 있다.

2020년 시즌 3의 준우승팀 ‘라비던스’로 큰 인기를 얻은 존노의 행보는 좀 달랐다. 데뷔 초부터 클래식 음악과 대중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겠다면서 팬텀싱어 콘서트뿐만 아니라 여러 음악회를 돌아다니며 다양한 성악곡을 불렀다. 오페라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며 살롱 오페라 <사랑의 묘약>, <코지 판 투테>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지만, 전막 오페라 프로덕션의 주역을 맡은 건 처음이니 기대가 높을 수밖에. 첫 도전에 야외 오페라가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마침내 국내 데뷔를 하게 된 그는 마냥 설레 보였다.

빙 돌아서 왔네요. 제가 예일대에서도 오페라과를 다녔고, 졸업 후에 오페라단 입단을 준비하다가 <팬텀싱어>에 나가게 됐어요.
오페라에 대한 갈망은 늘 있었지만 국내 오페라 데뷔 기회는 쉽게 주어지지 않더군요. 다른 활동을 하면서도 두 차례 살롱 오페라를 직접 만들면서 오페라를 하고 싶어 한다는 걸 많은 사람에게 어필했어요.

모차르트 테너인데, 돈 호세 역할이 잘 맞나요. 그래서 사실 좀 고민했어요. 저는 벨 칸토와 모차르트·바로크·현대음악에 전문성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하지만 만일 이번에 하지 않는다면 국내 오페라 무대에 정식 데뷔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 같았어요. 마침 활동하면서 목소리가 조금 성숙하게 변하던 참이기도 해서 도전했습니다.

첫 클래식 앨범에 돈 호세의 ‘꽃노래’가 수록돼 있던데요. 원래 좋아하는 곡이에요. 미국에서 전막은 아니지만 돈 호세 역을 여러 번 했거든요. 돈 호세는 처음에는 서정적이고 리릭한 소리를 내다가 뒤에는 완전히 드라마틱한 소리를 내야 해요. 두 가지 소리를 전부 내야 진정한 돈 호세라고 하죠. 저는 원래 리릭 테너지만 성대결절 이후에 목을 아끼면서 레제로에 가까운 리릭이 됐거든요. 그래서 첫 번째 돈 호세를 많이 했어요. ‘꽃노래’도 첫 번째 돈 호세의 아리아죠. 뒷부분에선 성량이 오케스트라를 뚫어야 하는데, 제 소리가 좀 계발이 덜 된 느낌은 있어요. 하지만 요즘 다시 리릭 쪽으로 변하고 있기도 하고요. 좋은 소리를 들려드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해외에서도 야외 오페라는 해 본 적 없죠. 야외는 아니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공간에서 오페라를 한 적은 있어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애스터 코트에서 세계 초연한 <무라사키의 달Murasaki’s Moon>2019이라는 작품에 출연했거든요. 일본의 고문학 『겐지모노가타리』 관련 전시와 함께 오페라를 만드는 프로젝트였는데, 승려 역할이라 진정성을 보여주겠다고 삭발까지 하고 나간 기억이 나네요. 저도 언젠가 그런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콘서트를 준비할 때와는 긴장감이 다를 거예요. 한국에서 전막 오페라는 처음이라는 긴장감은 좀 있는데, 혼자 콘서트할 때보다는 덜 하네요. 큰 배에 탄 사람일 뿐, 선장은 제가 아니니까요. 어떻게 평가받을지 걱정은 되지만, 도전할 때가 온 것 같아요. 도전 없이는 성장할 수 없잖아요. 만약 이번에 안 좋은 평가를 받더라도 제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합니다.

오페라를 위해 특별히 신경 쓰는 점이 있다면. 진짜 돈 호세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카르멘>은 연기에 신경 쓰고 안 쓰고의 차이가 큰 작품인데, 관객이 작품에 빠져들게 하는 게 목표예요. 그래서 올해 들어 10킬로그램 정도 살을 뺐죠. 돈 호세가 군인인데, 너무 ‘귀욤귀욤’ 하면 안 되잖아요.(웃음) 갈수록 우울해져야 하는 역할이고, 그래서 지금도 다이어트 중이에요. 공연 때까지 3~4킬로그램만 더 빼면 목표를 달성할 것 같아요.

사실 <카르멘>은 바리톤이 맡는 에스카미요가 더 매력적인데요. 호세가 순정남이긴 하지만 악역이라 생각해요. 1막부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면모를 보이거든요. 욱했다가 가라앉는 연기를 표현하지 않는 분들도 있지만, 제 무대에선 그런 걸 잘 봐주시면 좋겠어요. 저는 병적이고, 아픈 사람으로 해석하려 해요. 군인은 정해진 규칙 안에서 상관의 명령대로 살아야 하고, 약혼자 미카엘라도 어머니가 정해주신 거잖아요. 평생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살다가 틀에서 벗어났을 때의 정서적인 불안감이 있고, 나중엔 ‘자유분방의 끝판왕’인 카르멘에 의해서 선을 넘고 마는 거죠. 이걸 너무 사랑해서 저지른 비극이라고 한다면 변명인 것 같고, 문제 있는 사람으로 표현하려고 해요.

그를 다시 만난 건 거의 3년 만이다.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여름, 첫 클래식 음악 앨범 발매와 첫 독창회를 앞두고 있던 앳된 청년이 그사이 뉴욕 카네기홀에서 독창회를 열 만큼 성장했고, 9개월 딸을 둔 아빠가 됐다. 음악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많은 변화가 있었을 터다.

3년 전의 존노와 지금의 존노를 비교해볼까요. 무대 경험이 많아진 만큼 음악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진 것 같아요. 전에는 계속해서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자 했다면, 이제는 음악에 온전히 빠져 있을 때 저도 관객도 행복하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아이 덕분에 음악을 대하는 시야가 넓어지기도 한 것 같아요. 음 하나를 연주할 때도 전에는 그 음만 생각했다면, 이제는 왜 그 음이 필요한가, 그 음 때문에 영향을 끼치는 게 뭘까 생각하게 됐죠. 아이가 울면 왜 우는지 알아야 달랠 수 있는 것과 똑같아요.(웃음)

클래식 음악과 대중의 가교 역할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제 소신 그대로 꾸준히 해왔어요. 그러다보니 제 팬 중에 정말로 클래식 음악에 빠진 분들도 있고, 그게 제 역할이라 생각해요. 이번 오페라도 그런 맥락이죠. 전에 제가 만든 오페라는 전막 프로덕션은 아니었으니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보여드릴 수 있어 뿌듯하고요. 사실 지난달 서울시합창단 <한여름의 메시아> 무대에 솔리스트로 섰는데, 섭외된 게 아니라 공개 오디션에 회사 몰래 지원해서 배역을 따낸 거거든요. 저는 가만히 기다리지 않고 클래식 음악과 대중을 이곳에 데려와 열심히 다리를 놓는 중입니다.(웃음)

카네기홀 데뷔도 특별했겠죠. 뉴욕에 있을 때 카네기홀의 가곡 프로그램에 학생으로 참여하면서 무대에 서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그곳에서 독창회를 하게 되니 감사했어요. 팬분들이 소문도 많이 내줘서 매진을 기록했고요. 그런데 감기에 걸려서 고생을 좀 했죠.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는데, 뉴욕에서 일정이 많았거든요. 전날에는 소리가 전혀 안 나오길래 약을 잔뜩 먹고 잠만 잤죠. 다행히 당일엔 좀 괜찮아져서 무사히 공연을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한 곡이 남았을 때 목이 아예 잠겨버리는 거예요. ‘내 영혼 바람되어’라는 슬픈 곡이라 오로지 북받치는 감정만으로 울면서 불렀는데, 오히려 팬들은 그걸 좋게 봐주시더라고요. 맨 마지막 곡이라 다행이면서도, 아쉬웠어요. 뭐든지 내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란 걸 다시 한번 느꼈습니다.

‘팬텀싱어’들은 뮤지컬 무대에도 많이 진출하는데요. 기회가 된다면 저도 뮤지컬을 할 수 있겠지만, 우선은 제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걸 먼저 하고 싶어요. 차이라면 오페라는 캐릭터가 먼저고, 뮤지컬은 배우가 먼저인 것 같거든요. 오페라는 스타를 보러 오는 게 아니라 정답을 듣기 위해 극장에 오죠. 그래서 관객이 유입되는 데 오래 걸리는 단점은 있어요. 오페라 작품은 캐릭터를 다 알고 봐야 재밌는데, 모든 관객이 그렇지는 않으니까요. 반면 뮤지컬 팬들은 배우를 따라와서 작품에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되죠. 다행히 제 경우는 팬들이 <카르멘>을 엄청나게 공부하고 저의 돈 호세는 어떨지 궁금해 하면서 오시니까 더 감사하죠.

요즘 한국 오페라 시장에 대작도 많이 올라오고 있고, 장르에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요. 한국에 미래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제가 외국에 있을 때 교수들이 늘 아쉬워하는 게, 정말 재능 있고 스타성 있는 사람들도 좀 배우다가 전공을 바꾼다는 거였어요. 오페라계가 침체하니 노래로 생계유지가 어렵다는 걸 깨닫고 그만두는 거죠. 그러니 좋은 가수들이 안 나오고 오페라는 점점 더 침체하는 악순환인 건데, 제 생각에 한국에선 좋은 가수들이 많이 나오고 기회도 스스로 만들고 있는 것 같아요. 제 또래만 해도 훌륭한 예술가들이 엄청 많고, 그들이 뭉친다면 좋은 콘텐츠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콘텐츠로 승부를 보는 시대잖아요.



유주현 중앙SUNDAY 기자

사진 Studio Ke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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